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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공부를 잘하고 확고하게 법을 실증하다

글/ 산둥(山東) 대법제자 구술, 수련생 정리

[밍후이왕] 나는 올해 77세다. 그동안 법공부하고 수련한 체험을 써서 사부님께 보고하고 수련생 여러분과 교류하려 한다.

1. 법공부를 많이 하고 잘해야만 정념이 강해질 수 있어

나는 법을 얻고 지난 25년간 환경이 얼마나 사악하든, 압력이 얼마나 크든 사악에게 머리 숙이지 않고 줄곧 확고하게 법을 실증하는 길을 걸어왔다. 이는 내가 줄곧 열심히 법공부를 한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법을 얻은 날부터 나는 매일 법공부를 견지했는데, 조금 느리지만 마음을 조용히 하고 집중해서 했다.

나는 처음에는 글을 읽지 못했지만 큰 노력을 거쳐 나중에는 사부님의 모든 설법을 읽을 수 있게 됐고 수련생들의 교류문장도 볼 수 있었다. 사부님의 자비로운 도움으로 남편은 내게 대법 책을 읽어주고 글자를 가르쳤으며, 아들과 딸도 대법 책을 읽어줬다. 그 과정에서 남편은 법을 얻었고 아들과 딸은 수련으로 들어서지는 않았지만 파룬궁이 좋은 공법이라는 것을 알고 나를 지지해 복을 받았다. 딸은 명문대를 졸업했고 아들은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모두 도시에서 좋은 직장을 얻어 풍족한 생활을 누리고 있다.

나는 다른 도시로 이사한 후 사부님께 현지 대법제자들을 찾게 해달라고 빌어 바로 단체 법공부에 참여할 수 있었다. 나는 그 환경을 소중히 여기면서 다른 수련생들과 같이 법공부하고 같이 교류해 수련 제고에 많은 도움이 됐다. 나는 매주 한 번은 부족하다고 생각해 나중에 또 다른 법공부 팀에 참여했다. 이렇게 매주 두 차례 단체 법공부를 할 수 있었다. 거기서 수련생들은 이해되지 않는 점이 있거나 좋은 체험이 있으면 같이 교류했다.

그때 남편에게 심각한 뇌졸중 병업 증상이 나타났는데 나는 매번 남편을 잘 돌본 후 법공부를 하러 갔다. 돌아오는 길에 장을 봤기에 남편을 보살피는 데 전혀 지장이 없었다. 나중에 남편의 병업이 더 심해지자 우리는 원래 살던 도시로 돌아갔다. 내가 세 가지 일을 잘할 수 있도록 아들은 남편을 보살필 간병인을 찾아줬고 간병인에게 어머니가 어디를 가시든 간섭하지 말라고 부탁했다. 그래서 나는 더 충분한 법공부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됐다. 수련생들이 법을 외우면 대법에 더 잘 동화되고 더 좋은 수련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고 교류하자 나도 법을 외우기 시작했는데, 확실히 법을 외우니 법으로 자신을 더 잘 대조할 수 있었다.

2. 안으로 닦아 심성관을 넘기다

베이징에 가서 손자를 돌볼 때 처음에 나는 아들과 같이 살지 않았다. 어느 날, 나는 배추 네 포기를 산 후 삼륜차에 싣고 아들 집으로 향했다. 그런데 도착해 보니 아파트 엘리베이터가 고장 나 있었다. 할 수 없이 배추를 짊어지고 14층까지 올라갔는데 아들은 땀에 흠뻑 젖은 내 모습을 보고 속상해 나를 한바탕 나무랐다. “누가 배추를 사 오라고 했나요? 엘리베이터가 고장 났으면 배추를 버리면 되죠!” 이 말을 듣고 나는 화가 치밀어 바로 돌아서 와버렸다. 나는 눈물을 흘리면서 생각했다. ‘내가 대법을 수련하니까 그런 거지, 안 그러면 힘들게 배추를 갖다주겠어?’ 나는 아들이 철이 없어 감사는커녕 도리어 나를 나무랐다고 원망했다. 나는 생각하면 할수록 억울해 가슴 부위가 아팠다.

아파트에서 내려온 후 다른 사람이 보면 안 되니 눈물을 닦고 억지로 참았다. 그런데 갑자기 사부님 말씀이 생각났다. “속인의 고락 생각하지 않음이 수련자요, 세상득실 집착하지 않음이 나한이로다”.[1] 내가 ‘사부님 감사드립니다, 제자가 잘못했습니다’라고 생각하자 가슴이 바로 아프지 않았다. 나는 걷다가 길거리에서 일하던 노동자 네댓 명을 만나서 그들에게 진상을 알리고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真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기억하고 늘 외우면 평안을 얻을 수 있다고 알려줬는데 그들은 모두 받아들였다.

작년 1월 어느 날 오후, 간병인은 남편에게 안마를 해주면서 “요 며칠 아주머니가 여기저기 다니는 바람에 아저씨에게 안마를 못 해 드렸어요”라고 푸념했다. 나는 생각했다. ‘난 요 며칠 조카 결혼식 때문에 계속 고향에 가 있었어. 나에게 밥 해준 것도 아닌데 왜 시간이 없었다고 하는 거지?’ 나는 또 화가 나서 가슴이 심하게 아팠다. 자전거를 타고 밖에 나갔는데 억울해서 계속 눈물이 났다. 집에 돌아가서 해명하고 싶었지만 그러지는 못하고 걸으면서 생각했다. ‘왜 또 마음을 움직였을까?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갈등에 부딪히면 자신을 찾으라고 말씀하시지 않으셨는가?’ 이렇게 생각하자 갑자기 가슴이 확 트였고 통증도 사라졌다. 나는 집으로 돌아온 후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웃으면서 간병인과 이야기를 나눴다.

3. 용감하게 병업관을 넘기다

한번은 의사가 남편에게 주사를 놔주러 우리집에 왔는데, 내 다리에 빨간 두드러기가 난 것을 보고 뇌졸중 증상이라고 했다. 우리집은 윗세대부터 고지혈증, 뇌졸중 병력이 있었기에 혹시나 하는 마음에 두려움이 생겼다. 그러자 즉시 온몸이 차가워지고 다리가 저리기 시작했다. 나는 잘못을 깨닫고 수련인은 병이 없다고 생각하면서 즉시 발정념으로 부정하고 법공부를 강화했다. 그렇게 두 시간쯤 지나자 바로 상태가 회복됐다.

재작년 딸은 월급 책정 시 필요하다며 나에게 건강검진을 하라고 했다. 검진 결과 내 혈압은 160~200이었다. 의사는 뇌졸중 증상이라면서 딸에게 약을 짓게 했지만 나는 모두 환불시켰다. 나는 이것은 모두 가상이니 승인하지 않겠다고 생각했는데 그 후 아무 일 없이 세 가지 일을 할 수 있었다.

몇 년 전, 나는 발에 티눈 같은 것이 자라났는데 5년간 사라지지 않았다. 고통을 참지 못해 약을 발랐더니 일주일 만에 바로 사라졌다. 하지만 이 관을 넘지 못하자 또 다른 관이 닥쳐왔다. 발바닥 한 가운데에서 건선 같은 것이 자라 가려워 견딜 수 없었다. 긁으면 피나 고름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나는 병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저번에 관을 잘 넘기지 못했기에 이번에 보충 시험을 보는 것이고, 난을 더 키웠다고 생각했다. 나는 아직 무슨 집착심이 있는지 안으로 찾아봤는데 많은 사람의 마음을 찾아낼 수 있었다. 다른 사람이 지적하는 것을 싫어하는 마음이 있었고 남편에 대한 정도 내려놓지 못했다. 남편은 최근 몇 년간 계속 죽 같은 환자 음식만 먹었기에, 나는 가끔 맛있는 반찬을 하면 남편이 먹지 못하는 것 때문에 슬퍼서 눈물을 흘렸다. 가끔은 또 남편이 법공부에 정진하지 못해 이 지경이 됐다고 원망했는데, 그 속에는 질투심과 체면, 허영심이 숨어 있었다. 나는 이런 집착을 모두 닦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또 법공부와 연공을 많이 하고 진상을 많이 알려 사람을 구했는데, 얼마 되지 않아 발바닥 건선이 흔적만 조금 남았을 뿐 전부 나았다.

4. 진상을 알려 중생을 구하고 서약을 실천하다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세 가지 일을 잘하라고 하셨기에 나도 마음을 써서 위대한 사명을 다하려 했다. 처음에 우리는 자료가 없어서 남편이 카드와 스티커에 진상 내용을 쓰고 내가 배포하거나 붙이고 다녔다. 이후에 자료점을 알게 되어 거기서 자료를 가져다 쓰거나 다른 수련생에게 전달했다. 한번은 세 사람이 함께 하룻저녁에 2천 부를 배포했는데 일 인당 600부 넘게 배포한 셈이다.

또 한번은 농촌 마을을 다니면서 저녁부터 날이 밝을 때까지 스티커를 붙였다. 그곳은 산골이라 길이 울퉁불퉁하고 돌멩이도 많아서 발에 물집까지 생겼다. 그날 밤 나는 한 전봇대에 진선인(真·善·忍) 스티커를 붙였는데 글자에서 갑자기 눈부신 빨간 빛이 나타났다. 나는 그것이 사부님께서 격려해주시는 것임을 알았다. 그런데 스티커를 거의 다 붙일 무렵 한 청년이 뒤따라왔다. 나는 자신이 가장 바른 일을 하고 있으므로 누구도 교란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기에 조금도 두렵지 않았다. 그는 내 앞으로 다가와 뭘 하는지 물었다. 내가 친척 집에 왔다고 하자 그는 누구냐고 물었다. 내가 아무렇게나 우(吳) 씨라고 하자 그는 그런 사람이 없다고 했다. 내가 새로 이사 온 사람이라고 하자 그는 갑자기 잘 모르겠다고 하더니 아무 일 없다는 듯이 가버렸다. 나는 이 난을 무사히 넘기게 해주신 사부님께 감사드렸다!

그런데 한 수련생이 납치된 후 심성을 지키지 못해 경찰에게 나를 일러바쳤다. 경찰이 우리집에 들이닥쳤을 때 나는 집에 없었고 남편만 세뇌반으로 끌려가 불법적으로 40여 일 감금됐다. 나는 이 사실을 모르고 있었지만 진상을 아는 이웃이 나를 보자마자 알려줬다. “마침 잘 왔어요, 경찰이 매일 찾아오고 있어요. 방금 다녀갔으니 빨리 짐을 챙겨서 도망가세요.” 그래서 나는 옷 몇 벌만 갖고 나왔는데 마침 대문 앞에 삼륜차가 있어서 버스 정류장까지 타고 갔고 거기서 시내로 갔다.

나는 이발하는 수련생을 찾아가 그녀 집에 며칠 머물렀다가 다른 수련생 집으로 갔다. 경찰이 뒤쫓아왔지만 내가 그곳을 떠난 직후였다. 나는 두 번째 수련생 집에서 반년간 머물렀다. 나는 원래 그녀와 잘 모르는 사이였는데 물어보니 성이 우(吳) 씨였다. 그녀도 미용실을 했고 집에서 자료점을 운영했는데, 아이 두 명이 있어서 내가 보살펴줬다. 거기서 머문 반년간 우리는 같이 법공부하고 자료를 배포했다. 이후 나는 남편과 함께 손자를 봐주러 아들 집에 가게 되어 그곳을 떠났다.

대도시로 가서도 우리는 여전히 사명을 잊지 않았다. 처음에는 여전히 남편이 ‘파룬따파하오’와 ‘쩐싼런하오’ 카드와 스티커를 만들고 내가 공원, 아파트 복도 등 곳곳에 붙였다. 한번은 딸이 남편과 날 천안문에 데리고 간 적이 있었는데, 그때 나는 천안문 성루 위에도 스티커를 붙였다. 우리는 가는 길에 발정념을 하면서 작은 카드를 많이 배포했고, 천안문 성루에서는 “파룬따파하오”를 여러 번 크게 외쳤다. 경비원은 처음에는 알아듣지 못하다가 나중에 알아차렸지만 인파 속에 숨은 나를 찾지 못했다. 그래서 안전하게 그곳을 벗어날 수 있었다.

손자를 보는 동안 나는 또 사부님의 도움으로 현지 수련생과 연락할 수 있었다. 덕분에 우리는 자료가 있게 됐고 사부님의 새로운 설법과 경문도 제때 볼 수 있었다. 어느 날 나와 남편은 자료를 배포하다가 대법을 비방하는 대형 현수막을 발견했다. 우리는 사람이 적은 저녁에 도구를 준비해 자전거를 타고 그곳에 갔다. 한 사람이 한쪽씩 맡아서 신속하게 현수막을 잘라낸 후, 남편은 현수막을 품에 안은 나를 자전거에 태우고 바로 그곳을 떠났다. 가는 길에 내가 쓰레기봉투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자, 발밑에 무엇인가 있는 것 같았다. 잘 보니 큰 쓰레기봉투였다. 나는 현수막을 잘라서 그 봉투에 담았는데, 또 마침 앞에 쓰레기통이 보여 거기에 버린 후 뚜껑을 덮고 깨끗이 일을 마쳤다.

손자가 유치원을 다니면서 내가 보살필 필요가 없게 되고, 남편에게도 뇌졸중 병업이 나타나 우리 부부는 아들 집에서 나와 다른 도시로 갔다. 그곳에서도 사부님의 도움으로 우리는 아주 빨리 현지 수련생들과 연락이 닿았다. 그동안 나는 어디를 가든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세 가지 일을 잘하려고 노력했다. 수련생들이 가까운 연공장을 찾아줘서 나는 현지 단체 법공부에 참여할 수 있었다. 하루는 단체 법공부하러 가는 날인데 폭설이 내렸다. 눈이 한쪽으로 녹으면서 길이 질척했는데 법공부 장소가 산속 과수원에 있어서 몇 km를 걸어가야 했다. 그날 딸까지 놀러 왔지만 나는 수련생들과 법공부하고 교류하는 것을 소중히 여겼기에 여전히 법공부하러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밖에는 눈이 많이 쌓여 있었고 녹은 곳은 발이 푹푹 파졌는데 그날 하필 나는 새 신발을 신었다. 신발이 더러워진 것을 보자 법공부 갈 생각이 사라졌다. 하지만 나는 ‘신발 하나도 버리지 못하는가? 이것은 이익을 중시하는 마음 아닌가?’라고 생각했고, 또 고생하기 싫어하고 곤란을 두려워하는 마음도 찾아냈다. 또 우리를 위해 고생하고 계시는 사부님이 떠오르자 나는 바로 정신을 차리고 발걸음을 다그쳤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검은색 승용차 한 대가 내 옆에 멈춰서더니 나에게 물었다. “아주머니, 어디 가세요?” 내가 저 앞으로 간다고 하자 그 청년은 “길이 험하고 같은 방향이니 차에 타세요”라고 말했다. 나는 신세 지기 싫어 거절하려 했지만 사부님께서 인연 있는 사람을 안배하신 것 같아 그러자고 했다. 나는 차에 타자마자 그 청년에게 말했다. “젊은이는 정말 좋은 사람이네요. 좋은 일이 있을 거예요. 평안을 얻는 방법을 알려줄게요. 저는 전에 온몸에 병이라 여기저기 다니면서 치료했지만 낫지 않았고 나중에는 약을 입에 대기도 싫었어요. 그런데 파룬궁을 수련하니 다 나아서 지금 봤겠지만 아주 건강하고 몸이 가벼워요. 파룬궁은 병을 제거하고 몸을 건강하게 하는데 신기한 효과가 있어요. 파룬궁은 불가 고덕대법(高德大法)이고 진선인에 따라 수련해 좋은 사람이 되게 하는 거예요.”

“장쩌민은 1억이 넘는 사람들이 파룬궁을 수련하는 것을 보고 질투해 잔혹한 박해를 발동했어요. 사람들이 파룬궁을 증오하게 하려고 ‘천안문 분신자살’ 사건을 조작했고요. 장쩌민은 ‘3개월 안에 파룬궁을 소멸한다’고 큰소리치면서 ‘명예를 더럽히고, 경제를 파탄시키며, 육체를 소멸한다’는 잔혹한 박해 정책을 지시했어요.”

마지막으로 나는 그에게 삼퇴(중공의 3대 조직인 공산당, 공청단, 소선대 탈퇴)하면 평안을 얻을 수 있다고 알려주면서, 중공이 정권을 잡은 후 숙청, 삼반오반, 반우파투쟁, 대약진, 문화대혁명, 천안문사태, 파룬궁 박해 등 끊임없는 정치운동을 발동해 8천 만이 넘는 중국인을 사망하게 했다고 설명했다. 이어서 ‘사람이 다스리지 않으면 하늘이 다스리며, 하늘이 중공을 멸하려 한다’는 이치를 알려주고 중공 조직에서 탈퇴하면 평안을 얻을 수 있다고 말했는데, 그 청년은 흔쾌히 중공 사교 조직에서 탈퇴했다.

내가 그에게 호신부를 주면서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 쩐싼런하오(真善忍好)’를 기억하라고 당부하자 그는 그러겠다고 했다. 나는 목적지에 도착하자 차에서 내리면서 감사하다고 인사했다. 그 청년도 파룬궁 진상을 알려줘서 감사하다고 했다.

그날 나는 제시간에 법공부 장소에 도착했다. 수련생들은 큰 눈이 내리고 길도 험해서 내가 오지 못할 줄 알았다고 했다. 내가 오는 길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들려주자 모두 기뻐했다. 우리는 수련자가 법에 있기만 하면 사부님께서 가장 좋게 안배해주신다는 것을 알게 됐고 사부님의 도움과 격려를 느낄 수 있었다.

법공부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데 길에서 또 빨간색 승용차 한 대가 내 옆에 멈춰서더니 타라고 했다. 나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차에 올라 또 순조롭게 운전자를 삼퇴시켰다. 사부님, 너무 감사합니다!

또 한번은 버스를 타려고 한 발을 내미는 순간 버스 문이 닫혀버렸다. 나는 얼른 발을 빼고 화를 내지 않았다. 인연 있는 사람이 날 찾아올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직후 정말 승합차 한 대가 내 앞에서 멈춰 섰다. 내가 어디로 가는지 묻자 기사는 차에 타라고 했다. 차에 탄 후 보니 착한 사람 같아서 그에게 진상을 알리고 삼퇴시킨 후 진상자료까지 주고 차에서 내렸다.

나는 또 여자 기사가 운전하는 택시에 탄 적이 있는데 가는 길에서 그녀에게 진상을 알렸다. 파룬궁이 무엇이고 수련 후 심신의 변화, 파룬궁을 수련하면 병을 제거하고 몸을 건강하게 하는 기적이 나타난다는 사실과 인과응보의 사례를 들려줬다. 그녀가 흔쾌히 삼퇴하자 나는 차에서 내렸다.

나는 고정된 시간에 전문적으로 진상을 알리는 것이 아니라 언제 어디서나 사람을 만나면 진상을 알렸다. 우리집에 오는 수리공도 빠뜨리지 않고 진상을 알리고 삼퇴시켰다. 우리집 간병인에게도 진상을 알리고 삼퇴시켰을 뿐만 아니라, 함께 있는 시간이 길었기에 그녀에게 대법 법리도 알려줬다. 그래서 그녀의 성격은 전보다 많이 좋아졌고 시어머니, 남편과의 관계도 많이 개선됐다.

그동안 나는 특별한 일이 없으면 매일 사람들에게 진상을 알리고 삼퇴를 권했다. 하지만 정진하는 수련생들과 비교하면 아직 큰 격차가 있으므로 앞으로 더욱 정진할 것이다. 법공부를 많이 하고 법공부를 잘할 것이며, 서약한 대로 사람을 많이 구하고 원만해 사부님을 따라 돌아가겠다.

층차의 한계로 적절하지 못한 곳이 있을 수 있으니 수련생 여러분께서 자비롭게 시정해주시길 바란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시사(詩詞): ‘홍음-삼계를 벗어나다’

 

원문발표: 2023년 2월 14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3/2/14/44119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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