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쿤밍시 수련자 리페이가오, 팔순에 옥살이하다 출소 앞두고 사망

[밍후이왕] 윈난(雲南)성 쿤밍(昆明)시 파룬궁수련자 리페이가오(李培高)가 4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하다 출소를 며칠 앞둔 2023년 1월 4일, 86세 나이로 사망했다. 먼저 풀려난 동료 수감자들은 그간 리페이가오의 건강 상태가 좋았다며 갑작스러운 사망 소식에 놀랍다는 반응을 보였다.

1937년생인 리페이가오는 윈난 건축공정집단(建工集團) 설치주식회사(현 윈난건설투자설치유한주식회사)에서 엔지니어로 일하다 1994년에 은퇴했다. 그는 아내가 일찍 세상을 떠나고 신변에 자녀도 없어 수감되기 전 회사 기숙사에 거주했다.

납치, 징역형 등 박해 

2015년 11월 26일, 78세였던 리페이가오는 지푸셴(紀福仙), 허솽펑(和雙鳳)과 함께 시산(西山)구 국보대대 및 융창(永昌) 파출소 경찰에게 납치 및 가택수색을 당했는데 고령이어서 불구속 재판을 받았다.

2016년 9월 8일, 시산구 법원은 수련자 3명에 대한 불법 재판을 열었다. 법정에서 리페이가오는 자신이 어릴 때부터 위장이 좋지 않아 20년 넘게 설사했고, 다리도 약해 조금만 걸어도 주저앉았지만 파룬궁을 수련한 후 이런 증상이 모두 사라지고 활기를 되찾아 아무리 먼 길을 걸어도 피곤하지 않게 됐다고 말했다. 동시에 그는 리훙쯔(李洪志) 사부님께서 ‘전법륜’에서 요구한 진선인(真·善·忍)의 표준에 따라 명성과 이익을 담담히 보고 항상 타인을 선하게 대했다면서,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와 리훙쯔 사부님의 은혜에 감사를 표하고 파룬궁 진상을 알렸다. 판사가 수시로 재판 망치를 두드려 그의 말을 중단시키며 듣지 않자 그는 재판이 끝날 때 자신이 쓴 편지를 판사에게 전달했다. 그러나 거우유샹(苟有祥) 판사는 여전히 사실과 법을 무시하고 한 달 후, 리페이가오를 포함한 수련자 세 명에게 징역형을 선고했다.

리페이가오는 4년 형을 선고받은 후 쿤밍시 중급법원에 항소했지만 1심의 사악한 판결이 그대로 유지되면서 2019년 1월 초, 윈난성 제1감옥에 수감됐다.

올해 1월 초, 리페이가오는 4년간의 억울한 옥살이를 마치고 출소될 예정이었지만, 출소를 며칠 앞둔 1월 4일 감옥에서 갑자기 사망했다. 감옥 측은 그가 병사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정확한 사인이 밝혀지기 위해서는 추가 조사가 필요하다. 밍후이왕에는 파룬궁수련자가 감옥에서 출소 직전 갑자기 사망한 사례가 여러 건 보도된 바 있다.

1999년 7월 이후 리페이가오가 당한 박해

1999년 7월, 중국공산당이 파룬궁 박해를 발동한 후, 리페이가오는 신념을 고수하고 파룬궁 진상을 사람들에게 알렸다는 이유로 여러 차례 납치되고 가택수색을 당했다.

그해 7월 24일 아침, 리페이가오는 성(省) 위원회 연공장에서 연공하다가 경찰 3명에게 끌려갔고 가택수색을 당했다. 불법 가택수색을 실시한 경찰은 우화(五華) 국보대대의 마잉후이(馬迎輝)와 리잔쥔(李佔軍)이다.

3개월 후인 10월 28일 밤, 리페이가오는 집에서 연공하다가 집에 들이닥친 두 명의 경찰에게 다시 납치돼 시바(西壩) 파출소로 납치돼 불법 조사를 받았다.

그해 11월, 쿤밍시 우화 공안분국 정치보위과 경찰 왕리즈(王力志)는 여러 차례 리페이가오를 불러 파룬궁 수련을 포기할 것을 강요했는데, 네 번째에는 다른 두 명의 경찰과 함께 집으로 찾아가 압박했다. 그때마다 리페이가오는 경찰들에게 수련자들을 선하게 대하면 장차 복을 받을 것이라며 진상을 알렸다.

1년 후인 2000년 11월 8일, 쿤밍시 공안국 1과의 경찰 리궈중(李國忠), 왕차오펑(王朝鳳)이 리페이가오의 집에 들이닥쳐 불법 가택수색을 했다.

2001년 3월 27일에는 윈난성 다리(大理)주 공안국, 빈촨(賓川)현 공안국, 윈난성 공안청, 쿤밍시 우화 분국 경찰들이 불법 가택수색을 했다. 그 후 빈촨현 공안국 경찰 자오성(趙勝), 양훙(楊洪), 돤더빈(段德彬), 우인둥(吳銀東) 등은 리페이가오를 현지 구치소로 납치해 4월 25일까지 불법 감금하고 2천 위안을 갈취했다.

같은 해 8월에는 직장 관계자 두 명에 의해 우화구 ‘610사무실(파룬궁 탄압 기구)’에 끌려간 후 쿤밍시 항톈(航天)요양원 세뇌반에서 열흘간 박해를 받았으나 그는 ‘전향(수련 포기)’을 거부했다. 당시 우화구에서는 총 12명의 수련자가 납치됐다.

2003년 8월, 리페이가오는 다시 직장 보위과와 좐탕(篆塘) 주민위원회에 의해 ‘610’ 세뇌반으로 끌려갔다. 이번에는 10명의 수련자가 세뇌반에서 강제 세뇌를 당했는데 장소는 여전히 쿤밍시 항톈요양원이었다.

2005년 7월, 리페이가오는 또 우화구 ‘610’ 주임 자오(趙) 씨, 우화구 검찰원 웨이(魏) 씨, 우화 국보대대의 롄쉐텅(練學騰) 등 경찰에 의해 항톈요양원 세뇌반으로 납치돼 9일간 박해를 당했다.

2008년 6월 21일 저녁 10시경, 리페이가오는 다관(大觀) 파출소, 우화 국보대대의 롄쉐텅 등 경찰들에게 납치 및 가택수색을 당했다. 그 후 쿤밍시 검찰원과 중급법원에서 3년 형을 선고받고 윈난성 제1감옥에서 복역하다 2011년 2월 22일 출소했다.

출소 이듬해인 2012년 5월, 리페이가오는 쿤밍시 진비(金碧)로에서 션윈 공연 CD를 배포하던 중 사복 경찰을 만나 충런(崇仁) 파출소로 끌려가 심문과 가택수색을 당했다. 파출소에서 쉬지 않고 진상을 알린 덕분에 한 시간 후 풀려났다.

같은 해 11월 13일, 윈난성 제1감옥의 교육과 경찰 3명과 시바 지역사회 주임 진(金) 씨가 갑자기 리페이가오의 집에 침입해 파룬궁 서적을 계속 읽으면 감옥에 가두겠다고 협박했지만 그는 흔들리지 않고 진상을 알렸다.

2013년 3월 8일, 리페이가오는 쿤밍 왕자교(王家橋) 근처에서 주민들에게 진상 CD를 배포하다 신고를 당해 왕자교 파출소로 납치됐다. 국보대대의 마빈(馬斌), 마잉후이는 리페이가오를 쿤밍시 다관 파출소로 끌고 가, 가족에게서 보증금 1천 위안을 내게 한 후에야 집으로 돌려보냈다.

같은 해 5월 1일 아침 8시 20분쯤, 리페이가오는 쿤밍시 뎬츠(滇池)로에서 또 션윈 CD를 배포하다 경찰 쉬윈펑(徐雲鵬)에게 납치돼 신춘(新村) 파출소에서 조사를 받고 오후 1시경 풀려났다.

2018년 9월 15일 오후 2시, 리페이가오는 진상자료를 배포하던 중 다시 사복 경찰에게 신고당해 진비로 파출소로 납치됐고, 자전거에 있던 진상자료를 모두 빼앗겼다. 이어 시산구 국보대대 경찰 두 명이 불법 가택수색을 했다. 리페이가오는 저녁 1시 30분까지 불법 감금됐다가 풀려났다.

그해 11월 24일 오후, 리페이가오는 쉰진(巡津)가 판룽(盤龍) 강변에서 진상달력과 소책자를 배포하던 중 진비로 파출소 경찰에게 납치됐고, 시산구 국보 경찰에 의해 불법 가택수색을 당했다. 그는 그날 저녁 8시에 풀려났다.

중국공산당이 파룬궁을 박해한 20년간 리페이가오는 대중에게 진상을 알리고 자료를 배포하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그는 이 때문에 반복적으로 공안에 납치, 가택수색, 벌금을 당하고 온갖 위협에 시달려야 했다. 밍후이왕에 폭로된 내용은 그가 당한 박해의 일부일 뿐이다. 리페이가오는 파룬따파에 대한 확고한 신념과 그 지역 중생을 구하는 위대한 책임을 갖고 꾸준히 진상을 알리고, CD와 자료를 배포했다. 그는 수많은 다른 수련자들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선량한 마음과 강인함으로 거짓말에 속은 사람들을 감동시켰다.

(역주: 관련 박해기관과 박해자 정보는 원문을 참조하시기 바란다.)

 

원문발표: 2023년 2월 16일
문장분류: 중국소식>박해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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