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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위타(爲他)를 수련해내다

글/ 허베이 대법제자 옌쯔(燕子)

[밍후이왕] 저는 80년대생으로 12살 때 대법 수련으로 들어왔습니다. 어떤 일을 겪었든지 대법에 대한 확고한 믿음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동요한 적이 없습니다! 사부님께서 내내 보살피고 보호해주신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1. 기술을 배우다

저는 젊어서 컴퓨터와 프린터를 어느 정도 알고 있어서 자연스럽게 현(縣) 전체 자료점의 소모품 공급과 간단한 유지 보수를 맡았습니다. 어떤 기술적 난제가 있으면 저는 모두 기술 포럼에서 배웁니다. 컴퓨터를 알지만 암호화 시스템을 설치하는 것은 여전히 노력이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기술 포럼에서 자료를 한가득 내려받고 출력하면 수십 페이지여서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두툼한 기술 자료 한 권을 보는 것만으로도 골치가 아팠지만 방법이 없었습니다. 제가 만약 배우지 않으면 다른 수련생들은 컴퓨터의 기본적인 용어조차 알아보지 못하며 설치는 더더욱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저는 마음을 조금 가라앉히고 직접적으로 도움이 될 만한 문구와 방법을 선별했습니다. 노트에도 필기해 첫 번째 단계에서 무엇을 해야 하고 두 번째 단계에서 다시 어떻게 설치해야 하는지 표기했습니다. 도중에 모르는 상황에 부딪히면 기술 포럼 수련생에게 문의하고 답변을 기다렸습니다. 종종 배우다 보면 한밤중이 되곤 했습니다.

사부님의 도움과 기술 포럼 수련생들의 협조로 마침내 성공했습니다. 그때의 기분은 오로지 은혜에 감사한 마음뿐이었습니다!

2. 자금 관리

저는 소모품 구매를 맡고 있어서 수련생들은 지원금을 모두 제게 줬습니다. 저는 줄곧 이 방면에서 잘못하게 될까 봐 두려웠습니다. 왜냐하면 어떤 수련생은 수십 위안을 주고 어떤 수련생은 백 위안, 2백 위안, 심지어 어떤 수련생은 몇 위안을 주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때그때 기록해두지 않아 잊어버릴까 봐 매번 모두 장부에 기재했습니다. 이후 수련생들에게 일일이 돈을 받지 않았습니다. 탁상용 달력을 만들 때도 경제적으로 넉넉한 두세 명 수련생이 좀 모으면 충분했기에 다른 사람이 더 줘도 받지 않았습니다. 다른 사람이 전달해줘도 저는 그들에게 돌려주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어떤 수련생은 이에 대해 의견이 있어서 협조인을 찾았습니다. 협조인은 제가 이렇게 하는 것은 틀렸다고 했습니다. 제가 다른 수련생들이 위덕을 세울 기회를 박탈한 것이며 무슨 근거로 그 몇 명만 돈을 내느냐고 했습니다. 다른 사람이 돈을 적게 내는 것을 싫어해선 안 되고 그들이 얼마를 내든지 그것은 그 사람의 대법에 대한 마음이기에 제가 박탈할 권리가 없다고 했습니다. 저는 제가 돈 관리에서 잘못할까 봐 그랬다고 말했습니다. 협조인은 제가 그들에게 돈을 요구한 것도 아니니 모금에 속하지 않고 그들 스스로 원해서 가져온 것이니 문제가 없다고 했습니다.

나중에는 한 수련생만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니어서 저는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나 저는 자금을 3만 위안 이내로 정했고, 이 금액을 초과하면 현재는 돈이 부족하지 않으니 한동안 지나서 다시 얘기하자고 했습니다. 저는 돈을 은행 카드에 저금했고 카드를 다른 한 수련생에게 보관하도록 맡겼습니다. 저는 인터넷 뱅킹을 개설하고 자주 거래 내역을 비교했습니다. 왜냐하면 지출과 수입, 사용한 시간과 용도를 모두 기록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하다 보니 제가 실수했을까 봐 두려워 비정기적으로 제 돈을 통장에 좀 보충했습니다.

3. 불법 수감, 법리적 승화

2020년 7월 24일 오후, 경찰 대여섯 명이 불법적으로 저를 직장에서 공안국으로 납치해 심문실에 가뒀습니다. 평소에 법률에 대해 잘 알지 못했고 이런 것은 늘 불필요하다고 생각해 이 방면 내용은 건너뛰거나 대충 훑어봤는데 사실 이것이 누락이었습니다.

오후 4시쯤, 그들은 불법적으로 우리집 가산을 몰수했습니다. 6시 반이 되자 그들은 저를 불법적으로 심문했습니다. “봐, 당신 집과 차에서 이렇게 많은 물건을 몰수했어. 이것이 목록인데 4천 위안(약 74만 원)의 진상 지폐와 일부 사무실 집기, 그리고 관련 진상 자료야.” 국보(국내안정보위국) 대장은 물었습니다. “말해봐, 어찌 된 일인지? 솔직히 말해.” 저는 “제가 무슨 법을 어겼나요?”라고 묻자 그는 “소환장에 쓰여 있잖아? 제300조, 사교 조직(주: 중공이 진정한 사교임)을 이용하는 등이라고”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파룬궁은 불법이 아닙니다. 여러분 휴대폰으로 중국의 14대 사교를 검색해보세요. 그 안에 파룬궁이 없어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휴대폰으로 검색하더니 그는 “누가 14가지 밖에 없대? 여기서 분명히 파룬궁은 사교라고 말했어”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중국 정부와 공안부가 인정한 사교는 14개밖에 없어요. 그 안에는 파룬궁이 없어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당신 잘 생각해봐. 이 전단지 몇 장으로 몇 년 형을 선고할 수 있어. 당신의 이 한가득한 물건들, 당신이 어떻게 감당할 수 있겠어?”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당신은 총구를 1㎝ 높게 드는 이치(역주: 상부의 총살 명령에도 무고한 사람을 일부러 빗맞힌다는 뜻)를 아셔야 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총구를 1㎝ 높게 들면 이마에 맞게 될 거야”라고 했습니다. 저는 이어서 그들에게 ‘중국공산당망(中國共産黨亡)’이 새겨져 있는 고대의 돌 ‘장자석(藏字石)’에 대해 알리면서 “현재 재난이 이렇게 많고 수많은 예언가도 장래에 인류에게 더욱 큰 재난이 일어난다고 했어요. 파룬궁수련생이 먹고 쓰는 것을 아껴서 자료를 만드는 것은 장래에 대재난에서 여러분들을 남길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예요. 우리를 위해서가 아니라 여러분을 위해서이고 더욱 많은 좋은 사람들을 남기기 위해서예요.”, “여러분이 제 가방에서 가져온 QR코드는 방화벽 돌파 소프트웨어예요. 시간이 날 때 모두 보시면 깨닫게 될 거예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말했다. “나는 당신보다 읽은 책과 자료가 더 많아. 빨리 당신 물건에 대해 제대로 말해봐. 말하지 않아도 마찬가지로 형을 선고할 거야.” 그들은 또 저를 심문하자 저는 모든 답변을 거부했습니다. 그들은 저에게 서명하라고 했지만 하지 않았습니다.(그때 묵비권을 행사하고 서명하지 않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음)

밤에 그들은 저를 데리고 가서 채혈하려 했으나 제가 가지 않자 수갑을 제 손에 채웠습니다. 제가 힘껏 벗으려 하자 그들은 한쪽 손만 채웠습니다. 병원으로 가는 길에 저는 여전히 그들에게 진상을 알렸고 그들은 조용히 들었으며 한 마디도 끼어들지 않았습니다. 병원에 도착해서 제가 의사에게 채혈하지 못하게 하자 그들 몇 사람이 제 팔을 눌러서 억지로 채혈했습니다. 저는 법을 실증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의사는 어찌 된 일인지 모를 테니까요. 저는 곧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真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울면서 매번 더 높게 외쳤습니다. 그들도 저를 가로막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공안국으로 돌아와 저를 작은 방에 감금한 후 여경 두 명이 지켰습니다. 그들은 번갈아 가며 당직을 섰습니다. 저는 감시하는 사람에게 진상을 알렸습니다. “여러분은 마음속으로 절대 파룬궁을 반대하지 마세요. 파룬궁은 진선인(真·善·忍)으로 사람을 좋은 사람이 되도록 가르칩니다. TV에서 말한 것을 믿지 마세요.” 당직이 바뀔 때마다 진상을 알렸는데 평소에는 이런 기회가 없었습니다. 다음날 국보대대 관계자가 저를 감시하는 사람에게 “그녀가 파룬궁을 선전했나?”라고 묻자 알려줬다고 했습니다. 또 “그녀가 연공했나?”라고 묻자 연공했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국보대대 관계자는 그녀들에게 “인계받는 경찰들에게 그녀 말을 듣지 말고 연공도 못 하게 하라고 전해”라고 말했습니다.

다시 당직 교대가 되면 저는 마찬가지로 알렸지만 그들은 태도가 매우 나빴고 듣기 싫어했습니다. 제가 알리는 것을 반대하지 않는 사람이 있으면 많이 알렸습니다. 듣기 싫어하는 사람에게는 많이 알리지 않고 마음을 가라앉히고 발정념을 많이 하고 자신의 부족함을 안으로 찾았습니다.

2020년 7월 26일, 경찰인 사촌오빠가 제가 줄곧 밥을 먹지 않는다는 소식을 듣고 저를 보러 와서 말했습니다. “밥은 먹어야 해, 이 일은 며칠 만에 해결될 일이 아니잖아. 장기적으로 밥을 안 먹으면 음식물을 주입할 거야. 매우 괴로워. 몸이 중요해. 지금은 그래도 내가 널 보러 올 수 있지만 며칠 지나면 나도 널 만날 수 없게 돼.” 뜻인즉 제가 곧 수감될 거란 얘기였습니다. 저는 괜찮았고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오빠가 간 후 생각했습니다. ‘나는 인간 세상의 모든 것을 내려놓을 수 있는가?’ 그 후 70세가 다 된 연로하신 아버지부터 7살 딸까지 모든 사람과 일을 한 번 떠올려봤습니다. 저는 속으로 사부님께 말씀드렸습니다. ‘사부님, 저는 전부 다 내려놓을 수 있습니다. 조금의 걱정도 없습니다. 얼마만큼의 옥살이를 하든지 설령 목숨을 바치는 한이 있더라도 절대 사부님을 배반하지 않고 법을 배반하지 않으며 수련생을 배반하지 않겠습니다! 저는 대법을 확고하게 수련하겠습니다! 모든 것을 사부님께서 결정하시도록 맡기겠습니다! 모든 것은 사부님 안배에 따르겠습니다!’

잠시 후 그들은 또 불법적으로 저를 심문했고 저는 말했습니다. “여러분은 왜 항상 묻기만 하나요?” “당신 사촌 오빠도 다녀가지 않았어? 당신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주지.” “당신이 말한다고 결정되나요?” 그는 말했습니다. “당신이 만약 이 물건이 누구 것인지 말하지 않으면 당신에게 모두 책임져야 해. 당신은 절대 못 나가.” 저는 ‘당신이 말해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라고 생각하고 “저는 대답과 서명을 절대 거부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또 저를 작은 방에 가뒀습니다.

2020년 7월 27일, 저를 감시하던 사람이 국보대대 경찰에게 자신들이 언제까지 감시해야 하는지 물어보자 경찰은 내일 정도면 시 구치소로 이송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오후 1시쯤, 저는 속으로 사부님께 말씀드렸습니다. “사부님, 감옥은 제가 있을 곳이 아닙니다. 제자를 위해 결정해주세요!”

이 생각을 마치고 대략 반 시간이 지났을 때, 사촌오빠와 한 경찰이 들어와 이곳에 서명하고 우리에게 가라고 했습니다. 저는 어딘가에 수감되러 가는 줄 알았다가 사촌오빠를 보자 집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알았습니다.(그때는 ‘거주지 감시’를 아직 몰랐음) 그때 그 감격은 겪어본 사람만 깊이 체득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저는 사부님께서 정말 위대하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말 “제자가 정념이 족하면 사부는 회천력(回天力)이 있노라”[1]였습니다! 속으로 ‘사부님 감사드립니다. 사부님 감사드립니다!’라고 무수히 염했습니다.

집으로 돌아온 후 아무 일도 없는 줄 알았고 고비를 돌파했다고 기뻐했습니다. 그러나 사촌오빠는 이것은 ‘거주지 감시’이며 제 사건이 아직 마무리되지 않았고 일시적으로 돌아가게 한 것이라며 사건이 검찰원, 법원까지 더 진행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알게 된 후 서둘러 밍후이왕에서 관련 법률 문장을 보았습니다. 그제야 밍후이왕에 줄곧 법률 포럼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밍후이 사서함을 이렇게 여러 해 사용하고 밍후이왕을 매일 보면서도 이렇게 좋은 코너가 있었는지 몰랐습니다. 안에는 변호사가 답변해주고 또 상세한 법률 관련 지식이 있어서 인쇄한 후 현재 사용할만한 관련 법률을 골라 자세히 읽어봤습니다.

보고 난 후에야 묵비권과 서명하지 않는 것은 가장 좋은 방법이 아니며, 마땅히 정정당당하게 법률로 박해를 반대해야 대법을 가장 잘 실증하고 사악을 겁에 떨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깨달은 후 너무 늦게 알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경찰이 세 번이나 심문했어도 모두 법률을 사용하지 못했습니다.

며칠 전, 경찰이 다시 한번 불법적으로 소환해 저는 혼자 갔습니다. 제게 다시 기회가 주어졌다고 생각했습니다. 여전히 그 심문받던 방이었고 경찰은 여전히 저를 그 철제 의자에 3번이나 강제로 앉게 했던 그 경찰이었습니다. 이번에 저는 말했습니다. “저는 앉지 않겠습니다. 이것은 범죄 혐의자가 앉는 곳이죠. 저는 죄를 짓지 않았습니다.” 그는 이것은 절차라며 반드시 앉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저는 절대 앉을 수 없으며 서서 말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는 “당신은 또 나를 강압적으로 만드는군”이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의 눈을 응시하며 말했습니다. “이렇게 거칠게 하지 마세요.” 그는 “내가 거칠게 하는 게 아니라 당신이 협조하지 않잖아”라고 했습니다. 저는 서서 움직이지 않고 그를 바라보았습니다.

그는 고개를 돌려 심문대로 돌아가서 물었습니다. “이번이 네 번째 심문이야. 이렇게 오래 지났는데 더 알려줄 것이 있나?” 저는 말했습니다. “있어요, 우선 헌법 제35조, 공민에게는 언론자유가 있다고 규정되어 있습니다.” 그는 이것은 이 사건과 무관하니 말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으며 사건만 말하라고 했습니다. “중국 정부와 공안부가 인정하는 14대 사교에는 파룬궁이 없으므로 파룬궁은 불법이 아닙니다.” 그러자 그는 또 말하지 못 하게 하며 자신이 묻는 말에만 대답하라고 했습니다.

“당신 차에 실린 파룬궁 관련 자료는 누구에게 주려던 거지?” 저는 말했습니다. “중국 정부와 공안부에서 인정하는 14대 사교에는 파룬궁이 없으므로 당신이 묻는 문제는 본 사건과 무관합니다.” 그는 또 일부 다른 문제를 물어봤습니다. 예컨대 “당신 집에는 또 누가 수련하지? 누구와 자주 연락하지?” 등이었습니다. 저는 모두 본 사건과 무관하다고 대답했습니다. 마지막에 그는 “더 할 말이 있나?”라고 물었습니다. 저는 있다고 했습니다. “물어볼게요. 제가 어느 법률의 시행을 파괴했나요? 어느 정도로 파괴했나요? 사회에 제가 끼친 해악은 뭔가요? 그들은 이런 것들도 인쇄해주지도 않고 제게 서명하라고 하나요? 저는 서명할게요. 저는 ‘제게 유리한 것을 그들은 기록해주지 않고 찢어버렸어요’라고 쓸게요.” “당신이 제 말대로 쓰지 않으면 저는 이렇게 서명할 겁니다.” 그들은 조금 내용을 보태서 제게 인쇄해줬습니다. 저는 제가 말한 대법을 실증하는 말을 제 답변 속에 써넣고 말했습니다. “제가 쓴 대로 출력해주세요.” 그들은 출력해주지 않겠다고 했고 저는 그러면 제 서명이 제 말과 부합하지 않는다고 하자 그들 둘은 잠깐 논의하더니 좀 보태어 제가 쓴 것을 출력해주자고 했습니다. 이렇게 저는 자신의 이름에 서명했습니다.

저는 만족스러운 답안지를 제출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돌아온 후 수련생에게 말하자 수련생은 자비를 표현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그때 저는 인정하지 않았고 대법제자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했다고 생각했으며 자신은 그들을 원망하고 미워하는 마음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밍후이왕 교류문장을 보고 정말 많은 차이가 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처음에 납치됐을 때 생각부터 틀렸습니다. 전반 과정에서 저는 자신을 실증하고 있었습니다. 자신에게 두려워하는 마음이 없다는 것을 실증하고 이 고비를 괜찮게 넘겼다고 실증했습니다. 완전히 위사(爲私)의 기점에 있었습니다. 그들이 저를 납치해서부터 심문하고 수감하는 것에 이르기까지 모두 그들에게 죄업을 늘려주고 있었다는 것을 진정으로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얼마나 불쌍한가요. 저는 그들이 대법에 죄를 짓게 하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저는 그들을 위해 고려하지 않았고 그들에 대한 자비가 표현되어 나오지 못했습니다. 아마 처음에 그들이 절 납치하던 그 순간에 제가 그들을 가련하게 생각하고 그들이 대법에 죄를 짓지 않게 하는 것을 생각했다면 결과는 달랐을 겁니다. 며칠 동안의 심문 과정에서 어떻게 말해야 이 고비를 잘 넘기는 것인지 생각하지 않고, 오직 선을 권하고 진정으로 그들을 위해 눈물을 흘렸다면 결과는 아마 지금의 ‘거주지 감시’가 아니라 심성의 승화를 얻었을 것입니다.

저는 공안국, 정법위, 법치 과장, 저를 감시하는 파출소장에게 ‘거주지 감시 해지 신청서’, ‘압류 물품 반환 신청서’를 작성했고 또 그들 각자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우편으로 보냈고 또 검찰원, 법원에도 관련 법률 지식을 부쳤습니다. 남편은 직접 그 두 부의 신청서와 제가 쓴 편지를 국보 대대장에게 전해줬습니다. 그들은 상부에 문의한다고 했습니다. 저는 자신의 길을 더 가야 한다는 것을 알고 위타의 기점에서 자신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했습니다.

4. 진정한 위타

제가 나온 후, 한 수련생의 배신으로 납치됐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사실 연초부터 알고 있었지만 이 수련생이 제게 편지를 써서 자신이 저를 배신했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마음을 움직이지 않고 매 사람의 감당 능력이 달라서 마땅히 그 수련생을 이해하고 포용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수련생은 제게 집안의 모든 물건을 옮기라고 했으나 저는 듣지 않고 자신이 정념이 족하면 문제없다고 생각했습니다.

7월에 그 수련생은 다른 성에서 돌아와 주택 매매 절차를 밟으며 우리 현지에 며칠 머물렀습니다. 그 수련생은 취보후심(取保候審, 공안기관이 보증인이나 보증금 조건으로 일정 기간 인신의 자유를 제한하는 처분) 1년이 만기 되지 않아 여전히 다른 성에 머물러야 했습니다. 그가 돌아온 후 저는 연락했고 그의 보관실에 남겨둔 자료와 불필요한 물건을 정리하는 것을 도왔습니다. 일부 대법자료는 제 차에 뒀는데 경찰이 제 차를 수색할 때 함께 가져갔습니다.

저는 예전에 그 수련생이 법리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해 숭배하는 마음이 있었고 줄곧 그가 돌아오기를 기다렸습니다. 돌아온 후 여러 번 만났으나 사실 역시 정이었습니다. 제가 납치되기 전날 밤, 국보대대 사람이 그 수련생을 불러갔고 그는 다시 한번 저를 배신했습니다. 그 수련생은 몇 시간 동안 고민하다가 결국 두려운 마음에 사악에 협조했으며 다음 날 새벽 4시에 그 자신은 풀려났습니다.

그의 배신은 그의 수련 문제이며 그가 가련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를 조금도 원망하는 마음이 없었고 홍대한 자비로 포용했습니다. 수련생에게 제 생각을 교류하자 수련생은 제가 마땅히 그 수련생의 잘못을 지적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저는 그가 분명 자신의 잘못을 알았을 것이며 법리를 명백히 알고 있다고 했습니다. 수련생은 그가 이 방면은 잘 모를 것이며 만약 문제의 심각성을 알았다면 두 번째 배신을 감히 하지 못했을 것이고, 만약 지금도 이 문제를 똑똑히 모른다면 다음번에 또 다른 수련생을 배신하는 일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했습니다. 그 수련생에게 고칠 기회를 주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저는 원래 그 수련생에게 원망과 미움이 없으며 제가 만약 표현하는 방식이 틀렸다면 제가 원망하고 미워하는 것으로 오해하게 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수련생은 제가 무골호인이며 이것은 위사(爲私)한 것으로 진정으로 한 생명을 위해 책임진다면 자신의 어떠한 사적인 잡념이 없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 수련생이 잘되기를 바라는 일념으로 다른 것은 아무것도 생각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저는 좋다고 했습니다! 저는 단어를 잘 선택하고 선의로 표현하면서 엄숙함을 잊지 않도록 밤 8시 넘어서부터 밤 12시까지 글을 썼습니다. 글을 전송한 후 온몸이 홀가분한 것을 느꼈고 진정으로 위타의 내포를 깨달았습니다.

5. 착실한 수련 

이제 저는 착실한 수련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예전에는 착실한 수련에 대한 개념이 명석하지 않았고 입으로만 말하면서 행동에서는 변화가 크지 않았습니다. 이제 저는 사실 매우 간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착실한 수련은 자신의 매 일사일념, 매 한 가지 행동이 위타인지 위사인지 생각하는 것입니다. 예컨대, 연공하기 싫어하는 것은 위사한 것이며 자신의 편안함을 위한 것이고, 연공은 자기 세계의 무량한 중생을 위한 것이라는 점을 생각하지 못한 것입니다. 발정념하기 싫은 것도 위사한 것으로 배후의 사악한 것을 깨끗이 제거하지 않으면 수많은 중생이 구원받을 수 없게 됩니다. 생활 속의 매 한 가지 일은 바로 위사인가 아니면 위타인가 한 가지 표준으로 가늠합니다. 이렇게 하면 단순하게 변하며 자신이 어떻게 하는지에 달렸습니다.

예를 들면, 어젯밤에 시어머니가 만두를 찌셨는데 우리는 시어머니와 함께 식사했습니다. 밥이 다 되자 저는 만두 3개를 꺼내 위층으로 올라가 딸과 함께 먹으려 했습니다. 남편은 아래층에서 배불리 먹고 올라왔습니다. 그러나 남편이 올라온 후 1시간이 지났을 때 “당신이 가져온 만두는 내가 먹을게”라고 말해서 순간 저는 기분이 나빠서 “당신은 아래층에서 배불리 먹고 오지 않았어요? 남겨둔 만두는 내일 아침에 먹을 거예요”라고 했습니다. 남편은 말하지 않고 자기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나중에 생각을 바꿔보니 이것은 틀렸습니다. 저는 위타하지 않았습니다. 생각한 것은 완전히 모두 자기였으니 얼마나 이기적인가요. 저는 앉아 있을 수 없어 남편 방에 가서 “만두 먹고 싶어요?”라고 물었습니다. 남편은 “당신이 또 못 먹게 할거잖아”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줄게요, 가져다줄게요”라고 말했습니다. 만두를 남편 방으로 가져다주면서 저는 “제가 잘 수련하지 못했어요. 너무 이기적이었어요. 당신을 위해 생각하지 못했네요”라고 말했습니다. 비록 저는 태도를 바꿨지만 조금도 기쁘지 않았습니다. 제 첫 일념이 위타한 것이 아니고 위사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자신의 생각을 움직이기만 하면 먼저 타인을 생각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차이가 너무 많이 납니다. 저는 자신을 착실히 수련하는 것에 노력을 들여 하루빨리 위타한 생명으로 거듭나고 싶습니다.

20년 넘게 수련하면서 갈수록 자신의 수련이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어서 더는 무엇도 약속하지 않겠습니다. 오직 앞으로의 나날들 속에서 착실히 자신을 수련해 일찍이 무사무아(無私無我)의 경지에 도달하고 싶습니다.

법에 있지 않은 부분은 수련생 여러분께서 자비롭게 바로잡아주시길 바랍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시사(詩詞): ‘홍음2-사도은(師徒恩)’

 

원문발표: 2023년 2월 15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3/2/15/43405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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