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밍후이왕] (밍후이 통신원 헤이룽장 보도) 다칭(大慶)시에서 다수의 파룬궁(法輪功) 수련자가 심신 수련법을 수련했다는 이유로 중공(중국공산당)에 납치되어 중형을 선고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채유9 공장 청차오윈(程巧雲) 징역 8년, 두춘샹 징역 4년, 리둥쥐(李冬菊) 징역 5년 6개월, 탕쩡예(唐增葉) 징역 2년 6개월 형을 각각 선고받았다.
청차오윈, 두춘샹, 리둥쥐, 탕쩡예 등은 2022년 7월 22일 납치됐다. 당일 경찰은 일제히 동원령을 내려 다칭에서 파룬궁 수련자 100여 명을 납치했다.
경찰은 2022년 중공 제20기 전국대표대회를 위해, 헤이룽장성 중공 관리의 지침에 따라 소위 ‘백일행동’을 전개해 파룬궁 수련자를 대거 납치한 것이다. 밍후이왕 보도에 의하면 7월 12일 135명이 납치됐고, 89명이 괴롭힘을 당했는데, 그중 53명이 ‘처분보류’ 형식으로 풀려났고, 25명이 구류처분으로 감금되었다가, 11명은 분류되어 구치소에 감금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파룬궁 수련자를 납치할 때, 신분도 밝히지 않은 채 마구잡이로 잡아들였는데, 자세한 내용은 밝혀지지 않았다.
다칭에서 발생한 집단 납치사건은 헤이룽장성 ‘6.10’ 사무실의 지령에 따라 ‘7·20’ 중대 사건으로 명명해 다칭의 전 공안원을 동원해 7월 12일 전격적으로 파룬궁 수련자를 대거 납치한 작전이다. 각 지역 경찰은 1일 200~300명씩 납치하라는 지침을 받았다. 한 경찰은 “종일 파룬궁 수련자 300명 이상을 붙잡았는데 너무 힘들었다”고 말했다.
관련 경찰에 의하면, “이 (납치) 작전은 9개월 전부터 준비한 것으로, 미행 감시하며 파룬궁 수련자 소재를 파악했고, 납치 일주일 전 각각의 주거지를 확인해 7월 12일에 일제히 작전을 전개했다”고 말했다. 그들은 파룬궁 관련 물품과 자료를 수색해내기만 하면 곧 ‘증거’로 삼아 누명을 씌웠다. 납치사건이 있은 다음 달인 8월 중순부터 사악한 다칭시에 중공 전염병이 창궐하기 시작했다. 이는 우연이 아니다.
청차오윈 수련자는 당일 오전 다칭 룽난(龍南) 공안분국에 납치되어 가택 수색당한 후, 두춘샹, 탕쩡예, 장린잉(張林鷹), 펑윈쥐안(馮雲娟), 펑롄샤(馮連霞), 차이슈잉(蔡秀英), 천수화(陳淑華) 등과 함께 다칭 제2구치소에 감금됐다.
탕쩡예, 리둥쥐는 2022년 12월 4일 다칭 개발구 법원의 불법적인 재판에 넘겨져, 12월 30일 탕쩡예 징역 2년 6개월, 리둥쥐 징역 5년 6개월 형을 각각 선고받았고, 청차오윈, 두춘샹 등은 여러 차례 납치되어 불법적인 재판에서 실형을 선고받고 잔인무도한 고문을 당했다.
청차오윈이 당한 박해
청차오윈(여,63)은 다칭 관리국 주룽(九龍) 주택관리회사 직원으로, 다칭 훙강(紅崗)구 촹예좡(創業莊) 거주자다. 파룬궁 ‘진선인(真·善·忍)’ 수련으로 건강해지고 심성도 좋아졌다.
1999년 7월 22일, 성 정부에 파룬궁의 정당성을 청원했다는 이유로 납치되어 감금된 뒤, 1999년 말 2급 월급 조정 대상에서 제외되어, 월 급여 30위안에 불과했다. 책임자는 주택관리 2회사 창업소(創業所) 위안완춘(袁萬春)이다.
청차오윈은 1999년 10월, 파룬궁을 수련했다는 이유로 세뇌반에 감금되어 28일 동안 박해당했고, 2000년 2월 28일 베이징에 청원하러 갔다가 경찰에 납치돼 철창에 갇혔다가, 거주지 파출소로 이송되어, 다칭시 구치소에 1개월간 감금됐다.
2000년 6월 초, 성 정부에 청원했다는 이유로 다시 납치되어 4000위안을 강탈당한 뒤 풀려났지만, 직장과 파출소는 보증서를 쓰라고 강요했다. 계속 감시당하며 “보증서를 쓰지 않으면 노동교양 처분으로 감금하겠다”고 위협했다. 경찰은 또 청차오윈의 남편을 괴롭히는 바람에 견디지 못한 남편은 이혼했다. 그래도 악인들은 청차오윈을 3개월간 다시 세뇌반에 감금했고, 세뇌반 급식비로 먼저 200위안, 나중에 1275위안을 강탈했다. 세뇌반을 나올 때 보증서를 쓰지 않은 사람은 500위안을 더 강탈당했다.
2000년 12월, 청차오윈은 다시 베이징에 갔다가 또 납치되어 신분을 밝히지 않자, 구치소에 2개월간 감금되었다. 감금 기간 중 박해 항의로 단식을 하자, 식도에 호스를 삽입해 기관을 다치게 했다. 풀려날 때 가족에게 급식비를 포함한 경비 700여 위안을 요구했다.
2000년 2월부터 11월까지 청차오윈은 직장에서 월급 전액을 지급하지 않고, 생활비 명목으로 300위안만 지급하였으며, 그동안 경비 7500위안을 반납하라고 하면서 반납하지 않으며 생활비 300위안을 대신 공제해 받겠다고 했다.
2000년 12월 근무 연한에 따른 연금을 한꺼번에 받게 됐을 때, 직장 상사 먀오훙차이(苗洪才)는 먼저 2만 위안의 담보금을 바쳐야 지급하겠다고 했고, 2001년 4월 공동 적립금을 분할 지급할 때도, 먼저 베이징에 가서 당신을 데려올 때 든 비용 5200위안을 반환하라고 했다.
2001년 5월 초, 청차오윈은 동료 수련자와 함께 농촌에서 진상을 알리다가 경찰에 납치되어 다칭시 구치소에 30일간 감금됐다. 그녀는 박해 항의로 단식하자, 음식물을 강제 주입 당했는데, 처음에는 2~3일 한 번 호스를 꽂고 주입하다가, 매일 한 차례씩, 나중에는 하루 2회씩 호스를 꽂으며 괴롭혔다. 26일째가 되자, 고문학대로 피골이 상접해 사경을 헤매게 되었다. 결국 악인들은 가족에게 데려가라고 연락했다. 며칠 후 어느 정도 건강이 회복하자, 파출소에서 다시 납치하려고 했다. 그녀는 어쩔 수 없이 몸을 피해 유랑생활을 했지만, 다시 경찰에 납치되어 시 구치소에 감금되어 혹독한 고문과 구타당하며 조사받고, 징역형을 선고받아 하얼빈 여자 감옥에 감금됐다. 감옥에서도 파룬궁 수련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늘 독방에 갇혀 고문 박해당했다.
2004년 5월 27일, 청차오윈은 징역 2년 만기 출소일이 되었지만, 하얼빈 여자 감옥 측은 풀어주지 않고 ‘6.10’ 지시에 따라 훙웨이싱(紅衛星) 세뇌반으로 이송 감금했고, 다시 유치장에 감금했다가 다시 세뇌반에 감금했고, 다시 유치장에 감금했다가 구치소로 이송했고, 마약중독 재활원 독방에 감금했는데, 포승으로 쇠 의자에 결박해 고문을 가했다.
하루는 마약중독자 재활원 훈련에 따르지 않는다는 이유로 의자에 결박한 뒤, 그녀의 발과 수갑 찬 팔을 등 뒤로 함께 묶었다. 그때 관절에서 심한 소리가 났다. 몸이 찢어지는 듯한 통증으로 심장이 경련을 일으켰다. 나중에 풀어놨을 때는 움직이지 못했고, 죽음 직전이었다.
혹독하게 고문당한 청차오윈은 신체에 비정상적인 상태가 나타났다. 먹지 않아도 배고픔을 몰랐고, 지각이 없었다. 생명이 위급하자, 책임을 두려워한 마약중독자 재활원은 그녀를 풀어줬다.
두춘샹이 당한 박해
두춘샹(여, 65)은 다칭시 시추연구소 직원으로, 다칭시 바바이상에서 거주했다. 그녀는 유선종양 증상으로 왼쪽 유방을 완전히 절제했고, 인후염, 방광염, 요도염, 자궁병 등으로 건강이 매우 좋지 않았지만, 1997년 3월, 파룬궁 수련을 시작한 후 모든 병증이 사라지고 건강해졌으며, 한쪽 유방을 안전하게 보존할 수 있었다. 두춘샹은 파룬따파(法輪大法)의 ‘진선인(真·善·忍)’의 믿음을 견지했다는 이유로 중공 집단의 혹독한 박해를 여러 차례 당했다. 세뇌반 감금, 4회 구류처분, 2회 징역형 등으로 건강을 잃어 폐결핵으로 각혈했고, 고혈압도 심해 두 차례 심각한 위기를 맞기도 했다.
원문발표: 2023년 2월 6일
문장분류: 중국소식>박해사례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3/2/6/456491.html
简体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3/2/6/45649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