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밍후이왕] (밍후이왕 통신원 산시 보도) 산시(陝西)성 시안(西安)시 옌타(雁塔)구 파룬궁수련자 팡리팅(方立婷)은 장기간 중공(중국공산당)에 의해 박해당했다. 특히 4년 넘는 옥고로 그녀의 심신은 극심한 손상을 입었다. 결국 그녀는 2023년 1월 19일에 5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팡리팅은 시안 미술대학을 졸업했고, 1999년 ‘7.20’ 이전에 대법 수련에 들어왔다. 20여 년 이래 그녀는 스스로 진선인(真·善·忍)의 표준에 따라 자신을 요구해 시아버지와 시어머니에게 효도하고 가족을 배려했으며, 동료를 선하게 대했다. 그리고 성실하고 책임감 있게 근무했으며, 사람됨이 겸손하고 온화하여 친구나 친척, 동료에게 줄곧 평판이 매우 좋았다.
2000년 가을, 팡리팅은 수련생과 함께 베이징(北京) 톈안먼(天安門) 광장에 가서 대법을 실증하고, 중공의 파룬궁에 대한 박해에 항의했다가 첸먼(前門) 파출소에 의해 납치됐다. 그 후 벗어나 시안에 돌아온 후, 그녀는 즉시 수련자와 함께 대법 자료점을 조직해 진상을 알리고 박해를 폭로한 대량의 자료를 인쇄해 배포했다.
2002년 9월, 시안시 후(戶)현[지금은 후이(鄠邑)구라고 함] ‘8.2 사건’의 연루를 받아 자료점이 파괴되고 팡리팅은 후현 공안국에 의해 납치돼 후현 라자탄(臘家灘) 마약중독자 재활원에 불법 감금돼 고문 학대를 당했다. 그녀와 수련자들은 단체로 단식하여 박해에 반대한 뒤 야만적인 음식물 주입을 당했다. 같은 해 12월, 팡리팅은 창안(長安) 공인요양원(工人療養院)의 시안시 ‘610’ 세뇌반에 이송돼 한 달 정도 불법 감금당했다.
2003년 1월, 팡리팅은 불법 체포를 당했고 차례로 시안 구치소, 옌타 구치소, 후현 구치소에 불법 감금됐다. 그녀는 후에 후현 검찰원과 법원에 의해 모함당해 불법적으로 4년 형을 선고받았고 산시성 여자 감옥에 감금돼 박해당했다. 여자 감옥에서 팡리팅은 장시간 노예 노동 학대를 당했고, 또 ‘전향’을 강요당했으며 늘 밥을 주지 않았다.
4년 넘는 옥고는 그녀의 심신에 극심한 손상을 입혀 신장이 심각하게 상했다. 억울한 옥살이에서 벗어난 뒤, 직업을 잃은 그녀는 부득이 여러 가지 일을 하며 생계를 유지하는 수밖에 없었다.
2015년, 팡리팅은 ‘양고’에 실명으로 장쩌민(江澤民)을 고소했다. 그 후 끊임없이 괴롭힘을 당했다, 특히 2021년과 2022년 사이 시안시와 옌구 정법위(정치법률위원회), ‘610’에서 ‘제로’ 행동을 구실로 하여 끊임없이 괴롭혔다. 그리고 그녀에 대해 여러 차례 위협하고 공갈 협박하여 강제로 대법 수련을 포기하라고 했다. 그들은 바쁘게 일하는 팡리팅과 그녀 가족에게 극심한 압력과 고통을 주어 오래된 지병이 재발하고 신부전을 초래했다. 결국 2023년 1월 19일에 팡리팅은 세상을 떠났다.
2015년 8월 23일, 팡리팅은 최고검찰원에 파룬궁을 박해한 원흉 장쩌민을 고소했다. 그리고 최고검찰원에서 최고법원에 장쩌민에 대해 공소를 제기하여 그의 형사 책임을 추궁하고, 법에 따라 처벌할 것을 요청했다.
팡 씨는 소송장에서 자신이 박해당한 경험을 다음과 같이 서술했다.
이렇게 나라와 국민에게 백 가지 이로운 점만 있고 한 가지 해로운 점이 없는 고덕 대법은 장쩌민 일당의 잔혹한 탄압과 피비린내 나는 박해를 받았다. 나의 시아버지 양헝칭(楊恆青)이 산시성 ‘610’에 의해 전 성에서 파룬궁을 연마하는 지위가 가장 높은 간부(시안과학기술대학 전 부교장임)라고 인정하여 1997년 ‘7.20’ 일부터 우리 집에는 재난이 끊이질 않았고 나도 재난 속에 휘말렸다.
2002년 8월 31일, 산시성 시안시 후현 공안국에서는 성 ‘610’의 지시에 따라 ‘8.2 사건’의 명목으로 나와 시아버지 그리고 시어머니를 납치했다. 뒤이어 9월 3일에 나는 납치됐고, 한 무리의 경찰들이 우리 집에 가택 수색을 진행했다. 그리고 또 멀리 란톈(藍田)현에 있는 친정집도 가택 수색을 진행해 컴퓨터, 레이저 프린터, 타자기 및 대법 서적과 진상 자료 등을 강탈했다. 경찰은 나에 대해 불법 심문을 진행해 나의 두 손에 수갑을 채워 매달아 놓고 자백을 강요했다. 그 후 ‘거주지 감시’ 명목으로 나와 기타 30여 명 수련자를 후현 라자탄 마약중독자 재활원 유치장에 감금했다. 우리는 독방에 갇혀 매일 1시간도 채 되지 않게 밖에 나와 바람을 쐤다. 2002년 말, 우리는 창안현에 위치한 시안시 ‘610’ 세뇌반으로 압송됐다.
세뇌반에서 우리는 여전히 자유가 없이 두 명의 ‘교육원’에게 감시당했다. 그들은 우리에게 대법을 헐뜯고 나의 사부님을 모독한 녹화영상과 자료를 보도록 핍박했고 나에게 전향을 강요했다. 2003년 1월 23일, 나는 불법적으로 구류처분을 받았고 2월 11일에 불법 체포를 당했다. 그리고 차례로 시안 구치소, 후현 구치소에 감금됐다.
2003년 5월 28일, 나는 후현 법원, 후에 시안시 중급인민법원에서 불법적으로 4년 형을 선고받았다(나의 시아버지는 7년 형을 선고받았음). 얼마 되지 않아 나는 산시성 여자 감옥에 납치됐다. 나와 수련자들은 강도가 높고 장시간 노동을 하는 신체적인 시달림을 당했을 뿐만 아니라 심각한 정신적 손상을 입었다. 교도관은 그들 살인범, 마약 복용범, 매음범에게 우리에 대해 폭행을 가하도록 했고, 우리에게 감옥 규정을 외우고 죄수복을 입도록 핍박했다. 그리고 강제로 우리에게 수련을 포기한다는 ‘보증’을 쓰도록 했는데, 나는 태어나서 가장 큰 모욕을 당했다!
내가 박해를 당한 4년 동안 나의 연로하신 아버지는 비분 속에서 지병이 재발했고, 네 살도 안 된 딸은 어머니 사랑을 잃은 고통 속에서 신근염을 앓았다. 전 가족은 모두 형용할 수 없는 고난을 감당했다.
2006년, 내가 막 출소해 얼마 되지 않아 나의 남편 형제 양사오쥔(楊昭俊)은 아버지가 대법을 수련한 것에 연루되어 누명을 쓰고 억울하게 10년 형을 선고받았는데, 여태껏 여전히 감옥에 있다.
16년 동안 나는 수련을 포기하지 않고 좋은 사람이 되고자 함을 견지한 것 때문에 납치, 가택 수색, 불법 감금과 강제 세뇌를 당했다. 나는 신앙 자유를 박탈당했고 인권을 침범당했으며, 몸과 정신적으로 극심한 손상을 입었다. 나의 육친은 극도의 고통과 공포 속에서 정신적인 시달림과 경제적 박해를 당했다. 이 일체는 모두 장쩌민이 대법에 대해 이유 없이 진행한 박해로 조성된 죄악이다. 장쩌민은 반드시 나와 내 가족이 당한 박해에 죗값을 감당해야 한다!
원문발표: 2023년 2월 4일
문장분류: 중국소식>박해사례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3/2/4/456428.html
简体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3/2/4/45642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