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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선(不善)과 이기심을 닦아 없애다

글/ 해외 대법제자

[밍후이왕] 저는 한가지 현상에 유의하게 됐습니다. 어떤 수련생은 비록 여러 해 수련했지만 선량함의 정도가 속인에도 미치지 못하며 극도로 이기적입니다. 동시에 또 어떤 속인은 선량하고 관용하며 후덕합니다. 저는 선량함의 정도가 매우 모자란 사람에 속합니다.

무엇 때문에 이런 현상이 있는 걸까요? 개인적으로 사람의 근기(根基)와 성장환경이 다르고 어려서부터 형성된 가치관도 다르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일종 자기중심적 가치관이 형성되면 고치기 매우 어려우며 형성된 이기적인 물질은 빙산과도 같을 수 있어 착실히 수련하지 않으면 제거하기 매우 어렵습니다.

저는 갈수록 이기심과 불선의 심각성을 깨닫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주 특성과 매우 심하게 어긋나는 것으로 제거하지 않으면 미래로 진입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미래의 신우주는 위타(爲他)한 것이고 구(舊)우주는 위사(爲私)한 것으로 도태되는 것이 운명적으로 정해졌기 때문입니다. 이 방면에 노력을 들이지 않으면 다른 방면이 아무리 좋더라도 심한 누락이 있는 것입니다.

제가 관찰한 바로는 일부 정진하는 행동을 보이다가 심한 난을 겪는 수련생들은 보통 매우 이기적이고 선량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교훈으로 삼아야 하며 수련은 선(善)을 닦는 것을 피할 수 없습니다.

1. 불선한 행위

꿈에 저는 수련생 A를 만났는데 몇 년 전의 한 장면이 저도 모르게 떠올랐습니다. 저는 A가 좀 괴팍하고 자신감이 없어서 업신여겼습니다. 한 모임에서 저는 A를 본체만체하며 냉담하게 대했습니다. 그 자리에 있던 수련생 B도 A를 얕봤습니다. 수련생 C는 자발적으로 A와 이야기를 나눴고 A는 C의 따뜻함을 느끼며 기뻐했습니다.

저는 저와 B가 모두 A에게 상처를 줬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다른 사람이 자신을 대하는 태도를 민감하게 감지할 수 있습니다. 사실 A는 남들로부터 업신여김을 받을만한 어떤 일도 하지 않았습니다. 선량한 사람은 타인의 약점에 대해 측은히 여기는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저는 속으로 사부님께 참회드렸고 A에게 참회했습니다.

지난해의 한 차례 경험은 제게 정말 일깨움을 줬습니다. 저는 수련생 D와 관점이 다르다는 이유로 늘 그를 설득하려 했고 독선적이었습니다. 법공부를 통해 자신의 관념이 너무 고집스럽고 타인을 존중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어 진심으로 D에게 사과했습니다.

그때 저는 몸에 딱딱한 덩어리가 생겼는데 몇 달간 점점 더 커졌습니다. 사과한 후 딱딱한 덩어리가 며칠 새 작아졌다가 나중에는 사라졌습니다. 저는 신기함을 느꼈고 동시에 선량함의 중요성을 체득했습니다. 높은 곳에서 굽어보는 제 태도는 이미 사람에 대한 예의를 잃었고 선량함도 잃었습니다. 작은 일로 생각했지만 뜻밖에도 사소하지 않았습니다. 딱딱한 덩어리가 자랐던 그때를 떠올려보면 역시 제가 사람들에 대한 불선과 관련이 있었는데 몇 달간이나 원인을 찾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삼계의 반대되는 이치 속에 미혹됐고 더구나 구우주의 멸(滅) 시기에 세상의 기풍은 상당히 부패해 저도 시대 조류에 휩쓸렸습니다.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던 일이 신의 눈에는 아마 매우 큰 문제일 수 있으며 자신의 느낌과 신의 표준 사이에는 매우 큰 격차가 있을 수 있습니다.

예전에 많은 장소에서 저는 수련생 아이가 소란을 피우는 것을 참을 수 없었고 수련생이 집에서 아이를 보는 게 정체(整體)에 기여하는 바가 더 크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생각은 얼마나 선하지 못한가요! 사실 부모는 아이가 울고불고할 때 정말 초조하고 난감한데 불평을 만나면 더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으니 다른 사람들은 선의로 이해해줘야 합니다.

예전의 어떤 노년 수련생의 발언이 쓸데없이 장황해 저는 견디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어떤 수련생은 거칠게 끊어버렸고 어떤 수련생은 인내심 있게 포용했는데 그 속에서 저는 선량한 마음의 차이를 볼 수 있었습니다. 전통적인 이념은 노인을 존경하고 어린이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런 것은 모두 사람 됨됨이의 기본적인 준칙입니다.

중년 수련생 E는 수련생 아이들의 소란에 대해 강하게 불평한 적이 있었고 이것은 수련 환경을 교란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E는 성격이 거칠고 급했으며 나중에 고통스러운 병업을 겪다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노년 수련생 F는 눈살을 찌푸리고 노려보는 등 태도로 아이가 울거나 소란을 피우는 것에 대해 불만을 표했습니다. F는 매우 정진해 보였는데 갑자기 뜻밖의 재난을 당해 세상을 떠났습니다.

아이가 소란을 피우는 것을 참지 못하는 것 자체가 얼마나 심각한 결과를 가져오는지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은 한 수련인의 선량함과 포용력이 턱없이 부족하고, 서양의 표면적인 예절에도 못 미친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울러 불선의 마음은 곳곳에서 체현될 수 있으며 이것은 아마 구세력(舊勢力)이 박해하는 원인일 수도 있습니다.

2. 수구(修口)하지 않다

저는 자신이 말한 많은 말이 수구하지 않은 것과 ‘독설’에 속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예를 들면 언쟁하고 빗대어 욕하며, 언사가 가혹하고 야박하며, 늘 말을 통쾌하게 하고 싶어 했습니다. 어떨 때는 또 한 마디로 급소를 찌르고 핵심을 말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제 저는 말을 함에 덕(德)을 중시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옛사람들은 말하고 싶은 것의 1/3만 말하라고 했습니다. 부정적으로 다른 사람을 평가할 때, 듣는 사람들이 많을수록 말이 더욱 심각하고 언사가 교묘해지며, 듣는 사람이 찬성할수록 상대방에게 주는 덕도 더 커집니다. 왜냐하면 상대방에게 주는 상처가 더 크기 때문입니다.

저도 어떤 수련생이 다른 사람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예를 들면, “○○는 너무 게을러요”, “○○는 말만 잘하고 할 줄 몰라요”, “○○부부는 자주 다퉈요”입니다. 예전에 저도 늘 이러했으며 객관적인 사실을 말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당신들이 누가 좋고 누가 나쁘다고 의논할 때 신마저도 옳게 보지 않는다.”[1]

저는 몹시 부끄러웠습니다. 사부님께서 이 단락 법을 말씀하신 지 몇 해가 지났는데도 저는 여전히 누가 좋고 누가 나쁘다고 의논하고 있었습니다. 예전에 저는 항상 일부 수련생을 부정적으로 평가했을 뿐만 아니라 제가 괜찮다고 생각하는 수련생을 칭찬하기도 했습니다. 사실 이것 역시 사람 마음이며 또 일종 교활한 마음입니다. 일부 수련생을 칭찬하는 것은 다른 일부 수련생과 대비시키려는 것으로, 상대방이 자신의 문제를 알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출발점이 선하지 못했기에 긍정적인 작용을 일으키기는 매우 어려웠습니다.

최근에 가족들이 한 친구의 아이가 키가 너무 작다고 하자 저는 엉겁결에 “○○는 작은 키 유전자가 너무 강해요”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곧 이가 아팠고 제가 수구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3. 불선한 염두

법에서 저는 신이 사람의 사상을 보면 한눈에 알 수 있고 또 앞으로 표현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따라서 안으로 자세히 잘 찾아봐야 하고 숨은 염두를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저는 시시각각 마음을 닦아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예전에 저는 일상적인 염두에 대해서는 잘 찾아보지 않았고 갈등이 생기면 또 지나가지 못했습니다.

사람의 집착심은 일사일념(一思一念) 속에 있으며, 갈등이 발생할 때야 표현되는 것이 아니라 수시로 표현된다는 것을 체득했습니다. 자세히 관찰한 결과, 많을 때 생각을 움직이기만 하면 집착심이 표현되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러므로 수시로 찾아보고 찾아낸 후 곧바로 강력한 발정념으로 멸해야 합니다.

예전에 저는 질투심이 강해서 다른 사람이 무엇을 얻으면 마치 자신은 잃는 것 같았고, 다른 사람이 잃으면 자신은 얻는 것 같았습니다. 항상 다른 사람을 보고 비웃으며 남의 재앙을 고소하게 생각했습니다. 남을 도울 때조차 겉과 속이 달랐으며 위선적이었습니다. 예를 들면, 친한 속인 친구의 아이가 사고를 당하자 저는 온 힘을 다해 도왔지만 상대방을 위해 슬퍼하지 않고 우월감을 느끼고 있었는데, 그 아이의 품행이 별로라고 생각했습니다.

병업을 겪는 수련생을 도와 발정념을 했지만 상대방에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고 심지어 상대방에게 여러 문제가 있어 호전되기 어려울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상대방의 병업이 악화됐다는 말을 듣고 자신의 견해가 입증됐다고도 생각했으며, 병업을 겪는 수련생을 병문안 갔지만 시간을 허비한다고 원망하는 등 심성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수련생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은 후의 첫 일념은 뜻밖에도 수고를 덜었다는 생각이었습니다.

타인을 도울 때의 기점이 이기적이었고 목적은 좋은 일을 해 공로를 쌓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상대방에게 관심을 기울이는 선념이 생겨나지 않고 공로를 쌓을 생각만 했습니다. 항목에 참여하는 것도 공로를 탐하면서 대가를 많이 치르려 하지 않았고 조금만 번거로워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이제 저는 누가 다른 사람을 어떻게 생각하면 신께서 똑같이 그에게 배치해주신다는 한 가지 이치를 깨달았습니다.

저는 또 줄곧 사람 마음이 무거운 수련생에게 매우 반감을 품었습니다. 하지만 사실 상대방은 자신의 거울입니다. 사람 마음이 무거운 수련생에게 반감을 품는 것은 자신의 사람 마음도 무겁다는 것을 설명합니다. 반면에 수련을 잘한 수련생은 더욱 포용합니다. 사실 자신의 마음으로 남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으로 저는 마땅히 사람 마음이 무거운 수련생을 더 잘 이해해야 합니다. 저도 그 중의 일원이 아닌가요? 아울러 사람 마음이 무겁다는 것은 사람들 속에서 형성된 아귀다툼을 벌이는 관념도 더 무겁고 바로잡으려면 난도도 더 크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타인에 대해 마땅히 선의로 이해해야 합니다.

4. 전통문화의 일깨움

수련생과의 교류를 통해 제 많은 문제가 모두 가치관의 어긋남 때문이며 ‘유물주의’와 ‘무신론’ 가치관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맹자는 “측은지심(惻隱之心)은 인(仁)이고, 수오지심(羞惡之心)은 의(義)이며, 공경지심(恭敬之心) 예(禮)이고, 시비지심(是非之心)은 지(智)”라고 말했습니다. 대조해본 후, 제 많은 표현에는 모두 ‘인의예지’가 빠져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수련하지 않는 가족이 제 근본적인 문제는 이기심과 불선이므로 감사할 줄도 모르고 만족할 줄도 모르며 얻으려고만 하고 대가를 치르려 하지 않는다고 지적한 적이 있습니다. 예전에 우리는 끊임없이 다퉜는데 매우 고통스러웠으며 심지어 이혼 얘기까지 나왔습니다. 제가 마음을 닦기 시작한 후 가정은 화목해졌습니다. 저의 가족에 대한 인상도 바뀌었는데 사실 상대방은 매우 선량한 사람인데도 과거에 알지 못했습니다.

5. 이기심을 없애지 않으면 진정한 선을 수련해낼 수 없다

예전에 저는 인식을 잘못한 부분이 있었습니다. 위사(爲私)는 매 사람의 근본적인 문제이며 매우 높은 층차에 이르러야 무사(無私)할 수 있기에 자신은 아직 멀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한 가지 이치를 잊었습니다. 위사인지 무사인지는 구우주와 신우주의 근본적인 구별점으로, 저는 과거에 사(私)를 닦지 않아 수련을 우회한 것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저는 스스로 아침 일찍 일어나고, 법공부를 많이 하며, 연공을 많이 하고, 가치가 있다고 느끼는 큰일을 하려고 계획한 적이 있습니다. 이렇게 하면 정진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계획에는 마음을 닦아 선을 향하는 계획이 없었고 ‘비학비수(比學比修)’[2]의 함의를 잘못 이해해 항상 형식과 결과 측면에서 다른 사람과 비기면서 심성을 대조해보지 않았습니다. 예를 들면, 다른 사람이 법공부와 연공을 더 많이 한다는 소식을 들으면 압력을 느껴 따라잡고 싶었고, 다른 사람이 삼퇴시킨 사람의 수가 많은 등 어느 방면을 잘한다는 말을 들으면 곧 질투했습니다. 뒤처지는 것이 두려웠고 수련생과는 일종 경쟁 관계 같았습니다. 다른 사람의 어디가 나쁘다는 말을 들으면 오히려 안도의 숨을 내쉬면서 자신은 그에 비해 그래도 괜찮다고 생각했습니다.

이것은 수련을 사람의 일로 여겨 노력한 것으로 선념이 생길 수 없습니다. 사실 수련은 사람의 일이 아니며, 포기하고 내려놓고, 물러서고 구함이 없으며, 이타적이고 다른 사람을 성취시키며 자신을 제고하는 것을 말합니다.

저는 많은 방면에서 정진하는 일부 수련생이 선을 수련하는 방면이 오히려 부족한 것을 발견했습니다. 예를 들면 어떤 수련생은 때때로 오만한 마음을 드러내고, 어떤 수련생은 중요한 일만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 다른 사람이 시간을 점용하면 타산에 맞지 않다고 생각해 초조해지고 불평합니다. 어떤 수련생은 다른 사람의 느낌과 어려움을 고려하지 않고 자신의 이익에만 관심을 둡니다. 이익이 반드시 돈인 것은 아니고 수련인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시간, 항목자원 등과 같은 것입니다. 어떤 수련생은 중요한 이익에 직면했을 때 전혀 타인을 고려하지 않으며 극도로 이기적인 상태를 보입니다.

개인적인 생각에 따르면, 수련생이 다른 방면에서 정진하는 것은 모두 칭찬할만하지만, 선을 수련하는 것을 중시하지 않으면 매우 안타깝고 심지어 매우 위험한 것입니다. 이 방면의 교훈은 매우 많습니다. 그러나 수련이 잘된 수련생은 항상 자비롭고 온화하게 매우 안정적으로 걷고 있습니다.

6. 선(善)의 실질과 표현을 체득하다

‘자기가 원치 않는 것은 남에게 강요 말라(己所不欲, 勿施於人).’ 입장을 바꾸어 자신의 약점이 남에게 찔려 아프기를 바라지 않으면, 자신도 남의 장단점을 논하지 말아야 하고, 자신이 다른 사람의 포용을 받기를 바라면, 자신도 남을 용서해야 합니다. 저는 예전에 항상 남의 잘못을 붙잡고 놓지 않았는데 너무나 선량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에게 좋은 일이 있거나 발전을 얻으면 매우 기뻐하지만 남의 좋은 일을 위해서도 기뻐해야 합니다. 불행한 일에 부딪히면 고통스럽지만 남의 불행도 대신해 슬퍼해야 합니다.

저는 예전에 많은 사람이 눈에 거슬려 마치 좋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수련생 D는 선량하고 성실해 “자신의 마음으로 남의 마음을 헤아리고 양심에 거리낌 없어야 합니다”라는 말을 자주 했습니다. 저는 매우 이치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D는 누구를 봐도 모두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으며 심지어 타인의 문제를 봐도 상대방이 ‘완벽하지 않은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할 뿐이었습니다. 예전에 저는 D의 안목이 정확하지 않다고 생각했지만 나중에는 선량함의 정도 차이라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지금은 다른 사람을 보면 예전보다 훨씬 마음에 듭니다. 다른 사람이 눈에 거슬리면 근원은 자신의 불선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선량할수록 다른 사람을 더 잘 포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다른 사람을 볼 때 마음에 드는 정도는 선량함의 정도를 나타내는 것일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항상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자신이 제고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저는 자신이 이 방면의 문제가 너무 커서 뿌리를 캐야 할 곳이 너무 많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 교류 원고를 쓰면서 반성한 바에 의하면, 선량하지 않은 것은 생명의 근본 문제라는 것을 더욱 깨달았습니다. 저는 20년 넘게 수련하고 나서야 깨달았습니다. 사실 이 몇 년간 가족이 지적한 것 외에 저 역시 주변 수련생이나 속인들로부터 선량함에 관한 화제를 이야기하는 것을 자주 들었습니다. 이것은 아마 사부님께서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 끊임없이 저를 점화해주시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저는 진작 깨달아야 했습니다.

제자는 법을 얻은 지 오래되어도 닦을 줄 몰랐고 사존의 자비롭고 고생스러우신 제도를 헛되게 했습니다. 사존께서 제자를 극도로 이기적인 생명에서 점점 깨어나 조금씩 바로잡을 수 있도록 해주신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저는 반드시 진심으로 법을 공부하고 노력해 법에 동화하며 선념과 자비를 수련해내겠습니다.

이상은 개인의 최근 수련 체득으로 적절하지 않은 부분은 수련생 여러분께서 자비롭게 바로잡아주시길 바랍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각지설법6-아태지역 수련생회의 설법’
[2] 리훙쯔 사부님 시사(詩詞): ‘홍음-착실수련(實修)’

[편집자 주: 본문은 글쓴이 개인의 현재 인식에 따라 작성된 것이므로, 수련생 여러분께서 서로 교류하고 ‘비학비수(比學比修)’ 하는 데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원문발표: 2023년 2월 2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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