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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함을 내려놓고 늘 겸손한 마음을 유지하다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겸손은 한 생명의 본성이고 오만함은 생명이 후천적으로 양성한 변이된 습관이자 생명의 층차가 아래로 떨어진 원인 중 하나입니다. 사람의 겸손은 근본적으로 신에 대한 겸손입니다. 사람은 신이 만든 것이고 신의 가르침과 보호를 받으며 살기 때문에, 생명은 본성 중에서 줄곧 신을 자기 행위의 지침으로 삼아왔습니다. 비록 신이 생명을 보호하는 것은 대부분 신적(神跡)의 형식으로 나타나며 일부 사람의 몸에 나타나기도 합니다. 만약 한 사람의 생명 깊은 곳에 신을 믿는 것이 있다면, 신은 이 사람의 곁에서 그를 보호해줄 것입니다. 신도 사람에 대한 감독과 보호를 포기한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주가 전체적으로 법에서 벗어남에 따라, 사람의 마음도 천천히 오염되고 변이됐습니다. 만약 사람에게 오만한 마음이 생겨난다면, 자신을 지나치게 높게 보게 되고 자신이 능력이 있어서 성공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때부터 안하무인이 되고 심지어 스스로, 마치 신이 된 것처럼 느껴지게 되어 진정으로 자신을 보호해줄 수 있는 신에 대한 존경심을 잃게 됩니다. 이것은 인간이 타락으로 나아가 부패하는 구체적 표현입니다.

사람이 영원히 신의 보호를 받으려면 신의 곁에 서서 신을 믿고 신을 우러러보며 늘 겸손한 마음 상태를 유지해야 하며, 오만하고 안하무인이 돼서는 안 됩니다. 신의 가르침에 따라 수련하는 것은 사람의 생명이 향상하는 가장 직접적인 방법입니다. 수련이란 사람의 악한 마음과 집착을 모두 닦아 없애고 무조건 사부님의 요구에 따라 행하는 것입니다. 사상 속의 깊이 박힌 집착심을 끊임없이 전부 파헤쳐 없애야 하며 어떤 마음이라도 누락있으면 후환이 끝이 없을 것입니다.

법공부를 하면서 고층의 생명에게도 난제가 있고 매 한 층의 생명에게는 모두 난제가 있으며 모두 그들의 층차를 초월한 층차의 일을 알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낮은 층차에서 높은 층차의 진상을 나타낼 수 없는데 이것은 우주의 이치이다.”[1] 다만 사람이 너무 깊이 미혹되어 사람의 층차에서조차 사람의 일을 똑똑히 보아내지 못할 뿐이므로, 사람을 초월한 고층 공간의 일은 더욱 알 수 없습니다. 사람은 아무리 높이 수련해도 우주 중의 생명이기에 영원히 자신을 지나치게 높게 봐서는 안 됩니다. 자기 위에 헤아릴 수 없는 수많은 고층 생명이 더 있으므로 오직 착실하게 본분을 잘 지키며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잘하면 됩니다. 매일 마땅히 고려해야 하는 것은 자기가 어떻게 사부님의 대법에 따라 해야 하는지, 어떻게 사부님께서 분부하신 세 가지 일을 잘 완성할 수 있는지를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저를 포함한 모든 대법제자의 책임과 사명입니다.

20년 넘게 수련하면서 제일 좋아하는 일은 법공부입니다. 매일 모두 법공부를 하며 물론 연공도 빠뜨릴 수 없습니다. 오직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하라고 하신 것은 저는 모두 하고 있고 그것을 잘하려고 합니다. 또한 사부님의 요구에 따라 진상을 알리고 발정념하는 일을 잘합니다. 자신이 알아차릴 수 있는 집착심을 주저하지 않고 제거하기에, 자기의 사상 행위는 집착심에 의해 이끌려 움직이지 않을 것이고 법에 부합하지 않을 리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이 법의 요구에 부합하지 않는 모습을 보면 자신은 그런 문제 없이 매우 잘 수련했다고 생각하면서 득의양양해 합니다. 수련은 자신의 감각에 따라 판단할 수 없으며 수련을 잘했는지 잘하지 못했는지는 오직 법으로 가늠해야 하는데 사부님께서 가장 똑똑히 잘 보고 계십니다. 이것은 저의 쟁투심, 오만함, 안하무인, 겸손하지 않은 등이 얼마나 두드러진지를 설명하는 자기 수련 과정에서의 몇 가지 일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첫 번째 일

2001년 저는 불법적인 노동교양을 받았습니다. 노동교양소의 한 경찰 대장은 많은 사람 앞에서 제게 “당신은 왜 이렇게 편안한가!”라고 말했습니다. 그때 경찰 대장은 파룬궁(法輪功) 수련생들에게 말하는 태도가 늘 야박하고 비아냥거리며 비꼬고 비웃었습니다. 저는 일찍부터 경찰 대장에게 반감이 생겼고 다만 정면으로 부딪히지 않았을 뿐입니다. 그러나 경찰 대장이 저에 대해 말하자 몹시 화가 나 그때 곧바로 따지기 시작했습니다. 경찰 대장은 제가 자기를 무서워하지 않고 또 감히 강경한 말로 대꾸하는 것을 보고 “당신은 몸에 가시가 돋쳤어?”라고 비아냥거렸습니다. 저는 바로 “아무래도 돋친 것 같네요.”라고 대꾸했습니다. 경찰 대장은 “그럼 내가 닦아줄게.”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즉시 “당신은 닦아내지도 못할 거예요.”라고 말했습니다. 제가 이렇게 강하게 나오고 자신에게 조금도 체면을 세워주지 않는 모습을 보고 “닦아낼 수 없으면 당신은 길러봐요. 어쨌든 나를 찌르지도 못할 테니까.”라며 스스로 물러섰습니다. 감옥 경찰이 더 말을 하지 않아서 저도 분위기에 따라 말을 더 하지 않았습니다.

그때 저는 설령 일이 지난 후 경찰 대장의 보복을 받더라도 제가 하려는 말은 하고야 말리라고 생각했습니다. 우리 파룬궁을 수련하는 사람은 무슨 죄를 지어서가 아니라 불법적으로 수감돼 들어왔으며 ‘진선인(真·善·忍)’을 수련하는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경찰 대장이 알게 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나약하지 않으며 괴롭힘을 당하는 존재가 아닙니다. 그렇게 많은 경찰관, 불법적으로 노동교양을 받는 수련생과 일반 교육 관계자들 앞에서 우려할 것 없이 경찰 대장과 겨뤘지만, 일이 지난 후 경찰 대장은 오히려 저를 별일 없이 대했고 보복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때 저도 제가 쟁투심이 매우 강하고 수모를 겪고 비웃음을 당하는 것을 용인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특히 많은 사람 앞에서 수모와 비웃음을 당할 때 그 마음을 찌르는 아픈 느낌은 정말 참기 어려웠습니다. 그때 저의 마음 상태는 ‘설령 신체적인 고통을 감당하는 한이 있더라도 체면의 존엄성을 지켜야 한다.’라는 것이었습니다.

쟁투심 자체는 참지 못하는 표현이며 쟁투심의 부추김에 의해 참는 것을 더욱더 하지 못합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 저의 심성은 그야말로 형편없었습니다. 몹시 부끄러워 사부님을 대할 면목이 없습니다. 사부님께서 그때 저의 표현을 보셨다면 얼마나 상심이 크셨을까요!

두 번째 일

몇 년 전 직장에 다닐 때, 한번은 수다를 떨다가 어떤 책임자가 저에게 “일곱 가지의 불복종, 여덟 가지의 불순종”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때 저는 매우 놀라 마음속으로 ‘나는 그와 접촉한 적이 없고 평소에 거의 만난 적도 없었다. 매번 내가 당직 설 때, 그는 담당 책임자로 가끔 당직실에 와서 얼굴만 보이고 갔고 말도 거의 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그는 나를 이렇게 평가하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때 비록 다투지 않았지만 속으로 매우 불복했습니다. ‘당신은 무슨 근거로 나를 일곱 가지의 불복종, 여덟까지의 불순종이라고 말하지? 당신이 책임자라고 그런 거야?’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때부터 그에 대해 매우 반감이 생겼습니다. 게다가 그는 제가 파룬궁을 수련한다는 이유로 노동교양소에 들어간 일에 대해 그럴만한 가치가 없으며 업무적으로 앞길이 지체됐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반감을 품고 “저는 절대로 후회하지 않아요.”라고 퉁명스럽게 말했습니다. 그는 듣고 몹시 화가 났습니다. 그가 생각하기에는 제가 잘 되기를 위해서이고 이해관계를 저와 잘 이야기해보려 했지만 제가 성의를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모두 쟁투심이고 오만함이며 안하무인으로 비롯된 온화하지 못한 말투, 냉담한 태도이며 선념(善念)이 없는 표현입니다. 나는 그에게 대법제자의 자비롭고 온화한 일면을 보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이것은 제가 수련에서 대법 표준으로 행하지 못한 구체적인 표현입니다.

세 번째 일

집에 있을 때, 아버지도 제가 겸손하지 않다고 여러 번이나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늘 다른 사람들 앞에서 제가 오만하고 겸손하지 않다고 말씀하셔서 저를 매우 난처하게 만들어 마음속으로 몹시 화가 났습니다. 제가 한 말에 덕(德)이 없다는 아버지의 말씀을 늘 인정하지 않았고 자주 변명하면서 말다툼했습니다. 그때 수련하면서 법공부를 많이 하고 법리도 잘 알았지만, 대법으로 자신의 언행을 대조하지 않았고 깊이 안으로 자신을 찾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면서 자기가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고 늘 다른 사람이 제게 편견이 있으며 저를 못마땅하게 여기기 때문에 저에 대한 좋은 인상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시간이 길어지자 마음속에 원망하고 미워하는 마음이 강하게 생겨났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바로 저 자신의 문제입니다. 수련을 이렇게 오래 했지만, 쟁투심, 오만함, 안하무인, 겸손하지 않은 등, 이 몇 가지 문제에서 저는 거의 자신을 닦아본 적이 없었고 자신이 이 방면에 문제가 있으며 무슨 잘못이 있는지 생각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매일 법공부를 하고 법리를 깨달으면 자신이 매우 좋은 수련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그때 스스로 법리를 조금 깨달았지만, 법리에 따라 행하지 않으면 자신을 닦지 않은 것과 같으므로 수련인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저에 대해 그런 나쁜 견해와 평가가 있었던 것은 정확한 것입니다. 저의 마음이 깨끗하지 않고 일거일동, 일언일행이 법의 표준에 도달하지 못했으며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수련인은 “안으로 찾아야 한다”라는 요구에 따라 하지 못한 것입니다. 수련에서 착실하게 수련하지 못하니, 제가 내보낸 일념에서 ​사람들은 저의 비뚤어짐과 어색함을 느낀 것이고, 제 몸에서 대법의 온화함과 아름다움을 볼 수 없었습니다. 본 것은 전부 저의 ‘모난 모습’과 ‘불복’, ‘불평’, ‘안하무인’, ‘오만함’, ‘겸손하지 않은 마음’이었습니다. 행위는 사상의 지배를 받으므로 저의 마음속에 모두 일부 비뚤어진 법에 부합하지 않은 사상인데 어떻게 좋은 행위의 표현이 있을 수 있을까요? 사실 그동안 다른 사람들이 무심코 내뱉은 저에 대한 그런 나쁜 견해와 평가는 모두 그들의 진실한 내심의 표현이자 솔직한 표현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저는 그때 마음이 깨끗하지 않고 쟁투심, 오만함, 사람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마음 때문에 좋지 않은 표현을 했고, 그래서 사람들에게 그런 인상을 남긴 것입니다.

물론 그것은 모두 예전의 자기 모습입니다. 지금 법을 배우면서 이미 마음속의 나쁜 사상, 나쁜 습관, 변이된 관념, 오만함, 안하무인 등 나쁜 것을 모두 버렸습니다. 매일 사부님의 대법에 따라 행하고 끊임없이 자신의 공간장을 깨끗이 청리하여 자기 몸과 마음이 대법 속에 용해되게 하고 동화되게 하며 나쁜 마음을 바로잡게 하고 우주의 ‘진선인(真·善·忍)’ 특성에 순응하여 합격한 정법시기의 대법제자가 되었습니다.

오직 늘 안으로 찾아야만 비로소 자신의 나쁜 사람 마음의 집착을 찾아낼 수 있고 오직 모든 나쁜 사람 마음의 집착을 제거해야만 사상 경지를 높일 수 있으며 대법제자의 고상한 경지를 펼쳐 보여줄 수 있습니다. 아울러 세상 사람들이 파룬따파의 아름다움과 훌륭함을 인정할 것이며 ‘진선인’에 따라 하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법공부를 하면서 구하면 안 되며 이해할 수 있는 정도까지 이해하고 얼마만큼 이해할 수 있으면 곧 그만큼입니다. 사람의 머리는 유한하지만, 대법은 무한합니다. 대법제자로서 법공부를 많이 하고 “구함이 없어야 스스로 얻는다(無求而自得)”[2]이므로, 수련이 잘 된 일면은 무엇이든 다 이해할 수 있습니다.

수련 과정에서의 약간의 깨달음이므로 수련생 여러분들께서 자비롭게 바로잡아 주시기 바랍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휴스턴 법회 설법’
[2] 리훙쯔 사부님 저작: ‘시드니법회 설법’

 

원문발표: 2023년 1월 20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3/1/20/44830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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