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허베이(河北)성 대법제자
[밍후이왕] 19년 전, 노동교양소의 박해에서 벗어난 후, 집에서 자료점을 운영하면서 지역민에게 우리 지역의 사악을 폭로하고, 국보대대 경찰과 대면해서 진상을 알렸습니다. 지금까지 수련의 길을 평온하게 걸어온 것은 사부님의 자비로우신 보호 덕분입니다. 이 과정에서 놀란 적은 있지만, 위험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저는 대법의 신기(神奇)를 직접 겪었습니다. 여기서 수련한 체득을 사부님께 보고드리며 수련생 여러분과 교류하겠습니다.
1. 적막 속에서 굳게 지켜내다
2003년 6월, 노동교양소 대문을 나설 때, 박해받아 ‘병업 상태’인 몸을 이끌고 집에 돌아와서 굶주린 듯 법공부를 했습니다. 수련생은 가장 먼저 밍후이왕의 수련교류 체득 글을 제게 가져다주었습니다. 사부님의 법에서 “제자들의 고통을 나는 다 알고 있으며”[1]라는 대목을 배울 때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자상하고 따뜻하며 평온한 뜨거운 그런 기분이 감돌았습니다. 저는 반드시 사부님을 따라 집으로 돌아가겠습니다!
법을 배워 두려운 마음을 제거하고 자료점을 세우다
막 집에 돌아왔을 무렵, 수련생인 남편은 여전히 의지할 곳을 잃고 떠돌아다녔습니다. 두려운 마음이 시시각각 저를 덮쳤는데 경찰차 소리만 들어도 가슴이 떨려서 제집 마당에서조차 연공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딸과 조용히 둘이 지냈는데 마치 다른 공간의 교란에 짓눌려 숨 쉬는 것도 두려워하며 쉬는 것 같았습니다.
직장에서도 이른바 ‘위문’이라며 사람이 찾아왔습니다. 아이가 학교에 가면 저는 혼자 집에서 법공부를 많이 했습니다. 노동교양소에서 걸어 나올 때, ‘집에 돌아가면 먼저 3개월 동안 법공부를 한 다음 회사에 출근하자.’라는 한 가지 큰 염원이 있었습니다. 사부님께서는 대법에 대한 그 확고한 일념을 보시고 제게 좋은 환경을 열어주셨습니다. 3개월 동안의 법공부로 두려움이라는 부패 물질을 대부분 제거해서, 다시 회사에 출근했을 때는 사람들을 대면하는 게 두렵지 않았습니다. 비록 두려움을 깨끗이 제거하지는 못했지만, 감히 대면하여 진상을 알릴 수는 있었습니다.
기술 담당 수련생도 여러 번이나 ‘자료점을 세워’ 중생을 구하라고 격려해주었습니다. 먼저 제게 프린터를 한 대 보내주고 원본 자료를 제공해주었습니다. 두려운 마음 때문에 그 프린터를 여러 번이나 옮겨서 들여왔다가 옮겨서 나가곤 했습니다. 우리 지역 작은 팀의 한 수련생은 제 상태를 이해해주었고 종종 저를 도와 발정념을 해줬습니다. 사부님의 가지로 마침내 마음을 굳힐 수 있었습니다.
기술 담당 수련생이 노트북과 프린터를 보내줘서 작은 자료점이 세워졌습니다. 그 후, 수련생의 도움으로 또 시디 라이터, 종이 절단기 등을 샀습니다. 낱장 전단에서부터 진상 소책자, 스티커, 진상 시디, 진상 자료 편집, 밍후이왕에 송고하기, 현지 사악을 폭로하는 글을 쓰기, 대법서적 제작 등에 이르기까지 17년 동안 묵묵히 굳게 지켜왔습니다. 저는 밍후이 자료 거점 단선 연락에 관한 요구를 엄수하면서 자료를 잘 만들어서 수련생에게 보냈습니다. 혹서 혹한을 불문하고 확고히 견지했습니다. 소모품 구매도 스스로 해결해서, 전용 전화로 외지에서 사거나 우리 지역 업체에서 고정적으로 구매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하면 자료점의 정상 운영을 보장하면서도 안전했습니다. 17년 동안 자료점은 줄곧 건실하게 운영되고 있습니다.
의존하는 마음을 제거하자 대법이 기술적 난제를 해결해주다
우리 지역에서 수련생들이 진상을 알리는 역량이 커지면서 자료 수요가 늘어서, 지난 17년간 프린터와 컴퓨터를 여러 번 새로 교체했습니다. 기계가 고장 나면 기술 담당 수련생이 와서 고쳐줬지만, 우리 지역에 기술 담당 수련생이 부족해서 그분들이 일에 쫓기고 수련이 따라가지 못하다가 아주 심한 박해를 당했습니다.
기술 담당 수련생이 박해받은 사실에 저는 각성했습니다. 더는 기술 담당 수련생에게 기대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 제가 직접 여러 가지 어려움을 극복하면서 분해하고 조립해서 성능을 시험해보고 다시 분해하고 조립한 후 성능을 시험해보았습니다. 이 과정에서 조급한 마음, 기술 담당 수련생에게 의존하는 마음, 번거로움을 두려워하는 마음, 원망하는 마음, 일하려는 등 마음을 닦아 없앴습니다. 며칠 밤낮으로 묵묵히 자료를 찾아보면서 장치 분해와 조립을 거쳐 성능을 시험해보고 시스템을 설치하다 보니 종종 밤늦게까지 수리했습니다. 도저히 스스로 처리할 수 없는 것은 다시 기술 담당 수련생을 찾았습니다.
기술 포럼의 수련생이 제게 아주 큰 도움을 줬습니다. 낮에 출근해서 일을 바삐 끝내면 남은 시간을 활용해 사부님의 설법 녹음을 다그쳐 들었습니다. 동시에 각지 설법을 공부하는 것을 보장함으로써 수련상태가 늘 정진하는 중에 있도록 보장했습니다. 사부님께서 가지해 주시어, 저는 여러 측면에서 교란이 와도 자비롭게 긍정적으로 대응할 수 있었습니다.
전에 한 수련생이 제게 “수년간 자료를 만들면서 하기 싫은 적이 있었어요?”라고 물었습니다. 아니요. 전혀 없습니다. 정법이 하루라도 끝나지 않는 한 이 작업은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때로는 마음이 평온하지 않은 일이 생기는데, 알아차리면 곧 바로잡았습니다. 특히 혹한의 깊은 밤, 함박눈이 흩날리고 냉혹한 추위가 닥쳐올 때 홀로 컴퓨터 앞에 앉아 전화번호를 정리해서 전송하거나 까다로운 일에 직면해 두서가 잡히지 않거나 깊은 밤이 되도록 시디를 굽는 등, 주변이 적막하여 지글거리는 시디 기록 장치의 소리만 들리거나 짤깍거리는 키보드 소리만 들릴 때는 텅 빈 광활한 우주 속에 놓인 것 같았습니다. 자정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려서 입장하고 사악을 제거하면, 천군만마가 사악의 진영을 소멸하러 갔고 흑수난귀(黑手爛鬼)는 숨을 곳이 없는 것 같았습니다. 사부님께서 가지해 주시어 지혜가 열리면서 한 차례씩 난관을 돌파했습니다. 우리 집 대문 입구의 타일에 우담바라가 연달아 두 번이나 피었습니다. 저는 사부님의 격려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정법 노정이 빠르게 진행되면서 자료점도 점차 많아지고 있어서, 제가 운영하는 곳은 그리 바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또 수련생과 협력해 거리, 상가, 시장에 나가서 사람들을 만나 진상을 알렸습니다. 넓은 시골 마을에 가서 집마다 ‘공산당에 대한 9가지 평론(9평)’, ‘공산주의의 최종목적’, 진상 시디 등 진상 자료를 나누어 줬습니다. 특히 새해가 다가오면, 달력 배포는 큰 시장에서 진상을 알리는 하이라이트였습니다. 사람들은 그 반짝이는 달력, 연화, 복자 등을 손에 들고 있었습니다. 중생이 진상을 알고 기뻐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사악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2. 회사에서 수련환경을 열다
2002년, 우리 회사 책임자가 국보대대와 결탁해 저를 박해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회사 책임자가 자리를 잃을까 봐 두려워 그런 것이지만, 진정한 원인은 제가 그들에게 제대로 진상을 알리지 못한 탓이었습니다. 노동교양소에서 돌아온 후, 3개월 동안 착실히 법공부를 했지만 두려운 마음은 여전히 남아 있었습니다. 그러나 회사 사람들이 대법에 불리한 일을 해서 재난을 자초하지 않도록 저는 국장부터 진상을 알려줘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모든 중생은 사부님의 친인이었던 적이 있으므로 중생이 대법에 더는 죄를 짓게 해선 안 되며, 사악이 중생을 다시 더 망치게 내버려 둘 수 없었습니다.
2002년 제가 노동교양소에 있을 때, 국보대대장은 우리 국장이 저를 교육하라고 했다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진상을 알지 못해 비롯된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국장부터 진상을 알려주기로 했습니다. 국장을 만났는데 그가 너무 가련하게 느껴졌습니다. “국장님은 관리직에 30년간 계셨는데 앞으로 30년간 더 관리직에 계실 수 있을까요?” 저는 이 말을 마치자마자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그가 속임수에 넘어가서 한 행위는 자멸을 부르는 것인데, 저는 장차 그가 직면하게 될 업보 때문에 걱정이 되었습니다. 저는 그에게 노동교양소에서 직접 겪은 음식물 강제 주입, 폭행, 바오자(包夾-수감자로 구성된 감시자), 냉동 고문 등 박해 사실을 이야기했습니다. ‘진선인(真·善·忍)’을 신앙하는 좋은 사람이 비인간적인 시달림을 받는 것, 파룬궁(法輪功)이 세계적으로 광범위하게 알려진 사실, 선과 악에 보응이 있다는 것 등을 알려주었습니다. 국장도 눈물을 흘렸는데 좀 후회하는 것 같았습니다. “이런 줄 내가 어떻게 알았겠어요?” 이번에 진상을 알리자 국장은 아주 감동했습니다. 나중에 그의 아들이 도박으로 200만 위안(약 3억 6천만 원)을 잃어 국장이 평생 경영해온 것을 잃었습니다. 선과 악에 보응이 있다는 하늘의 이치는 절대 허튼소리가 아니고 진짜입니다.
부국장들에게도 진상을 알렸습니다. ○ 국장은 제가 파룬궁을 수련하는 것 때문에 이 회사로 전임해왔습니다. 제가 노동교양소에 있는 동안 그는 국보대대에 협조해 노동교양소에 찾아와서 제가 전향할 낌새가 있는지 알아보곤 했습니다. 그는 능력이 별로 없고 책임질까 봐 두려워하며 아첨을 잘하는 사람입니다. 그에게 진상을 알리긴 했지만, 시간이나 장소가 부적절했는지 저는 제대로 알리지 못했습니다. 어느 해인가 10월 1일, 그는 ‘6.10’의 사악한 명령을 집행하려고 사람을 데리고 제 친정에 찾아가 연로하신 부모님을 위협했습니다. 저는 이 시점에 기회를 틀어쥐고 그를 찾아가 진상을 알려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속으로 좀 긴장이 되어 사부님께 가지해 주실 것을 부탁드리고 그의 사무실에 가서 1시간 채 안 되는 시간 동안 진상을 알렸습니다. 대법이 세계에 널리 전해진 상황부터 박해가 위법이라는 것, 선과 악에 보응이 있다는 것까지 그는 조용히 들었습니다. 저는 “국장님은 윗선이 시키는 일에 책임지겠다고 그러시지만, 국장님은 누가 책임져줄까요? 자신을 희생양이 되게 하지 마세요. 사악한 공산당은 언제나 그랬듯이 권모술수에 능하지 않습니까. 국장님이 파룬궁을 박해한 모든 행동을, 위에서는 아무도 책임지지 않을 것입니다. 언젠가 파룬궁이 억울한 누명을 벗게 되는 날(인간은 억울한 누명을 벗겨줄 자격이 없음), 그 일을 행한 사람이 심판받게 될 겁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아울러 그가 총구를 1㎝ 높게 들어 자신에게 여지를 남겨두기를 바랐습니다. 이번 진상 알리기는 사부님의 가지로 마음 상태가 평온했고 일정한 효과를 거두었습니다. 나중에 우연한 기회로 그 부인을 만나게 되어, 부인에게도 진상을 알렸습니다. 그리고 국장이 사악한 공산당을 탈퇴해 평안을 보장받게 해야 한다고 권했는데 그 부인은 희색이 만연해서는 돌아가서 남편에게 알려줄 거라고 했습니다. 나중에 한 수련생에게서 그 부인이 남편을 사악한 공산당원에서 탈퇴시켰다고 들었습니다.
○ 국장은 사무실을 주관했는데 비교적 독선적인 사람이었습니다. 하루는 그가 저를 불러 계속 저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면서 계속 수련하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한 사람의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하고 도덕을 되돌아 올라오게 하는 좋은 공법을 왜 수련하지 않겠냐고 했습니다. 그에게 대법은 세계 백여 개 국가와 지역에 전파되었고, 파룬궁 박해가 사실 위법 행위라는 것을 알려주었습니다. 그는 대만의 한 파룬궁 수련생이 자기에게 전화를 걸어 와 진상을 알린 적이 있다고 했습니다. 저는 그가 대법이 좋다는 것을 기억하고 대법과 대법제자를 선하게 대하여 자신에게 아름답고 훌륭한 미래를 남길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이렇게 대대적으로 진상을 알린 해외 대법제자들에게 대단히 감사합니다. 그 자리에서 권유해서 탈퇴하게 하지는 못했지만, 그는 많은 것을 깨우쳤고, 그 뒤로 더는 저를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 국장도 기존에 저와 함께 일했는데, 진상을 듣고 사악한 당·단·대 조직을 탈퇴했습니다. 황(黃) 국장에게도 국 내부 부서 인원 조정 때 한 번 사무실을 찾아가 진상을 알렸습니다. 당시에 삼퇴를 하지는 않았지만, 공법이 좋다면서 집에서 혼자 수련하라고 했습니다. 우리 회사의 유일한 여성 부국장이 있는데 진상을 알리는 데만 중점을 두고 아직 삼퇴까지 권하지 못했습니다. 이것은 제가 늘 하고 싶은 일입니다.
이 국에 제가 발령 받은 후, 세 번째 국장이 우리 회사로 발령 받아 왔습니다. 저는 그의 사무실로 불려간 적이 있습니다. 그는 제게 호통을 치면서 “수련하느냐.”, “나를 번거롭게 하면 안 된다.”, “문제가 생기면 해고하겠다.” 등 협박을 했습니다. 저는 그에게 평온하게 진상을 알렸는데 당시 조금도 두렵지 않았습니다. 마음속에는 자비만 있었고 그가 대법과 대법제자에 대해 죄를 짓게 할 수 없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나중에 이 국장은 소규모 회식 자리에서 제가 다른 사람과 함께 술을 따를 때 현의 ‘6.10’과 공안 국보대대가 교란하려 했는데 자기가 막았다며, 회사와 직원의 명성에 누가 될 것 같아서 그들을 오지 못하게 했다고 했습니다. 국장의 이 정념 때문에 그에게 복이 왔습니다. 그는 기율위원회 조사 기간에 아무 데도 연루되지 않고 무사히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십여 년간 사내에 국장급 간부가 많이 들어오고 나갔고, 저는 그들과 접촉할 기회를 활용해 진상을 알렸습니다. 그 자리에서 삼퇴까지 하진 못했지만, 한 차례 진상을 알리는 기회가 있어 앞으로의 삼퇴를 위해 토대를 마련했습니다.
또, 회사 동료에게도 진상을 알려 많은 사람을 삼퇴시켰습니다. 어떤 사람은 집에 놀러 갔다가 진상을 알렸고 어떤 사람은 어르신 병문안에 가서 알렸으며, 어떤 사람은 거리에서 우연히 만났을 때 알렸고 어떤 사람은 그들이 우리 부서에 와서 업무를 볼 때 알렸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현의 ‘6.10’의 사악한 명령을 사악한 명령을 따르겠다며 저를 찾아와 소위 ‘상담’을 할 때 알렸고, 어떤 사람은 그들과 가족에게 진상 시디, 인터넷 봉쇄 돌파 소프트웨어를 주거나 안전을 위해 대면하지 않고 진상 시디와 진상 자료를 그들의 집 문 앞에 놓았습니다. 이 과정에서 자신의 두려운 마음, 번거로움을 두려워하는 마음, 안일한 마음 등 수많은 집착을 없앴습니다. 동시에 저 역시 업무적으로 훌륭한데도 더 성실히 하려는 태도로 시시각각 대법 ‘진선인(真·善·忍)’의 표준으로 자신을 요구했습니다. 책임자는 저의 업무성과에 아주 만족스러워했고 국보대대에서 회사를 찾아와 이른바 답례 방문을 했을 때, 회사 책임자와 부서 책임자는 모두 저의 업무를 공정하게 평가했습니다.
저는 두려운 마음이 매우 많던 사람에서부터 정념이 강하고 악인을 직접 대면할 수 있고 자비롭게 대면 진상을 알릴 수 있는 대법제자가 될 수 있기까지 사부님의 보호와 가지를 체득했으며, 평소에 법을 배우고 마음을 닦는 중요성도 체득하였습니다.
그로부터 회사 환경도 바뀌었습니다. 저의 임금과 대우는 박해받을 때 강등됐던 데서 조건 없이 정상적인 직급으로 올라섰으며 정정당당하게 회사에서 진상을 알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한번은 같은 부서의 한 동료가 제가 외부 사무원에게 인터넷 봉쇄 돌파 소프트웨어를 주는 것을 보고 웃으면서 또 상대를 ‘세뇌’한다고 했습니다. 저는 “당신은 너무 이기적이면 안 돼요.(이 사람은 이미 삼퇴함). 자신만 구원받아 평안을 보장받으면 되겠어요. 다른 사람도 구원받아 평안을 보장 받아야지요!”라고 자비롭게 말했습니다. 저는 매번 교란을 만나면 진상을 알리는 계기로 삼아 더 많은 사람이 구원받을 수 있게 합니다. 그것이 사부님께 가장 위안이 되어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3. 딸이 내 수련을 돕다
딸은 어려서부터 우리를 따라 법을 배웠습니다. 저는 딸을 교육한다고 엄하고 호되게 했습니다. 딸은 어릴 때 저를 좀 무서워했는데 싫어도 겁이 나서 거부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장녀인데 결혼 전에도 말하건 일하건 다 제 마음대로 결정했고, 유순한 남편을 만나 아주 자아가 강했습니다. 제 뜻에 맞지 않으면 말을 사납게 하고 기분이 풀릴 때까지 계속 말하면서 다른 사람의 기분을 헤아리지 않았습니다.
오랫동안 늘 자기가 독자적으로 어느 한 부분을 담당하고 무슨 일이든 다 대처할 수 있다고 여기는, 이런 성격이 형성됐습니다. 수련에서 때로는 긍정적인 영향도 있어서, 사악한 노동교양소에서 경찰에게 직접 진상을 알릴 수 있었고 회사 일에서는 혼자 한 부문을 도맡았으며, 수련에서 문제의 본질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이런 자아는 자기 견해를 고집하고 자아를 고수하며 저에 대해 불공정한 대우가 있으면 시비를 가리는 사유를 양성했습니다. 그런데도 이와 같은 표현을 지난 20여 년간 수련하면서 늘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 정법 노정이 곧 끝나가는데 사부님께서는 제가 계속 깨닫지 못하는 것을 보시고 딸을 통해 제게 한 차례 표현을 보게 해주셨습니다.
딸은 결혼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시댁의 일부 방식이나 시댁 식구들의 행동을 아주 불만스러워하면서 거의 매일 제게 한 시간씩 불평을 토로했습니다. 어떤 때는 더 긴 시간을 하소연하고 원망하면서 파혼하겠다는 말까지 했습니다. 저는 처음에는 딸을 잘 타이르다가 나중에는 전화 통화 중에 목소리가 날카로워졌고, 나중에는 딸에 대해 분개하면서 전화를 끊어버리거나 전화가 와도 받지 않았습니다.
딸은 그래도 계속 전화를 걸면서 요 몇 년간 제가 자기를 배려하지 않고 번거롭게 했다며 하소연했습니다. 주말에 친정에 오면 잔소리하면서 밥도 못 먹고 잠도 못 자겠는데 사는 게 아무 재미가 없다며 죽는 게 낫겠다는 말까지 했습니다. 딸의 말이 제 마음을 크게 울렸습니다.
이와 같은 격렬한 반응을 마주하고, 저는 제가 지나치게 자신하며 타인의 집착에 집착하고, 원망하고 미워하고, 시간에 집착하고, 자아를 중시하고, 질투하고, 타인의 처지에서 다른 사람을 위해 생각하지 않는 등 수련 상의 과실을 반성하고 정리해보기 시작했습니다. 또 이 몇 년 동안 제 뜻에 맞지 않는 시어머니의 행동을 잊지 않고, 수련생인 남편과 갈등을 빚거나 뜻대로 되지 않던 그런 지난 일들이 머릿속에서 뒤집혀 올라왔습니다. 20년 동안이나 수련했는데도 자연스럽게 형성된 이런 집착조차 알아차리지 못하면서 나는 수련인이고 그들과 견식을 달리한다고 여겼습니다.
이제야 그런 자아에 집착한 생각이 얼마나 강렬했는지 진정으로 간파했습니다. 점심 발정념 때, 눈물이 멈추지 않고 흘러내렸습니다. 변변치 못하면서 이렇게 잘못을 고집하며 깨닫지 못하는 저를 위해 딸이 얼마나 고통스럽게 표현해야 했을까요. 저는 마음속으로 사부님께 ‘제가 잘못했습니다. 저는 이런 것을 버리겠습니다. 이런 집착은 다른 공간 안에서는 완고한 바위산과도 같습니다. 반드시 이것을 해체하겠습니다!’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제가 바뀌자 딸도 매우 큰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딸은 케케묵은 지난 일에 집착하지 않고 남편과 잘 지내겠다고 했습니다. 자기가 속이 너무 좁았다며, 이렇게 이해심 많고 제때 잘못을 사과할 줄 아는 사람을 찾게 돼서 아주 흡족하다고 이야기했습니다.
하늘로 돌아가는 길은 그리 멀지 않습니다. 용맹정진하고 심성을 수련하여 사부님 따라 집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2-마지막 집착을 제거하자’
원문발표: 2023년 1월 1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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