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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부님을 그리며 성연(聖緣)을 소중히 여기다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중공 사당이 대법을 박해한 초기에 나는 직장인이었다. 내가 파룬따파(法輪大法)를 수련하고 있는 것을 직장 동료들이 다 알고 있었다. 수련 후 내가 좋아진 모습을 보고 동료들은 모두 공감했다.

하지만 사당은 대법에 대한 박해를 일으켰다. 중국에서 파룬따파는 평화로운 수련 환경이 없어졌을 뿐만 아니라 매일 정말로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그때 나는 통근버스를 타고 출근했다. 내가 여러 번 직장에서 공안에게 직접 끌려간 적이 있었기에 매번 출근할 때마다 두려워 마음속으로 안전하게 차에 탈 때까지 계속 사부님의 법을 외웠다. 차가 움직이면 잠시 곤경에서 벗어난 듯 마음이 안정됐다. 퇴근할 때도 안전이 걱정되어 하루가 일 년처럼 느껴졌다.

어느 날 직장에서 나는 침대에 앉아 창밖의 하늘을 바라보았다. 사부님을 그리워하는 느낌은 솟구치는 물결처럼 끊임없이 위로 솟아올랐다. 마치 집을 찾지 못한 어린아이처럼 나는 불안했다. 나는 마음속으로 사부님께 많은 말을 했다. 그때 눈물로 범벅이 된 나를 사부님께서 내 옆에서 지켜보고 계신 것 같았다.

사부님의 자비를 제자는 느꼈다. 마치 깊은 수렁에 빠진 나를 사부님께서 건져주신 것 같았다. 조금 전까지 어찌할 바를 몰랐던 나는 순간 정념이 생겨 마치 길을 잃은 아이가 집을 찾은 것 같았다. 사부님께서 나를 보호하고 계심을 느꼈다!

눈 깜짝할 사이에 20여 년이 지났지만, 그때의 감회가 아직도 생생하다. 이 20여 년 동안 우리 가족은 사부님의 자비로운 보호를 받으며 걸어왔다. 사부님을 그리워하는 마음은 늘 한결같았다. 특히 곤경에 처했을 때나 힘이 없을 때는 더욱 사부님을 그리워했다.

수련인의 길은 서로 다르다. 중국대륙의 수련생들은 중생을 구하는 사명을 짊어지고 있다. 해외 대법제자와 중국대륙의 대법제자는 하나의 정체(整體)로서 서로 원용하고 서로 보완한다. 인간세상은 하나의 큰 무대이다. 이 역사의 연극은 너무 크고, 내포된 의미가 너무 심오하다. 속인 중에서 수련하는 우리는 이 배후의 요소를 깨닫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대법제자인 우리는 사부님과 함께 할 수 있어서 행운이고, 이 특별한 역사적 시기가 영원히 후세에 칭송될 것이라는 사실을 모두 알고 있을 것이다.

사부님이 계신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20여 년을 수련하면서 줄곧 사부님의 법에 의지하여 조금씩 깨달음을 얻고서야 나는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법을 스승으로 모실 수 있다”[1]를 절실하게 느꼈다. 즉 사부님의 법이 제자를 어둠 속에서 이끌어주셨고 사부님의 자비는 내가 일에 부딪혔을 때 자신을 찾고 타인을 생각할 수 있게 해주셨으며, 사부님의 위덕은 내가 한 층 또 한 층의 껍데기를 뚫고 나갈 수 있게 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기실 그때도 고립된 것은 아니었는데, 신(神)이 있었고 사부의 법신이 있었으며, 공(功)이 있었고, 또 당신들의 잘 수련된 일면도 있었다.”[2]

사부님의 이 구절 설법을 보고 대법제자로서 사부님의 자비로운 보호가 있어 얼마나 행복한지 마음속으로 느꼈다. 사부님께서 제자의 곁에 계시지만 사람의 껍데기가 벗겨지지 않으면 신념(神念)이 가로막힌다. 당신이 어디에 있든 대법은 어디에나 다 있기에 법을 스승으로 삼고 신사신법(信師信法)하는 것이 우리가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는 근본적인 보장이다.

‘믿음’에 대해 말하자면 대법제자들은 모두 자신이 신사신법한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진정한 믿음은 글자 그대로의 감성에 머무르지 않는다. 왜냐하면 대법이 우리를 만들어 냈고 사부님의 정법이 우주의 모든 부정적인 변이 요소를 바로잡기 때문이다. 나는 사부님께서 대법제자의 순수함을 원하시고, 순수할수록 우주의 특성에 더 가깝고, 순수할수록 집으로 가는 길에 더 가깝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부님께서 전한 파룬따파는 모든 생명을 가늠하는 기준이지만, 우리가 사부님과 대법을 믿는다고 생각할 때, 우리의 사상이 불순한 것일 수도 있다, 왜냐하면 제거하지 못한 사람 마음과 일부 느끼지 못한 변이 관념이 있기에 이 나쁜 물질들이 섞여들어 올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또 인간이라는 이 주체를 닦고 있기에 당신이 부딪힌 모든 것은 당신이 정말로 신사신법하는 건지 아니면 당신의 감정이 우세한 건지, 아니면 당신의 관념에 우위를 빼앗긴 건지를 검증한다. 만약 당신이 사부님과 대법을 제1위에 놓지 않고, 일에 부딪혔을 때 대법으로 가늠하지 않는다면 이때 당신은 순수하지 않고 또 사부님과 대법을 믿지 않는 것이 된다.

한 생명이 무엇을 선택할지는 스스로 결정한다. 왜냐하면 우주에는 선과 악이 있고, 사부님께서 만드신 새로운 우주가 있으며, 정법 중에서 낡은 우주를 바로잡거나 해체하기 때문이다. 무사무아(無私無我)의 새로운 우주 특성에는 위사위아(爲私爲我)의 낡은 우주의 변이된 요소가 남아있고, 대법제자 개개인 천체 우주 세계의 수많은 중생은 낡은 우주의 변이된 요소를 가지고 있다. 이 불순한 생명체는 당신 몸의 다른 공간 일부이기도 하다.

조사정법하고 사부님을 도와 사람을 구하는 과정에서 자비로운 사부님께서는 제자에게 너무 많은 것을 주셨다. 진수(真修) 대법제자는 모두 서로 다른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수련 층차를 끊임없이 돌파함에 따라 위로 올라갈수록 중생에 대한 법의 요구가 더 엄격해진다. 왜냐하면 당신의 순수함은 대법의 기준에 진정으로 부합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천만년의 윤회를 거쳐서야 이런 성연(聖緣)이 있으므로 우리는 반드시 사부님과 함께하는 이 기회와 인연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시드니법회 설법’
[2] 리훙쯔 사부님 저작: ‘각지설법5-2005년 맨해튼국제법회 설법’

 

원문발표: 2022년 12월 15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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