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산둥 신 수련생 칭신(清心)
저의 어머니는 노 수련생이고, 저는 파룬궁 수련을 진정으로 시작한 지 반년 남짓한 신 수련생입니다.
마난
저는 중학교 때 어머니에게 이끌려 ‘전법륜(轉法輪)’을 배웠고, 단체 법공부와 단체 연공, 홍법에 참여했습니다. 그때는 또 결가부좌를 할 수 있었고 논어도 외웠습니다. 하지만 실제 수련을 하지 않았기에, 수련의 의미와 소중함을 몰랐으며, 또 중앙 CCTV의 ‘분신자살’ 거짓말에 현혹돼 사당의 새빨간 거짓말을 믿고 한동안 믿음을 포기했습니다. 대학 시절에 다시 MP3를 가지고 다니며 사부님의 설법을 듣고 ‘공산당에 대한 9가지 평론’을 보면서, 점차 자신의 언행을 바로잡았습니다. 기숙사 룸메이트들에게 진상을 알렸고 그들이 당, 단, 대를 탈퇴한 것을 진심으로 기뻐했습니다.
실습이 끝난 후 저는 다시 느슨하기 시작했습니다. 결혼 후에는 업무와 가정일에 얽매여 멈출 수도 조용해질 수도 없었습니다. 결혼의 배신을 겪고 나서야 비로소 정신을 차리고 더는 무지몽매하게 살지 않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외부인들이 보기에 저는 학력이 있고, 안정적인 사업편제직장(국가에서 경비 지불하는 공무원급 대우를 받음)에서 근무하고 있으며, 저를 아끼는 부모님과 활발하고 순수한 아들, 롄쯔(蓮梓)도 있습니다. 롄쯔는 불임으로 5년을 고생하던 제게 대법이 하사해준 생명이며, 대법의 보호로 임신 3개월 때 출혈이 심했지만 태어날 때까지 무사히 지켜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운영해왔던 아름다웠던 결혼생활이 거짓이라는 것을 알게 되자, 저의 세계관이 일시에 무너졌습니다.
사부님의 점화
여러 해 동안 법을 배우지 않았지만, 자비로운 사부님은 저를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저의 결혼생활을 알고 처음에 어머니는 좀 화가 나셨습니다. 모두가 보기에 남편은 학력이나 직장, 집안, 외모 모든 것이 저보다 못했기에 가족들은 이 결혼을 찬성하지 않았었고, 제가 반항하며 억지로 주장해온 것입니다.
저는 어머니께 말씀드렸습니다. “만약 속인에게 일어난 일이라면 우리는 틀림없이 그와 그의 가족을 찾아 따질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이런 화를 참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수련인이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신기하게도 사부님께 점화받은 이야기를 해드리자 어머니는 곧 평온해졌습니다.
나중에 저는 자신이 변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나쁜 일을 하려던 생각들을 포기하고 온화한 말투로 그를 용서했습니다. 하지만 남편은 여전히 잘할 수 없었기에 저도 인연이 끝났다는 것을 알고, 은혜와 원한은 과거로 남기고 다투지도 싸우지도 않고 이익분쟁도 없이 평화롭게 합의하고 헤어졌습니다. 원래 사당의 거짓말을 믿고 대법을 욕하고 반대하고, 아이가 대법을 못 배우게 하던 남편도 나중에는 대법진상을 받아들이고 사부님께 잘못을 인정함으로써 그의 생명은 새로운 인식이 생겼습니다.
그 기간에, 저는 직장을 바꿨습니다. 전 직장의 암투와 잦은 야간근무로 인해 제 건강이 매우 빠르게 나빠졌고, 이상한 병에 걸렸습니다. 유방암 증상 같았는데 아프고 종기가 있었습니다. 의학에 희망을 기대할 수 없게 된 후, 파룬궁 동공을 연마했는데, 곧 종기가 터지면서 상처가 저절로 아물었습니다.
‘흉터가 좋아지면 아픔을 잊는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 후 저는 다시 그런 다투고 싸우는 생활을 반복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어 탈모, 불면증, 욱함, 월경불순, 부인병, 허리와 다리 통증, 류머티즘 같은 관절염, 목 디스크, 오십견까지 찾아왔고, 자신의 초라한 모습을 남에게 알리기 싫었던 저는 평소 억지로 웃음을 지어야 했습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공부를 잘했기에 줄곧 자부심이 강하고 도도한 성격입니다. 그래서 현대 관념에 지배당하고 시달려 몸과 마음이 모두 지쳤습니다.
정도(正道)에 다시 돌아오다
오직 대법만이 저를 올바른 길로 인도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기에 저는 다시 대법 속으로 들어오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아침 연공부터 하기 시작했습니다. 시간이 한동안 지나자 딴사람이 된 것 같았고, 마침내 저도 병마의 고통과 감정의 시달림에서 멀어졌습니다.
롄쯔는 대법이 준 생명입니다. 저는 그가 꼬마 대법제자로 태어난 생명임을 알지만, 아이를 잘 이끌지 못했습니다. 심각한 천식은 몇 년 동안이나 롄쯔를 괴롭혔습니다. 처음엔 크면 나을 거라고 요행을 바랐지만, 결국 지난해부터는 재발이 잦아졌고 나중에는 한 달도 안 돼서 한 번씩 재발했습니다.
재발할 때면 롄쯔의 목구멍에서 괴상한 소리가 났으며, 숨이 막혀 얼굴이 파랗게 질리고, 기침하고 싶어도 할 수 없었습니다. 숨이 올라오지 않아 기절할 것만 같았습니다. 때로는 낮에 때로는 새벽에 발작했으며, 그때마다 롄쯔는 괴로워서 울었고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었습니다. 호흡이 원활하지 않아 말할 수도 똑바로 누울 수도 없었습니다. 병원을 여러 번 반복해 다니며 호르몬 주사를 맞고 산소를 들이마시며 흡입 치료를 해야 좀 나았습니다. 하지만 증상만 해결되고 근원은 치료되지 않았으며, 약물 부작용과 아이의 고통은 저를 매우 불안하게 만들었습니다.
나중에야 저는 자비로운 사부님과 파룬따파만이 롄쯔를 구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어머니와 저는 롄쯔와 함께 ‘전법륜’과 ‘홍음’을 배우고 ‘논어’를 외웠으며 발정념을 했습니다. 그때만 해도 롄쯔는 모르는 글자가 많았습니다. 이렇게 한 달도 안 돼 롄쯔가 완전히 회복되어 병원에 갈 필요가 없었습니다. 이제는 순간마다 신선한 공기를 마실 수 있었고, 다시는 천식의 고통을 받지 않았습니다. 위대한 사부님께서 롄쯔의 병을 제거해 주셨습니다.
아들이 착실하게 수련하다
롄쯔는 천목이 열려 때로는 금빛으로 빛나는 파룬을 볼 수 있었습니다. 또 점차 결가부좌를 할 수 있었으며, 논어를 읽고 홍음 앞부분의 10편의 시도 외울 수 있었습니다. ‘삼퇴하여 대재앙을 피하다’, ‘꼬마 대법제자’,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가부좌하고 연공하는 것이 참 재밌네요’ 등의 노래를 부르기 좋아했으며, 매일 자기 전에 ‘공산당에 대한 9가지 평론’ 혹은 ‘공산주의 최종목적’을 듣습니다.
롄쯔는 종종 심성관을 넘기도 했는데 한번은 친구에게 뺨을 14대나 맞았습니다. 하지만 마음속으로 관을 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줄곧 웃으며 대했습니다. 그 이후로 거무스름했던 얼굴이 새하얗게 변했습니다. 롄쯔를 때린 친구가 저의 어머니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롄쯔는 바보 아니에요? 왜 계속 때려도 웃고 있나요?” 옆에 있던 수련생이 말했습니다. “너는 덕을 모두 롄쯔에게 주었어.” 당시 롄쯔의 심성이 법에 있었기에 집착심이 조금도 없었습니다.
내가 착실하게 수련하다
전 직장에서 근무할 때 부적절한 부수입이 있었습니다. 수련 전에는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고, 남들도 다 있었기에 정상이라고 여겼습니다. 나중에 법을 배워서야 자신이 크게 잘못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얻어서는 안 될 이익을 가져 소중한 덕을 잃었습니다.
나중에 사부님의 배치로 공립병원에서 사립병원으로 전근하게 되어 그 열악한 환경에서 이탈하게 됐습니다. 저는 먼저 좋은 사람으로부터 시작해 정상적인 근로소득만 가지리라 다짐했습니다. 점차 수련 시간이 많아졌습니다. 법을 베끼고, 다섯 가지 공법을 연마하고 발정념을 하면서 진상을 알리는 것을 가로막는 장애를 돌파했고, 사부님의 말씀을 들으며 점차 수련의 길을 바르게 걸어갔습니다.
하루는 많은 두리안이 하늘 한복판에 치솟은 높은 나무에서 자라고 있는 꿈을 꾸었습니다. 저는 어머니와 교류했습니다. 어머니는 두리안(榴蓮, 발음-류랜)은 바로 미련(留戀, 발음-류랜)이라는 의미로서 사부님께서 제게 아직 전남편과 사이의 미련이 남아 있다는 것을 깨우쳐준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날 오후 정말로 그에 관련된 장면들을 마주했지만, 마음을 움직이지 않았고 평온하게 관을 넘었습니다. 며칠 전 아침, 잠에서 깨기 전에 아이 아빠가 롄쯔를 데리고 남산으로 이사(遷南山)하는 꿈을 꿨습니다. 저는 깨어난 후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나중에 어머니는 ‘千難山(동음, 천 가지 난이 있는 산)’으로 풀이하며 제가 또 전남편과의 사소한 일들을 떠올려, 또 많은 사심과 잡념을 만들어 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 집착심들을 제거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수련은 천난만난(千難萬難)이지만, 수련인의 마음속에는 법을 담고 있기에 두려워하지 말고 어려움을 극복하고 심성을 제고해야합니다.
그날 회사에서 침실 3개, 객실 2개, 화장실 2개인 기숙사를 배분했습니다. 저는 자신은 연공인이기에 이익을 중히 여겨서는 안 되며, 화장실이 딸린 큰 침실을 먼저 가질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비록 병원 측에서는 직함이 가장 높은 제가 마땅히 가져야 한다고 했지만 저는 나이순으로 침실을 선택하라고 말했습니다. 결국 연상인 두 동료는 더욱 양보하며 진심으로 큰 침실을 제게 남겨주었습니다. 수련 후부터 저는 앞으로의 길은 모두 사부님께서 배치해 주신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사부님이 주신 것은 가장 좋은 것입니다. 저는 ‘구함이 없어야 스스로 얻는다(無求而自得)’[1]라는 사부님의 말씀을 마음속에 새겼습니다.
이 글을 쓰고 있을 무렵 어머니는 법을 다시 베껴 쓰기 시작했습니다. 어머니 수련생은 법을 베끼는 과정에서 마성과 조급함을 고쳤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아직 신 수련생입니다. 파룬따파가 저를 집으로 돌아가는 길로 인도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사부님의 말씀을 잘 듣고 좋은 사람으로부터 시작해, 안으로 찾고 자신을 수련하며 마음을 닦고 부모에게 효도하며, 어머니와 함께 아들을 잘 이끌어 함께 정진하여 주변의 많은 사람이 파룬따파가 세상에 가져다주는 아름다움을 믿고 느낄 수 있게 하겠습니다.
인식이 제한되어 있을 수 있으니 법에 있지 않은 부분은 수련생 여러분께서 자비롭게 바로잡아주시길 바랍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시드니법회 설법’
원문발표: 2022년 11월 12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2/11/12/449531.html
简体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2/11/12/44953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