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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의 빚더미에 앉은 장쩌민

글/ 린잔샹(林展翔)

[밍후이왕] 1999년 박해 초기에 파룬궁 박해의 원흉인 장쩌민은 “3개월 내에 파룬궁을 소멸하라”고 명령했다. 그리고 비밀리에 파룬궁에 대해 “명예를 실추시키고, 경제를 파탄시키며, 육체를 소멸하라”고 명령했고 파룬궁수련자들을 “때려죽이면 그만이고 죽으면 자살로 간주하며 신원을 조사하지 말고 즉시 화장하라”라고 명령했다. 이제 장쩌민은 죽었으나 파룬궁은 꿈쩍도 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세계 100여 개국과 지역으로 전해졌다.

장쩌민은 비록 죽었으나 그가 저지른 극악무도한 죄악은 사라지지 않는다. 중공(중국공산당) 장쩌민 집단은 모든 국력을 동원해 전력을 다해 수단을 가리지 않고 파룬궁을 박해했는데 그 참혹함은 전례가 없다. 그가 저지른 죄악은 많아서 다 기록하기 어렵고 파룬궁수련자 본인과 가정에 큰 고통을 줬으며 중국에 재난을 가져다줬다.

강제로 수련을 포기시키기 위해 중공은 고문으로 파룬궁수련자들을 괴롭혔다. 많은 수련자가 수련을 포기하지 않다가 고문에 시달려 사망하거나 장애를 입었으며 정신이상이 생겼다. 그들 중에는 구타로 사망했거나, 전기봉에 감전돼 사망했거나, 야만적으로 음식을 폐에 주입당해 사망했거나, 독극물 주사를 맞아 사망했다. 어떤 사람은 얼어서 사망했고, 어떤 사람은 알 수 없는 약을 주입당해 집에 돌아온 지 며칠 만에 사망했다. 어떤 일가족은 여섯 식구 중 한 명만 남았고 어떤 부부는 둘 다 살해됐으며 어떤 부자는 10일 간격으로 살해됐다. 더 잔혹한 것은 많은 수련생이 산 채로 장기를 적출당하고 시신은 불에 타 흔적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중공이 파룬궁을 박해한 것은 21세기 가장 큰 인권 재앙을 초래했고 장쩌민의 양손은 무고하고 선량한 파룬궁수련자들의 피로 범벅이 됐다.

1. 각종 고문에 시달려 사망

中共黑狱迫害法轮功学员所实施的种种酷刑
중공 감옥에서 파룬궁수련자들을 박해하면서 실행한 각종 고문

중공은 파룬궁수련자들을 불법적으로 납치, 감금해 ‘전향(수련 포기)’시키기 위해 고문했고 심지어 “전향하지 않으면 화장할 것”이라고 떠들어댔다.

중공의 고문은 각양각색인데 크게 나누면 심한 구타, 전기고문, 약물과 정신적 박해, 강제 음식물 주입, 재우지 않기, 달아매기, 수갑 채우기, 굶기기, 배설 금지, 송곳으로 찌르기, 구속 옷, 강제 낙태, 결박, 얼차려, 얼리기, 상처 부위 짓밟기, 동물을 이용해 학대하기, 채찍형, 찜질 고문, 불에 굽기, 불로 지지기, 열탕 고문, 뜨거운 기름 붓기, 잡아당기기, 앉히기, 물고문, 묶기, 성 학대, 감금, 강제노동 등이다.

각 유형의 고문에는 각종 고문이 더해질 수 있다. 예를 들어 달아매기에는 한 손 수갑, 양손 수갑, 문틀에 매달기, 철사 수갑, 고리 매달기, 수갑 당기기, 거꾸로 매달기, 대자로 매달기 등이 포함된다. 수갑형에는 손발을 이어서 수갑 채우기, 다리 사이로 꺼내서 수갑 채우기, 등 뒤로 수갑 채우기, 자물쇠 고리, 시간을 초과해 침대에 채우기, 엄지손가락 수갑, 1인 수갑 채우기, 2인 수갑 채우기, 늘려서 채우기 등이 있다.

중공이 수련자들을 박해한 고문은 100가지가 넘는다. 모든 고문은 모두 사는 것이 죽기보다 못하게 고통을 줄 수 있는데 많은 수련자가 고문에 시달려 사망했다.

밍후이왕이 중공의 봉쇄를 뚫고 민간에서 수집한 대량의 박해사례를 보면 경악을 금치 못한다. 이들 박해사례도 빙산의 일각일 뿐 더 많은 박해사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분량의 한계로 인해 우리는 소수의 박해 사망 사례만 열거했을 뿐이지만 그래도 박해의 참혹함을 알 수 있다.

독극물 주사로 현장에서 사망​

중공은 약물을 남용해 수련자들에게 독극물 주사를 놓아 심각한 결과를 초래했고 심지어 사망에 이르게 했다. 산둥성 핑두(平度)시 파룬궁수련자 장푸전(張付珍, 여, 38)은 산둥성 핑두시 셴허(現河) 공원 직원이었다. 2000년 11월에 파룬궁을 위해 청원하러 베이징에 갔다가 핑두시 610(파룬궁 박해기구) 경찰에게 납치됐다. 경찰은 강제로 그녀의 옷을 벗기고 머리를 밀었으며 대자로 침대에 묶었다. 그리고 강제로 독극물 주사를 놓았는데 맞은 후 장푸전은 미칠 듯이 괴로워하며 침대에서 몸부림치다가 사망했다. 그 전반 과정을 610의 높고 낮은 관리들이 현장에서 지켜봤다.

끓는 물을 목에 부어 죽이다

세뇌반을 ‘흑감옥’이라고도 하는데 그 범죄의 진면모를 감추기 위해 세뇌반은 보통 ‘법제 학교’나 ‘사랑 학교’라는 간판을 내걸었다. 중공은 어떠한 법적 절차도 없이 수련자들을 세뇌반에서 직접 박해했다. 세뇌반은 전국 각지에 널렸는데 무법천지인 곳이고 위선과 잔인함이 가득한 곳이다.

랴오닝성 푸순(撫順)시 칭위안(淸原)현 파룬궁수련자 가이춘린(蓋春林, 남)은 1953년 5월 20일생이다. 2005년 4월 17일, 푸순시 공안국 1처, 칭위안현 공안국, 난커우첸(南口前)진 파출소 등 여러 경찰이 강제로 가이춘린의 집에 침입해 그를 난커우첸 파출소로 납치한 후 다시 푸순 공안 1처로 옮겼고 닷새 후 푸순 뤄타이산장(羅台山莊) 세뇌반으로 납치했다. 소위 말하는 ‘사랑교육 학교’다. 5월 6일에 그의 가족들은 가이춘린이 심장병으로 죽었다는 통지를 받았다.

그의 가족들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 시신에 옷이 입혀져 있는 것을 보았다. 가이춘린의 남동생은 “우리 형은 심장병이 없는데 어떻게 갑자기 심장병으로 죽을 수 있나요?”라고 물었다. 당시 가족들은 가이춘린이 얼굴에 화상을 입고 뒤틀리고 변형된 모습, 오른쪽 가슴에 화상을 입은 모습을 보았고 가족의 강력한 요구로 부검을 했다.

부검 결과 식도 아래가 다 익어 손으로 쓸면 껍질이 벗겨지고 심장 끝이 하얗게 변했는데 목에 삽관해 뜨거운 물을 부은 거라고 했다. 결국 가이춘린은 세뇌반에서 끓는 물을 주입당해 죽은 것으로 밝혀졌다.

전기봉으로 감전시켜 죽이다

파룬궁수련자를 전기봉으로 때리는 것은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고문 중 하나다. 2002년 3월 5일, 파룬궁수련자들은 지린(吉林)성 창춘(長春)시 케이블TV 8개 채널에 전선을 연결해 파룬궁 진상 영상을 40분 넘게 삽입 방송해 국내외에 큰 파문을 일으켰다. 장쩌민은 이에 화가 나서 “용서 없이 죽여라”는 명령을 내렸고 수련자 5천여 명을 납치했다. 창춘 징웨탄(淨月潭)에는 전문 파룬궁수련자들을 박해하기 위해 형벌을 집행하는 곳이 세워졌다. 케이블 선을 연결한 수련자 류하이보(劉海波)는 그곳에서 옷이 벗긴 채 무릎을 꿇고 있었고 경찰은 가장 긴 전기봉으로 항문을 뚫고 오장육부까지 감전시켜 현장에서 사망했다.

구속 옷 고문으로 매달려 사망

허난성 샹청(項城)시 파룬궁수련자 쑨쓰메이(여, 40여 세)는 2003년 5월 22일에 허난성 스바리허(十八裏河) 여자 감옥에서 구속 옷 고문으로 온종일 매달려 있다가 5월 23일 풀려났는데 이미 사망해 온몸이 얼음장같이 차가웠다.

中共酷刑演示图:约束衣
중공 고문 설명도: 구속 옷

심한 구타로 사망

심한 구타는 가장 흔한 고문 중 하나로 많은 수련자가 이로 인해 사망했다. 후난성 헝양(衡陽)시 수련자 천샹루이(陳湘睿, 29, 남)는 ‘전향’을 거절했다는 이유로 2003년 3월 11일 저녁 9시에 당시 헝양시 공안국 국가안전국 대장이었던 레이전중이 그를 시 공안국으로 납치해 심하게 고문했다. 전기봉, 책을 끼운 쇠망치, 고무봉 등으로 천샹루이를 때려죽였다. 천샹루이는 두개골 골절, 두개골 내 출혈, 복강 출혈 등을 일으켰고, 오장육부가 모두 맞아서 터졌고 갈비뼈, 쇄골, 발등뼈가 부러졌으며 뇌 중추신경이 치명적으로 손상됐다. 그는 다음 날(12일) 아침 헝양시 중심병원에서 사망했다. 12일 경찰은 즉시 천샹루이의 부모, 누나, 매형 등 친척 여러 명을 시 징위안(靜園) 호텔로 납치해 강제로 서명하게 했고 두 트럭의 총을 실은 전투경찰들을 파견해 천샹루이의 시신을 싣고 화장터로 가서 화장을 강행했다. 그의 부모가 서명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경찰은 그의 가족 모두를 14일간 감금하고서야 풀어줬다.

정체 모를 약물을 주입당하고 귀가한 후 며칠 만에 사망

쓰촨성 청두(成都)시 신진(新津) 세뇌반은 정체 모를 약물을 사용해 수련자를 박해하는 것으로 악명 높다. 많은 수련자가 이 세뇌반에서 약물 박해로 육체가 상해를 입거나 심지어 사망했다.

파룬궁수련자 셰더칭(謝德淸, 69, 남)은 쓰촨성 청두 측량 연구원 직원이었는데 2009년 4월 29일에 중공 경찰에 납치돼 청두시 신진 세뇌반에서 박해당했다. 셰더칭은 ‘전향’을 거부하다 한 달도 안 돼 세뇌반에서 독극물을 주입당해 뼈만 앙상해졌고 소변을 통제하지 못했고 물 한 방울도 삼키기 어려웠으며 심한 협심증까지 일으켰다. 그리하여 그를 집에 버리다시피 보냈다. 집에 온 후 4일만인 5월 27일에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다.

신진 세뇌반은 그를 강제로 병원에 보내 이른바 신체검사를 한다면서 정체 모를 약물을 주입했고 10여 일 후 물과 음식을 먹기 힘들어졌다. 셰더칭은 사망할 때 두 손이 검게 변했고 시신도 점차 검게 변했는데 분명히 중독 증상이었다.

야만적인 음식물 주입으로 사망

일부 수련생들은 납치되고 불법 감금당하자 단식으로 박해에 저항했다. 중공은 그런 수련자들에게 야만적으로 음식물을 주입해 그들을 더욱 박해했다. 일부 수련자들은 음식물 주입으로 사망했다.

헤이룽장성 이춘(伊春)시 진산툰(金山屯)구 파룬궁수련자 친웨밍(秦月明, 47, 남)에게 중공이 불법적으로 10년 형을 선고했다. 2011년 2월 25일, 자무쓰(佳木斯) 감옥에서 네 사람이 각각 그의 팔다리를 누르고 다른 한 사람은 머리를 누르고 집게로 그의 혀를 집어 끌어당기고 강제로 삽관해 멍뉴(蒙牛) 우유에 소금을 타서 먹였다. 당시 합숙훈련대 대장인 위이펑(于義楓)과 합숙훈련대 모든 경찰이 그 자리에 있었고 감옥 의사 자오웨이(趙偉)도 그 자리에 있었는데 두 명의 죄수 간호사가 삽관했다. 그중 한 명은 인훙량(殷洪亮)이었다. 두 사람은 당시 관을 친웨밍의 폐까지 삽입했는데 친웨밍은 처절한 비명을 질렀다. 다음 날인 2월 26일 아침에 친웨밍은 사망했다.

늘리기 고문으로 사망

감옥은 중공이 파룬궁수련자들을 잔혹하게 박해하는 장소 중 하나다. 동북 3성의 주요 감옥은 수련자들을 가장 심하게 박해하는 잔인한 장소이며, ‘늘리기 고문’은 이들 감옥에서 흔히 사용되는 고문 중 하나이다.

파룬궁수련자 자오옌샤(趙豔霞, 55)는 지린성 리수(梨樹)현 환경보호국 퇴직 직원인데 파룬궁을 수련한다는 이유로 불법적으로 1년과 3년, 두 차례 강제노동 박해를 받았다. 자오옌샤는 2011년 5월 31일에 납치된 후, 리수현 법원에서 불법적으로 3년 형을 받았고 2011년 9월에 지린성 여자 감옥으로 끌려가 교육대 3소대에 감금돼 박해를 받았다.

中共监狱酷刑:抻床(“五马分尸”)
중공 감옥 고문: 늘려서 침대에 묶기

자오옌샤가 수련을 포기하지 않자 감옥에 들어가자마자 심한 구타, 밧줄로 묶기, 늘려서 매달기, 화장실에 못 가게 하기, 물을 못 마시게 하기, 체벌 등 고문으로 괴로움에 시달렸다. 그렇게 했지만 자오옌샤는 파룬궁을 확고하게 견지했다. 결국 대장 장수전(張淑珍)과 부대장 쑨(孫) 씨는 감옥 죄수들을 시켜 자오옌샤를 오마분시(五馬分屍) 하듯이 침대에 팔다리를 묶어놓고 늘렸다. 한번 늘리면 한 시간이었는데 자오옌샤가 대소변을 통제하지 못할 때까지 했다. 그런데도 감옥 경찰은 그만두지 않고 며칠 후에 두 번째로 고문했다.

2011년 10월 5일 저녁 7시경, 경찰은 감옥 죄수에게 자오옌샤를 고문하라고 지시했고 결국 팔다리를 늘려서 죽었다. 진상을 은폐하기 위해 대장 장수전은 죄수 양후이(楊惠)에게서 새 속옷을 빌려서 갈아입혔다. 그리고 감옥 내 병원에 보내 이미 사망한 자오옌샤에게 링거를 꽂았고 외부에는 자오옌샤가 응급조치를 했는데도 심장병으로 사망했다고 거짓말을 했다.

2. 중공의 생체 장기적출 산업 사슬

2006년 3월, 중공이 대규모로 파룬궁수련자들의 장기를 산 채로 적출한 범죄가 국제적으로 폭로돼 중공이 장기적출로 폭리를 취한 내막 중 일부가 폭로됐다. 현재 각계 인사들의 오랜 노력으로 사람들은 중공의 생체 장기적출 숫자가 매우 많을 뿐만 아니라 줄곧 이뤄지고 있음을 발견했다.

2006년 9월 13일, 당시 중공 상무부장이었던 보시라이(薄熙來)는 원자바오(溫家寶) 총리와 독일 함부르크를 방문했을 때 ‘장 주석(장쩌민)’이 파룬궁수련자들의 생체 장기적출을 명령했다고 인정한 바 있다. 2014년 9월, 중공군 총후근부 위생부장 바이수중(白書忠)은 파룬궁수련자들의 생체 장기적출은 장쩌민이 직접 지시한 것이라고 말했다.

파룬궁 박해 원흉인 장쩌민은 파룬궁수련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생체 장기적출의 원흉이기도 하다.

중공이 필요에 따라 사람을 죽이는 것은 이미 정부, 군경, 병원에서 조종하는 체계적인 생체 장기적출 산업 사슬을 형성했다. 중공 생체장기 적출은 ‘지구상의 유례 없는 악행’으로 불린다. 중공이 수련자들의 장기를 적출한 많은 사례는 중공이 시신을 소각하고 정보를 봉쇄했기에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생체 장기적출을 당한 파룬궁수련자들은 생존자가 없다. 밍후이왕이 보도한 산발적인 사례로부터 중공의 생체 장기적출의 피비린내, 잔인함과 사악함을 볼 수 있다.

사례1: 광둥성 광저우시 바이윈구 파룬궁수련자 하오룬쥐안(郝潤娟, 여)은 네 번째로 베이징에 청원하러 갔다가 붙잡혔고 2002년에 22일간 고문을 당하다가 광저우 바이윈 감옥에서 사망했다. 가족들이 통지를 받고 시신을 확인하러 왔을 때 시신은 이미 형체를 알아볼 수 없었다. 내장은 모두 없었고 피부는 다 벗겨졌으며 눈은 도려져 있고 뼈와 살만 남아 있었으며 살에는 선홍색 핏자국도 있었다. 가족들은 두 차례나 시신을 확인하고는 하오룬쥐안이 아니라고 했다. 어쩔 수 없이 두 살 된 아들을 데려와 혈액검사를 하고서야 결국 그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시신이 하오룬쥐안임을 확인했다.

사례2: 2009년 12월, 당시 파룬궁수련자들의 생체 장기적출 현장에서 경호를 맡았던 랴오닝(遼寧)성 경찰은 직접 전화를 걸어 수년 전 발생한 생체 장기적출 사례를 폭로했다.

그는 2002년 4월 9일 오후 5시에 랴오닝 공안국 모 사무실에서 두 명의 군의관을 파견해 와서 30여 세 여성 파룬궁수련자를 선양 군부 병원 15층 수술실로 옮기고 장기적출을 감행했다. 그 수련생이 완전히 깨어있는 상태에서 아무런 마취도 하지 않고 심장, 신장 등 장기를 적출했다고 폭로했다.

그 경찰은 다음과 같이 증언했다. “메스가 가슴 쪽으로 가더니 피가 튀어나왔습니다. 일주일 동안 심문하고 고문했기에 그녀 몸에는 상처가 수없이 많았고 전기봉으로 감전해 그녀는 정신을 차리지 못했습니다. 아무런 마취도 없이 집도했는데 그들은 손을 조금도 떨지 않았습니다. 저라면 떨었을 겁니다. 먼저 심장을 적출하고 신장을 적출했어요. 심장의 혈관을 잘랐을 때 그녀는 경련을 일으켰는데 정말 무서웠어요. 그 소리를 흉내 내려 해도 제대로 흉내낼 수 없어요. 찢어지는 듯한 그런 소리였는데 그다음 아……아, 줄곧 입을 크게 벌리고 두 눈은 뜨고 있었어요. 아, 저는 더 말하고 싶지 않아요.”

그 경찰은 또 생체 장기적출을 하기 전에 그녀를 성폭행했다고 말했다. “그녀에게 한 짓은 성폭행에 속해요. 그녀는 몸매가 좋고 예뻤는데 성폭행했습니다.”

3. 장쩌민의 피의 빚도 공산당의 피의 빚

장쩌민은 “공산당이 파룬궁을 이길 수 없다고 믿지 않는다”라고 소리치면서 공산당의 이름으로 파룬궁 박해를 명령했고 공산당이 통제하는 국가 정권과 자원으로 파룬궁을 박해했다. 장쩌민은 죽었으나 중공의 파룬궁 박해는 계속되고 있고 생체 장기적출도 계속되고 있다.

중공은 도대체 얼마나 많은 파룬궁수련자를 박해해 살해했는가? 중공은 애써 그 죄를 은폐하고 있다. 밍후이왕 통계에 따르면 최소 4876명의 수련자들이 박해를 받아 사망했고 수없이 많은 수련생이 불법 노동, 징역형을 선고받거나 세뇌반에 납치돼 고통을 받았다. 실제 박해로 사망한 수련생들은 이보다 훨씬 많지만 박해가 종식된 후에야만 실제 수치가 나올 수 있을 것이다.

파룬궁 박해 원흉인 장쩌민의 두 손은 무고하고 선량한 파룬궁수련자들의 피로 범벅이 됐고 피의 빚더미에 앉았다. 장쩌민의 피의 빚도 공산당의 피의 빚이다.

 

원문발표: 2022년 12월 7일
문장분류: 시사평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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