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위안딩(園丁)
[밍후이왕] 유니세프가 2005년 12월 중순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중국 본토의 1억4천만 유동 인구 중 6세에서 14세 사이의 유동 아동만 약 2천만 명에 달한다. 이 유동 아동 중 10분의 1이 학업을 중단했다.
유엔은 중국 당국이 아프리카 빈민국 우간다보다 교육투자를 적게 하고 있다고 비판한 바 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교육을 중시한 전통
중국은 반만년 문명의 전통을 갖고 있으며 성현들의 책을 읽고 도리를 분명히 하는 것이 역대 교육 준칙이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예나 지금이나 교육은 국민의 함양과 도덕적 교화에 매우 중요하다.
저명한 교육학자 로맹 롤랑은 “교육은 대용품이 없다. 모든 세대는 자신과 후대에 대한 보호, 그 문화 확산, 전달에 대한 책임이 있다. 이를 위해 인간이 고안한 제도가 교육제도”라고 했다.
공자는 “가르치지 않고 잘못을 이유로 죽이는 것을 학(虐)이라 하고, 삼가게 하지 않고 성공하기만 바라는 것을 폭(暴)이라고 한다(不敎而殺謂之虐, 不戒視成謂之暴)”라고 했다.
당태종은 “내가 역사에서 찾아보니 고대의 성왕 중 어느 누가 스승이 없었던가? 더구나 지금은 상고(上古)시대와 달리 도덕이 고상하지 못한데 스승이 없으면 어떻게 백성들을 안정시킬 수 있겠는가”라고 했다. 당태종은 태학을 설치하고 민간에 예교(禮敎)를 널리 두어 백성의 기풍을 순박하게 하고 덕을 존대하게 했다.
청나라 강희 54년, 강희제는 기전(畿甸, 천자의 직할지)을 순시하며 순무(巡撫) 조홍섭(趙弘燮)에게 “짐은 늘 기전을 순시해 민생이 예전보다 나은 것을 보았다. 그러나 책을 보는 이가 적은데 이는 풍속과 관련이 있다. 벽촌에 의학(義學: 교의를 연구하는 곳)을 널리 두어 백성들에게 독서를 권할 것을 명한다.” 강희제는 지진이 발생하자 자신을 반성하고 백성을 위해 시급히 도로를 정비하게 했으며, 백성이 자신을 환영하지 못 하게 하고 의무교육을 창설했다.
중국의 교육 예산은 어디로 갔는가?
1998년, 장쩌민은 한 번도 교육사업에 종사한 적이 없는 내연녀 천즈리(陳至立)를 교육부장(교육부 장관)으로 임명했다. 교육계는 국가의 기둥을 키우는 정토(淨土)여야 하지만 천즈리는 장쩌민의 지시로 교육을 산업화해 장사를 했는데 역사상 유례없는 일이었다.
1999년 중국 도시 거주자의 1인당 연 소득은 5854위안(약 110만 원), 농촌 1인당 연 소득은 2210위안(약 40만 원)에 불과했다. 교육의 산업화로 2000년 대학 등록금은 5000위안 이상까지 치솟았다. 의무교육이 이뤄지지 않아 상당수 농가 학생의 부모는 피를 팔아 자녀를 대학에 보내는 ‘학비 살인’이라는 희귀한 현상이 나타나기도 했다. 금세기 초반부터 중국 교육이 도탄에 빠졌다는 뜻이다.
제10기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리진화(李金華) 감사원장은 2003년 예산보고서에서 교육부가 24억 6600만 위안을 중앙 정부(중앙 교육부) 예산에 편성해 이 부분 사용을 지방정부의 관리·감독에서 벗어나게 했다고 지적했다.
중앙 정부는 매년 교육 분야에 고정적으로 자금을 지출했다. 장쩌민이 집권하는 동안 천즈리에게 지급한 교육 예산은 놀라울 정도로 높았다. 그런데 천즈리는 돈을 모두 어디에 썼을까?
교육이 박해 도구로 전락
1999년 7월, 장쩌민이 파룬궁 박해를 시작한 후 교육계는 수련자들을 무고하게 박해하고 양심을 제거하는 유례없는 민족적 재앙을 일으켰다.
특히 2001년 1월 22일 ‘톈안먼 분신’ 조작사건 직후인 2월 1일, 천즈리를 비롯한 교육부는 전국 각급 학교에 파룬궁을 공격하는 ‘백만 서명’ 캠페인을 벌여 수억 미성년자를 악독하게 해쳤다. 전국 100개 도시 1000여 개 지역사회의 청소년 800만 명이 파룬궁 반대 홍보에 직접 이용됐으며, 이날 포스터 50만여 장, 홍보물 1000만여 장을 배포했고 집회 200여 회를 열었다.
2001년 2월, 전국 100개 도시의 1500개 이상의 청소년 단체는 진실을 알지 못하고 협박에 이용돼 1200만 명 이상 주민들의 파룬궁에 대한 ‘불신, 불통, 보이콧’을 보증하기 위한 서명에 동원됐다.
천즈리는 학술의 전당을 파룬궁 박해 장소로 만들고 각급 대학에 파룬궁을 ‘비판’하도록 지시했으며 무신론 확산을 강화했다.
천즈리는 또 대학에 인터넷 차단 기술을 강화하고 파룬궁과 관련된 모든 정보를 차단하기 위한 기술 지원을 요구했다.
또 파룬궁을 모함하고 공격하는 내용을 초중고 교재와 각급 시험 문제, 심지어 대입 시험과 대학원 시험 문제에도 넣어 학생들을 세뇌시켰다.
각급·각종 학교의 학생 모집·입학 등 규약에 ‘파룬궁 수련자는 지원할 수 없다’ ‘합격할 수 없다’는 규정을 넣어 학생들에게 증오와 공포를 심어줬다.
교육시스템은 파룬궁 수련을 포기하지 않는 교사와 학생에게도 ‘걸러내기’ ‘제로화’식 박해를 가했다. 1999년, 칭화대에서만 교수·교사·박사·석사·대학생 등 300여 명이 불법 수감되거나 공직이나 학업에서 제명됐고, 또는 직접 감옥으로 보내졌다. 교직원과 재학생 72명이 파룬궁 박해로 사망했는데 최연소자는 자무쓰시 수런(樹人) 중학교 학생인 천잉(陳英, 17세)이고, 최고령자는 68세 저우징썬(周景森) 하얼빈시 관리대학 교수였다.
2004년 7월 19일 천즈리는 전 교육부장과 국무위원이라는 명의로 탄자니아를 방문한 자리에서 “중국 교육계에서 파룬궁에 대한 고문과 학살을 자행했다”는 비난을 받았다. 천즈리는 소환되어 직접 법정에 출두했다. 파룬궁 수련자들이 중국 관리들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사건에서 피고가 직접 법정에 선 것은 당시가 처음이다.
교정의 도덕성 타락
교육부장이 된 지 10년 만인 2007년, 천즈리는 장쩌민과 야합해 중화민족의 도덕적 근간을 파괴하고, 중국의 취약한 교육시스템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파괴했다. 교육 개혁은 혼란스러웠고 교육의 질은 후퇴했으며 교육 풍조는 느슨하고 타락했다. 전국적으로 대학 졸업장과 학위를 남발하는 현상이 보편적이 됐다. 대학 분위기는 정상이 아니었고 성 매수, 도박, 베끼기 등 세 가지 풍조가 캠퍼스를 가득 채웠다.
통계에 따르면 가짜 졸업장 확률이 5~10%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됐다. 돈만 내면 어떤 졸업장도 길거리에서 살 수 있었다. 가짜 졸업장이 공장에서 대량 생산됐을 뿐만 아니라 대리작성 논문은 어디서나 찾을 수 있으며, 본과나 전문대 졸업 논문, 석사 논문, 박사 논문, 직함 논문 및 기타 다양한 논문을 대신 써줬다.
장쩌민의 부패치국(腐敗治國) 풍조가 캠퍼스까지 불어닥치면서 ‘청수아문(淸水衙門: 청렴한 관아)’로 불리던 교육계도 범죄의 온상이 되어 갔다. 장쑤성 난퉁시 규율검사감독기관 통계에 따르면, 2007년부터 2009년까지 3년간 시 교육시스템에서 초중등 학교장의 규율위반이 85건 발생했는데, 비리 금액이 총 3천만 위안(약 56억 원)에 달했다.
이뿐만 아니라 원래 지식을 가르치고 인성을 길러주는 학교에 짐승 같은 교사가 빈번하게 등장해 충격을 주고 있다. 어떤 학생은 강간당해 임신했고, 어떤 학생은 강간당한 후 혼외 동거녀가 됐으며, 어떤 교사는 강간하다 제자를 살해했다. 어떤 교사는 아주 어린 소녀에게까지 손을 댔는데 10세 피해자도 있었다.
네티즌들의 교육비리 폭로
장쩌민이 일으킨 교육 비리는 최근까지 끊이지 않고 있다. 2020년, 대량의 대학입학 사기가 폭로되면서 많은 네티즌이 중국공산당 교육체제의 부패라고 비판했다. 2020년 중공 교육부는 ‘대학원생 지도교사 행동 준칙’을 발표했는데, 그 중 ‘대학원생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어서는 안 된다’는 규정이 있다. 기본 윤리가 어떻게 규정이 됐는지에 대해 인터넷에서는 큰 논란이 일었다.
교육계의 부패는 한 사람을 파멸시키는 데만 그치지 않기에 사회의 다른 부패보다 더욱 무섭다.
교육은 한 나라 국민의 학식, 마음, 도덕의 교화에 의거한 것이다. 학생들에게 진선인(真·善·忍)을 적대시하게 하는 것은 학생들 마음속 가치관을 전복시키는 것이고, 전통 교육을 망치는 것은 조상과 후대 사이의 문화 계승을 파괴하는 것이며, 중국 미래의 인문 환경을 망치는 것이다. 교육을 통해 얻은 마음속 선한 생각과 양심은 민족의 문명과 도덕을 계승하는 근본이다. 캠퍼스에 악을 주입하고 악을 방종하며 진선인을 공격하는 것이 바로 이 사회와 나라를 망치는 것이 아닌가?
한 사람의 덕행이 망가지면 모든 것이 망가진다. 사회도 마찬가지다. 사회의 도덕적 기초가 무너지면 모든 것이 망가진다. 옛사람들은 “사람이 하는 일은 하늘이 보고 있다”고 했다. 오늘날 전염병은 인심의 타락에 대한 경고와 징계 아닌가? 지금이야말로 반성할 때다. 장쩌민이 중국 교육계를 부패시켜 중국 사회에 끼친 재앙은 쉽게 해소되지 않을 것이다.
원문발표: 2022년 12월 6일
문장분류: 시사평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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