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밍후이왕](밍후이 통신원 보도) 2022년 10월부터 11월까지 박해로 사망한 파룬궁수련자 31명이 추가 보고됐다.
파룬궁은 파룬따파(法輪大法)라고도 알려져 있으며, ‘진선인(真·善·忍)’ 원칙에 기초한 심신 수련법이다. 1992년에 공개된 이래, 수많은 사람이 심오한 원칙과 건강상의 이점에 매료됐다. 그러나 중국공산당(중공) 정권은 파룬궁의 인기를 두려워해 1999년 7월 전국적인 탄압을 개시해 파룬궁을 소멸하려 시도했다.
새로 확인된 31명의 사망자는 2007년, 2008년, 2012년, 2013년, 2015년, 2019년, 2020년에 각각 1명씩이다. 2016년에는 3명, 2021년 4명, 2022년 17명이 사망했다.
31명 중 18명은 여성이었고, 17개 성이나 지방 자치단체에 거주했다. 랴오닝성과 헤이룽장성이 각각 5건으로 1위를 차지했고, 장쑤성 4건, 내몽골 3건 등이 뒤를 이었다. 허난성은 2건이었다. 안후이, 광둥, 구이저우, 허베이, 후난, 장시, 지린, 산둥, 상하이, 산시, 쓰촨, 윈난 등 나머지 12개 지역이 각각 1건이다.
나이가 알려지지 않은 수련자 4명을 제외한 나머지 수련자들은 45세에서 82세 사이로 70대 7명과 80대 2명이 있었다. 그들은 기술자, 보석상, 전직 경찰관, 교사를 포함한 각계각층 출신이었다. 일부 노인 수련자들은 연금이 중단돼 빈곤한 삶을 살다가 세상을 떠났다.
수련자 중 3명은 감금 기간 사망했다. 나머지 대부분은 장기간의 정신적 고통, 투옥, 고문으로 인해 세상을 떠났다. 각각 세 명을 잃은 세 가족을 포함해, 많은 가정이 박해로 인해 흩어졌다.
아래는 사망자들을 선별한 것이다. 사망한 수련자 31명 전체 명단은 다음 링크에서받을 수 있다.
(https://en.minghui.org/u/files/2022/1205/31_death_cases_of_Falun_Gong_practitioners_reported_between_Oct_Nov_of_2022.pdf)
구류 중 사망
* 산시성 남성이 신념 때문에 복역 중 사망
산시성 타이위안시 뤄바오쥔은 60대로, 2021년 4월 사망했다.
2018년 6월 25일, 그는 다른 수련자들과 함께 파룬궁 학습을 한 혐의로 납치됐다. 경찰은 문을 부수고 그의 집에 침입한 뒤 문을 봉쇄했다. 그는 구자오 구치소에 갇혔다.
같은 날 왕란메이, 왕수핑, 쑨즈펀, 장칭샹, 장룬잉, 궈룬셴, 톈위친, 후라닝 등 8명의 다른 수련자들이 납치됐다. 이들 대부분은 검거 당시 60대였다.
잉쩌 지방 검찰청은 2019년 1월 2일, 수련자 9명을 기소했다. 수련자들은 2019년 4월 2일, 수갑과 족쇄를 찬 채 잉쩌 지방 법원에 출두했다. 변호사들은 그들의 무죄를 주장했고, 경찰이 영장 없이 자택을 수색해 증거를 조작했다고 주장했다.
그들 중 8명은 1년에서 10년 사이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왕란메이의 사건은 2년간 중단됐다가 재개됐다. 그녀는 2년 형을 선고받았다.
뤄 씨는 5년 형과 2만 위안의 벌금을 선고받았고, 2019년 6월에 진중 감옥으로 이송됐다. 2020년 초, 중공 정권이 파룬궁수련자들의 신념 포기를 강요하는 ‘제로화’ 운동을 시작한 이후, 감옥 당국은 적극적으로 이 운동을 전개했다.
수련자들은 한 끼에 찐빵 한 개만 허용됐다. 그들이 이전에 산 음식은 모두 압수됐다. 파룬궁을 포기하기를 거부한 사람들은 독방에 감금되거나, 오랜 시간 동안 벽을 향해 서 있거나, 손목을 잡힌 채 구타를 당했다. 심지어 일부 수련자가 고문에 굴복해 자신의 의사에 반해 파룬궁을 포기하는 성명서에 서명했을 때도, 감옥경찰들은 파룬궁을 욕해야 고문이 중단된다고 했다.
그곳에 갇힌 다른 수련자에 따르면 뤄 씨는 2021년 4월 샤워하던 중 넘어져 얼마 지나지 않아 사망했다. 감옥 내의 엄격한 정보 검열 때문에 더 자세한 내용은 분명하지 않다.
* 67세 남성이 7년간 복역하다가 감옥에서 사망
헤이룽장성 하얼빈시의 거전화는 2022년 10월 22일 감옥에서 사망했다. 당시 67세였다.
거 씨는 2016년 6월 20일 파룬궁에 관한 현수막을 내걸고 자료를 배포한 혐의로 납치됐다. 2016년 12월 2일 상하이시 법원은 그에게 벌금 5만 위안을 선고했다. 그는 상하이시 중급법원에 항소했다. 이 법원은 그의 유죄 판결을 유지했지만, 벌금 3만 위안과 징역 7년으로 감형했다.
2020년 팬데믹이 발발한 후 후란 감옥 당국은 갇힌 파룬궁수련자에 대한 엄격한 관리를 명령했다. 그들은 수련자들에게 온종일 작은 의자에 앉아 있으라고 강요하고 가족 면회를 불허했다. 감옥 당국은 수련자에게 신념을 포기하라고 압력을 가했다. 복종하지 않는 사람들은 잔인한 고문을 당했다.
거 씨의 가족은 2022년 10월 초, 감옥으로부터 거 씨가 뇌졸중으로 쓰러져 병원에 입원했다는 통보를 받았다. 감옥은 가족들에게 하루에 1만 위안이 넘는 의료비를 내라고 명령했다. 가족들은 돈을 지급할 여유가 없었다. 감옥은 치료를 중단하는 동의서에 서명하도록 강요했다. 거 씨는 10월 22일 세상을 떠났다.
* 위독한 여성이 가석방을 거부당한 지 며칠 만에 사망
47세 파룬궁수련자 류펑친은 위독한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가석방이 거부돼 2022년 11월 8일 사망했다.
랴오닝성 다롄시의 류 씨는 2021년 10월 28일, 파룬궁 포스터를 붙인 혐의로 납치됐다. 그녀는 박해에 항의하기 위해 2022년 2월 14일 단식 투쟁을 시작했다.
2022년 2월 28일, 변호사가 그녀를 찾아갔을 때 그녀가 다롄시 구치소와 지역 감옥과 관련된 신화 병원으로 옮겨졌다는 말을 들었다.
병원에서 류 씨는 침대에 묶인 채 강제로 음식물과 알려지지 않은 약물을 주입당했다. 변호사와 가족을 포함한 모든 방문은 금지됐다.
간징쯔 지방 법원의 판사 궈단화는 류 씨를 온라인으로 재판했고 구치소로 다시 이송된 지 6일 만인 7월 13일에 4년 형을 선고했다. 그녀의 가족 중 누구도 재판에 참석할 수 없었다. 소송을 연기해 달라는 변호사의 요청도 거절당했다. 류 씨는 너무 쇠약하고 수척해서 심지어 일어설 수도 없었고 진행 내내 의자에 털썩 주저앉아있었다.
변호사가 재판 후에 면회 허가를 받았을 때 그녀는 병원에 있던 것을 기억하지 못했지만, 강제로 음식을 주입당하고 주사를 맞았다는 것은 알았다. 변호사는 항소했지만 중급법원은 10월에 원심을 유지했다.
류 씨는 8월 말 신화 병원에 다시 입원했고, 10월 말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의사들은 위독 통지서를 발급했다. 그녀의 가족은 10월 25일, 그녀에 대한 가석방을 신청했지만 법원과 구치소는 거절했다.
10월 29일, 가족이 그녀를 면회하는 것이 허락됐을 때 류 씨는 매우 허약했다. 그녀는 11월 4일부터 입과 코에서 피가 나기 시작했다. 며칠 후면 죽는다는 생각에 의사는 가족들에게 마지막으로 아이를 데려오라고 했다. 당시 방문은 경찰관에 의해 감시됐고 류 씨는 11월 8일 아침에 세상을 떠났다.
노인의 죽음
* 81세 노인이 세 번째 징역형을 살고 1년 만에 사망
라오쑹린은 파룬궁 수련 때문에 3년의 복역을 마치고 2021년 7월 13일 석방된 후 건강 악화로 어려움을 겪었다. 후난성 천저우시의 이 81세 남성은 2022년 10월 14일 세상을 떠났다. 그가 세상을 떠난 후에도 지역 주민들은 여전히 그를 괴롭히기 위해 왔고, 심지어 그가 매장된 곳을 찾아 그의 죽음을 확인하려 했다.
라오쑹린은 2008년 진시 감옥 면회실에서 수갑이 채워졌다.
군 접견대에서 은퇴한 라오는 2018년 7월 19일 자택에서 납치됐다. 구치소에서 며칠을 보낸 후, 당시 77세였던 그는 고혈압, 심장병, 가벼운 뇌졸중, 결핵 진단을 받았다. 관계자들은 그를 석방하지 않고 군 병원으로 보냈다. 아내가 그의 석방을 요구했지만 소용없었다.
베이후 지방 법원은 9월 27일 병원에서 라오 씨의 사건을 심리했다. 그는 수갑과 족쇄가 채워져 있었고 변호가 허용되지 않았다. 2018년 10월 22일, 판사는 그에게 징역 3년을 선고했다. 그의 연금은 감금 기간 중단됐다.
* 82세의 남성이 부당한 징역형으로 인한 정신적 고통으로 사망
랴오닝성 판진시 저우사오탕은 파룬궁을 수련한다는 이유로 1년 형을 부당하게 선고받고 정신적 압력으로 인해 2022년 11월 17일 사망했다. 향년 82세였다.
저우 씨는 2021년 1월 13일 지역사회 박람회에서 사람들에게 파룬궁에 관해 이야기한 혐의로 납치됐다. 경찰서로 끌려갔을 때 그는 책상 위에 있는 자신의 큰 사진을 보았다. 경찰이 자신을 미행하며 납치할 기회를 노렸다는 의심이 들었다.
경찰은 저우 씨를 데리고 집으로 가서 파룬궁 서적들을 압수했다. 그와 그의 아내가 모두 질병으로 고통을 겪었기에 경찰은 그를 다시 경찰서로 데려가지 않고 3일마다 찾아와 그를 괴롭혔다.
싱룽타이 법원은 2021년 9월 28일 저우 씨를 재판했다. 그의 가족은 휠체어를 태워 그를 데려갔다. 고혈압으로 인해 그는 심리 중에 실신했고 판사는 휴정했다.
판사는 저우의 상태를 고려해 2021년 12월 초 자택에서 다시 재판을 열었고, 12월 8일, 주거지 감시 1년을 선고했다. 그들은 그의 일상 활동을 감시하기 위해 그의 집에 휴대폰을 두고 갔다.
저우 씨는 선고와 휴대폰 감시는 감당하기 힘들었고 그는 폐 질환을 앓았다. 그는 2022년 11월 17일 사망했다.
최근의 시련에 앞서, 저우 씨는 2000년 12월 31일, 천안문 광장에 파룬궁에 관한 현수막을 걸다 납치됐다. 그는 나중에 4년 형을 선고받았다. 그가 석방된 후에도 경찰은 그를 계속 감시하고 괴롭혔다.
* 80세에 가까운 여성이 급성 림프종을 앓다가 투옥과 재판 끝에 사망
80세에 가까운 뤄친셴은 급성 림프종으로 위독한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파룬궁에 대한 믿음으로 투옥됐다. 그녀는 주거지 감시를 받은 지 한 달 만인 2022년 9월 5일에 세상을 떠났다.
2021년 10월 12일, 구이저우성 카이리시에 살던 뤄 씨는 사람들에게 파룬궁에 관해 이야기한 혐의로 납치됐다. 재판부는 2022년 4월 12일로 재판 일정을 잡았으나 가족이 변호사를 고용해 무죄를 주장하자 연기했다.
2022년 4월 13일, 사회보장국은 뤄 씨의 연금 지급을 중단하고 납치가 승인된 직후인 2021년 12월부터 받은 지급금을 반환하라고 명령했다. 비록 중국 노동법에 그런 규정은 없지만 그들은 투옥된 퇴직자들이 어떠한 혜택도 받을 자격이 없다는 새로운 정책을 인용했다. 그들은 제때 돈을 내지 않으면 그녀를 고소하겠다고 위협했다.
2022년 5월 16일, 뤄 씨는 백혈구에 영향을 미치는 암의 일종인 급성 림프종 진단을 받고 현지 병원에서 수술을 받았다. 그녀가 회복하는 동안, 당국은 그녀를 5월 27일 구치소로 다시 데려갔고 위독한 상태에도 불구하고 보석을 허락하지 않았다.
7월 19일, 법원은 구치소에서 뤄 씨의 사건을 심리했다. 그녀의 상태가 계속 악화됐기에, 법원은 결국 8월 12일 석방을 허락했고 6개월간의 주거지 감시를 받게 했다.
당시 뤄 씨의 몸은 심하게 변형됐고 온몸이 몹시 아팠다. 가벼운 접촉만으로도 고통을 느껴 움츠러들었다. 다리에서 체액이 흘러나왔고 얼굴은 부었다. 청력을 거의 잃었고 시력도 거의 남지 않았다. 한 달 후인 9월 5일, 그녀는 세상을 떠났다.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다
* 뒤늦게 전해진 소식, 부모와 아들이 박해로 모두 세상 떠나
장쑤성 창저우시의 한 가족은 1996년 파룬궁 수련을 시작했다. 그들의 오랜 병은 곧 사라졌고 그들은 평화롭게 살았다.
1999년에 중공 정권이 파룬궁 박해를 시작한 후, 아들 차이원밍은 7년 형을 선고받았다. 그는 만성 심장 질환으로 고생했고, 석방된 지 6년 만인 2013년 47세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어머니 전샹잉은 3년 후 세상을 떠났다. 아버지 차이젠화는 2020년 초에 3년 형을 선고받았다. 그는 갇히기 전 2020년 5월에 사망했다. 당시 77세였다.
아들의 죽음
차이원밍은 2000년 10월 27일에 납치됐다. 경찰은 차이 씨를 구타하면서 “법적 절차 없이 언제든 너 같은 자를 납치할 수 있지”라고 말했다. 경찰은 또한 차이 씨에게 쇠고랑을 채우고 눈을 가린 뒤 손목을 문틀에 매달았다. 경찰관들이 벨트와 경찰봉으로 때릴 때 그는 허공에 매달려 있었다.
경찰관들은 물통에 물을 채워 그의 머리를 들이밀었고, 기진맥진할 때까지 고문했다. 동이 트기 전에 그들은 그의 옷을 벗기고 콘크리트 바닥에 무릎을 꿇게 했다.
경찰관들은 다음 날 같은 방식으로 차이 씨를 고문했다. 그 결과 그는 요실금이 됐다. 근처에 사는 주민들은 밤에 그의 비명을 들었다.
경찰서장 훙 씨는 나흘간의 감금과 고문 과정에서 10월 초 베이징에서 파룬궁에 대해 청원하기 위해 현지 수련자들을 조직한 주모자로 그를 모함하려 했는데, 사실 그동안 차이 씨는 출장 중이었다.
차이 씨는 2001년 8월 9일 7년 형을 선고받았다. 2007년 10월 석방된 후, 그는 종종 극심한 가슴 통증을 겪었고 때때로 며칠간 지속됐다. 그는 2013년 7월부터 전신 통증을 느끼기 시작했고 밤에 잘 수 없었다. 그는 10월 말에 세상을 떠났고 당시 47세였다.
어머니의 죽음
2000년 10월에 차이 씨가 납치된 지 4개월 후, 그의 부모인 차이젠화와 전 씨는 세뇌센터로 옮겨졌고 쇠 막대기와 나무 막대기로 구타를 당했다. 그들의 발이 극도로 부어오른 후에도 경찰관들은 자기 전에 몇 시간 동안 서 있도록 강요했다.
전 씨는 허리 통증이 심해서 똑바로 서지 못하고 벽에 기대 걸어야 했다. 2001년 4월 13일, 경찰은 그녀를 석방했다. 그녀는 석 달간 병상에 누워 있었다.
회복된 후, 전 씨는 파룬궁을 수련할 권리를 호소하기 위해 베이징으로 갔고, 주둥 여성 강제 노동수용소에 2년 반 갇혔다.
그녀가 노동수용소에서 겪은 고문은 건강에 큰 타격을 입혔다. 2013년에 그녀의 아들이 사망했다. 그녀는 곧 병에 걸려 3년 뒤인 2016년 4월에 사망했다.
아버지의 죽음
차이젠화는 2000년 7월 18일 파룬궁을 위해 청원하러 베이징에 갔다가 처음 납치됐다. 경찰은 그의 옷을 벗기고 무릎을 꿇리고 뺨과 머리를 때렸다.
7월 24일, 경찰은 차이 씨에게 쇠고랑을 채워 손목을 문틀에 매달고 때렸다. 어느 날 아침 구타를 한 후, 정오경에 그를 내려줬다. 그는 50분간 기절했다. 경찰은 그를 깨우기 위해 찬물을 끼얹었고 그는 깨어난 뒤 요실금에 걸렸다.
2000년 10월 초, 차이 씨는 다시 청원하기 위해 베이징에 갔다. 경찰은 이번에도 쇠고랑을 채워 숨이 막히게 했다. 밤이 되자 그들은 그의 속옷을 벗기고 콘크리트 위에 무릎을 꿇게 했다.
거의 20년간 반복적으로 납치되고 괴롭힘을 당한 후, 차이 씨는 2018년에 파룬궁에 대해 사람들과 이야기한 혐의로 다시 경찰서로 납치됐다. 그는 버스 안에서 사람들에게 파룬궁에 관해 이야기한 것을 신고당해 두 달 후에 한 번 더 납치됐다.
그는 건강상 이유로 구치소에 의해 수감을 거부당했고 보석으로 풀려났다. 1년 뒤 보석이 만료되자 경찰은 1년 더 연장했다.
법원은 2020년에 차이 씨에게 징역 3년을 선고했다. 그는 감옥에 가기 전에 그해 5월에 세상을 떠났다.
* 늦은 소식, 55세 여성이 일하지 못하는 남편과 13살 된 딸을 남겨두고 박해로 사망
장하이잉은 44세에 딸을 임신한 후, 내몽골 바오터우시에 사는 가족들은 최선을 다해 아이에게 잘해주려 했다. 하지만 아기가 태어난 지 4년 후 그녀 가족의 운명은 영원히 바뀌고 말았다.
2014년 9월 1일, 장 씨는 바오터우 기차역에서 당시 4살인 딸과 기차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경찰이 그녀를 막고 아이 앞에서 그녀를 납치했다.
그 후, 아이는 너무 무서워서 기차역에 다시는 가지 못했고 경찰관을 볼 때마다 몸을 떨었다. 외향적이었던 아이는 내성적으로 되어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 남편이 장 씨를 구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지만 소용없었다.
경찰은 장 씨를 2년간 감금하고 파룬궁에 대한 신념을 포기하지 않은 그녀에게 징역형을 선고하려 했다.
경찰은 2016년 장 씨를 기소할 만한 충분한 증거를 수집하지 못하자 결국 석방한 뒤, 집에서 상습적으로 괴롭혔다.
장 씨가 집으로 돌아온 지 불과 3년 만인 2019년, 딸이 9살이었을 때 남편은 갑자기 위독한 상태에 빠졌다. 비록 남편은 살아남았지만 불구가 됐고 그녀의 손길이 필요했다.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장 씨는 이전 직업인 교사를 택했고 생활비를 벌기 위해 과외 수업을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계속되는 경찰의 괴롭힘은 그녀를 지치게 했다. 가슴에 혹이 생긴 그녀는 딸을 돌볼 가정부를 고용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부모 집으로 이사했을 때, 부모는 80세에 가까웠다. 노모는 뇌졸중 후유증으로 고생하던 아버지는 물론 그녀까지 돌봐야 했다.
장 씨는 2021년 7월 10일에 세상을 떠났는데 겨우 55세였다.
남편의 동생이 현재 남편을 돌보고 있고 그녀의 어머니가 13살 된 딸을 돌보고 있다.
장기간의 박해 후 죽음
*뒤늦은 소식, 보석상이 감옥에 갇힌 지 3년 만에 사망
윈난성 쿤밍시의 보석상 주옌둥은 파룬궁을 수련한 지 2년 만에 중공 정권의 파룬궁 박해를 폭로한 혐의로 납치돼 3년 형을 선고받았다. 주옌둥은 감금 중 고문을 당했고 그 결과 건강이 나빠졌다. 2016년 9월 8일 석방된 후, 그는 지속적인 괴롭힘으로 회복하지 못했다. 3년 후인 2019년 8월 25일, 그는 세상을 떠났고 향년 51세였다.
주 씨는 비취를 파는 사업을 매우 성공적으로 했고 부유하게 살았다. 부유했지만 그는 여전히 내면이 공허했고 진정한 행복을 느끼지 못했다.
2011년 2월, 그의 친한 친구가 파룬궁을 소개했다. 두 사람 모두 파룬궁이 가르치는 심오한 원리에 깊이 감동했다. 주 씨는 20년 넘게 그를 곤혹스럽게 했던 삶에 대한 많은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았다.
그 후 그는 파룬궁을 열심히 수련하기 시작했다. 1년 안에 그는 술, 담배, 도박 등의 나쁜 습관을 모두 끊었다. 한편 고혈압, 고지혈증, 그리고 많은 다른 문제들도 사라졌다. 그는 삶의 진정한 목적을 이해하고 내면의 평화를 찾았다.
주 씨는 자신의 경험을 사람들에게 말하고 박해에 관해 이야기했다는 이유로 2013년 9월 9일 납치됐고, 이후 3년 형을 선고받았다. 경찰들이 그를 때리고 독극물을 주사했다. 그는 혈당이 빠르게 높아졌는데 이는 시력을 저하시키는 원인이 됐다. 경비원들은 그에게 죄수복을 입으라고 강요했다.
주 씨는 2016년 9월 8일 석방될 때까지 신체적, 정신적 충격을 받았다. 당국은 그가 석방된 후에도 계속해 그를 괴롭혔고, 그로 인해 그의 건강은 더욱 악화됐다. 그는 결국 2019년 8월 25일 세상을 떠났다.
* 전직 감옥경찰이 박해로 사망
쓰촨성 아바저우 감옥에서 퇴직한 경찰관 허중핑은 파룬궁에 대한 믿음 때문에 박해를 받은 후 2022년 9월 30일 세상을 떠났다. 당시 67세였다.
쓰촨성 두장옌시의 허 씨는 2003년 2월 14일 신념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혐의로 납치돼 15일간 감금됐다. 그녀는 2003년 5월 파룬궁에 관한 정보를 배포한 혐의로 다시 납치돼 2년 이상 강제 노동수용소에 갇혔다. 그녀는 2006년 8월경 석방됐다.
2008년, 당국은 그녀가 파룬궁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연금을 중단시켰다. 그들은 그녀에게 월 300위안의 저소득 보조금만 허용했다. 그녀가 항소하자 당국은 그녀가 법을 위반했기 때문에 저소득 보조금을 주는 것만으로도 관대한 정책이라고 주장했다.
비록 저소득 보조금은 나중에 600위안으로 늘었지만 여전히 그녀가 겨우 살아갈 수 있을 정도였다. 그녀는 관리자들에게 계속해 호소했고 파룬궁 진상을 알렸지만 소용없었다.
최근 몇 년간 그녀의 건강은 나빠졌고 시력을 잃었다. 2022년 6월 6일, 아바주 감옥의 경비원 3명이 그녀 집으로 와서 연금을 회복시켜 주겠다고 했다. 그녀는 잘 보이지 않았지만 그들을 믿고 문서에 서명했다.
다음날 딸이 찾아왔을 때 그녀는 경비원들이 그녀를 속여 파룬궁을 포기한다는 각서에 서명하게 했다는 것을 알았다.
허 씨는 망연자실해서 이틀 동안 울었고 건강은 그 후 빠르게 악화됐다. 그녀는 9월 30일 세상을 떠났다.
* 두 차례 강제노동과 끝없는 괴롭힘을 당하던 전직 교사가 사망
광둥성 엔핑시의 전직 교사였던 후위안환은 파룬궁을 수련한다는 이유로 두 차례 노동수용소와 6차례의 납치, 끝없는 괴롭힘을 견디다 2022년 6월 세상을 떠났다. 당시 그는 51세였다.
바로 며칠 전, 몇몇 지역 경찰관들이 후 씨의 문을 열고 침입하겠다고 위협하며 그를 다시 괴롭혔다.
후 씨는 1997년에 파룬궁 수련을 시작했다. 신념을 지킨다는 이유로 근무하던 학교에서 해고됐고 거듭 당국의 표적이 됐다.
후 씨는 2001년 3월에 납치됐다. 그는 자의적 구금에 항의하기 위해 단식농성을 벌였으나 철물점에서 구입한 두꺼운 플라스틱 튜브로 콧구멍을 통해 강제로 음식물 주입을 당했다. 구치소 부소장은 수감자들에게 강제로 음식물 주입하라고 지시했고 강제로 먹이다가 사망하면 구치소장이 모든 것을 책임지겠다고 말했다.
루 씨는 후 씨를 산 채로 화장하거나, 병원에 끌고 가 장기를 적출한 뒤 자발적으로 장기를 기증했다는 내용의 서류를 위조하겠다고 협박했다.
후 씨는 고문으로 혼수상태에 빠지기도 했지만, 경비원들은 그를 싼수이 강제 노동수용소로 데려가 그가 죽은 척했다고 비난했다. 수용소 병원에서 경비원들이 그를 사지를 벌려 침대에 묶고 다시 강제로 먹였다. 그는 두 달 후 죽음의 문턱에서 풀려났다.
2007년 3월, 경찰관 천젠화는 후 씨를 납치하기 위해 울타리를 기어올라 몰래 그의 집에 들어갔다. 그는 다시 단식한 후 족쇄가 채워져 호랑이 의자(고문 도구)에 쇠사슬로 묶였다. 그는 싼수이 수용소에서 또 다른 형기를 받았다. 그가 수용소 병원에 갇힌 8개월 동안, 경비원들은 또다시 그를 침대에 묶어두고 강제로 음식물을 주입했다. 수감자들은 그에게 폭언을 퍼부었고, 파룬궁을 비방함으로써 그를 세뇌하려 했다. 그는 또다시 죽음의 문턱에서 풀려났다.
그는 회복된 후에 도시 밖으로 나가 일자리를 구했다. 2019년 12월, 경찰은 새 직장에서 그를 다시 납치했다. 그는 다시 엔핑시 경찰국으로 이송됐고 나중에 보석으로 풀려났다.
경찰은 그를 면밀히 감시하고 그의 집 밖에 감시카메라를 설치했다. 또한 그의 형 후위안황에게 온종일 그를 확인하고 그의 상황을 보고하라고 명령했다. 육체적, 정신적 고문은 그의 건강에 큰 타격을 줬다. 쇠약해지고 고혈압을 앓던 그는 2022년 6월에 세상을 떠났다.
원문발표: 2022년 12월 2일
문장분류: 중국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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