简体 | 正體 | 대법서적

[중국법회] 20대의 노수련생

글/ 중국 청년 대법제자 위얼(玉兒)

[밍후이왕]

존경하는 사부님 안녕하십니까!​
수련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저는 청년 대법제자로 부모님 모두 수련하시고 두 분 다 세 가지 일에 매우 정진하셨습니다. 부모님은 또 수련생들과 법공부를 하며 사람을 구한 체득을 자주 교류하셨습니다. 저는 줄곧 이런 수련환경에서 자랐습니다.​

아버지께 들은 바에 의하면, 제가 두 살 때 어느 날 밤 열이 났는데 한밤중이어서 병원에 가기 어려웠다고 했습니다. 당시 부모님은 막 법을 얻으셨는데 의논하시다 사부님께서 “한 사람이 법을 얻으면 온 가족이 이익을 얻는다.”[1]라고 말씀하셨으니 아이에게 법을 들려주자고 하셨습니다. 아버지가 ‘전법륜’을 10여 분 읽으시고 다시 제 이마를 만져보니 열이 내려 부모님은 기뻐서 어쩔 줄 몰라 하셨고 동시에 대법의 신기함과 기적을 느끼셨다고 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법을 얻었고 지금 저도 20여 년을 수련한 노수련생이 됐습니다.​

어려서부터 심성 수련을 중시하다

제가 네 살 때 사악은 대법제자를 박해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머니는 10년 전 박해로 세상을 떠나셨고 아버지는 현지에서 대법을 실증하는 많은 업무를 맡고 계십니다. 아버지는 스스로 법공부하고 연공하며 집안일을 꾸려나가시고, 또 저를 데리고 수련하는 동시에 일까지 해야 하셔서 매우 고생하셨습니다.​

부모님은 저를 데리고 대법을 실증하러 두 번이나 베이징에 청원하러 가신 적이 있습니다. 한번은 천안문 광장에서 아버지는 저를 안고 수련생들과 함께 경찰이 빼앗아간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현수막을 되찾아오면서 실랑이를 벌이셨습니다. 경찰들이 수련생들을 악랄하게 때리는 광경을 보고 저는 몹시 두려웠으나 용기를 내 경찰이 주의하지 않는 틈을 타 경찰 겨드랑이에서 현수막 하나를 가져왔고 아버지는 그 현수막을 천안문 광장에 막 도착한 현수막을 가져오지 않은 수련생에게 주셨습니다.

또 한번은 아버지가 저를 데리고 수련생과 함께 천안문 광장에서 연공하는데 경찰이 우르르 몰려와 강제로 수련생들을 경찰차에 태웠습니다. 경찰차에서 경찰이 60대 할머니 수련생을 때리다가 아버지의 엄한 저지를 받았습니다. 우리는 베이징 첸먼(前門) 공안분국으로 끌려갔습니다. 아버지가 이름과 주소를 말씀하시지 않자 경찰은 저를 다른 방으로 데려가 이름과 주소를 말하도록 구슬렸습니다. 나중에 아버지 말씀에 의하면 아버지는 그때 ‘마음을 내려놓자, 사부님의 보호가 있으니 걱정할 필요가 없다’라고 생각하셨다고 합니다. 경찰이 저를 복도로 데려가 반나절 동안이나 물었지만 저는 계속 “몰라요”라고 말했습니다. 결국 경찰은 어쩔 수 없이 우리를 풀어줬습니다. 분국을 나서고 얼마 가지 않아 저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주위에 사람이 없는 것을 보고 낮은 소리로 아버지께 “아빠, 제가 아무 말도 하지 않으니까 그냥 보내줬어요”라고 말했습니다.​

초등학교에 다닐 때 저는 자신이 연공인이며 ‘진선인(真·善·忍)’ 표준에 따라 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내며 기꺼이 타인을 도왔고 친구들도 모두 저를 찾아와 문제를 의논하기 좋아했습니다. 한번은 담임 선생님이 몇몇 친구가 앞다투어 저와 문제를 의논하려는 모습을 보고 제가 어린 선생님 같다고 웃으면서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여학생은 고민이 있을 때 저에게 털어놓기를 원했고 제가 이해하는 수련의 법리로 친구를 일깨워줬더니 친구는 저와 이야기를 하다 보니 마음이 밝아졌다면서 제가 자신의 큰언니 같다고 했습니다.​

중학교 때 한번은 학교에서 호적등본을 내라고 했는데 부모님이 박해로 살 곳을 잃고 떠돌다 보니 저는 제출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선생님은 몹시 화가 나서 친구들 앞에서 제가 호적에 이름이 등록되지 않은 사람이라며 태어나는 것이 허가되지 않은 사람이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마음이 몹시 괴로웠고 밤에 집으로 돌아와 이불 속에서 눈물을 흘리며 도저히 잠들 수 없었습니다. 저는 사부님을 떠올리고 자신이 수련인이라는 것을 생각하면서 이것은 제가 ‘인(忍)’을 수련하는 것을 돕는 것이라 여겼습니다. 저는 션윈 공연에서 한 노스님이 치욕을 참으면서 결국 득도원만(得道圓滿)하는 이야기를 떠올렸습니다. 제가 안으로 찾아보니 평소에 다른 사람이 저에 대해 말하지 못 하게 하고, 말하기만 하면 변명했으며, 학교에서 늘 칭찬만 듣다 보니 명예를 구하는 마음이 생기고, 허영심도 매우 강해졌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런 마음을 찾은 후 마음이 평온해져 잠들 수 있었습니다. 다음날 어머니는 선생님께 전화를 걸어 이 일을 언급하셨고 선생님은 사과하셨습니다.​

2011년 부모님이 박해당해 우리 일가족은 살 곳을 잃고 떠돌아다녔습니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은 후 어머니는 매우 비통해하셨습니다. 그때 저는 ‘전법륜’을 외우고 있었는데 어머니가 매우 슬퍼하는 모습을 보고 “수련은 곧 이 마난(魔難) 중에서 수련해야 하며, 당신이 칠정육욕을 끊어버릴 수 있는지 없는지, 담담히 여길 수 있는지 없는지 본다. 당신이 그런 것에 집착한다면 당신은 수련해 내지 못한다.”[2]를 함께 외워보자고 말씀드렸습니다. 계속 외우다 보니 어머니의 마음이 평온해졌습니다.​

비록 그때 우리 가족은 정착할 곳은 없었지만 어머니는 줄곧 수련생들과 함께 사람을 구하는 많은 일을 하셨고 부모님은 매일 저와 함께 법공부하고 연공하며 일가족은 여전히 화기애애했습니다. 그러나 뜻밖에도 어머니가 기존에 당한 박해로 건강이 갈수록 악화되더니 오래지 않아 우리 곁을 떠나셨습니다. 그때 저는 아직 성년이 되지 않은 채 어머니를 잃어서 정말로 청천벽력 같았습니다! 이후 제 상태는 엉망이 됐고 매우 장시간 의기소침해 있었습니다.​

아버지와 수련생인 삼촌, 이모는 모두 저에게 관심을 기울여 격려해주시며 법에서 저와 교류했지만 저는 여전히 정 속에 깊이 빠져 스스로 헤어 나오지 못했습니다. 예전에는 생활에서든지 수련에서든지 모두 어머니께 의지했습니다. 어머니가 안 계시자 믿을만한 사람을 잃은 듯이 열등감을 갖고 의기소침해졌습니다. 수련생분들이 계속해 수련과 생활에서 끊임없이 제게 관심을 기울여주셔서 저는 매우 감동했습니다. 제가 심연에서 걸어 나오려는 소망이 생기자 사부님께서는 저를 수련생과 함께 일하도록 배치해주셨습니다. 저는 자주 수련생분과 함께 법공부를 할 수 있었고 수련생분은 점심때 저를 자주 자신의 집으로 데려가 식사하게 하셨습니다. 수련생분의 도움으로 저는 서서히 정의 소용돌이에서 걸어 나올 수 있었고 전화로 진상을 알려 사람을 구하는 팀에 참가하게 됐으며 자신을 닦아 정진하는 것도 알게 됐습니다.​

하루는 배추 다섯 포기를 사 와서 손을 씻으러 화장실에 갔는데 수도꼭지에서 물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수도꼭지는 새로 교체된 것이어서 아버지께 “수도꼭지를 살 때 가게 주인이 품질을 보장했는데 보아하니 속은 것 같아요”라고 말하자 아버지는 “내가 조금 전에 사용할 때도 괜찮았는데 왜 안 될까? 어떤 사람 마음이 잘못됐는지 안으로 한 번 찾아봐야겠구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아버지와 함께 식사하면서 자신에게 찾아봤습니다. “음, 찾았어요. 조금 전 배추를 살 때 작은 이득을 차지하려는 마음이 있었어요. 채소를 파는 사람이 저울을 보면서 17위안(약 3100원)이라고 했는데 저울이 또 18위안(약 3300원)을 가리키자 잠시 망설이다 결국 17위안에 주겠다고 했어요. 저는 17위안을 주고 떠났어요. 이것은 일에 부딪혔을 때 타인을 위해 생각하지 못한 게 아닐까요? 저는 너무 이기적이고 이익심이 너무 무거워요. 대법과 비교해보면 제 표준은 차이가 너무 많이 나요.” 이때 아버지가 가서 수도꼭지를 틀자 냉수 쪽은 정상이었고 온수 쪽은 여전히 물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제게 “봤지? 안으로 찾으니 수도꼭지가 반은 정상이 됐어. 자신이 아직 어떤 사람 마음을 찾지 못했는지 계속 안으로 찾아보렴”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또 자신을 성찰해봤습니다. “아, 찾았어요. 아침에 일어날 때 게으른 마음이 있었어요. 일찍 일어나서 연공하고 싶지 않아서 꾸물거렸어요.” 이때 아버지가 다시 가서 수도꼭지를 틀어보니 양쪽 모두 정상이었습니다.​

7~8년 전, 아버지는 사람을 구하는 일을 더 많이 하시기 위해 야간 근무를 하셨습니다. 어떨 때는 퇴근해 집에 오기도 전에 수련생과 나가서 사람 구하는 일을 하셨습니다. 안전을 위해 아버지와 저는 휴대폰으로 연락하지 않았습니다. 때로는 며칠 동안 아버지를 보지 못하면 혼자 집에서 걱정도 되고 두려워 하는 수 없이 수련생 집에 가서 아버지의 소식을 알아봤습니다. 시간이 길어지자 아버지에 대한 원망이 생겨 늦게 들어오시면 화를 냈습니다. 한번은 아버지가 수련생과 정체 협력해 법을 실증한 체득을 교류하셨고 저는 듣고서 대단히 신성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법제자로서 자신의 책임과 사명을 다해야 하는데 제가 어떻게 수련생인 아버지를 원망할 수 있겠습니까? 저는 정과 두려움을 닦아 제거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 이후로 아버지가 아무리 늦게 돌아오셔도, 밖에 오래 있으셔도 마음으로 아버지를 이해하고 지지해드렸습니다. 아버지가 법을 실증하는 일을 저는 마땅히 협력해야 합니다.​

여름에 저와 협력해 진상을 알리던 수련생이 작은 밭을 가꾸느라 울타리가 필요했습니다. 그녀는 저와 의논해 진상을 알리는 김에 나뭇가지를 좀 찾아보자고 했고 저는 동의했습니다. 연속 며칠간 우리 둘은 진상을 알리면서 나뭇가지를 찾다 보니 인연 있는 사람을 적게 만나게 되고 진상 알리는 효과도 예전보다 못했습니다. 저는 안으로 찾지 않고 속으로 그녀가 진상 알리기에 전념하지 않는다고 원망했습니다. 집으로 돌아온 후 아버지와 교류하자 아버지는 “수련은 먼저 자신을 닦아야 하고 일에 부딪히면 타인을 위해 생각해야 하는데, 어떻게 상대방을 원망까지 할 수 있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듣고 안으로 찾아봤고 안일함과 이기심을 찾았습니다. 저는 반드시 자신을 수련하겠다고 마음을 바꾸었습니다.​

다음날 우리 두 사람이 나가서 진상을 알릴 때 수련생도 끊임없이 안으로 찾으며 걷다가 길가에서 나뭇가지 한 더미를 발견했습니다. 밤에 저는 한 가지 꿈을 꾸었습니다. 꿈속에서 천사가 제 곁으로 날아와 가볍게 제 손을 어루만져줬고 우리는 함께 날아올랐습니다. 깨어난 후 저는 사부님께서 저를 격려하고 계시며 사람을 구하는 동시에 자신을 닦는 일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시간을 다그쳐 진상을 알려 사람을 구하다

저는 사부님의 각지설법을 배워 진상 알리는 것의 중요성과 의미를 깨달았습니다. 한번은 학년에서 공부를 가장 잘하는 친구에게 진상을 알렸습니다. 친구는 깨달은 후 대법제자에 대한 사악의 잔혹한 박해에 몹시 놀라 공청단(공산주의청년단) 탈퇴에 동의하며 제게 “내 이름이 왜 싱웨(星月)인 거 알지? 내가 태어나기 전 어머니가 꿈을 꾸셨는데 내가 하늘에서 자유자재로 별을 두드리자 달이 왔다고 하셨어. 내가 너희를 위해 뭘 하면 돼?”라고 말했습니다.

또 한 친구는 제가 진상을 알린 후 대법을 매우 믿게 됐습니다. 선생님이 친구에게 공청단에 입단시키려 하자 친구는 입단하고 싶지 않아 저에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어봤습니다. 저는 친구에게 “괜찮아, 학교에서 학생에게 공청단 가입을 강요하는 거고 너는 마음으로 자신이 진심으로 탈퇴했다는 것만 알면 돼”라고 알려줬습니다. 나중에 친구는 저에게 선서를 요구했을 때 하지 않았다고 알려줬고 작은 목소리로 “나는 공청단에 가입하지 않을 거야”라고 말했습니다. 친구는 사당(邪黨)이 사람을 해친다는 사실을 알고 매주 학교에서 국기 게양식을 할 때 속으로 ‘이 혈기(血旗)야, 빨리 쓰러져라’라고 생각했습니다.​

한번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40~50대 아주머니 한 분을 만나게 되어 말을 걸어보니 매우 친절하셨습니다. 제가 진상을 알리자 아주머니는 대법을 인정하며 중공 소선대에서 기쁘게 탈퇴하셨고, 아주머니 집 앞에 이르렀을 때 저를 집으로 초대해주셨습니다.​

또 한번은 방과 후 퇴근하는 아저씨 한 분을 만나 걸으면서 진상을 알리자 아저씨는 매우 듣고 싶어 했고 몇 가지 질문을 해서 저는 하나하나 대답해드렸습니다. 30분 남짓 걸어갔을 때 아저씨는 진상을 깨닫고 소선대를 탈퇴했습니다. 아저씨는 “고마워, 난 집에 도착했어”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이미 날이 저물었고 저는 주변을 둘러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찾지 못해 초조하고 두려워 울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사부님께서 바로 제 곁에 계신다는 생각이 들어 사부님께 도움을 요청드렸습니다. 그런 다음 밝은 곳을 따라 걸어가다 별안간 앞에서 한 남학생을 만나 그가 저를 큰길로 안내해줘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2012년, 우리 지역 수련생들은 음성메세지 진상 전화를 걸어 사람을 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사부님의 안배로 저도 전화로 진상 알리는 수련의 길로 들어섰습니다. 처음은 음성메세지 전화를 걸었고 그 후 수련생들은 직접 전화를 걸기 시작해 우리 몇 명은 한 팀이 되어 진상 전화를 걸었습니다. 한 수련생이 전화를 걸면 다른 수련생이 협력해 발정념을 하면서 모두 서로 격려했습니다. 한 수련생이 처음 전화를 걸어 몹시 긴장해 대화의 맥락을 놓치게 되자 다른 수련생이 옆에서 한마디씩 서로 일깨워줬습니다. 결국 상대방은 진상을 알아듣고 ‘삼퇴’했습니다.​

우리는 사람을 구하는 과정에서 끊임없이 경험을 총괄해 나중에는 모두가 간결하고 요령 있게 알릴 수 있었고 중생은 진상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제가 처음 전화를 걸었을 때 상대방은 항상 잠시 듣다가 끊었고 어떨 때는 다 듣고도 태도를 표명하지 않아 며칠 동안 ‘삼퇴’하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습니다. 다른 수련생들이 탈퇴시키는 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몹시 조급해졌습니다. 제가 안으로 찾아보니 결과를 구하는 마음, 허영심, 질투심을 찾아냈고 자신이 사람을 구하는 기점이 위사(爲私)여서 매우 부끄러웠습니다. 수련생이 진상을 알리는 기점은 무사(無私)로 사람을 구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한 격차를 보고 자신이 진상을 알리는 기점을 바로잡자 진상 알리기 효과도 갈수록 좋아졌습니다. 한번은 나가서 진상 전화를 걸었는데 매우 순조롭게 6명을 탈퇴시켰고 중생은 진상을 깨닫고 대법이 구원해준 은혜에 깊이 감사를 표했습니다.​

때로는 여름에 우리 몇몇 수련생은 차 안에서 동시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서로 방해되지 않도록 각자 머리에 패딩을 하나씩 뒤집어썼고, 어떨 때는 겨울에 밖에서 전화하다 보니 휴대폰 배터리가 얼어서 닳기도 했습니다. 산기슭, 공원 안, 기찻길 옆, 밭 사이 좁은 길, 주택가에 사람 없는 곳에 모두 우리의 발자취를 남겼습니다. 돌이켜보면 그때 그 시절은 정말 대단히 소중했습니다. 휴대폰을 들 때마다 모두 사부님의 가지(加持)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천 리밖에 떨어져 있고 서로를 알지 못하지만 전화로 대법 진상을 상대방에게 전함으로써 중생과의 인연을 더욱 소중히 여기게 됐습니다.

2016년에 저는 외지에 있었습니다. 한동안 사악이 제 신체를 박해해 가끔 배가 아팠습니다. 한번은 아파서 좀 견딜 수 없었는데 구토하고 설사하며 밤새 시달렸고 음식과 물을 먹지 못했습니다. 다음날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인연 있는 아저씨 한 분을 만났습니다. 그는 매우 친절하게 저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저는 기회를 잡아 그에게 대법 진상을 알렸고 그는 진상을 깨닫고 소선대를 탈퇴했습니다. 집으로 돌아온 후 제 몸은 신기하게도 건강을 회복했고 더는 배가 아프지 않았습니다.​

2020년 전염병 발생 후, 우리 시 수련생들은 시간의 긴박함을 알고 다그쳐 사람을 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저와 수련생은 협력해 대면해 진상을 알렸습니다. 어느 날 저녁, 80대 할아버지를 만나 진상을 알렸습니다. 할아버지는 듣지 않고 거듭 저를 떠밀며 쫓아냈고 또 “날이 곧 어두워지는데 얼른 집으로 돌아가”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 할아버지께 진상을 알렸지만 여전히 듣지 않으셨고 자신은 나이가 많아 알아듣지 못한다고 반복해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할아버지, 제 어떤 말을 알아듣지 못하셨어요?”라고 물어보았습니다. 할아버지는 사당이 주입한 거짓말을 제기했고 저는 하나하나 대답해드렸습니다. 30분 넘게 이야기했으나 여전히 ‘삼퇴’에 동의하지 않으셨고 날이 점점 어두워져 저는 집으로 돌아가려 했습니다. 이때 할아버지는 또 일부 의문을 제기하셨습니다. “내 나이가 이렇게 많은데 몇 년을 살기는커녕 며칠이나 더 살 수 있겠어?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데 내가 무슨 평안을 보장 받는다고. 공산당에 입당한 지 그렇게 오래됐는데 탈퇴하든 안 하든 무슨 소용이 있겠어? 나는 연금이 있는데 공산당을 탈퇴하면 누가 줄까?”​

저는 말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세상을 떠나는 날이 있어요. 세상을 떠나는 것 역시 이 세계를 떠나는 것뿐이에요. 생명은 모두 갈 곳이 있어요. 지금 할아버지는 아마 믿지 않으시겠지만 이 세상을 떠났을 때 제가 말씀드린 것이 모두 진실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실 거예요. 그때가 되면 어떻게 하실 건가요? 할아버지는 공산당에게 목숨을 바치겠다고 맹세하셨고 맹세는 지켜야 하는 거예요. 하지만 공산당에서 탈퇴하면 할아버지의 생명은 영원히 지킬 수 있어요. 당이 저지른 모든 죄악은 할아버지와 상관없게 돼요. 가명으로 탈퇴하시면 연금 받는 문제에는 관계되지 않아요. 국민이 당을 먹여 살리는 것이고 당의 모든 돈은 다 납세자의 돈이고 국민이 창출한 가치입니다.”

제 이런 말을 듣고 할아버지는 조금 인정하셨습니다. 이때 할아버지는 제게 속마음을 털어놓으셨습니다. 문화대혁명을 겪었는데 정치투쟁이 너무 잔혹해 사악한 공산당이 두렵다고 하셨습니다. 이번에는 거듭 제게 감사해하며 정중하게 제 어깨를 토닥여주며 말씀하셨습니다. “어린 아가씨가 인내심 있게 이런 것을 말해줘서 고맙네. 전에도 한 아가씨가 내게 이야기한 적이 있었는데 내가 반대해서 떠나게 만들었는데 혹시 그 아가씨 아닌가? 난 아가씨 말을 믿으니 목숨을 아가씨에게 맡기겠네.” 할아버지는 여러 번 반복해 말씀하셨고 사당 조직 탈퇴에 동의하셨습니다. 작별할 때 거듭 제 손을 잡고 감사를 표했습니다. 제가 모퉁이에 도착해서 돌아보니 할아버지는 여전히 그곳에 서서 저를 바라보셨습니다. 저는 사부님께서 가지해주시는 것을 느껴졌고, 사부님께서 제게 지혜를 주셔서 할아버지 마음의 매듭을 풀려 이 생명은 진정으로 구원받았습니다.​

이상은 제 수련 중 약간의 체득입니다. 20여 년이 지나 수련의 길을 돌이켜보니 때로는 정진했고, 때로는 소침했으며, 때로는 사람 마음이 심하게 교란받아 세 가지 일을 잘하지 못했습니다. 수련함에 고생을 겪으려 하지 않았고 인간 세상의 아름다움과 안일한 삶을 동경해 조사정법의 수많은 좋은 시기를 놓쳤습니다. 정법은 막바지에 이르렀고 저는 이러한 근본적인 집착을 닦아 제거하고 이 만고의 기연을 소중히 여기며 사부님의 자비로우신 고도(苦度)를 소중히 여겨 정법시기의 합격한 대법제자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적절하지 않은 부분은 수련생 여러분께서 자비롭게 바로잡아주시기를 바랍니다.​

자비롭고 위대하신 사부님께 감사드립니다!​
수련생 여러분 감사드립니다!​

허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전법륜법해’
[2]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전법륜’

(밍후이왕 제19회 중국 대법제자 수련심득교류회)

 

원문발표: 2022년 11월 8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2/11/8/451378.html
简体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2/11/8/451378.html

ⓒ 2024 명혜망.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