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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목에 대한 소견, 수련자의 자중을 논하다

[밍후이왕] (편주: 천목은 개인이 그 당시에 처한 층차의 제한하에서 보는 것으로 절대적인 진리는 아니다. 그러나 이들은 눈으로 보는 것이 진실하다고 느끼기 때문에 늘 쉽게 절대적으로 말한다. 그래서 다른 수련생들은 천목으로 본 것에 대해 반감이 있고, 반대하다 보니 또 다른 극단으로 가기 쉽다. 사실 우리는 법을 스승으로 삼고 이성적으로 대해야 한다. 수련에는 지름길이 없으며, 수련의 길에는 많은 기연과 함정이 있다.)

예전에 한 수련생을 만난 적이 있는데, 오랫동안 병마에 시달리면서 헤어나오지 못하자 주변 수련생들이 마음을 움직였다. 모두 여러 가지 방법을 생각해 보았지만 효과가 뚜렷하지 않아 천목이 열린 외지 수련생에게 도움을 청했다. 그는 병업에 처한 수련생에게 큰 구렁이 부체가 붙었다고 해서 모두를 놀라게 했다. 비록 여러 해 병업에 시달렸지만 부체가 있는 건 아닌 것 같았다. 이 일은 수련생 속에서 일정한 파동을 일으켰다.

내가 몇 년 전에 겪은 일이 생각난다. 나도 때론 천목으로 볼 수 있었지만 자유롭게 운용하지 못했으나 몇 년 전 수련생인 장모님이 세상을 떠나던 전 과정을 똑똑히 보았다. 아내도 수련하지만 모녀의 정이 깊어 매우 슬퍼했다. 아내와 수련생을 위로하기 위해 나는 장모가 과위를 얻고 원만하게 세상을 떠나고, 사부님의 법신이 장모를 데려가신 전 과정을 이야기해 주었다. 본래 수련자들은 반드시 정과를 얻고 사람의 표면적인 죽음은 진정한 죽음이 아니라 단지 생존 공간을 바꾸는 것에 불과함을 알려주려 했지만, 자세히 얘기하다 보니 아내 수련생은 내가 천목이 열린 줄 알고 이것저것 물어보았고, 나도 최대한 위로해주었다. 시간이 지나자 아내는 의뢰심이 생겨 무슨 문제가 생기면 나에게 자꾸 봐달라고 했다. 결국 나도 짜증나서 “나에게 묻지 마시오. 난 당신 도구가 아니오. 천목이 열린 사람도 당신에게 이런 것을 해주지 않을 거요.”라고 했다. 여러 해가 지났지만 그 일이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나의 경험에 의하면, 병업 중인 수련생을 돕는 수련생들에게 이런 바르지 않은 의뢰심이 있어 그들은 늘 천목이 열린 수련생을 찾아보고 싶어한다. 이런 현상은 비교적 흔한 것 같고, 많은 교류문에서 논의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교류를 통해 막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자신을 드러내기 좋아하는 어떤 사람은 심지어 누구만 만나면 자기가 천목이 열렸다는 말을 하면서 자기 집착을 만족시키고 있다. 병업에 처한 수련생에게 부체가 있다고 한 그 수련생은 본의 아니게 몇몇 호사가들의 도구가 되었고, 수구하지 못해 업을 지었는데, 이러지 말아야 한다. 만약 잘못 보았다면 사람들의 마음을 혼란하게 할 것이고, 제대로 보았더라도 병업 수련생에게 큰 타격을 주어 병업이 더 심해질 수도 있다. 20년 넘게 수련한 사람이 마난을 헤쳐나오지 못하고 있는데, 갑자기 그에게 부체가 있다고 알려준다면 그가 견딜 수 있겠는가?! 이렇게 하는 것은 무책임한 행위이다.

비록 나는 천목이 열려 수련하지 않지만 수련 과정에서 약간의 경험이 있어 여러분과 교류하려 한다.

다른 공간을 보는 일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한 수련자가 천목이 열린 후, 정법 과정에서 사부님께서 그를 위해 많은 대가를 치르시고 몸에 큰 상처를 입으신 것을 보았다. 그는 사부님께서 상처를 입으신 것을 보고 수련하지 않기로 했다고 한다. 이 이야기를 듣고 나는 너무 놀랐다. 천목이 열린 후에 보는 광경 역시 깨달음이 필요한데, 잘못 깨달으면 안 된다! 정상적인 상황에서 나는 어떤 광경을 보더라도 ‘전법륜’과 사부님의 다른 설법에 대조하여, 사부님께서 이 방면에 대해 말씀하셨는지 보아야 하고, 사부님의 대법에 따라 진위를 가려 그 내포를 깨달아야 한다. 대법에서 근거가 없는 것이면 깨달음이 필요 없고 가상일 것이다. 다른 수련생이 다른 공간에 관해 이야기할 때도 이렇게 가늠해야 한다.

위에서 말한 수련을 포기한 사람은 완전히 사람의 정으로 인식한 것이다. 이런 광경을 본다면 나는 사부님께서 나를 위해 이렇게 큰 대가를 치르셨는데 사부님의 제자로서 사부님께서 치르신 것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중생을 구하시기 위해 당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시고 제자는 사부님의 구원 정신을 계승하는 것이지, 사부님께서 고통받으실까 봐 수련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지 않으면 사부님의 희생을 헛되게 하는 것이 아닌가? 20여 년 동안 사부님께서는 대법제자들을 구해주셨고, 정법 과정에서 감히 진리를 위해, 중생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칠 수 있는 수많은 석가모니와 예수를 만드셨다. 모두 사부님의 구도 정신을 이어받고 있다.

여기에 또 다른 문제가 반영된다. 천목이 열린 많은 수련자가 어떤 광경을 보고, 사부님의 대법으로 도리를 깨닫거나 대법을 기준으로 삼지 않고, 본 광경을 기준으로 자신의 행위와 사상을 지도하는데, 시간이 지나면 법에서 벗어나는 경우가 있다. 어떤 광경은 가상이고 어떤 광경은 구세력이 간섭해 연화(演化)해낸 것으로 수련인을 훼멸시키는 데 쓰는바, 진선인(真·善·忍) 대법이 아니다. 그 수련하지 않는 사람은 사상에 다소 과격한 요소가 있어 구세력에게 이용당할 수 있으며 그가 본 것은 진짜일 수도 있고 가짜일 수도 있다. 진위를 막론하고 과격한 사상의 논리 속에서 ‘대법을 수련하지 않는 것’이 사부님을 대할 면목이 서는 것이라고 생각해 법에서 벗어나게 했다.

천목이 열린 사람은 수련생들과 어떻게 교류해야 할까?

수련하려면 수련환경과 군체(群體)를 떠날 수 없고 천목이 열린 사람과 닫혀 있는 사람이 있기에 의뢰심이 있을 수 있다. 각자 심성을 잘 지켜야 한다. 천목이 열려 수련하는 교류 문장을 많이 보았는데, 생명이 윤회 중에서 법을 얻기란 쉽지 않다. 정법 과정이 힘차게 진행되어 수련의 난관을 돌파하고 사악의 교란을 타파하는 데 아주 긍정적인 역할을 했다. 만약 다른 공간의 변화로 수련생을 고무해 정진하게 하고 법을 실증해 사람을 많이 구하게 한다면 이는 확실히 좋은 일이다.

보통 내가 수련생을 격려하고 도와줄 수 있을 때 천목으로 본 것을 이야기하면 자신의 집착심도 일어나지 않는다. 예를 들면, 수련생들을 조직해 감옥 등 박해 장소에 가서 발정념을 할 때 정체적으로 큰 연꽃을 만드는 광경을 보았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모두 큰 고무를 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또 수구를 중시해야 한다. 한번은 수련자들과 함께 발정념하다가 많은 사람에게 공기둥이 있는 것을 보았다(사실 수련을 시작하면 공기둥을 다 가지고 있다). 여러 사람에게 말했더니 바로 한 수련생이 누구의 공기둥이 흰색인지 물었다. 당시 나는 수련생의 비교심리를 불러일으켰고, 이 말을 하지 말았어야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후 어떤 광경이 보이면 그 자리에서 말하지 않고 적절한 장소나 시기에 다시 이야기함으로써 집착을 일으키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게 했다.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무사무아(無私無我), 선타후아(先他後我)의 정각(正覺)으로 수련 성취해야 한다”[1]라고 말씀하셨다. 많은 일에서 상대방을 더 많이 생각해야 한다. 천목이 열린 수련생은 어떻게 하면 수련생들을 도와 정진하고 층차를 제고하게 할 수 있을지 생각해야 한다. 천목이 열리지 않은 수련생은 천목이 열린 수련생에게 집착이 일어나게 하지 말고 자신에게 의뢰심이 생기지 않도록 주의해야 하며, 과시심이 생길 장을 주지 말고 문제에 부딪히면 법에서 수련하고 깨달아야 하는바, 이것이 바른 깨달음이고 바른 이치다. 천목이 열린 수련생도 자중해야 하며 자기도 모르게 다른 공간을 보는 도구가 되어 교란을 일으키지 말아야 한다. 천목이 열리지 않은 수련생은 다른 공간에 의존하지 말고 법을 스승으로 삼아야 교란을 줄이고 분별 능력을 높일 수 있다. 이지가 청성해야 하고 정념으로 대해야 한다.

수련자는 신사신법해야 하는바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행동에 옮기고 사상 중에 용해해야 한다. 특히 정법시기 대법제자들이 직면한 것은 개인의 업력뿐만 아니라 다른 공간에서 오는 외부 간섭이 많아 우리의 수련과 사람을 구하는 데 영향을 미칠 것이다. 문제에 부딪혔을 때 대법으로 가늠하는지, 유혹에 직면했을 때 바로 자신을 바로잡을 수 있는지에서 깨달음이 체현된다고 생각한다. 수련자는 자중하여 방해받지 말아야 하고 또 다른 사람을 교란하지 말아야 한다.

이상은 단지 자신의 개인 인식일 뿐이니 참고하길 바란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경문: ‘정진요지-불성무루(佛性無漏)’

 

원문발표: 2022년 10월 25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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