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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사는 법을 위해 온 것, 당당하게 진상을 알리다

글/ 중국 대법제자 루이(如意)

[밍후이왕] 저는 삼림농장에 살고 있습니다. 1996년, 육친 두 명이 잇따라 세상을 떠나면서 저는 인생에서 가장 큰 슬픔을 겪었습니다. 한 사람은 어머니이고, 또 한 사람은 22살이던 아들입니다. 어머니는 병으로 돌아가셨고 아들은 익사했습니다. 이 두 사람은 제 삶에서 절대적으로 중요한 사람이었습니다. 게다가 아들은 아주 철이 들어 제가 가장 좋아하는 자식이었습니다. 제가 어떤 충격을 받았을지 가히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정신적으로 문제가 생겨 흐리멍덩해졌습니다. 그때 저는 목재회사 공장장이었는데 매일 사무실에서 천장 모퉁이만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아들이 곧 여기서 돌아오리라 생각했습니다! 부공장장이나 작업장 주임을 부른다는 것이 그만 입만 벌리면 아들의 이름을 불러 모두가 놀라서 말을 많이 하지 못했습니다.

매일 가슴, 겨드랑이, 목구멍이 꽉 막혀서 밥을 먹을 수 없었고 억지로 죽을 조금 먹거나 달걀을 먹고 조용히 방 안에 숨어서 남몰래 눈물을 흘렸습니다. 필경 저는 가족의 기둥이었기 때문에 가족이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게 하려고 매일 먹는 척했고 아무 일 없는 척했습니다. 가족을 위해 버티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설사 이렇다 할지라도 정신적인 자극으로 글자를 몰라봤습니다.

1997년 말, 한 파룬궁(法輪功) 수련생이 저의 이런 모습을 보고 정신이 너무 흐리멍덩하다며 법을 듣고 보게 했습니다. 저는 글자를 모른다고 말했으나 이 수련생은 사부님의 법상과 대법 책 몇 권 그리고 녹음테이프까지 가져다줬습니다. 그날 밤, 잠을 이루지 못해 대법 책을 들었습니다. 책을 펼치자마자 사부님의 법상을 보았고 갑작스레 글자를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게다가 오장육부가 막혔던 곳이 별안간 전부 열려 온몸이 뚫리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런 편안함과 행복한 느낌은 있어 본 적이 없었고 형언할 길이 없었는데, 제 인생에서 체득해본 적 없는 후련함이었습니다.

이미 열두 시가 된 것을 보고 내일 출근해야겠다는 생각에 책을 가슴에 덮어놓은 채 잠들었습니다. 매우 오래 잔 것 같아 눈을 떠보니 10분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기운이 났습니다. 다음날 대법 책을 사무실에 가지고 가서 매일 책을 읽으며 손을 떼지 못했습니다.

그로부터 모든 병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고 약을 전부 다 버렸습니다. 저는 단번에 어머니와 아들을 잃은 슬픔에서 걸어 나왔습니다. 마치 새로 태어난 것처럼 진정으로 후회 없는 인생을 시작했습니다. 저는 시간을 매우 잘 안배하여 매일 많은 양의 법을 읽었는데 일은 적은 노력으로 큰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1. 만사는 법을 위해 온 것, 사부님께서 보호해주시다

우리 공장은 목재를 심가공합니다. 이 공장이 설립되었을 때부터 공장장을 맡았고 아무것도 없던 데로부터 수출사업을 하는 데까지 줄곧 발전했습니다. 저는 법을 얻은 후부터 수출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신기하게도 화주를 찾은 적이 없었지만 모두 화주가 저를 찾아왔습니다. 더 신기한 것은 매일 생산량이 늘어 화주 한 명이 찾아오는 것이 보장됐다는 것입니다. 작업장 생산, 물품 구매, 자재 구매, 판매에 이르기까지 하나로 연결되어 정말 조금도 애태우지 않았습니다.

한번은 제가 사무실에서 법을 읽는데 문득 귓가에 “컨테이너가 도착했어요!”라는 아이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사부님께서 점화해주셨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전화기를 들고 역의 화물이 있는 곳에 연락해보니 과연 역에서는 컨테이너가 몇 세트 도착했고 어느 위치에 있다고 말해줬습니다. 그때 컨테이너를 구하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어서 다른 사람은 구할 수 없었고 저만 구해올 수 있었습니다. 나중에 저는 그만두었고 다른 사람들도 더는 컨테이너를 구할 수 없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다 더 많은 시간을 수련에 쓰라고 사부님께서 보호해주시는 것임을 알았습니다.

저는 10년 동안 수출사업을 해서 자주 해외에 나갈 기회가 있었습니다. 비용은 공장에서 내기 때문에 직원들이 피땀으로 번 돈이 아까워 일본,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태국 등 출국 기회를 여러 번이나 포기했습니다. 가끔 성에서 제게 출국 정원을 줘도 포기해서 삼림농장의 돈을 많이 아꼈습니다. 모두가 눈여겨보고 있었습니다.

10년 동안 사업을 하면서 화주는 제게 한 푼어치도 빚지지 않았고 저 역시 직원들에게 한 푼어치도 빚지지 않았으며 기업, 공상세, 세정업무, 목재과에도 빚지지 않았습니다. 직원들은 기뻐했고 상급 책임자들도 매우 만족스러워했으며 많은 영예를 줘 현지에서 어느 정도 명성을 얻었습니다. 이런 것은 모두 나중에 법 실증을 위해 매우 좋은 토대를 마련했습니다. “만고의 일은 법을 위해 왔나니”[1] 일체는 정말 정법을 위해 쓰이고 있으며 대법을 위해 존재합니다.

그때, 상급의 책임자들이 올 때마다 모두 대법이 제 생명을 구해줬기에 비로소 오늘의 제가 있게 되었다고 알렸습니다. 그들에게 대법에 대해 알려주니 모두 매우 인정했습니다. 한번은 상급과 각지 책임자들이 찾아와 검사했는데 한 책임자가 나무 모서리에 서서 이 대문은 왠지 탁 트이고 환해서 떠나고 싶지 않다고 했습니다. 한번은 설을 쇨 때, 모내기 춤을 추면서 북을 치는 한 사람이 우리 사무실에 잠깐 앉아 있다가 “공장장님, 여기는 정말 편안해요. 제가 잠깐 앉아 있어도 될까요?”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럼요. 마음껏 쉬세요!”라고 말했습니다. 제가 대법을 수련했기 때문에 이 장이 좋아서 중생들이 느낄 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무렵 대법의 전단과 표어는 우리 공장의 기계 위, 창문, 벽, 전신주……어디에나 붙어 있었고 공장 직원 전체가 모두 인정했습니다. 중공(중국공산당)이 대법을 박해한 후, 윗선에서 사람이 와서 이 일을 조사했고 공장 직원들은 일제히 “붙이지 않았어요!”라고 말하면서 모두가 공장장을 보호해줬습니다.

저는 전후로 몇 십 년간 공장장으로 있었습니다. 저의 임기 동안은 직원들의 생산 안전도가 매우 높았고 추운 날씨와 폭풍우도 막론하고 사상 사고가 한 건도 없었습니다. 사부님께서 제자를 일찍이 보호해주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저는 탐하지 않고 차지하려고 하지 않으며 직원들에게 마음을 두고 직접 세무 보험을 찾아주는 등 여러모로 직원에게 보험을 들어줍니다. 저의 이런 직원들은 큰 집단이지만 국가의 정규직이 아니어서 보험 가입 여부는 회사에서 결정합니다. 게다가 그때 전국적으로 직원의 보험 대우가 미비해서 저는 미리 모두를 위해 처리했습니다. 이런 직원이 50세가 되어 퇴직할 때면 많은 사람이 모두 7천 위안(약 141만 원)의 보험금을 받을 수 있게 됩니다. 그때의 월급은 매월 겨우 일이백 위안(약 2만~4만 원)이었기 때문에 그때로 놓고 말하면 이것은 매우 큰돈이었습니다. 그 무렵 직원 몇 십 명이 50세가 되어 퇴직하자 저는 매달 직원들에게 양로금을 냈는데 정규직 임금에 상당하는 금액으로 모두 2500위안(약 50만 원) 이상을 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제게 고생하여 세운 공이 크다고 말했습니다. 이 일체는 모두 나중에 사람을 구하는 것을 위해 토대를 만들었다는 것을 이제 깨달았습니다. 저에 대한 모두의 감격과 신뢰 덕분에 진상을 알리면 매우 쉽게 받아들였습니다.

2. 사부님의 보호로 박해 속에서 놀람은 있어도 위험이 없다

1999년 7월, 사악한 장쩌민(江澤民) 집단이 파룬궁 박해를 시작했습니다. 저도 새로운 수련환경에 놓였습니다. 2000년 파출소에서는 제가 베이징에 갈까 봐 매일 두 경찰관을 파견해 사무실에 앉아서 저를 지켜보게 했고 저는 매일 그들에게 경문을 보여줬습니다. 천지를 뒤덮는 이 사악한 선전과 박해는 뼛속 깊은 곳에서부터 우러나오는 대법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조금도 동요시킬 수 없었습니다. 저는 겹겹의 방해와 교란을 돌파해 여러 가지 방식으로 진상 알리기와 법을 실증하는 것을 견지해나갔습니다.

2000년 말, 다른 삼림농장 부근이 진상 알리기가 이루어지고 있지 않은 것을 알게 됐습니다. 저는 수련생들과 함께 택시 한 대를 타고 삼림농장에 자료를 배포하러 갔습니다. 처음 가 본 농장이라 현지 상황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습니다. 우리 몇 사람은 두 팀으로 나누어 산의 남쪽과 산의 북쪽에서 자료를 배포하면서 진상을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산의 남쪽 팀은 개를 기르는 사람에게 진상을 알렸는데 이 사람은 파출소에 신고했습니다. 우리 이쪽은 사정을 몰랐고 평소처럼 자료를 배포했습니다. 저녁 무렵에 파출소 마당 안까지 배포하게 되었습니다. 파출소에서는 신고를 받고 마침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가 우리가 제 발로 찾아온 것을 보고 직접 우리를 붙잡았습니다. 저는 마음이 담담했고 두려움이 없었습니다. 이때 파룬이 천장 위에서 회전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마음속으로 사부님께 “사부님 걱정하지 마세요. 저희가 꼭 잘하겠습니다.”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경찰은 기록을 시작했고 전화를 걸어 상부와 소통했으며 우리는 진상을 알렸습니다. 밤 열두 시가 되자 무조건 석방돼 집에 돌아왔습니다. 며칠 지나서 임업국 공안국 국장과 부국장이 우리 삼림농장으로 저를 찾아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파출소 소장은 부하를 데리고 우리 집 가산을 몰수하려 했습니다. 결국 우리 집으로 가는 도중에 맑았던 하늘이 갑작스레 장대비가 내리기 시작했는데 매우 이례적이었습니다. 파출소 소장은 깜짝 놀라서 “이것은 하늘의 뜻이네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우리 집에 도착한 후, 이불을 대충 뒤적이는 시늉만 하고 가산을 몰수한 셈 쳤습니다.

이쪽에서 국장이 저와 이야기를 나누었고 저는 마음속으로 사부님께 도와주십사 청을 드렸습니다. 국장은 “아주머니, 이 몇 년 동안 줄곧 잘해오셨잖아요. 성에서도 유명하시고요. 여러 가지 영예도 줬잖아요.”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이것은 국장님이 하신 말씀이에요. 이 몇 년 동안 저는 밝힌 적이 없었어요. 진선인(真·善·忍)은 불법(佛法)이랍니다. 제자가 좋은 사람 중의 좋은 사람이 되도록 요구해요. 여러분은 왜 좋은 사람을 붙잡지요? 공산당이 사악한 것이 아닌가요? 여러분이 사악에게 이용당해 좋은 사람을 박해하면 죄가 생깁니다!” 제가 말을 꺼내자 국장은 하마터면 기절할 뻔했는데 숨이 올라오지 않는지 계속해서 기침했습니다. 저를 보내고 싶었지만 또 말을 할 수 없어 손짓으로 제게 가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기세등등해 보이던 박해도 해체되었습니다.

또 한번은 임업국의 소형 트럭 운전사가 삼림 구역 단층 주택에 불을 붙일 자작나무 껍질을 달라고 했습니다. 저는 “지금은 없는데 며칠 뒤에 줄게요.”라고 말했습니다. 동시에 저는 그에게 진선인(真·善·忍)이 쓰인 카드 한 장을 줬습니다. 다음 날 아침, 공안국에서 차 두 대가 와서 하나는 가산을 몰수했고 하나는 사무실을 몰수했습니다. 사무실에 사부님 법상 한 장이 있었는데 빼앗고 공안국으로 저를 데려갔습니다. 정법위 서기는 새로 전근 온 지 이틀밖에 안 됐는데 저와 매우 예의 바르게 이야기했고 사부님과 대법을 공격하지도 않았습니다. 이야기를 마치고 공안국 국장은 정법위 서기에게 어떻게 할 것인지 물었습니다. 뜻인즉 되돌려 보낼지 아니면 구치소에 수감 시킬 지였습니다. 서기는 “관례대로 석방해요!”라고 말했습니다. 제가 붙잡혀 올 때 칫솔과 일용품을 가지고 왔지만, 국장 등 사람들에게 계속 발정념을 한 결과 사부님께서 다시 한 번 제가 시련을 돌파하는 것을 보호해주셔서 순조롭게 집에 돌아왔습니다. 사부님에 대한 감격은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저는 사부님께서 하신 말씀 “나의 뿌리는 모두 우주에 박혀 있으므로 누가 당신을 움직일 수 있다면 곧 나를 움직일 수 있는 것이다”[2]를 깊이 체득했습니다. 오직 법에 있고 사부님과 대법과 함께하기만 하면 사악은 정말 아무것도 아닙니다. 정말 대법제자를 움직일 수 없습니다!

저는 접촉한 책임자가 많아서 줄곧 그들에게 진상을 알렸습니다. 삼림농장 서기는 사람이 좋아서 진상을 받아들였고 또 항상 제게 사부님의 경문을 달라고 해서 보았으며 신경문이 있는지도 자주 물어보았습니다. 그는 속으로 이미 생각이 있었고, 삼림농장에서는 파룬궁 수련생을 한 명도 붙잡은 적이 없었습니다. 현지 파출소와 각 기관의 책임자들에게도 모두 진상을 알리고 삼퇴를 시켰습니다. 일요일에 자주 파출소에 자료를 가져다주었고 그들은 거절하지 않습니다. 소장 집으로도 자주 보내는데 그들은 모두 진상을 명백히 압니다.

제가 사는 삼림농장은 책임자가 서너 번이나 바뀌었는데 매 임기 책임자는 모두 제 사무실에 와서 진상을 알려달라고 했으며 그들은 거의 모두 탈퇴했습니다. 삼림농장에서는 박해하는 일이 거의 드뭅니다. 한번은 한 노수련생이 학교 입구에서 자료를 배포하다가 누군가 그 수련생을 파출소로 불렀습니다. 저는 알고 난 후 공장장을 찾아갔고 공장장은 “조급해하지 말아요. 잠시 후 풀어줄 거예요.”라고 말했습니다. 공장장은 제게 “앞으로 누가 와서 당신을 찾든지 내가 없으면 만나지 말아요.”라고 말했습니다. 지역 ‘610’ 관계자가 나를 찾아와 누군가가 저를 신고했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곧 그에게 진상을 알렸고 알린 후 그는 고맙다고 하고는 떠났습니다.

3. 사부님의 보호로 중생을 구도함에 아무 일이 없다

사부님께서 “대법제자가 법을 실증하는 중에서, 해야 할 일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중생을 구도하는 것”[3]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사부님의 말씀을 명시하고 어디에서든 대법을 실증하여 중생을 구하는 것을 잊지 않습니다. 퇴직 전, 주변 사람들을 모두 권유하여 탈퇴시켰습니다. 퇴직 후, 저는 어디를 가든지 알립니다. 우리 집은 작은 진에 있으며 저는 거의 집마다 진상 자료를 배포하여서 할 수 있는 곳은 모두 했습니다. 여기는 사람이 적어서 사부님께서는 저를 외지로 안배해주셨습니다. 저는 곧 자연스럽게 되어감에 따랐습니다. 외지에서 매일 나가서 진상을 알렸고 하루도 빠짐없었는데 천둥·번개가 쳐도 움직이지 않고 매주 일요일에는 80명에서 100명까지 탈퇴시켰습니다.

저는 시장에서 무엇을 사든지 진상 화폐를 사용합니다. 어느 날, 한 40세 정도 되어 보이는 사람이 저를 찾아와 진상 화폐를 바꾸려 했는데 제게 없어서 다음날 그에게 주기로 약속했습니다. 다음날 제가 진상 화폐를 한 뭉치 주자 그는 두 손을 번쩍 들고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라고 높이 외쳤습니다.

저는 시장에서 션윈 CD도 배포합니다. 한번은 채소를 파는 사람에게 진상을 알리고 그에게 션윈 CD를 주자 옆에 있던 사람이 “대낮에 감히 이것을 배포해요? 갑시다. 내가 파출소로 데려다줄 테니!”라고 했습니다. 제가 “찾으려 해도 못 찾았는데 얼른 데리고 가주세요!”라고 하자 그는 놀란 나머지 재빨리 달아났습니다.

대도시는 길에 경찰이 매우 많습니다. 저는 그들에게 적의가 없으며 늘 선하게 진상을 알립니다. 그들은 받아들이며 모두 제게 감사를 표해서 모두 삼퇴시킬 수 있었습니다. 경찰들은 또 제게 안전에 주의하라고 알려주었습니다!

한번은 사복 차림을 한 사람을 만났는데 매우 예의 바르게 제게 “CD 1장 주실 수 있으세요?”라고 했습니다. 저는 “물론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매우 정성껏 넣었습니다. 또 한 경찰관은 저더러 자기 집에 가서 연공을 가르쳐달라고 했습니다. 저는 적절하지 않다는 생각에 가지 않았습니다. 안전성 여부는 사부님께서 상관해주고 계시며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고 생각이 들면 저는 억지로 하지 않습니다. 자신을 드러내고 싶지도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 일체는 모두 사부님께서 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시장에는 일부 시골에서 내려와 채소를 파는 차들이 있습니다. 저는 이런 채소를 파는 차주에게 진상을 알립니다. 그들은 부드럽지도 않고 강하지도 않으며 무엇을 말해도 태도 표명을 하지 않습니다. 어느 날 저는 벽에 CD 몇 개가 돌아가는 것을 보고 좀 깨달음이 생겨 CD를 한 가방 가득 담고 다시 채소 시장에 갔습니다. 그 채소를 파는 차주 열 몇 명은 이미 저를 알고 있어서 저를 보자마자 “몇십 리를 여기까지 왔는데 채소를 팔지 못하게 하네요. 미리 알려주지도 않아서 기름에 채소까지 손실이 막대해요. 누가 우리에게 신경을 쓰겠어요!”라며 불평하고는 아주 흔쾌히 진상 CD를 받았습니다. 저는 사부님께서 이 기회를 이용해 저를 안배하셔서 가서 그들을 구하게 한 것임을 알았습니다. 따라서 저는 자아를 고집하지 않고 매일 사부님의 안배를 구합니다. 진정으로 사람을 구하는 것은 사부님께서 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어떤 곳은 길에 종종 일자리를 구하는 사람들이 한 무리 줄을 서 있습니다. 사람이 아주 많은데 제가 CD를 배포하는 것을 보고 자발적으로 한 줄로 서서 받기를 기다립니다. 끝에 서서 받지 못한 사람들은 손에 있는 것을 빼앗아 갈 정도였습니다. 중생의 진정한 명백한 그 일면이 구원받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저는 매일 끊임없이 걷고 끊임없이 알리며 제가 가는 곳은 모두 한 번씩 다 걸어 다녔습니다. 문득 집안 벽에 한 사람이 당나귀 수레를 몰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사부님께서 저를 시골에 내려가서 배포하라는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CD와 자료를 가지고 어딘지도 모른 채 손에 잡히는 대로 15위안(약 3000원)짜리 버스를 탔습니다. 마을에 도착하면 내리겠다고 하고 차에서 내린 후 마을에 가서 진상을 알렸으며 매우 많이 알렸습니다. 기독교 신자를 만나서 많이 알렸는데 그 사람은 깨달은 후 울었습니다. 다리 어귀에서 한 사람에게 알렸는데 마침 대대 사람이었고 “아주머니 빨리 가세요!”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여기는 앞에 마을도 없고 뒤에는 사람도 없는데 어디로 가야 하냐고 말했습니다. 점심 열두 시가 되자 승용차 한 대가 왔습니다. 저는 인사를 건네며 어느 지역으로 가는지 물었습니다. 그들은 들어가서 도장만 찍고 나온다며 저를 데려다주겠다고 말했습니다. 과연 몇 분 뒤 나와서 저보고 차에 타라고 했고 곧장 기차역까지 데려다줬습니다. 그들을 삼퇴시키고 경비를 줬으나 받지 않으려 했습니다. 하지만 평소대로 경비를 지불했습니다. 정말 낯선 곳에 가서 어디인지조차 몰랐지만, 사부님께서 저를 가도록 안배해주셨고 돌아오도록 안배해주셨습니다. 사부님이 계시니 정말 매우 좋습니다!

또 한번은 다른 시골에 갔는데 이 버스가 아침에 가고 오후에는 오지 않는 줄 몰랐습니다. 자료 배포를 마치고 나니 거의 두 시가 되어 하차한 곳에 가서 버스를 기다렸습니다. 만났던 사람들도 제게 버스가 없다는 사실을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저는 계속 기다렸습니다. 오전에 공원에서 진상을 알릴 때 가오펑천(高鳳臣)이라는 아이가 있었는데 그는 자신을 탈퇴시켜달라고 말했습니다! 명백히 알았는지 물어보자 그는 제가 그들에게 말할 때 명백히 알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사람들은 제게 무엇을 하러 왔는지 물어보았고 저는 아카시아꽃을 따러 왔다고 말했습니다. 이 아이는 저를 아카시아꽃을 따는 곳에 데려다주려 했습니다. 오후 세 시가 거의 되어가자 아이가 또 와서 “할머니 저곳에 가서 버스를 기다리세요. 여기는 오후에 버스가 안 와요.”라고 알려줬습니다. 버스를 타는 곳은 버스를 기다리고 있던 곳보다 1~2km 더 가야 했습니다. 아이에게 고맙다고 하고 버스를 탔습니다. 아이는 1~2km를 더 걸어서 마을로 돌아갔습니다. 그날은 일요일이 아니어서 아이는 학교에 가야 했을 것입니다. 이 아이는 또 사부님께서 제가 집으로 돌아가는 것을 도와주도록 안배해주신 것입니다. 시시각각 제자를 보호해주고 계신 사부님께 감사드립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여의진리(如意真理)를 지니고 와 소탈하게 온 천하를 거니네 법리를 세간에 널리 뿌려 중생 가득 실은 법선 띄우네”[4]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여의 법리를 지니고 저는 큰길, 골목길, 산촌 정원을 즐겁게 걸어갔는데, 만난 사람은 곧 인연이 있는 사람이었고 입을 여는 것은 중생이 구원받을 기회였습니다! 비록 고생스러움이 가득했지만 저는 중생을 생각하고 고생을 낙으로 삼으니 기쁨은 비할 바 없었습니다!

저는 진상을 알리면서 두려운 마음이 매우 적어 진상을 알리는데 기본적으로 아무런 장애가 없습니다. 비록 이 한평생 일을 관리했지만, 학교에 잘 다니지 못했고 대법의 많은 일을 할 줄 모릅니다. 특히, 컴퓨터를 배우는 등의 일은 저의 취약 항목입니다. ‘공산당에 대한 9가지 평론(9평)’을 배포할 때, 수련생에게 도움을 청해 500부 만들어달라고 했는데 결국 모두 만들기를 원해서 1500부를 만들었습니다. 어려움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없었지만 이렇게 많은 책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몰랐습니다. 결국 사부님께서 또 도와주셨습니다. 외조카가 자기 집 창고에 보관했다가 편할 때 다시 가져가라고 했습니다. 결국 외조카는 갈수록 사업이 잘됐습니다. 제가 외지에 9평을 배포할 때 마침 연휴가 길어서 물건을 보관하는 7일 동안 무사했으며 모든 것이 순조로웠습니다. 마지막에 도와준 중생도 복을 받았습니다.

몇 년 전, 아들이 장 질환에 걸렸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여전히 마음을 움직이지 않았고 강한 정념을 내보내어 가족에 대한 구세력의 박해와 친정을 이용한 저에 대한 구세력의 박해를 해체했습니다. 저는 강한 정념을 발했습니다. 결국 3일 연속 발정념을 했습니다. 갑자기 돌풍이 불더니 우리 집 장독 뚜껑의 유리를 밀어 떨어뜨려 산산조각이 났습니다! 사악이 해체됐다는 것을 알았고 결국 아들은 아무 병도 없었습니다. 사부님의 보호에 감사드립니다!

저는 큰 상처와 고난을 겪었고 사부님께서 제게 완전히 새로운 생명을 주셨습니다. 사부님과 대법은 후회 없는 인생을 만들어주었습니다! 인간 세상의 일체는 금방 사라집니다. 오로지 대법이 우리에게 부여해주는 일체만이 영원히 눈부십니다! 사부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대법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제자는 오직 이 우주 정법 최후 시각에 자신을 잘 수련하고 중생을 구하며 정진에 태만하지 않은 것으로 사부님의 자비롭고 고생스러우신 제도에 보답하겠습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시사: ‘홍음2-연극 한 편(戲一台)’
[2]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전법륜(轉法輪)’
[3] 리훙쯔 사부님 저작: ‘각지설법8-2007년 뉴욕법회설법’
[4] 리훙쯔 사부님 시사: ‘홍음2-여래(如來)’

 

원문발표: 2022년 10월 4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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