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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오심은 제거해야만 한다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우리는 대법 수련자이다. 수련인은 정치에 전혀 흥미를 갖지 말고, 사악한 당의 비방과 강요된 죄명 외에는 그것을 말하지 말아야 한다. 하지만 수년간 확실히 일부 수련생이 진상을 알리는 과정에서 법에 부합되지 않고 이지적이지 않은 일부 언행으로 일반인이 우리가 “정치를 한다.”고 오해하게 했다.

비교적 전형적인 예는 다음과 같다. 사악한 당을 언급하기만 하면 많은 수련생의 마음과 표정이 완전 딴사람이 된다. 예를 들어, 좀 전에 다른 일을 말할 때는 그래도 온화한 표정에 평화로운 말투였는데, 사악한 당을 말하기만 하면 즉시 극도의 증오심을 가진 표정으로 변하며, 언성이 높아지고 격렬해진다. 이는 수련생 자신도 의식하지 못한다.

이것은 정말 개별적인 현상이 아니다. 중국에서 수년 전에 해외로 나온 대법제자의 인터뷰 영상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다. 그 여성 수련생은 조용한 지식인 여성상인데, 온화하면서도 생동감 있게 말을 잘하다가 사악한 당과 관련한 화제가 나오자 표정과 말투가 굳어지고 목청이 높아진다. 그 수련생의 전후가 너무 차이가 나서 당시 너무 놀랐다.

이런 상황에 대해 나는 개인적으로 완전히 이해할 수 있다. 많은 수련생은 수년간 사악한 당으로부터 박해를 받아 심지어 가정이 무너지고 생명을 빼앗겼으며, 적지 않은 가족 중 몇 대가 참혹하게 박해당해 심신이 엄청난 압력과 고통, 굴욕과 두려움, 끝없는 쓰라린 피눈물에 휩싸여 있다. 속인으로 말하자면, 그 사악한 당은 정말 뼈에 사무치는 원한이다. 대법제자는 수련하는 사람이다. 제거하지 않은 사람마음은 수련인의 표정이 속인과 아무런 차이가 없게 한다.

속인은 속인이기에 사악한 당에 원한이 있는 것은 문제가 없다. 진상을 알리면서 우리는 사악한 당으로부터 괴롭힘을 당한 사람, 사악한 당을 혐오하는 사람은 흔히 사악한 당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음을 발견한다. 하지만 대법제자는 끊임없이 사람마음과 집착을 제거해야 할 수련인이다. 증오심 등은 사람 마음이 아닌가? 우리가 수련하는 과정에서 모든 사람 마음을 제거해야 원만하지 않겠는가? 생각해보라. 신, 부처, 보살에게 누구를 증오하는 마음이 있겠는가?

수련생은 모두 증오심이 사람 마음이라는 것을 분별할 수 있다. 하지만 사악한 당에 대한 증오는 분별해내기 쉽지 않고, ‘중공 사악한 당이 이러한 죄악을 저질렀는데, 내가 그것을 미워하면 안 되는가?’라고 생각한다. 사악한 당은 아주 나쁘고 그 죄악이 천인공노할 정도로 온갖 나쁜 짓을 다 저질렀다. 하지만 대법제자가 원만한 뒤에 되돌아보면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단지 중생에게 소업을 시켜주고, 대법제자를 도와 사람마음을 제거해 준다는 구실로 구세력이 만들어낸, 변이된 사악한 인간 세상의 기형적인 존재에 불과하며, 배후의 구세력과 사령(邪靈)이 그것을 조종하고 있다. 대법제자는 모두 사부님께서 관여하시고, 또 천룡팔부 등 호법신이 보호하고 있다. 사악한 당이 대법제자에게 온갖 나쁜 짓을 저지를 수 있는 것은 대법제자 사람마음의 뒤에 있는 사악이 틈을 탔기 때문이다.

그럼 우리가 그것을 증오할 때는 우리 자신이 그것과 같이 낮은 층차로 떨어져 사람이 사람을 박해하는 것으로 여기는 것이 아닌가.

이러한 상황 때문에 적지 않은 수련생이 의식하지 못하는데, 사악한 당에 대해 깊은 증오와 원한을 더하면, 우리가 사악한 당의 죄악을 폭로할 때 다음과 같은 상황이 나타난다. 이때는 수련인(미래의 대각자)이 인연이 있는 중생에게 평화롭고 이지적으로 진상을 알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다른 사람에게 사악한 당에 대한 개인적인 원한과 불만을 토로하는 것이 된다. 다른 공간에서 보면, 이때 우리의 입에서 나오는 것이 ‘연화’일 수 있겠는가? 사악과 사령을 해체할 수 있는 고에너지물질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아마 아닐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진상을 알려도 효과가 크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왜 이때 중생(우리의 친지와 친구를 포함)이 듣기 거북해하고, 심지어 어떤 이는 그 자리에서 반대하는가? 당연한 양심(良知)과 동정을 표출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여전히 사악한 당의 편에 서 있는 것 같은데, 어떤 이는 심지어 “누가 당신들에게 정치를 하라고 했는가? 누가 당신들에게 사당과 싸우라고 했는가? 당신들이 이길 수 있는가? 당신들의 비참함은 당신들 스스로가 자초한 것이 아닌가?”라고 말한다.

나는 많은 수련생도 이러한 정황에 부딪히거나 유사한 말을 들었을 거로 생각한다. 어째서인가? 우리가 말을 해서는 안 되는가? 아니다. 이때 우리의 마음이 적절하지 않고 법에 부합되지 않아 우주 특성 ‘진선인(真·善·忍)’에서 멀어진 것이다. 이때 우리는 이미 속인의 경지로 떨어져 증오심이 있기에 우리 이쪽에서 법의 강대한 힘이 체현되어 나오지 못해 세상 사람을 조종하는 사악과 사령을 해체하지 못한다. 사람이 어찌 마와 싸워 이길 수 있겠는가? 게다가 우리가 제거하지 못한 증오심은 비단 사악을 해체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반대로 증오로 이루어진 사령홍마(邪靈紅魔)를 강화시킬 수 있다. 이것은 아주 간단하고도 명확한 이치이다. 그러므로 우리 앞에 있는 중생이 사악의 조종을 받아 그런 말을 할 수 있다.

그 외 수련인의 각도에서 보자면, 사악한 당을 증오하는 것 역시 증오심, 원한심이다. 이 증오심을 제거하지 않으면, 그것은 단지 사악한 당만 증오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조만간 이것저것을 다 증오하게 할 것인데, 그것은 바로 이러한 사악한 생명이기 때문이다. 사악은 당신에게 이 사람 마음을 제거하게 하려고 당신 주위에 당신이 원망을 품을 일이나 사람을 더 많이 나타나게 하는데, 그것은 사악이 틈을 탄 것이 아닌가? 사람들이 당신이 알리는 진상을 듣기 싫어하는 것은 어쩌면 이런 마음이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사실상 당신 앞에 있는 사람은 미래에 당신 세계의 중생일지도 모른다. 이런 중생이 자신들의 자비롭고 지혜로운 주 혹은 왕이 알려주는 진기(真機)와 진상을 듣기 싫어하겠는가? 그것은 자신들이 구도받을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인데 말이다! 우리가 일시적으로 제거하지 못한 사람마음이 그들의 진실한 일면이 드러나지 못하게 방해할 뿐이다.

그러니 우리는 마난과 고난을 뛰어넘어 사악한 당에 대한 증오 등 사람 마음을 제거하는 것을 중시하고, 신불의 자비로운 경지로 승화해 대법이 부여한 끝없는 법력으로 세상 사람을 조종하는 사악을 해체하고, 자비로우면서 지혜롭게 진상을 알려야 한다. 그리고 사악한 당의 죄악을 실질적으로 중생에게 평화롭게 폭로하여 중생이 죄악과 재난에서 멀어져 아름다운 미래를 선택할 수 있게 해주어야 하며, 그렇게 그들의 왕(정법시기의 대법제자)과 함께 위대하신 사부님의 구도를 받아 끝없이 아름다운 신우주로 갈 수 있게 해야 한다.

이런 상태로 진상을 알리면 지혜가 끊이지 않아 하는 말마다 사람들의 마음에 와 닿는다. 우리가 이 문제에서 진정으로 승화하면 사람들도 변한다. 구할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던 사람들도 어쩌면 당신이 알리는 진상을 듣고 싶어 하게 될지도 모르고, 더는 우리가 “정치를 한다.”고 오해하지 않을 수도 있다.

개인의 인식이므로 부족한 곳은 자비롭게 바로잡아 주시기 바란다.

[편집자 주: 본문은 글쓴이 개인의 현재 인식에 따라 작성된 것이므로, 수련생들이 서로 교류하고 ‘비학비수(比學比修)’ 하는 데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원문발표: 2022년 9월 23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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