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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법회] ‘진선인(真·善·忍)’ 미술전 중에서 수련한 체험

글/ 유럽 대법제자

[밍후이왕] 저는 1995년 사부님의 스웨덴 설법반에 참가한 적이 있습니다. 대법은 저에게 전부를 주었습니다. 12년 전, 저는 스웨덴의 ‘진선인(真·善·忍)’ 미술전 프로젝트에 참가했습니다. 오늘 저는 우리 팀이 최근 스웨덴에서 열린 세 차례 미술전 과정에서 수련한 체험을 나누려 합니다.

최근 1년간 우리는 스웨덴에서 전시회를 7회 열었는데 최근 세 차례는 차례로 3월에는 스톡홀름 교외의 부유층 지역인 그루네발트빌란에 위치한 살트헤바덴 별장(Saltsjobaden), 4월에는 웁살라(Uppsala) 대학가 인근의 살 스타 슬롯(Salsta slott), 5월에는 예테보리 인근 공업도시 묄른달(Molndal) 갤러리에서 각각 열렸습니다.

스웨덴 미술전 프로젝트에 참가한 모든 수련생은 매주 목요일 저녁에 온라인에서 만나 함께 법공부하고 교류하며 정체(整體)를 이뤘습니다.

우리 예술팀은 2021년 하계 미술전을 위해 더 중심적인 장소를 찾고 싶었는데 가장 좋은 곳은 예테보리였습니다.

그렇게 하려면 전시장을 찾는 것을 추진해야 하는데 우리 예테보리 예술팀 수련생들은 통상적인 목요일 회의 외에 기타 정기적인 회의와 전화 연락을 해야 했습니다.

우리는 박물관과 갤러리, 그리고 빈 가게도 많이 찾아봤습니다. 때로는 희망적으로 보였으나 나중에는 거절당했습니다. 우리는 안으로 찾아 물었습니다. ‘자신에게 이 방면에 얼마나 큰 소원이 있는가?’ ‘어떻게 서로 더 잘 협력할 수 있는가?’ ‘어떻게 해야 우리는 제고할 수 있는가?’ ‘우리가 어떤 능동적인 행동을 할 수 있는가?’ 우리는 매일 저녁에 발정념을 했습니다. 가을과 겨울이 지나갔지만 우리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장소를 찾는 과정은 우리가 많은 사람에게 진상을 알릴 좋은 기회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예테보리 북쪽의 마스트란드(Marstrand)에서 다시 전시장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연락해보니 7월에 전시하려면 2023년 여름이어야 가능하다는 답변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누군가 전시를 취소하면 알려달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엄청난 열정과 호기심으로 마스트란드시의 첫 번째 전시회를 위해 ‘해변 컨벤션센터 봄 살롱’에 갔습니다. 우리는 그곳 책임자 한 사람과의 면담을 예약했습니다. 놀랍게도 7월 황금 시간대에 취소하려는 전시회가 있었고 우리는 그 해변 컨벤션센터의 갤러리를 임대하기로 했습니다. 우리가 임대할 수 있었던 것은 분명 사부님의 배치라고 생각했습니다. 얼마 후 우리는 전시장 인근에 숙소를 잡았는데 이것도 일반적으로 잡기 힘든 것이었습니다. 모든 퍼즐이 저절로 맞춰졌습니다. 예술팀 수련생마다 모두 마음속으로 공통의 소원을 내보내고 협력을 잘하니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미술전 작품은 소형 화물차로 스웨덴 중부 팔룬시에서 서부 마스트란드시로 싣고 왔습니다. 우리는 43개 작품을 하루 만에 전시해 전시회를 하루라도 더 열려 했습니다. 시간을 맞추기 위해 함께 빠르게 협력해 완성해야 했기에 우리는 모든 임무를 우리끼리 나눴습니다. 전시장은 약 300㎡이었기에 모든 작품을 전시할 수 있었습니다.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우리는 작품을 거는 순서를 미리 계획했습니다. 몇 폭의 대형 작품들은 매우 무거웠는데 우리 팀은 거의 55세에서 75세 사이의 여성들이었습니다. 우리는 아침 8시에 시작해 저녁 10시에 모든 것을 마쳤습니다. 우리는 정말로 함께 정체협력해 모든 일을 하루 내에 마쳤습니다. 우리가 마음에 법을 담고 잘 협력하면 모든 어려움을 기쁘고 쉽게 해결할 수 있습니다.

미술전을 보러 온 사람이 많았는데 주류 사회 인사들도 많이 찾아왔습니다. 모든 관람객은 미술전에서 보고 들은 것에 대해 감사를 표했습니다.

우리는 좋은 기초를 닦았습니다. 현재 어떤 수련생이 예테보리 연례 도서전시회에서 전시회를 하려 하는데 이 과정은 이미 시작됐습니다.

수련생 A: 저는 2년 전 예테보리 남부의 슈타이어시에서 처음 미술전을 봤습니다. 저는 작품의 메시지에 깊이 감동했습니다. 한 가지 소망이 제 마음속에서 움트기 시작했는데 그것은 바로 미술전 가이드가 되어 작품 속 정보를 관람객들에게 전달해 중생을 구할 기회를 얻는 것이었습니다. 일 년 후 제가 미술전 항목에 참가했을 때 그 소원은 현실이 됐습니다.

2022년 봄, 예술팀 수련생들의 노력으로 우리는 스웨덴의 여러 지역에 세 개의 전시장을 대관했습니다. 저는 살트헤바덴 별장 전시회를 자신 있게 기대하며 작품에 대한 설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이 임무에 대해 두렵고 불안했으며 자신에 대한 요구가 매우 높았습니다. 저는 ‘내가 이 임무를 감당할 수 있을까? 내 지식은 충분할까? 나는 가이드를 해본 경험이 전혀 없는데 방문객들의 질문에 답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불안할 때면 남들 앞에서 자신을 숨기는 사람이었습니다. 저는 불안감으로 처음에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저는 막 뒤에 숨어있었는데 한 수련생이 관람객을 안내하라고 저를 밀었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저에겐 필요했습니다. 그렇게 저는 첫 번째 가이드를 시작했습니다. ‘모든 미지의 새로운 사물은 반드시 의지의 행동을 통해서만 실체가 될 수 있다.’라는 명언은 저를 격려했습니다. 저녁이 되면 우리는 하루를 돌아보고 정리했습니다. 두려움과 불안감을 내려놓고 더는 생각하지 않는 것이 큰 도움이 됐습니다. 저는 제가 잘 안착했다고 생각합니다.

수련생 B: 예술팀의 한 수련생이 저를 찾아와 전시회가 끝난 뒤 스웨덴 동부의 살 스타 슬롯에서 스웨덴 서부의 예테보리까지 450km를 운전할 수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원래 차를 몰려던 그 수련생이 곧장 집으로 돌아가려 해서 예테보리까지 차로 갔다가 기차를 타고 돌아와야 했습니다.

제 머릿속에 떠오르는 첫 번째 생각은 ‘안 돼, 난 10년간 운전하지 않았어’였습니다. 그러나 제가 안으로 찾자 ‘내가 감히 운전하지 못하고, 운전을 하고 싶지 않으면 차량이 차량이 살 스타 슬롯에 까지 가지 못한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우리는 무조건 협력해야 하고 지금이 장애를 극복할 기회다.’라고 자신에게 일깨워줬습니다. 제가 그 장애를 극복했을 때 저는 제고됐습니다. 그렇게 저는 자신이 할 수 없다고 생각한 일을 해냈습니다.

전염병 기간에 예테보리의 많은 장소가 방치되어 있었습니다. 우리는 예테보리에서 전시회를 열려는 소원이 있었기에 묄른달 갤러리를 소유하고 있는 글로벌 회사로 간 후 그 회사 여직원에게 연락했습니다. 여러 차례 왕래한 결과 그 회사 이사회에서 진선인 미술전을 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세 개의 다른 장소를 소개받았고 마지막 장소가 가장 좋았는데 바로 묄른달 갤러리였습니다.

그곳은 매우 넓고 아름다운 배경을 갖고 있어 작품을 더욱 돋보이게 할 수 있었습니다. 수련생 간의 협력이 강대한 장을 형성해 많은 관람객이 전시회를 보러 왔습니다.

그 전시회에서 가장 멋졌던 점은 모든 관람객이 기본적으로 전시회 마지막 부분인 ‘비통과 환희의 눈물(悲喜淚)’이라는 작품부터 관람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마도 많은 사람이 시간이 금방 지나간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어느 날 오후 한 사람이 전시장에 뛰어 들어와 “드디어 찾았다!”라고 외쳤던 기억이 납니다. 그러면서 그는 배낭을 바닥에 내던졌습니다!! 그는 페이스북에서 진선인 미술전 광고를 보고 10곳 상점에 물어서야 우리를 찾았다고 했습니다. 그는 이전에 중국, 티베트, 부탄에 다녀왔는데 이번 미술전에 대해 더 많은 정보를 알고 싶어 했습니다. 그는 전시회를 본 후에 그의 아내를 데려와 또 보았습니다.

진상을 알고 나서 관람객들은 방명록에 다음과 같이 적었습니다. “유익한 전시에 감사드리고 전 세계에 중요한 메시지를 전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아름다운 예술에 감사드리나 신념을 위해 자유를 박탈당한 사실에 가슴 아픕니다.”

“이 작품들의 배경 설명을 시간을 내 감동적으로 들려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저도 영감을 받아 파룬궁을 수련해보고 싶고 다른 사람에게 이 메시지를 전하고 싶습니다.”

“이렇게 멋진 전시회에 감사드립니다. 사람들이 작품에 매료되어 때때로 어떠한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감동하고 고무됐습니다.”

“호소력 있는 행사와 정교한 작품으로 사실을 설명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한 가족이 스톡홀름 솔트조바덴 전시회를 참관한 뒤 방명록에 이런 말을 적었습니다. “이 전시회에 대해 멋지고 의미 있게 이야기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주도면밀해 우리는 깊이 감동했습니다.”

일부 관람객들은 아주 오랫동안 머물면서 매 작품을 자세히 보고 설명도 읽었습니다. 그들 얼굴에서 변화를 볼 수 있었습니다.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없었고 그들에게 ‘진선인’의 보편적 가치를 더욱 잘 알게 했습니다.

아버지와 함께 들어온 어린 소년이 전시회를 보고 감동해 방명록에 소감을 천천히 적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이 작품들을 보고 매우 감격했습니다. 작품 속의 위대한 인물을 보는 것은 재미있었습니다. 8살, 2학년인 카렘 미로에게 작품 보여주셔서 감사합니다.”

수련생 C: 수련생들은 스톡홀름 교외에 있는 그루네발트 별장과 웁살라 외곽의 살 스타 슬롯에 두 곳에서 미술전을 신청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두 수련생은 예테보리에서 출발해 전시장을 둘러보고 담당자를 만나려고 먼 길을 떠났습니다. 그 과정에서 많은 시련이 찾아왔습니다. 원래 쓰려던 차가 고장 나서 어쩔 수 없이 차를 한 대 더 빌렸습니다. 두 수련생은 여행 중에 모두 강력한 정화 및 소업 반응을 보였지만 그들을 막지 못했고 오히려 제고하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습니다. 사부님의 배치로 우리는 이 두 곳에서 미술전을 개최하게 됐습니다.

문화와 예술에 관심이 있는 많은 사람이 살 스타 슬롯에 와서 미술전을 관람했습니다. 우크라이나에서 온 많은 방문객과 세계 각지에서 온 사람들이 미술전을 보러 왔습니다. 스웨덴에서 유학 중인 한 젊은 외국 여성은 “저는 이 전시회를 보러 왔는데 여기에 더 높은 경지가 있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녀는 연공을 바로 시작하려고 웁살라에 있는 연공장을 검색했습니다.

수련생 D: 우리는 예테보리에서 스톡홀름 그루네발트 별장으로 가는 화물차를 빌렸는데, 이 화물차는 우리에게 인내를 시험할 많은 기회를 주었습니다.

당일에 작품을 다 걸고 바로 전시회를 개최해야 했기에 우리는 별장 인근에 숙소를 잡았습니다. 하지만 당일에 우리는 아무리 해도 시동을 걸 수 없었고 또 전봇대 두 개가 우리 차의 회전 방향을 가로막고 있어 후진도 할 수 없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우리는 서로 바꿔가며 시도했고 발정념을 했습니다. 우리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고 결국 설명할 수 없는 신기한 방식으로 전봇대를 통과하고 1시간 15분 정도 늦게 도착했습니다.

작품을 걸어놓고 전시회를 배치하는 과정에서도 많은 난관과 시련이 있었습니다. 작품을 들고 계단을 여러 번 오르내리는 과정에서 저는 신발을 잘못 신은 채로 급하게 오르내리다가 발에 무리가 가서 현재까지도 저의 발목은 소업하고 정화하는 중입니다.

그루네발트 별장 전시회가 끝나고 작품을 포장해 웁살라 교외의 살 스타 슬롯으로 옮길 때, 75세 이상의 두 여성만이 그곳에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스톡홀름 수련생 몇 명을 불러서 포장을 돕게 했고 살스타 성에 도착한 다음 다시 포장을 푸는 것도 그들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수련에서 협력이 잘 안 되고 서로 원망할 때 저는 어렵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미술전 기간에 면밀히 협력하는 중에서 사물에 대한 저의 관념이 어렵다고 생각한 것임을 알게 됐습니다. 저는 수련생이나 미술전 가이드들과 오랜 시간 밀접하게 협력하면서 명백해졌고 진정한 자아를 볼 수 있었습니다. 저도 진정한 자신과 더 많이 소통했고 사람들 앞에서 더 겸손하고 더 자비로워졌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수련에 책임을 져야 합니다. 제가 수련하면서 가장 선명하게 느낀 것은 진정한 자신은 표면적으로 변한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부터 변화가 생긴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제 전반 인생에 따뜻함과 자신감을 줬고 사부님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생기게 됐습니다.

수련생 E: 예테보리에서 열린 묄른달 전시회에서는 어린이와 젊은 관객이 예상치 못하게 많았습니다. 10~12세 사이의 용감한 소년 소녀들이 며칠씩 혼자 오거나 친구들과 함께 왔습니다. 성숙한 모습의 한 10살 소녀는 일주일 동안 다른 친구들과 함께 몇 번 왔고 또 한 번은 엄마와 함께 왔습니다. 엄마는 딸이 이 전시회에 푹 빠져있다고 말했습니다. 스무 살쯤 된 한 여성은 눈물을 글썽이며 처음엔 박해 그림을 못 보겠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저와 한참 이야기를 나누고 나서는 비록 중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은 어둠이지만 예술가들은 사람들에게 빛이 어둠보다 더 강하다는 것을 알리고 인간에게 희망을 전하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우리는 때려도 맞받아치지 않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람이 불공평한 대우를 받았을 때 평화롭게 말할 권리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 여성은 결국 광명과 새로운 희망을 안고 떠났는데 얼굴엔 기쁨이 넘쳤습니다.

어느 날 전시회가 끝난 후 우리는 피자를 먹으러 나갔습니다. 한 수련생이 피자 제빵사와 잠시 이야기를 나눴으나 제빵사에게 줄 자료가 없었습니다. 다음 날 그 수련생은 차를 몰고 피자 가게를 지나다가 자료를 갖고 들어가 제빵사에게 주었습니다.

전시가 거의 끝나갈 때 그 제빵사는 가족과 함께 전시회를 보러 왔습니다. 그들은 파룬궁 박해에 대해 몰랐고 파룬궁이 무엇인지도 몰랐습니다. 그들의 한 살 반 된 어린 딸은 불상과 사부님께서 설법하고 계시는 작품을 보면서 얼굴 전체가 빛났고 끊임없이 불상과 사부님께 손을 흔들었습니다.

수련생 F: 지난 일 년간 미술전이 스웨덴 일곱 개 지역에서 열렸습니다. 그것은 관련된 수련생들의 노력, 강화된 수련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또 미술전 협조인인 저도 가정에서 몇 번이나 심성 시험을 겪었습니다.

무엇보다 정이 저에게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을 때 제가 한발 물러설 수 있었던 것은 사부님 말씀이 떠올라 법리적으로 상황을 이해했고 그것이 심성을 제고하는 기회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수련생 여러분 감사합니다!

(2022 유럽 파룬따파 수련심득교류회 원고)

 

원문발표: 2022년 9월 25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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