简体 | 正體 | 대법서적

양리화, 헤이룽장성 여자 감옥서 무참하게 구타로 사망

[밍후이왕] (밍후이 통신원 헤이룽장 보도) 헤이룽장(黑龍江)성 헤이허(黑河)시 쑨우(孫吳)현의 43세 파룬궁 수련자 양리화(楊立華)는 불법적으로 징역 3년을 선고받고, 2019년 11월 5일 헤이룽장성 여자 감옥에서 박해로 사망했다. 감옥 측은 가족에게 양리화의 병세가 위중하다는 통지를 내렸다. 가족이 하얼빈(哈爾濱) 의과대학 제2 병원에 도착했을 때는 그녀는 이미 숨진 상태였다. 사정을 아는 사람의 말에 의하면, 양리화는 2019년 11월 6일 헤이룽장성 여자 감옥에서 무참하게 구타당해 사망했다고 한다.

믿을 만한 소식에 의하면, 헤이룽장성 여자 감옥 8감구 7조에 수감돼 있던 양리화는 2019년 11월 6일 마약범 리위나(李玉娜), 자오둥메이(趙冬梅) 등 죄수에게 무참하게 구타를 당해 사망했다고 한다. 조사에 따르면, 양리화가 감옥의 사악한 관리에 협력하지 않자 8감구 7조 조장 자오리리(矯麗麗)는 그녀가 노역(손으로 일을 하고 있었음)할 때 발로 얼굴을 짓밟고, 리위나와 자오둥메이 등에게 혹독하게 구타하라고 명령했다.

양리화가 구타를 당해 인사불성이 되었을 때, 8감구 대대장 쒀위안위안(索媛媛)이 현장에서 구경하며 그녀가 “죽은 체 한다.”라고 말했다. 사기범 퉁진옌(佟金岩)은 “빨리 병원에 보내세요. 사람이 위험해요.”라고 말했다. 이것은 퉁진옌이 사망하기 2~3일 전 점심 12시에 직접 한 말인데 (2021년 11월 30일쯤), 8감구 602호 감방의 감시카메라로 확인해 볼 수 있다. 퉁진옌은 2021년 12월 1일에서 3일 사이에 사망한 것 같다.

양리화를 박해한 주요 책임자는 8감구 대대장 웨슈펑(岳秀鳳), 쒀위안위안(부대대장), 조장 자오리리, 리위나, 자오둥메이다. 자오리리는 자무쓰(佳木斯) 사람으로 마약을 복용하고 판매한 죄로 징역 15년을 선고받았으며, 형기가 2년 넘게 남아 현재 징역을 살고 있다. 자오둥메이는 치치하얼(齊齊哈爾)사람으로, 마약을 복용하고 판매해 10년 넘는 징역을 선고받았다. 리위나는 하얼빈 사람으로, 징역 10년을 선고받고 징역살이를 하고 있다.

양리화(楊麗華 혹은 楊利華)는 성격이 명랑해 말하기 좋아하고 웃기도 잘했으며, 남에게 친절해 그녀와 교제해 본 적이 있는 모든 사람은 그녀를 참 좋다고 말한다. 마을 사람들은 양리화가 갑자기 죽었다는 것을 알았을 때, 이게 어떻게 가능한지 그렇게 젊은 사람이 어떻게 갑자기 세상을 떠나게 됐는지 모두 너무 안타깝고 억울하다고 생각했다.

中共酷刑示意图:殴打、撞头
중공 고문 설명도: 구타 및 머리를 부딪치기

양리화는 파룬궁 ‘진선인(真·善·忍)’에 대한 믿음을 포기하지 않은 것 때문에 2014년 8월 쑨우현 법원에서 불법적으로 징역 3년을 선고받았고 헤이룽장성 여자 옥에서 잔혹한 박해를 당했다. 감옥에서 그녀는 체벌 및 혹독한 구타를 당해 피골이 상접할 정도로 여위어 허리를 펴지 못하고 걷기도 힘들었다. 2017년 8월 출소해 집에 돌아온 지 3개월 만에 양리화는 친구에게 급히 일자리를 구해달라고 부탁했다. 건강을 아직 회복하지 못했지만, 주유소에서 차에 기름을 넣는 일을 하여 가정의 경제적 어려움을 해결했다.

주유소에서 정상적으로 근무하고 있을 때 양리화는 쑨우현의 파출소 소장 쑨스쥔(孫世軍)에게 발견됐다. 쑨스쥔의 강제적 명령으로 이 직장에서 양리화는 이유없이 해고됐다. 파룬궁수련자 취융샤(曲永霞)도 이 사실을 알고 너무 불공정하다고 생각하여, 양리화와 함께 정법 부서와 민원 부서에 가서 합리적으로 상황을 설명했지만, 온갖 난처함과 회피를 당했을 뿐 해결할 방법이 없었다. 그들은 현재 국가 공무원의 행위에 위법적이고 범죄 혐의가 있음을 법률 규정을 제시하며 관련 요원들에게 이해시키려 했다.

그 결과 정부 관계자들은 취융샤와 양리화가 정부를 떠들썩하게 하고 파룬궁을 홍보했다고 말했다. 2017년 11월 17일 그들은 민원 사무실 문 앞에서 현 공안국 경찰에게 불법적으로 체포당했다. 2017년 12월 26일 쑨우현 법원에 의해 ‘사교 조직을 이용해 법 집행을 파괴한다.’는 혐의로 불법적으로 징역 3년과 4년을 각각 선고받았다.

2019년 11월 6일 가족들은 하얼빈 여자 옥으로부터 양리화가 병이 나서 병원에 있다는 전화를 받았다. 그녀 남편과 남동생 및 올케는 급히 차표를 끊어 하얼빈으로 향했다. 그러나 바로 그날 오후에 감옥 측은 다시 전화를 걸어 양리화가 이미 위험하다고 말했다. 가족들이 하얼빈 의과대학 제2병원에 도착했을 때 그녀는 이미 숨진 상태였다.

하얼빈 의과대학 제2병원에서 양리화의 가족들은 무슨 원인으로 이렇게 젊은 사람이 이렇게 빨리 죽었는지 진료기록을 보려 했다. 그러나 경찰은 가족에게 진료기록을 주지 못하게 하고 단지 경찰이 진료기록을 들고 보여주며 세세한 내용을 볼 수 없게 했다. 가족은 양리화의 몸이 시퍼렇게 멍든 것을 보고 부검을 요청했다. 경찰은 이유를 찾아 속이면서 부검을 하려면 오랜 시간이 걸리는데, 상부에 보고해 승인받으려면 몇 달이 걸릴지 모른다고 말했다. 가족들은 아는 것이 많이 없어 시신 화장에 사인을 할 수밖에 없었다.

 

원문발표: 2022년 9월 20일
문장분류: 중국소식>박해사망사례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2/9/20/449842.html
简体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2/9/20/44984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