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징신(淨心)
[밍후이왕] 요즘 가정에서 늘 뜻하지 않은 일에 부딪혔는데 기분이 상하면 부모님께 화까지 낸다.
사실 80대 부모님을 돌보기 위해 노인들과 함께 산 지 4년 가까이 됐다. 이 4년 동안 나는 아버지의 많은 행동이 눈에 거슬려서 늘 화를 냈다. 겉으로 드러난 현상으로 보면 아버지에게 생활 습관이 좋지 않고 위생을 소홀히 하는 등 나쁜 버릇이 있다. 식사할 때도 내가 참고 용서할 수 없는 버릇이 있는데 아무리 말해도 고치지 않는다.
정진할 때는 아버지께서 내 심성을 제고시켜 주고 있음을 알며 법을 배우는 가운데 일부 법리도 터득했다. 심성의 고비를 넘길 때마다 이번엔 원망하는 마음을 버릴 수 있을 거로 생각했다. 그러나 한동안 지나서 원망하는 마음이 다시 솟구쳐 올라왔고 여러 번 반복했다. 특히 최근에는 어머니에게 화를 내고 매몰찬 말로 상처를 입히기도 했다. 뒤늦게 사과했지만, 그 층차를 벗어나지 못하고 원망의 뿌리를 버리지 못하는 것이 괴로웠다.
최근 수련생의 추천으로 밍후이 특집 기사 총집 ‘당문화 제거’ 시리즈 강좌를 듣고 많은 깨우침을 받았다. 듣고 보니 당문화가 없는 줄 알았던 내가 사실은 당 문화가 발효돼 내 관념으로 바뀐 그것을 자신이라고 생각했다. 당문화가 형성한 사유 관념은 이미 머릿속에 깊이 뿌리박혔을 뿐만 아니라 수십 년 동안 가볍거나 무겁게 나를 통제해 왔다. 대법을 수련한 후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쟁투심, 원망심, 남을 무시하는 마음, 독선적인 마음 등이 수시로 나타나 나를 방해하고 있었다.
내가 진심으로 그것들의 뿌리를 찾았을 때, 사부님께서 내게 약간의 기억을 열어 주셨다. 나는 갑자기 어릴 적 우리 마을 남쪽 숲에서 보았던 그 투쟁대회가 생각나며 마을의 간부 J 씨를 비판 투쟁하던 일이 어렴풋이 기억났다. 그때 나의 어린 마음에 큰 충격을 주었고 나의 사유도 오도되었다.
그 일을 정확하게 재현하기 위해서 나는 어머니에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다시 물었다. 원래 ‘문화혁명’ 때 대대 서기는 다른 한 패거리 사람에 의해 비판 투쟁을 당하는데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들까지 무대에 올라 아버지를 고발하고 선을 분명히 그어 아버지와 결별하게 했다. 그 투쟁대회는 공사에서 조직한 것인데, 전 공사의 각 대대에서 모두 사람이 왔고, 우리 마을의 어른과 아이들이 모두 구경하러 갔었다. 그때 나는 몹시 두려웠다. 왜냐하면 나와 같은 또래의 소년이 무대에 올라 아버지와 선을 분명히 긋겠다고 외쳤을 때 나는 아버지도 ‘반동파’라고 비판받으면 나도 선을 분명히 긋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릴 때부터 급진적이었던 나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때 나는 비판받는 것은 나쁜 사람이고, 나쁜 사람과 결별하면 좋은 사람임을 증명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좋은 사람, 나쁜 사람에 대한 이해는 (사악한) 당이 누가 좋다고 하면 누가 좋을 것이라며 사악한 당의 말만 들었다. 부모보다 사악한 당과 더 가까웠다.
열몇 살 된 아이의 마음속에 “아버지와 선을 분명히 긋겠다”라는 씨앗이 뿌려졌다고 생각해보면 부자, 부녀 관계는 어떠할까? 전통적인 부모의 자애와 자식의 효도가 있을까? 아버지를 비판하며 명백히 선을 긋겠다는 생각은 대역무도가 아닌가? 한 사람의 도덕 수준이 자신의 신분과 일치하지 않으면 근본을 혼란 시킬 수 있다. 이것이 내가 지금 부모에게 화를 내고 책망하는 근원이다.
어르신을 존경하고 효도하는 전통문화가 끊기게 됐다. 비록 우리가 대법에서 충(忠), 효(孝), 염치(恥)를 되찾았지만, 당문화에 의해 형성된 잘못된 관념을 뿌리째 제거하지 않으면 그것이 거기에 가로놓여 수련인의 하늘로 돌아가는 길을 막고 있어 반본귀진(返本歸真)할 수 없다. 나는 이십여 년을 수련하고 나서야 이 마(魔)의 뿌리를 찾았는데 그 수련하지 않은 속인들은 자신이 무슨 잘못을 했는지 더더욱 모를 것이다.
처음 이 뿌리를 발견했을 때, 나는 속으로 매우 자책했다. 요 몇 년간 수련하지 않은 듯이 마음이 허전하고 심신을 가눌 수 없이 소극적이었다. 다시 생각해보니 더는 마귀의 속임수에 넘어갈 수 없고, 수련하지 않았다면 여기까지 올 수 없었을 것이다. 물에 담긴 더러운 물 한 병처럼 한 번에 조금씩 쏟아 버리고 다 버려지면 뜰 것이다. 그것은 마지막 한 번에 다 버린 것이 아니라, 앞에서 한 번씩 버려진 것이 모두 마지막을 위해 복선을 깔아 둔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너무 늦게 깨달아 소중한 시간을 많이 낭비한 것이 아쉬울 뿐이다.
나도 예전에는 ‘진선인(真·善·忍)’를 입에 달고 살았으나 중요한 때가 되면 잊어버렸다. 그 원망하는 마음이 솟구쳐 오르면 한 덩어리 굳은 물질이 다른 사람과 소통하는 통로를 가로막고 있었는데 지혜가 없는 억지로 부딪치는 다투는 마음이었다. 충돌 이후 양측 모두 상처를 입게 돼 해결은커녕 갈등의 골이 깊어질 가능성이 크다.
지금 나는 약간의 지혜가 생긴 것 같다.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을 보면 반박도 삼키지도 않고 그냥 내버려 둔다. 나는 이것이 자연스럽게 되어 감에 따르는 것으로서 상대방이 자신의 언행을 자연스럽게 표현하게 한다. 만약 정말로 잘못이 있다면, 어떤 관념도 가지고 있지 않은 선의로 상대방에게 도리를 설명하거나 그 일을 하는 더 좋은 방법을 알려준다.
남을 비난하고 강요하는 마음을 버리고, 상대방이 완고하고 자기 의견을 전혀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화를 낼 필요도 없다. 왜냐하면 세속의 생명은 복잡하고 다양하며 사람마다 독특하기 때문이다. 남을 강요함은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이며, 남들은 모두 내게 순종해야 하고, 내 말대로 해야 하는 등의 횡포한 행위이다.
사실이 증명하다시피 남을 통제하려는 시도는 어리석은 당문화 행위로, 이를 포기해야만 대법의 지혜를 받아들일 수 있다.
이 일을 통해 나는 다른 사람에게 길을 양보함은 나 자신에게도 한 층의 공간을 넓힌 것이므로 그래서 “한 걸음만 물러서면 더없이 넓은 세상”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면서 자신의 마음이 부드럽고 상서로워지는데 이때 드러나는 것이 비로소 진선인 임을 깨달았다.
과거 왜 당문화 제거에 관한 교류의 글을 보지 않으려 했는지 이제야 알았다. 그것은 당문화 사유 뒤에 있는 마귀가 나를 통제하고 있어 내가 보면 대법이 그것을 해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자신이 좋아하고 싫어하는 선택은 그 배후에 사람의 마음, 마귀의 조종하에 형성된 관념이 있기에 앞으로 배척하려는 생각이 떠오르면 가볍게 넘기지 말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은 지속적으로 악마에게 영양을 공급하게 될 것이다.
스스로 파룬따파(法輪大法) 제자인 줄 알지만, 내심은 제자가 아니기 때문에, 초래된 마난(魔難)에서 사부님과 신들도 우리를 보호할 수 없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 문제에서 불합격으로 우주의 진선인의 요구에 이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법은 엄숙하고 무정(無情)하다. 다만 제자가 확실히 표준에 도달해야 사부님께서 인정하시고 사부님과 함께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
원문발표: 2022년 8월 20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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