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밍후이왕](밍후이왕 특파원 랴오닝성 보도) 중공 당국의 고문으로 건강 손상된 랴오닝성 파룬궁수련자 장궈유(張國友)가 석방 3년 후 결국 사망했다.
랴오닝성 푸순(撫順)시 신빈(新賓)현에 사는 장궈유는 2019년 파룬궁을 수련한다는 이유로 불법적인 3년 형을 받았고 복역 후 석방됐다. 석방 당시 그에게는 전신부종, 호흡곤란, 심부전 증세가 있었다. 그는 건강 문제로 3년간 고통 속에서 버티다 2022년 8월 5일, 76세 나이로 사망했다.
파룬따파로(法輪大法)도 알려진 파룬궁은 5가지 동작으로 구성된 심신수련법이다. 1992년에 대중에게 소개돼 곧 전국으로 빠르게 퍼졌다. 그 전례 없는 인기로 중국공산당원보다 수련자 숫자가 많아지자 전 중국공산당 당수 장쩌민은 1999년, 중국에서 파룬궁을 근절하기 위해 전면적인 탄압을 명령했다.
이후 장궈유와 그의 부인 리웨칭(李月淸), 다른 많은 파룬궁수련자들은 지속적으로 납치, 괴롭힘, 학대, 투옥, 고문을 당해왔다.
2015년, 중국 최고인민법원과 최고인민검찰원은 일반 시민도 형사사건의 원고가 될 수 있다고 발표하고 접수된 불만사항의 등록 및 처리를 보장했다. 그러자 법적 권리를 행사하기 위해 많은 수련자는 박해 책임자 장쩌민을 고소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당국은 많은 수련자를 납치하고 형을 선고했다.
2015년 6월 26일, 장궈유와 랴오닝성 신빈현의 다른 지역 6명 수련자인 장푸춘(張富春), 궈칭펑(郭慶鳳), 옌광링(閆廣玲), 왕추이롄(王翠蓮), 덩위칭(鄧玉淸), 쑨슈전(孫秀珍)은 장쩌민을 고소하는 우편물을 발송하기 위해 지린성 퉁화(通化)현 싼커위수(三棵榆樹)진 우체국에 갔다.
경찰은 그들을 싼커위수 경찰서로 데려갔다. 퉁화 국보대대장 왕이관(王義冠)은 그들을 심문하고 협박했다.
다음날 신빈현 경찰의 지휘하에 퉁화현에서 온 경찰이 수련자들의 집을 불법수색했다. 수련자들은 경찰서에서 하룻밤을 보낸 후 오후에 퉁화에 있는 구치소로 옮겨졌다.
7월 17일, 장궈유와 옌광링은 각각 1만 위안을 보석금으로 내고 풀려났다.
집으로 돌아온 장궈유는 구치소에서 당한 학대로 피를 토하기 시작했다.
2015년 10월 14일, 퉁화현 검찰은 장궈유, 장푸춘, 덩위칭과 옌광링을 기소했다. 다른 3명의 수련생 궈칭펑, 왕추이롄, 쑨슈전은 기소가 취소돼 훈방 조치됐다.
2015년 11월 23일, 기소된 수련자 4명은 퉁화현에서 재판에 넘겨졌고 2016년 3월 28일, 재판을 맡은 판사 위양(于洋)에 의해 각각 3년 형을 선고받았다. 먼저 보석으로 풀려난 장궈유와 옌광링은 3월 31일, 퉁화 구치소에 다시 감금됐다.
장궈유가 항소하지 못하도록 구치소 경찰은 그를 속여 “나는 판결에 동의하며 항소하지 않겠다”라는 글을 쓰게 했다. 장 씨가 나중에 정신을 차리고 쓴 글을 다시 보자고 했으나 경찰은 돌려주지 않았다.
그는 항소하기 위해 필요한 판결문을 돌려받지 못했다. 박해에 저항해 그는 2016년 4월 5일, 단식 투쟁을 시작했다.
이후 장궈유와 덩위칭은 궁주링(公主嶺) 감옥으로 보내졌다. 장푸춘은 지린 감옥으로 이감됐으며 옌광링은 지린성 여자 감옥으로 보내졌다.
2019년 장궈유가 출소했을 때 그의 건강은 심각하게 악화돼 3년 후 사망했다.
과거에 당한 박해
장 씨와 그의 부인은 1997년부터 파룬궁 수련을 시작했다. 그 전에 그는 가끔 피를 토하고 활력이 없었다. 그의 부인도 신장 결석, 경부 골증식증, 좌골신경통을 포함해 질병이 많았다. 두 사람은 모두 수련 후 건강을 되찾을 수 있었다.
2000년 9월 14일 밤 9시, 경찰이 장 씨의 집을 찾아와 아직도 파룬궁을 수련하느냐고 물었다. 장 씨는 수련 덕분에 건강이 회복돼 중단하지 않겠다고 대답했다. 경찰은 그날 밤 그를 납치해 경찰서에 하룻밤 구류하고 다음날 지역 구치소로 데려갔다.
두 달 반 감금 기간, 장 씨는 인근 마을에서 쌀을 수확하는 강제노동을 했다. 보석금 1만5천 위안, 벌금 500위안, 식비 150위안을 낼 것을 강요받은 그의 부인은 가족 농장에서 기르는 가축들을 팔아야 했다.
2002년 2월 18일, 장 씨와 그의 부인은 파룬궁 진상자료를 만들다 누군가의 신고로 경찰에 납치됐다. 경찰은 300위안의 돈을 부인 리 씨의 여동생으로부터 갈취하고 부부를 훈방 조치했다.
2002년 3월 21일 새벽 4시, 장 씨는 또다시 납치됐다. 경찰이 구타해 그의 코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구치소로 보내진 장 씨는 수감자인 왕 모가 구치소 규율을 암송하라고 명령했으나 따르지 않았다. 그러자 왕 모가 장 씨의 엉덩이를 세게 걷어차는 바람에 장 씨는 한 달간 다리를 절뚝거려야 했다.
구치소에 감금된 지 한 달 후, 장 씨는 우자바오쯔(伍家宝子) 노동수용소로 보내졌다.
끝끝내 파룬궁을 포기하지 않았던 그는 그곳에서 3년간 온갖 종류의 고문을 받아야 했다.
원문발표: 2022년 8월 16일
문장분류: 중국소식>박해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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