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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촨 펑저우시 리지후이, 박해로 사망

[밍후이왕] (밍후이 통신원 쓰촨 보도) 쓰촨(四川)성 펑저우(彭州)시 룽펑(隆豐)진 파룬궁(法輪功) 수련자 리지후이(李吉慧.여.61)는 2022년 1월 20일 청두(成都)시 안징(安靖) 구치소 고문박해로 사망했다.

감옥, 노동교양소(강제노동수용소), 구치소 등 중공(중국공산당) 구금 시설에서는 파룬궁 수련자에게 혹독한 고문박해를 가해 죽음에 이를 경우 책임을 떠넘기기 위한 수단으로 가족에게 신병을 넘기는 수법을 이용해 왔다. 그러나 청두시 구치소는 리지후이의 생명이 위급함에도 병 치료를 위한 병보석을 해주지 않았고, 결국 리지후이가 사망하자 구치소 측이 장례비용 등 일체 비용을 부담했다. 이는 구치소 측이 스스로 사망의 책임을 인정한 셈이다.

리지후의 고문박해 사망 경위

리지후이는 1961년 생으로 쓰촨성 펑저우시 룽펑진 주룽(九隴)촌 6조 거주자로, 2021년 3월 1일 펑저우시 융딩창(永定場)진 사람들에게 파룬궁 진상과 중공 전염병을 퇴치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과정에서 진상자료를 한 사복경찰에게 전해주다가 현장에서 납치되어 단징산(丹景山) 파출소로 끌려가 조사받은 뒤 청두시 구치소에 감금되었다. 이후 리지후이는 파룬궁진상과 전염병 퇴치 방법을 사람들에게 알려준 것은 죄가 되지 않으므로 단식으로 박해에 항의했다.

2021년 10월 심각한 빈혈 증세가 나타나 보석치료를 요구했지만 들어주지 않던 구치소가 2022년 1월 상순 리지후이의 딸에게 “어머니의 병이 위급하다.”라는 연락을 했을 뿐 보석 치료 요구는 들어주지 않았다.

2022년 1월 중순 구치소 측이 딸에게 “어머니의 병 치료를 위한 보석절차를 진행하라.”라는 연락을 했고, 딸은 “우리는 돈이 없다. 어머니를 병들게 한 것은 구치소 책임이니 병보석과 함께 치료비를 구치소가 책임져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구치소 측은 거부했다.

결국 리지후이는 며칠 뒤인 1월 20일 청두 질병통제예방병원 10병원에서 사망했고, 삼일 후인 1월 23일 시신을 화장해 장례를 치렀는데 화장비, 안장비, 골분 상자, 차량 비용 등 일체 비용을 청두시 구치소 측이 부담했다. 시신을 화장할 때 단징산 파출소 경찰은 무슨 이유인지 리지후이의 딸, 남동생, 여동생 등을 참관시켰다.

리지후이의 노동교양처분과 징역 10년

밍후이왕 보도에 의하면 중공이 파룬궁을 박해하기 시작한 이후 리지후이는 불법적으로 중공에 납치되어 여러 차례 노동교양처분과 징역 10년 형을 선고 받고 감금되어 박해 당했다.

2001년 12월 21일 수련생과 함께 베이징 톈안먼 입구에서 현수막을 펼치고 “파룬따파(法輪大法)는 정법이다. 나의 사부님께서는 결백하시다.” 등 구호를 외치다가 경찰에 납치되어 12월 23일 펑저우시 주룽진 파출소 경찰에게 인계되고 구치소에 감금되어 박해 당했다.

2002년 불법적으로 납치되어 노동교양처분으로 감금되어 고문박해 당했고, 정신적 충격과 괴롭힘을 당하던 남편은 울분을 삭이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이 사건의 정황을 잘 아는 사람은 밝혀주기를 바람).

2007년 6월 12일 오전, 펑저우시 국보대대, 관커우(關口) 파출소 경찰, 룽펑진 치안순라대, 현지 불법조직원 등에게 납치되어 룽펑진 치안순라대 사무실에서 4~5명에게 피가 날 때까지 집단 구타당했고 또 계속해서 벽면을 마주해 세워놓고 전신에 물을 끼얹는 등 온갖 고문을 가하며 가오산(高山) 노동개조대로 보내겠다고 위협했다. 그녀는 “나는 그곳에 가지 않는다. 나는 좋은 사람이다. 그곳은 악인을 가두는 곳이고, 부패분자들을 보내는 곳이다. 당신들은 부패한자를 잡지 않고, 왜 당신들을 구하려는 나 같이 좋은 사람을 납치하는가!”라고 항변했다.

2008년 6월 3일 오후, 펑저우에서 후난질병통제센터 요원에게 진상을 알리다가 신고 당해 6월 4일 오전 펑저우시 국보대대, 관커우 파출소 경찰 등에게 납치되어 세뇌반에 감금되어 박해당하다가 다시 펑저우시 구치소로 이송되어 수갑과 족쇄가 채워져 장기간 감금되었다.

中共酷刑刑具:手铐脚镣
중공 고문 형구: 수갑 족쇄

리지후이가 납치될 때 집에는 16세 딸 리야(李婭)만 있었다. 홀로된 딸은 생활비가 없었으므로 학비는 더 말할 나위도 없었는데, 정부는 주민에게 지급하는 ‘512대지진 보조금’ 조차도 주지 않았다. 굶어죽게 된 어린 딸이 전에 안면이 있던 정부관계자 마샹유(馬相友)를 찾아갔지만, 만나주지도 않았다. 결국 딸은 외가댁으로 보내졌다.

2009년 3월 18일, 리지후이는 펑저우시 법원의 불법적인 재판에서 징역 10년형을 선고받고 쓰촨 여자감옥에 감금되어 고문박해 당한 후 2018년 6월 3일 출소했다.

(박해 관련 기관 및 박해자 정보는 원문참조 바람)

 

원문발표: 2022년 7월 16일
문장분류: 중국소식>박해사망사례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2/7/16/44630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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