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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무 중 환자와 가족에게 대법 진상을 알리다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나는 1996년에 대법을 수련해 줄곧 감성적으로 법을 인식하고 법이 좋으며 사부님이 좋다고 생각했다. 사부님께서 발정념을 알려주셔서 나는 발정념을 했고 사부님께서 사람을 구하라고 하셔서 친지와 친구에게 진상을 알려줘 삼퇴(중공의 3대 조직인 공산당, 공청단, 소선대 탈퇴)를 시켰으나 자신의 사명과 수련의 엄숙함을 알지 못했다.

2009년 말, 수련생인 어머니에게 엄중한 병업 가상이 나타났다. 이 사건은 내게 비로소 수련이 매우 엄숙하다는 것을 깨닫게 했고 비로소 진정으로 착실히 자신을 수련하게 됐다.

1. 자신을 착실히 수련하다

나는 국내 유명한 병원 의사로 매일 업무 강도가 높다. 월요일에서 금요일까지 종일 외래진료가 아니면 수술을 하며 정상적으로 퇴근할 수 있는 날은 드물다. 주말도 병원에 가서 회진해야 한다. 때로는 주말에도 당직과 야근 수술을 해야 한다.

저녁에 퇴근하면 어머니 집에 가서 함께 법공부를 하고 또 어머니의 생활을 돕는다. (어머니 스스로 생활할 수 없기 때문) 밤 10시에 집에 돌아온 후 자정까지 법공부를 하며 발정념을 마치고 잔다. 일찍이 3시 40분에 일어나 다섯 가지 공법을 연마한다. 매일 3시간 남짓 자지만 여태껏 게을리하지 않았다. 사부님의 보호가 있어서 지치는 것을 느끼지 못하고 활력이 넘쳤다.

2013년 초, 가족이 세상을 떠나 나의 안일을 추구하는 마음이 올라왔다. 수련은 또 나태해지기 시작했다. 속으로 사부님께 청했다. ‘제게 법학습 팀이 있어야 정법 노정을 따라갈 수 있습니다.’ 이렇게 생각하자 며칠 안 되어 한 수련생이 우리를 위해 법공부 팀을 만들었고 이렇게 사부님의 안배로 내게 법공부 팀이 있게 됐으며 수련생들과 정체(整體)를 이뤄 평온하게 오늘까지 걸어왔다.

법공부 팀에서 나는 많은 사람 마음을 없앴다. 예를 들면 막 법을 읽기 시작할 때 잘못 읽어 체면을 잃을까 두려워하는 마음 등이다. 수련생들 모두 휴대전화로 진상을 알리고 사람을 구해서 나도 참가했다. 때로는 밤 퇴근 때 버스를 타고 음성 전화를 걸며 막차를 타고 집에 돌아간다. 때로는 거리를 걸어가며 음성 전화를 계속 거는데 두려운 마음이 갈수록 적어졌다. 또 사람이 살지 않는 나의 다른 집에서 음성 전화를 걸었다. 이렇게 법공부를 하면서 사람을 구할 수 있었다.

2015년 장쩌민을 고소하는 추세에서 수련생들과 교류했다. 이것은 정법 노정이 새로운 단계에 이른 것이라고 했다. 나도 실명으로 장쩌민을 고소하는 중요성을 인식했다. 나 같은 수련생들은 99년 ‘7·20’에 걸어 나와 자아를 내려놓고 두려운 마음을 제거한 기회가 없었음을 깨달았다. 나는 생각했다. ‘장쩌민 고소을 두려워할 게 뭔가, 박해를 두려워하는데 그것은 100% 신사신법(信師信法)하지 않는 것이다. 사부님께서 하라고 하신 일은 반드시 제일 좋은 것이다. 사부님께서 날 박해받게 하시겠는가? 이런 안배가 없으니 나는 사부님께서 안배하신 길을 걷겠다. 사부님께서 어떻게 하라고 하시면 나는 그렇게 하겠다.’

고소장을 다 쓰고 전화번호를 추가해 신분증을 봉투에 넣고 우체국에 가려 했는데 귀찮은 마음이 들었다. ‘나는 반드시 이 마음을 닦아야 한다, 반드시 가야 하므로 이 귀찮은 마음을 제거해야 한다’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발정념을 하면서 우체국으로 가 순조롭게 일을 마쳤으나 배달 증명서를 받지 못했다. 우리 법공부 팀 수련생이 두 번째로 부쳐줬다. 이번에는 고등법원의 배달 증명서를 받았다. 만약 사부님의 안배이신 이 법공부 환경이 없었다면 나는 아마 또 뒤처졌을지도 모른다.

우리 법공부 팀은 7년을 걸어왔다. 여기서 나는 얻은 게 많다. 나는 이전에 법을 암기하면 좋다고 들었지만, 학교에 다닐 때 암기가 힘들어 암기할 수 없었다. 우리 법공부 팀은 법을 배우기 전에 매 사람이 두 단락 법을 외운 후, 매 사람이 다시 두 단락 나누어서 집에 돌아가 익숙하게 외운다. 다음에 다시 암기하고 암기를 통해 내 심성은 높아졌다. 법암기를 많이 했을 때는 일을 하면 늘 법과 대조할 수 있었다. 일과 마주할 때 참을 수 있고 삼퇴를 권하기도 쉬웠다.

2020년 전염병 기간에 도시를 봉쇄해 법공부 팀 수련생의 집도 봉쇄됐다. 나는 법공부 팀을 멈출 수 없다고 생각해 미리 수련생에게 연락했다. 수련생은 봉쇄 지역 밖에서 날 기다리고 있었다. 그의 차를 타고 봉쇄 지역으로 들어갔는데 다른 수련생이 발정념하고 사부님의 가지(加持)로 수련생 집에 도착했다. 나는 법공부 팀을 잠시 우리 집으로 바꾸자고 제의했다. 우리 집은 아파트단지가 아니기에 카드로 건물 출입문이 한 개 있을 뿐이라 안전했다.

집에 돌아와 남편에게 말하니 그는 동의하지 않았다. 나는 그와 쟁론하지 않았고 사부님께서 결정하신다고 생각했다. 법공부를 하려고 할 때 남편에게 말했다. “우리 법공부 팀은 몇 사람 안 되는데 우리 집이 안전해요. 당신이 동의하지 않아도 법공부를 멈출 수 없으니 수련생 집에 가겠지만 확실히 불편해요.” 남편도 아무 말 하지 않았다. 이렇게 우리 법공부 팀은 전염병 기간에 우리 집에서 법공부를 했으며 봉쇄가 풀려서는 다시 이전 집으로 갔다.

전염병 기간에 우리 수련생은 함께 할 수 있어서 사람 구하는 자료가 끊이지 않았다. 수련생이 전염병 기간에 스티커를 만들어 나는 건물 복도에 붙였다. 전염병이 오자 사람 구하는 긴박함을 느껴 나와 우리 팀의 한 수련생은 법공부를 마친 후 주택단지 건물 복도에 진상 스티커를 붙여 사람을 구했다.

2. 환자와 그들 가족에게 진상을 알리다

나는 의사여서 만나는 사람이 많아 인연 있는 환자와 그들 가족에게 진상을 알려 대법의 아름다움을 전해줬다. 여기에서 작은 이야기를 몇 가지 하겠다.

한 군 장성이 당뇨병으로 망막 병변을 앓았다. 오른쪽 시력은 손이 움직이는 것만 볼 수 있었는데 수술치료를 해야 했다. 외래 의사가 나를 그에게 소개했다. 그는 병실에서 날 찾았다. 내가 그의 눈을 검사하고 병세를 설명했다. 마지막에 나는 말했다. “오른눈은 반드시 수술치료가 필요한데 다른 선택은 없습니다. 당신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어디에서, 누구를 찾아 수술할 수 있는지 뿐입니다.” 그는 말했다. “나는 당신에게 수술할 것이고 당신을 속이지 않습니다. 유명한 주임에게 진찰받았으나 나는 걱정돼 그에게 수술받고 싶지 않아요. 당신 외래 주임의 추천으로 나는 시험 삼아 온 것이고 저는 당신에게 수술받는 것으로 결정했어요. 당신과 그는 달라요. 당신은 진심으로 환자의 각도에서 문제를 생각하고 병세를 자세히 설명해요.”

그 후 만나는 중에 내가 파룬궁을 수련하는 사람이라는 것과 대법의 아름다움을 그에게 말했다. 그는 삼퇴했고 ‘전법륜(轉法輪)’과 사부님의 다른 설법을 청했다. 나는 그를 수술해줬고 수술은 순조로워 수술 후 시력 회복이 1.0에 이르렀다. 수술 후 1주가 지나자 그는 자기 차를 운전해 부대로 돌아갔다. 지금 그는 시간이 있으면 사부님의 설법을 듣고 부대에서도 승진했다. 이는 모두 진상을 알아 복을 받은 것이다.

네이멍구 자치구에서 온 한 환자가 있었는데 그의 양 눈이 현지에서 수술에 실패해 그의 누나가 부축해 내게 보러온 것이다. 내가 그에게 두 번 수술해줬다. 두 번째 수술 후 시력이 0.3으로 회복돼 그는 매우 기뻐했다. 그 후 그와 그의 누나에게 대법 진상을 알리자 그들의 가족 10여 명이 모두 삼퇴했다.

때로는 환자와 가족에게 진상을 알려도 삼퇴하지 않는 경우가 있는데 그들 중 어떤 이는 “당신이 이런 이야기를 할 줄 몰랐어요.”라고 말했다. 그래서 집에 돌아가 마음을 가라앉히고 자신을 찾아보니 법공부가 부족해 조성된 것이었다.

나 역시 내 동료, 친구와 학생에게 진상을 알렸다. 매우 우수한 학생이 있었는데 나와 3년을 공부하고 그녀는 내 사람됨과 학식을 매우 인정했다. 하지만 내가 여러 번 진상을 알려줬으나 그녀는 받아들이지 않았고 졸업 후 다른 도시로 갔다. 나는 출장 가서 특히 그녀를 만났는데 목적은 그녀에게 진상을 알려줘 그녀의 평안을 지키는 것이지만 그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올해 전염병 기간 나는 또 그녀에게 평안을 지키라고 전화했다. 그녀는 마침내 공산당 조직에서 탈퇴해 평안을 지켰다.

나는 의료팀을 이끌고 있다. 나는 교수이지만 무슨 일이든 먼저 다른 사람을 배려한다. 내가 이끄는 의사들을 생각해 장려금에서 그들이 더 받게 하고 나는 적게 가지며 이익에서 다투지 않는다. 업무상에서 아낌없이 그들에게 가르쳐주고 그들이 학습할 기회를 만들어줘서 모두 나와 함께 일하길 원했다. 내 팀의 구성원 모두 삼퇴했고 마음속으로 모두 파룬따파가 좋음을 안다.

나는 환자를 대하는 것도 가족과 같다. 곳곳에서 그들의 각도에서 문제를 사고한다. 내가 하는 검사도 적은 돈을 들여 진단하고 환자의 사례금을 받지 않기에 환자들은 특별히 나를 신임한다. 어떤 환자는 내가 그에게 진상을 알려주면 그는 말한다. “선생님, 당신이 뭘 말해도 저는 믿어요. 집에 돌아가 파룬궁을 수련하는 이웃에게 파룬궁을 배우겠어요.” 어떤 환자는 말한다. “주임님은 왜 거드름을 피우지 않으시죠? 다른 의사와 달라요.” 때로는 나는 환자가 내게 사례금을 주는 때를 이용해 그들에게 진상을 알려주면 일반적으로 모두 삼퇴한다.

20여 년 수련의 길에서 비틀거리며 오늘까지 왔는데 사부님의 보호가 없었다면 내 모든 것이 없는데 사부님께서 인연 있는 사람을 내 앞에 이끌어주셔서 사부님의 가지로 그들에게 진상을 알게 했다. 사부님께서 변변치 못한 제자에게 정법의 길을 걸을 수 있게 하셨고 이 소용돌이치는 속세에 휩쓸리지 않게 하셨다.

제자는 오직 많이 남지 않은 시간에 정진실수(精進實修)하고 사람을 많이 구해 사부님 은혜에 보답하고 사부님을 따라 집에 돌아갈 것이다.

 

원문발표: 2022년 6월 21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big5.minghui.org/mh/articles/2022/6/21/44518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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