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창칭(長青)
[밍후이왕]
“작은 촛불 하나하나가 한 곡조의 슬프고 애절한 노래로 수련자의 영웅적 비장함을 간절히 말하네. 작은 촛불 하나하나가 한 편 한 편의 서사시, 수련자의 자비와 강인함을 이야기하고 있네…” (‘촛불’ 가사 발췌)
목격자가 “살무사(殺無赦)” 내막을 폭로하다
“3월 13일 저녁 7시경, 회사로 돌아가 2층을 지날 때, 심문하는 소리와 욕하며 때리는 소리가 들렸어요. 문을 빼꼼히 열고 들여다보니 몇 명의 대원이 고문을 가하고 있었어요. 류하이보(劉海波)는 몸에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 호랑이 의자에 수갑이 채워져 있었고, 머리가 무릎 꿇은 자세에서 걸린 채, 두 명의 대원이 고압 전기봉으로 힘껏 항문 속에 전기충격을 가하고 있었는데, 옆에는 부러진 각목 몇 개가 놓여 있더라고요.”
이 장면은 훠제푸(霍介夫)의 뇌리 속에 깊이 새겨져 있다. “나중에 저는 쑨(孫)이 2층에서 ”다른 방은 때리지 마! 이 방은 죽었어.“라고 외치는 소리를 들었어요. 나는 류하이보가 바닥에 누워 있는 것을 봤는데, 이미 숨이 끊어져 있었어요.”
이것은 원래 창춘(長春)시 공안국 콴청(寬城)지국 난광창(南廣場) 파출소 경장 훠제푸가 고문 박해로 죽어가는 류하이보를 목격한 장면이다.
류하이보가 고문당하는 것을 훠제푸가 직접 목격하기 일주일 전, 세계를 놀라게 한 ‘3·05’ 사건이 발생했다. 즉 2002년 3월 5일, 창춘 케이블TV 방송에 파룬궁(法輪功) 진상 프로그램을 삽입하여 방송했는데 방송 시간이 50여 분에 달했다.
파룬궁 박해의 진상이 밝혀지자 사악의 수괴 장쩌민(江澤民)은 수치심에 분한 나머지 머리끝까지 화를 냈고, 중난하이(中南海)에서 ‘살무사(殺無赦-용서는 없으니 죽여라)’라는 밀령을 하달했다. 하달 받은 공안부 류징(劉京) 부부장은 창춘으로 달려가 기한 내에 사건을 해결했다. 현지에서는 3월 6일부터 군대, 경찰과 정부 관료들을 동원하여 5천여 명 파룬궁 수련생을 미친 듯이 납치했고, 그들을 각기 감옥, 수용소에 감금한 후 비밀리에 고문 박해했다.
그렇다면 창춘 케이블TV 삽입 사건은 왜 사악의 수괴 장쩌민을 화나게 하여 ‘살무사(殺無赦)’라는 밀령을 내리게 했을까?
‘천안문 분신자살’부터 말해보자
1992년, 리훙쯔(李洪志) 선생은 창춘에서 파룬따파(法輪大法)를 정식으로 전파하셨다. 병을 없애고 몸을 건강하게 하는 신기한 효과가 있고, 도덕 수준을 향상시키는 효과가 탁월했기 때문에, 1998년 차오스(喬石)를 비롯한 인민대표대회 퇴직 간부들은 파룬궁에 대해 상세한 조사와 연구를 실시하여, “파룬궁은 나라와 국민에게 백 가지 이로움이 있을 뿐 한 가지 해로움도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장쩌민은 이를 크게 거리껴했다. 그는 ‘6·4’ 학생운동을 진압하여 정치무대에 올랐을 뿐, 덕도 없고 무능해서 대중을 설득하기가 어려웠다. 파룬궁이 민중의 지지를 받고, 수련자가 1억여 명에 달하는 것을 보고, 질투가 난 그는 다른 중앙상무위원들이 찬성하지 않는 상황에서 독불장군처럼 행동해 1999년 7월 20일 파룬궁에 대한 박해를 발동했다.
2000년까지 정치국 위원들은 파룬궁 탄압에 대해 대수롭지 않게 여겼으며, 많은 성과 시는 탄압에 관심이 없었다. 체제 내의 소극적인 저항과 사람들의 보편적 반감은 사악의 수괴가 파룬궁에 대한 탄압을 이미 유지할 수 없게 했다.
2001년 1월 23일, 바로 섣달그믐날, 갑자기 TV에서 보기만 해도 몸서리가 처지는 화면이 나왔다. 톈안먼 광장에서 다섯 사람이 몸에 휘발유를 붓고 자신들의 몸에 불을 붙였다. 활활 타오르는 불길과 소화기를 들고 불을 끄는 경찰, 그리고 얼굴이 다 타버린 어린 소녀…… 비참하고 황당무계한 장면이 방송되자 국민의 분노는 걷잡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많은 사람이 이전에 본 파룬궁의 신기함과 파룬궁 수련생들이 한 좋은 일을 모두 까맣게 잊어버리고, 거짓말을 믿기 시작했다.
천안문 분신자살 사건은 사악의 수괴 장쩌민 집단이 파룬궁을 잔혹하게 탄압하는 가장 중요한 추동력이 됐다. 장쩌민의 직접 지시로 전국의 크고 작은 매체에서 비판 붐이 일었다.
사람들이 거짓말에서 깨어나다
2002년 3월 5일 저녁 7시 19분, 창춘시는 경악하여 떠들썩해졌다.
창춘 케이블TV 8개 채널에서 ‘분신자살인가 아니면 속임수인가?’, ‘파룬따파가 전 세계에 널리 전해지다’ 등 진상 프로그램이 동시에 방송되어 수십만 명이 ‘천안문 분신 자살사건’은 뜻밖에도 ‘거짓의 불’이었음을 꿈에서 깨어난 듯 알아차리게 되었다. 왕진둥(王進東)이라는 분신 자살자는 불타서 얼굴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였지만, 두 다리 사이에 끼워둔 휘발유를 담은 플라스틱병은 고온에서 조금도 변형되지 않았다. 또 다른 분신 자살자 류춘링(劉春玲)은 짙은 연기가 자욱한 가운데 경찰로부터 치명적인 일격을 받았다. 가장 어린 분신 자살자 류쓰잉(劉思影)은 기관지 절개 수술 3일 만에 입을 열고 큰소리로 노래를 불렀다……상식을 벗어난 작가의 시나리오는 졸렬하기 그지없으며, 허점이 각양각색이다. ‘분신자살’은 중국공산당(중공)이 조작한 거짓말로 소식이 신속하게 전해졌다.
창춘 시민들은 놀라서 깨어났다. 이 점은 파룬궁을 궁지에 몰아넣으려고 궁리만 하는 사악 수괴 장쩌민을 격분시켰다. 분노가 끓어오른 장쩌민은 “살무사”라는 밀령을 직접 하달했다.
비장한 역사와 영웅들의 장거
2002년 9월 18일, 창춘시 중급법원은 파룬궁 수련생 15명에 대해 불법적으로 징역형을 선고했다. 형기는 다음과 같다. 저우룬쥔(周潤君) 20년, 류웨이밍(劉偉明) 20년, 류청쥔(劉成軍) 19년, 량전싱(梁振興) 19년, 장원(張聞) 18년, 레이밍(雷明) 17년……. 류청쥔, 레이밍, 량전싱, 허우밍카이(侯明凱) 등 8명의 파룬궁 수련생은 혹독한 고문 박해로 사망했다.
방송삽입 용사들은 사람들이 진상을 똑똑히 인식하도록 일깨우기 위해, 정의를 위해 뒤돌아보지 않고 용감하게 나아갔으며, 진리를 위해 모든 것을 버렸다. 2007년 아태(아시아와 태평양)인권기금회는 올해의 ‘단심한청상(丹心汗青獎-단심을 청사에 길이 남긴 업적에 대한 상)’을 뉴스 봉쇄를 돌파하고 “3·05” 창춘 방송삽입팀 대표로 이미 고인이 된 창춘 파룬궁 수련생 류청쥔에게 수여했다. 아태인권기금회는 “류청쥔 이야말로 20세기 중화민족의 인권 수호자로 훌륭한 명성을 후세에 떨칠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선악에는 응보가 있는데, 하늘은 누구를 용서하는가?
선악에 보응이 있는 것은 천리이고, 불법(佛法)을 박해하는 것은 더욱 하늘에 사무치는 죄악이다. 이것은 창춘에서 방송삽입 파룬궁 수련생을 박해한 각급 공안·검찰원·법원 관계자의 결말이다.
창춘시 콴성(寬城)구 공안 분국 전 형사경찰대 대장 쑨리둥(孫立東)은 2004년 초 사무실 안에서 급사했다.
창춘시 전 기율검사서기, 정법위원회 서기 류위안쥔(劉元俊)은 2006년 간암으로 사망했다.
창춘시 중급법원 형사1 재판장 장후이(張暉)는 2006년 뇌일혈로 사망했다.
창춘시 전 중급법원장 쑨완성(孫萬勝)은 뇌물수수로 ‘쌍규(雙規-중국의 기율 당국이 비리 혐의 당원을 정식 형사 입건 전 구금 상태로 조사하는 것)조사를 받았다.
창춘시 전 부시장 겸 공안국장 톈중린(田中林)은 11년 형을 선고받았다.
창춘시 중급법원 전 당 조직(黨組)서기, 원장 쑹리페이(宋利菲)는 심사를 받았다.
길림성 공안청 당위원회 전 부서기, 상무 부청장 류페이주(劉培柱)는 중공의 당적(黨籍)과 중국 인민 해방군의 군적이 제적됐다.
밍후이왕의 불완전한 통계에 따르면, 2019년 2월까지 중공이 파룬궁을 박해한 19년 동안 2만 784명이 응보(불똥이 튀어 함께 재앙을 당한 친지 등 4149명 포함)를 받았고, 응보를 받고 사망한 사람은 7405명에 달했다. 공안 계통에서 악행을 저질러 응보 받은 사람은 4540명에 달했고, 재앙을 당한 그들의 친지도 972명으로 가장 많았다.
이른바 “선악에 마지막은 응보가 있어, 하늘의 도리는 윤회하니, 믿지 못하겠으면 고개를 들어보라, 하늘이 누구를 용서하는가!”
원문발표: 2022년 6월 26일
문장분류: 시사평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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