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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많은 수련생이 납치당한 것에 관한 생각’을 보고 느낀 점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밍후이왕에서 ‘최근 많은 수련생이 납치당한 것에 관한 생각’이라는 글에서 언급한 문제는 요 몇 년간 수련에서 어떤 수련생은 뚜렷하고, 어떤 수련생은 분명하지 않아 어느 정도로 문제가 있는데, 엄숙하면서 가슴 아픈 느낌이었다. 우리는 현재 정법 수련의 기연이 있으므로 이런 엄숙한 문제를 똑똑히 알고 분명하게 닦아야 하지 않겠는가?

수련생이 글에서 언급한 많은 사람 마음과 표현은 정도가 다르지만 인정한다. 나도 예전에 이런 마음이 있어서 심지어 사악에 여러 번 잔혹한 박해를 당했는데, 불법적으로 몇 년을 선고받았다. 뼈를 깎듯이 무조건 안으로 자신을 찾고 자신을 닦는 것을 경험하며 점차 똑똑히 알게 됐고 자신의 이런 문제를 바로 잡았다.

수련에서 자신과 수련생의 문제를 보고 대법 수련생답게 책임져야 하는데, 그래야 아마 각종 어려움에 부딪혀도 해낼 수 있고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핸드폰 안전 문제는 밍후이 편집부 ‘모든 대법제자들은 반드시 알아야 한다’에 따라 해내야 한다. 구체적인 작업은 그리 어렵지 않고 식은 죽 먹기다. 어떤 수련생은 각종 이유, 사람 마음으로 이런 가장 간단한 삭제하는 일조차 하지 않는다. 혹은 먼저 삭제한 후 나중에 각종 이유와 원인으로 국내의 안전하지 않은 소프트웨어를 다시 설치한다.

핸드폰 안전에 대한 명확한 요구, 간단한 조작을 사람 마음으로 보면 보잘것없고 심지어 불필요해 보이고 불편할 수 있다. 하지만 수련인으로서 사악의 박해가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본인과 타인의 안전과 위험에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다. 사실 자신과 타인을 책임지는가 하는 심성 문제다. 우리는 자신을 속인으로 보는지, 수련인으로 보는지, 어떻게 하는지도 이 문제에서 체현된다.

그럼 우리는 더 많은 각종 환경과 상황에 직면해, 자신의 마음을 수련에 두는지 아니면 속인에 멈춰 있는지는, 곧 자신의 수련을 어떻게 대하는지 진수(眞修)하는지 착실하게 자신을 수련하는지 아닌지를 표현하는 게 아닌가?

애초 ‘자기 안전’에 대한 집착심, 컴퓨터를 할 줄 모른다는 이유로 나는 인터넷에 접속하지 않고 자료점과 전달하는 수련생에 의지했다. 사부님의 설법만 얻고 싶었고 컴퓨터를 배워 밍후이왕에 접속할 생각은 하지 않았다. 사악이 박해할 때 대법 진선인(真·善·忍)을 견지하며 당당하게 대면하고 자신의 많은 사람 마음과 집착심을 찾았으며 자신의 많은 문제점을 보았다. 집에 돌아온 후 사부님의 도움과 가지(加持) 및 여러 조건으로 나는 밍후이왕에 접속하게 됐다.

최초 나의 사상 관념에 부합되지 않고 마음의 집착에 충격을 주는 밍후이왕의 일부 수련생의 교류를 보고 마음속으로 반대하고 때로 보기 싫어했다. 단지 신경문과 밍후이 편집부 글이 있는지 주목했다. 법공부를 할 때 바르지 않는 상태는 모두 남을 이야기하는 것 같았고 바른 상태는 자신을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생활 속에서 남편과의 갈등도 격화돼 해결할 수 없게 됐다.

이때 비로소 사부님의 말씀을 부득이 듣게 됐고 무조건 잘못을 인정하고 모순을 풀려고 했다. 수련을 여러 해 하면서 나는 이미 자신의 많은 잘못을 알게 됐다. 그러나 상대방에게 분명하게 그렇게 많은 문제가 있는 것은 왜 무조건 내가 그에게 잘못을 인정해야 하고 그에게 용서를 빌어야 하는가? 수련은 자신을 닦는 것이고 남의 문제에 집착하면 안 된다. 이것은 수련인의 가장 기본적인 개념과 인식이다. 하지만 나는 이것도 하지 못해서, 뼈를 깎듯이 고통을 감당해야 했다. 또 이미 다른 길을 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모순을 풀기 위해 오직 무조건 나의 잘못을 인정하고 상대방에게 용서를 빌었다! 나는 대법제자로서 중생을 망가뜨릴 수 없기에 이 일념을 견지하고 무조건 자신이 틀렸다고 인정하는 것을 내디뎠고 용서를 빌었는데, 또한 내 수련에서 가장 중요한 첫걸음이었다.

이렇게 지속적으로 끊임없이 뼈를 깎듯이 무조건 잘못을 인정하고 자신을 찾고 자신을 닦는 중에 수련생이 글에서 말한 그런 문제를 바로 잡게 됐고 똑똑히 알게 됐다. 자신의 사람 마음과 관념, 집착심이 밍후이왕의 일부 수련생의 교류와 서로 충돌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런 나쁜 사람의 것을 끊임없이 인식하고 제거한 후, 다시 밍후이왕의 수련생의 글을 보자 자신의 많은 부족한 점을 보았고 대법 수련의 아름다움과 신성함을 목격했다.

그러므로 나는 점차 ‘핸드폰 안전 문제에서 간단하고 명확한 요구도 어떤 사람은 왜 할 수 없게 됐는가?’를 점차 이해하게 됐다. 왜냐하면 자신의 사람 마음과 집착심을 인식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을 닦아버리려고 결심하면 뼈를 깎는 것과 같다.

진심으로 열심히 자신을 닦으려 하고, 진심으로 남을 위해 책임지려 하며, 자신의 중생을 책임지려 하고, 사명에 책임지려 하면 사부님은 꼭 도와주시고 우리를 가지해 주신다. 대법은 뭐든지 다 할 수 있다.

나의 직언에 양해 바란다. 어떤 수련생의 상태와 나의 예전 상태가 비슷한 것을 보았는데, 그가 자신의 수련을 열심히 하지만 자신과 남에 대해 열심히 책임지는 것을 중시하지 않았다. 물론 일부러 한 것은 아니다. 사당 문화의 환경, 독해 아래 사람들도 일을 대충 하려 하고 책임지지 않으려는 습관이 있기에 쉽게 인식하지 못한 것이다.

한번 생각해 보자. 집의 어린애가 심한 상처를 입으면 우리는 마음이 아픈가? 집의 육친이 위험하면 우리는 마음이 아픈가? 집이 해체당해 몸 둘 곳이 없으면 우리는 마음이 아픈가? 자신의 가산이 박탈당해 생활이 어려워지면 우리는 마음이 아픈가? 아무리 일을 대충 하고 책임지지 않는 사람도 이런 처지에 있으면 마음이 아프고 어떻게든 노력해 만회하려 하고 살리려 한다!

하지만 핸드폰 안전에 주의하지 않아 자신과 수련생에 위험과 위협을 가져다주면 우리는 신경 쓰는가? 마음이 아픈가? 자신의 의지심에 주의하지 않아 자료점과 수련생에 위험과 위협을 가져다주면 우리는 걱정하고 마음이 아픈가? 신경 쓰지 않고 마음이 아프지 않은 것은 자신의 절실한 이익을 건드리지 않았기 때문이 아닌가? 자신의 강대한 이기적인 마음이 작용하는 것이 아닌가? 만약 진심으로 자신의 수련을 열심히 대하려면 남을 위해 생각하고 남을 위해 책임져야 하는 것을 소홀히 하면 안 된다.

우리 매 수련생은 수련하는 길이 다르다. 우리가 자신의 수련에 대해 열심히 하는 정도, 남에 대해 책임지는 정도, 중생을 소중히 여기는 정도는 어느 각도에서 말하면 사실 대법과 대법 수련을 아끼는 정도이고, 또한 자신 수련의 길에서 잘 가는가, 바르게 가는가에 영향 준다.

진심으로 자신과 수련생이 대법 수련의 기연을 아끼고 심혈을 기울여 자신과 다른 사람에 책임지며, 자신 수련의 길을 잘 가고 바르게 가기를 바란다.

[편집자 주: 본문은 글쓴이 개인의 현재 인식에 따라 작성된 것이므로, 수련생들이 서로 교류하고 ‘비학비수(比學比修)’하는 데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원문발표: 2022년 5월 19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2/5/19/44359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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