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밍후이왕] (밍후이왕 통신원 랴오닝 보도) 랴오닝(遼寧)성 톄링(鐵嶺)현의 파룬궁 수련자 웨이궈쥔(魏國軍)은 장기간 중공(중국공산당)의 박해를 받아 2020년 1월 11일, 53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1999년 7월 20일, 장쩌민(江澤民)을 우두머리로 한 중공의 사악한 깡패집단은 파룬궁에 대한 전면적인 박해를 발동했다. 랴오닝성 톄링현 솽징쯔(雙井子)향 출신의 웨이궈쥔은 진선인(真·善·忍)에 대한 신념을 이유로 2000년 말, 불법 노동교양 3년을 받고 톄링 노동교양소에 감금됐다. 그해 33세였다.
그해 밍후이왕의 보도에 따르면, 웨이궈쥔은 노동교양소에서 잔혹한 고문을 당했다. 특히 2002년 4월과 5월, 노동교양소 대대장 왕즈빈(王志斌)을 우두머리로 한 사악한 경찰은 확고한 파룬궁 수련자를 잔혹하게 박해했다. 웨이궈쥔(톄링현), 왕쉬안화[王選華, 카이위안(開原)시], 왕취안[王權, 창투(昌圖)현], 멍판웨이[孟繁威, 진저우(銀州)구], 장보(張波, 톄링현), 양구이주(楊貴志, 톄링 인저우구), 관윈즈[關雲志, 톄링 칭허(清河)구], 바이징루이(白靜瑞, 카이위안시), 리신지[李心基, 톄파(鐵法)시], 류하이천(劉海臣, 창투현), 자이밍쥔(翟明軍, 창투현) 등 파룬궁 수련자 10여 명을 여러 차례 수갑과 족쇄를 채우고 전기봉과 못 방망이(狼牙棒)로 혹독하게 구타했다. 매번 2~3시간 동안 박해했는바, 가슴을 찢는 비명은 차마 들을 수 없을 정도였다.
2002년 9월 27일, 웨이궈쥔은 노동교양소에서 박해받은 다른 파룬궁 수련자들과 함께 톄링 노동교양소를 탈출하여 유랑생활을 했다.
2003년, 웨이궈쥔을 비롯한 파룬궁 수련자 5명은 랴오양(遼陽)에서 다시 중공 경찰에게 납치됐다. 2005년 3월 20일의 밍후이왕 보도에 따르면, 당시 랴오양시 공안국은 경찰 10여 명을 보내 파룬궁 수련자 5명을 납치했다고 한다. 납치 과정에서 사악한 경찰 몇 명은 벽돌로 웨이궈쥔의 머리를 내리쳤다. 웨이궈쥔의 머리에는 큰 상처가 나고 온 얼굴과 옷에 선혈이 낭자했다. 그런데도 경찰 왕칭유(王慶友)는 요리용 국자로 웨이궈쥔의 머리를 또 내리쳤다. 경찰 가오펑화(高風華)는 “당신들에 대해서는 법이 필요 없다, 맞아 죽으면 묻어 버릴 것이다.”라고 소리쳤다.
그 후, 웨이궈쥔은 중공 법원에서 불법 징역 9년을 선고받고 판진(盤錦)시 감옥으로 이송돼 여러 차례 고문을 받았다. 사악한 경찰이 온몸에 전기 충격을 가해 거의 혼수상태가 되었다.
2012년, 웨이궈쥔은 억울한 옥살이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왔다. 사악한 중공의 경제적 박해로 생활이 어려워 세 들어 사는 방을 추운 겨울에도 따뜻하게 할 수 없었다. 생계를 유지하려고 힘든 육체노동에 종사했다. 2019년 말, 심각한 병적 반응이 나타나 불행하게도 2020년 1월 11일, 박해 중에 53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원문발표: 2022년 5월 17일
문장분류: 중국소식>박해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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