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샤오팡(小方)
[밍후이왕] 언제부터인가 나는 책을 보고 법공부할 때 무언가가 내 오른쪽 눈을 가리고 있음을 느꼈다. 이것이 교란이고 나타나서는 안 되는 것을 분명히 알았다. 게다가 오른쪽 눈이 뚜렷이 밖으로 튀어나와 다른 사람들이 내 한쪽 눈은 크고 한쪽 눈이 작다고 했다. 아들은 나와 함께 잘 때 내가 눈을 감아도 오른쪽 눈이 감기지 않는다고 했다.
나는 안으로 많은 집착심을 찾았지만, 오른쪽 눈 상태는 전혀 바뀌지 않았고 점점 심해졌다. 책을 보고 법공부할 때 오른쪽 눈 안의 얇은 막 같은 것이 점점 두꺼워지는 것을 느꼈으며 눈알도 걷잡을 수 없이 빙빙 돌았다. 때로는 손을 눈 속에 넣어 그 얇은 막을 당겨 꺼내고 싶었다. 수련생들도 내 오른쪽 눈이 가짜 눈처럼 보인다며 내가 가짜로 수련하고 돈에 집착한다고 말했다. 나도 돈에 대한 집착을 닦으려고 노력했다.
나는 마음의 부담이 커졌고 사부님 법상 앞에 꿇어앉아 사부님께 말씀드렸다. “사부님, 저는 얼마나 높은 층차로 수련해야 한다고 자신에게 요구하지 않고 진상을 아는 속인 수준에서부터 시작해 자신의 심성을 제고하려 합니다. 그러다 보면 반드시 바뀔 것입니다. 저는 계속 법공부하고 안으로 찾고 법공부하고 안으로 찾겠습니다. 제가 닦고 끊임없이 안으로 찾고 자신을 제고하기만 하면 반드시 바뀔 것이라고 믿습니다.”
나는 일상생활에서 자신의 일사일념을 닦는 것을 중시했다. 나는 다른 사람 집에서 가사도우미로 일하는데 출퇴근 길에서 진상을 알렸다. 매번 거의 퇴근할 때면 나도 모르게 몸 어느 부위에서 ‘오늘은 얘기하지 말라’는 일념이 튀어나왔지만, 자신의 부정적인 사유를 닦을 줄 잘 몰랐다.
어느 날 퇴근할 무렵, 내가 화장실 거울 앞에 서 있을 때 분명히 오른쪽 눈에서 ‘오늘 진상을 알리지 말라’는 일념이 나오는 것을 뚜렷이 느꼈다. 나는 즉시 깨닫고 거울 속의 내 오른쪽 눈을 보며 그 일념을 내보낸 배후 생명과 요소에게 말했다. “난 널 원하지 않는다. 나는 대법제자다. 사부님께서 나에게 진상을 알리고 중생을 구하라고 하셨으니 사부님 말씀을 들어야 대법제자다. 나에게 말하지 못하게 하는 너는 법에 부합되지 않기에 너를 해체하겠다.” 이번에 내 느낌은 매우 뚜렷해 자신이 평소 어떻게 닦아야 하는지 단번에 알게 됐다. 그것이 어떤 마음이든지 법에서 한 말씀이 아니고 사부님 말씀이 아니면 모두 해체하고 그것을 갖지 말아야 한다.
나는 오른쪽 눈에 장시간 발정념했지만 발정념할 때 뭔가가 오른눈을 막아서 정념을 내보내지 못하게 막는 것을 분명히 느꼈다. 그것이 너무 강하고 깊어서 내 정념이 그것에 닿지 못하는 것을 느꼈다.
나는 끊임없이 발정념했다. 이때 그것의 표현은 아주 발광적이었다. 연공, 발정념, 법공부를 할 때나 일상생활에서 물건을 볼 때도 영향을 받았다. 나는 그것을 통제할 수 없었다. 그것은 눈 안에서 하나의 가시처럼 눈을 쓱 뚫고 지나갔다. 책 볼 때 눈이 아파 눈물을 흘렸고 시야가 흐렸으며 발정념할 때 오른쪽 안구가 내 통제를 받지 않고 ‘데굴데굴’ 마구 도는 것 같았다. 가부좌할 때 나는 오른쪽 눈에서 허튼 생각이 나오지 않도록 통제했지만 입정(入定)할 수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할 일이 없을 때 나는 침대에 앉아 오른쪽 눈에서 부정적인 사유가 나오지 않도록 통제했다. 그것이 내가 아니라는 것을 알지만 나는 그것을 해체할 수 없었고 선해(善解)하려 해도 소용없었다. 나는 그것을 어찌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한편으론 무기력했으나 한편으론 법공부, 연공, 발정념을 견지했다. 오른쪽 눈이 흐려지기만 하면 나는 속으로 평온하게 그것에게 웃으면서 말했다. “나는 대법제자다. 나는 반드시 법을 배울 것이다.” 나는 자신이 진정으로 법을 배울 수 있도록 손으로 한 글자씩 짚으며 법을 배웠다.
나는 자신의 일사일념을 닦는 것을 강화했다. 가정에서든 직장에서든 자신의 이모저모를 바로잡았다. 예를 들면 나는 내가 가사도우미로 일하는 집의 할머니가 좀 적게 일하시도록 내가 많이 일했다. 금요일 퇴근하기 전이면 토요일에 할머니가 빨아야 할 옷을 미리 빨고 이부자리를 폈다. 평소에는 일을 더 하면 내 휴식 시간이 줄어든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관념이 바뀌어 다른 사람을 더 많이 생각했다.
청명절 연휴 바로 전날(4월 3일) 아침에 일어났을 때 갑자기 토하고 싶어 화장실에 뛰어갔다. 배 속 창자가 뭔가를 위로 올리는 느낌이 들었고 배 속에 오랫동안 머물러 있던 가래를 계속 토했는데 아주 괴로웠지만 매우 기뻤다.
나는 돌아와 침대에 앉아 법을 배웠다. 내가 가사도우미라는 이 업계에서 수련하고 있는데 그럼 내가 만난 그 할머니의 표현이 날 수련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할머니는 평소 말이 허위적이었다. 속으로 생각하는 것과 행위가 일치하지 않았고 위선적이었다. 말은 항상 다른 사람을 위한 것이라고 했지만 마음속은 그녀가 아니라 완벽한 ‘가짜 그녀’였으며 마음과 말이 일치하지 않았다. 나는 할머니의 이 상황을 벌써 알았지만, 이것은 나에게 명명백백하게 손해를 보고 명명백백하게 자신의 주왠선(主元神)을 수련하라고 보여준 것으로 여겼다.
이제야 나는 할머니 앞에서 표현한 나 역시 ‘가짜 나’라는 것을 알았다. (내 본래의 모습, 진실한 생각이 아닌 덮어 감춘 나, 잠시 ‘가짜 나’라고 부르겠다.) 가장 뚜렷한 표현은 평소 할머니 집에서 식사할 때 그들 가족은 항상 내가 많이 먹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나는 밥을 먹을 때마다 그들이 내가 많이 먹는다고 할까 봐 일부러 적게 먹었지만, 속으로는 배불리 먹고 싶었다. ‘가짜 나’는 저 반찬을 먹고 싶었지만, 그들이 날 무식하다고 할까 봐 먹지 않고 일부러 좋아하지 않는 반찬을 먹었다. ‘가짜 나’는 그들의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고 이야기를 해줄 때 일부러 감정을 담아 낭독했다. 그것도 그들에게 내가 잘 낭독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또 하나의 ‘가짜 나’인 것이다.
이것에서 나는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가 날 멍청하고 둔하다고 좋아하지 않아 항상 날 혼내고 좋은 얼굴을 보여주시지 않았던 기억이 났다. 앞에서든 뒤에서든 내가 바보이며 둔하다고 욕하시면서 항상 날 마음에 들어 하지 않으셨다. 나는 어릴 때 속으로 생각한 대로 말했기에 아버지는 멍청한 말을 한다면서 할 말이든 하지 말아야 할 말이든 다 하고 뭐든 제대로 하는 것이 없다고 하셨다.
어렸을 때 나는 면을 반죽할 때 면이 무르지 않으면 사기그릇을 깨곤 했다. 그래서 아버지가 무서워 일부러 아픈 척했고 말하거나 일할 때 아버지 눈치를 봤다. 이때부터 나는 이미 ‘가짜 나’의 생활을 시작했고 속으로 자신이 멍청하고 둔하다고 인정했다.
커서 어디에서든 일할 때 실수할까 봐 항상 조심했고 다른 사람이 내가 ‘둔하다’는 것을 알까 봐 두려워 조심스럽게 자신의 ‘둔함’을 덮어 감췄다. 말할 때 다른 사람이 내가 ‘멍청하다’라는 것을 알까 봐, 실수할까 봐, ‘멍청한’ 말을 할까 봐 항상 반나절 생각한 후 말했다. 시간이 길어지자 하나하나의 ‘가짜 나’가 형성됐다. 이는 자신의 명(名)을 수호하고 감정이 상처받지 않기 위해서다.
여기까지 쓰고 나는 사부님 법상을 바라보며 눈물을 쏟았다. 내가 대법을 수련하지 않았다면 평생 다시는 진아(眞我)를 찾지 못했을 것이고 줄곧 그 ‘가짜 나’가 내 몸을 지배하고 ‘가짜 나’가 이 세상에서 살았을 것이다.
예전에 여러 번 고비를 넘지 못할 때 사부님 법상 앞에 무릎 꿇고 말했다. “사부님, 저는 이렇게 아버지마저 멍청하고 둔하다고 말한 사람인데 사부님께서는 제가 바보 같고 둔하다고 싫어하지 않으셨습니다. 저를 제자로 삼은 이 한 점을 봐서라도 저는 사부님을 따라 잘 수련하겠습니다. 제가 얼마나 잘 수련하든지 못하든지 막론하고 제가 사부님과 대법을 확고하게 믿고 절대 사부님과 대법을 떠나지 않도록 해주세요.”
4월 3일 저녁 6시 발정념 때 나는 일찍 앉아서 자신을 청리했다. 나는 내 발정념의 전체 과정을 분명히 보았다. 내 머릿속에 또 다른 머리가 있었다. 이때 나는 전문적으로 그것을 해체했는데 그것은 아주 강대해 아무리 해체하려 해도 그것의 표현은 아주 강했다. 나는 토하고 싶은 느낌이 들어 화장실에 가서 배에 오랫동안 머물러 있던 신물 같은 것이 없을 때까지 토했다. 몸은 끊임없이 으스스 떨렸다. 나는 이 표현은 내가 아니고 그것이 해체되는 것임을 알았다. 나는 진정한 자신의 이 몸인 여기에서 발정념하는 것이니 그것이 어떻게 하든 진정한 자신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자신에게 알려줬다.
잠시 후, 그것은 또 내 두 눈을 아프게 했고 아파서 머리가 갈라지는 것 같은 표현이 나타났다. 이 과정에서도 나는 그것을 똑똑히 보았다. 나는 속으로 그것에게 말했다. ‘나는 대법제자다. 나는 지금 대법을 수련한다. 나는 널 원치 않는다.’ 거듭 사부님을 부르며 관여해주시길 요청드렸다. 나는 자신에게도 오늘 요리하지 않고 가족에게 나가 먹으라고 하고(평소 돈을 아주 아껴 썼음) 내가 밥을 먹지 않더라도 그것을 해체하겠다고 말했다. 이렇게 내 공간장은 점차 맑아졌고 그것이 사라졌다. 시계를 보니 59분이 지나갔다.
평소 오른쪽 눈에서 항상 눈물이 흘렀고 햇빛을 보면 눈을 뜨지 못했다. 남들은 아무 일 없는데 나만 표현이 특별히 두드러졌다. 눈물이 나는 상태가 나타나면 나는 항상 남들이 볼까 봐 두려웠고 남들이 알까 봐 두려워 항상 의식적으로 고개를 숙이고 남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덮어 감췄다. 지금 생각하면 자신의 수련과 결합한 후에야 분명하게 알았다. 오른쪽 눈에서 눈물이 나는 것은 올바른 상태가 아니며 법에 부합되지 않기에 그것을 해체해야 하는데 나는 속인의 방법으로 의식적으로 덮어 감췄다. 남들에게 내가 체면을 중히 여기는 마음을 알아차리지 못하게 한 것이다. 이것은 내가 평소 다른 사람이 나를 멍청하다거나 바보 같다거나 내 부족함을 말할 때와 대응됐다. 다른 사람이 나를 멍청하다고 할 때 나는 날 멍청하다고 말할까 봐 두려워하는 마음을 해체해야 한다. 다른 사람이 나를 나쁘다고 할까 봐 두려워하는 생각은 모두 사람 마음으로 구성된 ‘가짜 나’인데 그 ‘가짜 나’가 일부러 사리를 분별하는 척하는 하나의 ‘가짜 나’이다. 이렇게 나도 모르게 장기간 ‘가짜 나’가 생활하고 있었고 그 ‘가짜 나’가 내 몸을 지배하고 있었다.
지금 보면 오른쪽 눈은 다른 사람에게 가짜처럼 보이고 내 몸 전체를 차지하려 했다. 지금 나는 일상생활에서 어떻게 진정으로 자신을 닦아야 하는지 알았다. 일하거나 말할 때 더는 다른 사람이 날 어떻게 보는지 생각하지 않고 이 일이 다른 사람에게 이로움이 있는지, 말할 때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지는 않는지 생각했다. 누구와 함께 있든지 항상 다른 사람을 생각하고 내가 한 일이 대법에 부합되는지 생각했다.
이것은 내 수련 과정이다. 나와 같은 고비를 넘고 있는 수련생에게 도움이 되길 바란다. 적당하지 않은 점은 수련생 여러분께서 자비롭게 바로 잡아주시길 바란다.
원문발표: 2022년 5월 7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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