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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수련생이 모순 앞에서 양보하는 것을 배우다

글/ 중국 동북 대법제자

[밍후이왕] 2021년 초, 나는 파룬따파(法輪大法)를 수련하기 시작했다. 나는 예전에 이동식 대리점을 운영했는데 나중에 영업점에서 휴대전화 번호를 가져와 팔았다. 손님들은 모두 좋은 번호를 좋아했기에 보통 끝자리 수가 6, 8, 9인 카드를 선택하고 끝자리 수 4는 제외했다. 그들이 잔업을 해 바쁘면 나를 불러 도와달라고 했기에 나에게 주어진 번호는 대부분 다른 사람보다 좋았다.

1. 어떤 번호든 다 잘 팔리다

어느 날 오전, 영업점의 샤오왕(小王)이 우리 가게에 포스터를 배포하러 왔을 때 나는 새 번호가 왔는지 물어보았다. 샤오왕은 왔다고 했다. 정오에 내가 번호를 받으러 갔을 때 번호를 내주는 담당자 샤오류(小劉)가 집에 식사하러 가서 당직 동료가 나에게 잠시 기다리라고 했다. 말 나온 김에 새 번호가 왔는지 물었더니 동료는 오전에 왔다고 했다. 샤오류가 온 후 내가 번호를 받으러 왔다고 했더니 그는 새 번호가 오지 않았는데 무슨 번호를 가지러 왔느냐면서 번호가 몇 개 있지만, 끝자리가 모두 4라고 했다. 나는 당시 그가 뻔한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하고 바로 밝히려고 했으나 자신은 연공인인데 참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 번호를 달라고 했다. 번호 10개에 거의 모두 4자가 3개 있었다.

영업점에서 나온 후 나는 마음이 불쾌해 속으로 ‘당신들을 위해 연장 근무를 해줬는데도 날 이렇게 대하다니.’라고 생각했지만 수련인으로서 일에 부딪히면 먼저 자신의 원인을 찾아야 하고 우연한 일이 없다고 생각했다. 사부님의 ‘업력(業力)의 전화(轉化)’[1]에서 말씀하신 법리가 떠오르자 즉시 화가 풀렸다. 속으로 또 제고할 기회가 생겼으니 기회를 헛되이 보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돌아온 후 그 몇 개 번호가 놀랍게도 오후에 다 팔렸다. 찾아온 손님은 번호를 고르지 않고 그냥 번호 두세 개만 달라고 했다. 예전에는 번호 10개를 3~4일에야 다 팔았는데 특히 나쁜 번호는 열흘이나 보름이 걸려서야 팔렸다.

이튿날 내가 다시 번호 받으러 갔을 때 아무 요구도 제기하지 않았는데, 샤오류가 나에게 준 번호는 전부 좋은 번호였다. 내가 대법을 수련하지 않았다면 그에게 의견이 있을 것이고 그가 눈에 거슬렀을 것이며 그도 계속 나를 난감하게 했을 것이다.

2. 휴대전화 수리 이야기

내 이모네 마을 사람이 2012년 늦가을에 나에게서 휴대전화를 샀는데 11월에 휴대전화가 자동으로 한번 꺼진다면서 나에게 수리해달라고 했다. 나는 알았다고 했다. 그러나 그는 그다지 확신할 수 없어 다시 테스트해보겠다고 말했다.

2013년 초 마을 사람은 또 가게에 와서 휴대전화에 문제가 있다면서 수리해달라고 했다. 그러나 당시 그는 볼일이 있어 이틀 후에 다시 오겠다고 해서 나는 알겠다고 말하고 그에게 내가 3월에 직장을 옮기니 빨리 오길 바란다고 말했다. 또 지금은 보증수리 기간이기에 출장비만 내면 되지만 3월 이후에는 불편할 것이라고 알려줬다. 그는 당시 알겠다고 대답했으나 3월 말 내가 전직한 후에도 그는 줄곧 휴대전화를 수리하러 오지 않았다.

2013년 말, 나는 어머니에게서 그가 이모를 찾아가 내가 판매한 휴대전화가 좋지 않다고 말했다는 말을 들었다. 나는 이모에게 그에게 휴대전화를 나한테 보내면 수리해주겠다는 이야기를 전하게 했다. 또한 휴대전화를 수리할 수 있으면 수리해주고 수리할 수 없으면 물어주겠다고 했다. 당시 내가 생각한 것은 내가 판매한 기기에 확실히 문제가 있다면 그가 수리 기간을 지체했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나중에 이모는 그가 내가 좋은 사람이라고 했다는 말을 전해줬다. 당시 그의 가족이 갑자기 암으로 진단을 받아 휴대전화를 수리할 겨를이 없었고 수리 기간이 지난 지도 오래됐으며 그도 사용하지 않아 이제는 수리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파룬따파를 수련하지 않았다면 나는 절대 이렇게 처리하지 않았을 것이다. ‘수리할 수 없으면 그에게 물어주겠다.’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을 것이고 아마 “본인이 지체한 것인데 누구에게 억지를 부리는 거야!”라고 말했을 것이다. 그러나 대법을 수련한 후 나는 더는 누가 옳고 누가 그른지 고민하지 않고 그냥 몇백 위안(수만 원)일 뿐이니 물어준다고 해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대법을 수련해 정말 좋다. 정말 한발 물러나 보면 세상이 넓어 보인다. 선을 수련하는 것은 참으로 유익하다.

3. 내가 변하자 시어머니도 더는 내 잘못을 말하지 않다

시어머니는 참견하기 좋아하고 물건 사는 것을 좋아하신다. 또 다른 사람이 산 물건이 항상 자기가 산 것보다 좋지 않다고 하셨고 다른 일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틀려도 이유가 있었다. 시간이 길어지자 가족들은 모두 시어머니의 이 점을 알게 됐다. 남편과 시누이는 늘 “어머니 바구니에는 썩은 살구가 없어요.”라고 했는데 시어머니 것은 전부 좋은 것이고 문제 있는 건 모두 타인의 것이라는 뜻이다. 점차 물건을 사는 일은 시어머니의 일이 되어 가족들은 시어머니에게 돈을 드렸다.

대법을 수련하는 나는 각 방면에서 타인을 생각해야 하기에 최대한 시어머니와 따지지 않고 솔선해 시어머니에게 돈을 드렸다. 시어머니는 물건을 산 후 늘 아이들에게 이것저것을 샀다면서 너희 어머니는 너희들에게 아무것도 사주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면 나는 속으로 한 마디 보충했다. ‘시어머니는 직장을 다니지 않으시는데 어디에서 나온 돈인가요? 가족들이 준 돈이고 내 몫도 있어요.’ 나는 가끔 마음이 불편했고 ‘돈을 달라고 하면 미안해하실까 봐 먼저 드리고 각 방면에서 시어머니를 위하고 생각하는데 왜 고마워하시지 않을까? 따지지 않으니 자꾸 문제를 일으키시네!’라고 생각했다.

시어머니가 문제를 일으킨다고 생각할수록 시어머니는 항상 사사건건 나를 못마땅하게 생각하셨다. 내가 뭘 하든 흠집을 잡았고 어떤 일을 빌려 나를 교육했으며 남편에게도 일렀다. 본인의 주장만 말하고 자신의 문제는 전혀 말씀하지 않으셨다. 대법 수련은 선을 닦아야 하기에 나는 시어머니에 대해 나쁜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시간이 길어지자 남편은 많은 일에서 시어머니의 말이 옳다고 여겨 나는 정말 속상했다.

최근 몇 년 둘째가 태어났는데 아기가 자주 넘어졌다. 그런데 시어머니는 집에서 자신이 아기를 보면 항상 아기 잘못이라 하고, 내가 아기를 돌보면 항상 내 잘못이라고 하셨다. 내가 설명할수록 시어머니는 더 내가 틀렸다고 하면서 자신과 비교하셨다. 시어머니가 아기를 돌보면 아기가 넘어지지 않는다고 하셨다. 결론적으로 시어머니는 잘못한 적이 없고 시어머니 아들과 손자도 잘못하지 않았으며 모두 며느리가 잘못한 것이 됐다.

한번은 올케에게 말했더니 올케는 시어머니와 같이 살지 말고 나에게 집을 사서 나가 살라고 했다. 나는 올케에게 시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얼마 되지 않고 남편은 시어머니가 어릴 때부터 키웠는데 시어머니에게 혼자 살라 하고 애들까지 데려가면 감당하지 못하실 것 같다고 했다. 나는 대법을 수련했기에 시어머니가 나를 그렇게 대해도 시어머니를 버릴 생각은 없으니 좀 더 지켜봐야겠다고 말했다. 나는 속으로 항상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고 각 방면에서 시어머니를 배려하는데 시어머니는 항상 내 흠집을 잡아 너무 지나치다고 생각했기에 때론 참지 못하고 시어머니와 논쟁했다. 때로 ‘이런 삶이 언제면 끝나지, 도저히 못 참겠네.’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먼저 안으로 자신의 원인을 찾아야 했다. ‘제가 각 방면에서 시어머니를 위하고 시어머니를 위해 생각하는데 왜 감사해하지 않으시나요?’ ‘시어머니를 위하면’ 감사히 받아들여야 하는가? 감사히 받아들여야 진정으로 상대를 위한 것인가? 속인의 거래와 비슷하지 않은가? 먼저 시어머니에게 돈을 드리는 것은 자녀로서 부모에게 공경하는 것이고 마땅한 것이 아닌가? 다른 사람이 감사히 받아들여야 하는가? 요즘 캥거루족(학교를 졸업해 자립할 나이가 되었는데도 부모에게 기대어 사는 젊은이들: 역주)의 불량한 습성과 비교하는 것이 아닌가? 왜 시어머니가 더 말씀하시지 못하게 하는가? 시어머니가 내가 좋지 않다고 하면 나에게 덕을 주는 것이고 내가 시어머니를 잘 대하고 공경하는 것은 내가 덕을 잃지 않는 것이다. 서로 교환하고 보상하는 것인데 시어머니가 내게 빚진 것이 뭔데 감사히 받아들여야 하는가?

나는 수련인이다. 속상해하고 평형을 이루지 못하는 것은 자신을 속인으로 여긴 것이 아닌가? 마음이 불편한 것은 내가 심성을 제고할 기회 아닌가? 평소 자신이 각 방면에서 좋다고 여기고 자신의 문제를 보지 못하고 있는데 나를 도와 지적한 것이 아닌가? 나는 마땅히 시어머니에게 감사드려야 한다. 이런 삶이 언제면 끝나느냐고? 이런 기회가 또 있겠는가? 또 몇 번 있겠는가? 소중히 여길 줄 모르고, 시어머니는 본인의 덕을 잃으면서까지 나에게 제고할 기회를 주시고 있다. 참, 내가 잘못한 것이다. 내가 잘못한 것이다. 나에 대한 사부님의 고심을 헛되이 보낸 것이다.

지금은 시어머니가 본인은 뭐든지 다 맞고 내가 다 잘못한 것이라고 해도 나는 아무 느낌이 없으며, 설명하지도 않고 화도 나지 않는다. 내가 이렇게 변하자 시어머니도 좋아지셔서 더는 나를 겨냥하지 않았고 내 흠집을 잡지 않으셨으며 다른 사람들도 다 좋아져서 가족이 화목해졌다. 정말 환경은 사람 마음에 따라 바뀐다! 자신의 마음이 좋아지자 환경도 좋아졌다.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은 정말 좋고 마음속 깊은 곳이 편안하고 자유롭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전법륜’

 

원문발표: 2022년 3월 14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2/3/14/44004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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