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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착을 닦아 없애자 여드름이 사라지다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저는 파룬따파(法輪大法)를 수련한 후 병이 없어 온몸이 홀가분했지만, 얼굴에 여드름이 나기 시작하더니 일 년 내내 사라지지 않고 빨갛고 커서 매우 보기 좋지 않아 외출할 때는 마스크를 써야 했습니다.

이것이 가상이라는 것을 알았고 저의 어떤 마음을 없애야 하는지 찾고 또 찾아보았습니다. 예를 들어, 체면을 위하는 마음, 쟁투심, 과시심, 멋 내기를 좋아하는 마음, 색심, 관용하지 않는 것, 수구(修口)하지 않는 것, 선하지 않고 질투하고 원망, 미움, 자아 집착 등, 전부 관계가 있는 것 같은 한 무더기의 체면에 관한 사람 마음의 집착을 많이 찾았습니다. 대법제자의 이미지를 위해서라도 대법에 먹칠하면 안 되었습니다. 이 몇 년 동안 매일 발정념을 할 때 그것들을 뿌리 뽑겠다는 생각을 지녔고 어떤 때는 그것들에 진상을 알려 선해 했으며 9자진언을 염하고 평소에 이런 집착을 닦아 없애는 것을 중시했습니다. 하지만 여드름은 한쪽이 조용하면 다른 쪽에 생겨나 여전히 겉잡을 수없이 자라났습니다. 밍후이왕에 접속해 수련생들의 교류문장을 보았으나 이 방면에서 거울로 삼을 만한 내용이 없었고 수련생들과 교류를 해보아도 모두 소업이고 좋은 일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심성 상의 문제 외에, 장기적으로 교란을 받는 것에는 분명히 치명적인 단점이나 누락이 있는데 찾지 못했거나 중시하지 않은 것이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어 이 방면에서 조금의 단서도 놓치지 않고 마음을 기울여 찾아보았습니다.

어렸을 때도 여드름이 난 적이 있었는데 10대 중반이었을 때에도 얼굴에 온통 여드름이 나서 열등감이 있었습니다. 온갖 방법으로 다 치료해보았지만, 소용이 없었고 의사는 여드름이며 사춘기 반응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때를 떠올려보면, 소설, 잡문 등 문학 방면의 것을 즐겨 읽었고 거의 매일 보았습니다. 고등학교에 가서는 보지 않았고 여드름도 자라지 않았습니다. 아마 본 것은 속인과 사당(邪黨)의 해로운 독서물이어서 나쁜 영체가 얼굴을 파고들어 여드름이 자라 염증이 생긴 것이 주원인일 것입니다.

수련 후, 속인의 출판물, TV, 영화 등을 모두 접촉하지 않았고 집안도 깨끗이 완벽하게 정리했습니다. 서화, 책, 소장품, 사진까지 모두 깨끗이 치웠습니다. 그렇다면 저는 또 속인의 무슨 해로운 것을 보았을까요? 자세히 찾아보니 자신에게 속인의 뉴스를 즐겨 보는 집착이 있었습니다. 매일 밍후이왕을 보다가는 부지불식간에 사회적으로 어떤 뉴스가 있는지 보려 했고 호기심, 호사심(好事心), 과시심, 속인 사회의 변화에 이끌려 가는 데 이미 습관이 형성되었습니다. 이것은 매우 큰 한 가지 집착이자 누락으로 아마 이것이 저의 몸과 마음을 오염시켰을 것입니다. 한동안 보지 않고 끊었습니다. 하지만 미국 대선을 내려놓지 못하고 뉴스에 집착했으며 점차 법에서 빗나가 오래지 않아 또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집착심은 왜 이렇게 없애기 어려울까요? 매일 법공부를 하고 법을 외우지만, 오히려 진정으로 법을 얻지 못했고 법리가 여전히 분명하지 못하며 집착에 이끌려 경박스러워지는데, 각성하여 깨닫는 그 일보까지 수련하지 못했습니다.

나중에, 밍후이왕에서 대법제자의 위챗 사용을 중단하라는 통지가 나왔습니다. 밍후이왕은 제 마음속에서 매우 신성하고 위대했습니다. 처음 수련하면서부터 저를 동반하여 걸어온 정신적 보금자리였고 자신의 수련 성장과 갈라놓을 수 없습니다. 저는 즉시 위챗을 삭제하고 조건 없이 따르는 것을 해냈습니다. 여러 곳으로부터 완곡한 비평을 많이 받았고 특히, 회사의 압력이 있었지만 모두 대처하여 지나갔습니다. 저는 ‘사부님 가지해주세요. 회사에 일이 있으면 제가 알게 해주세요’라고 일념을 내보냈습니다. 결국, 무슨 큰일이 생기면 확실히 저는 모두 적시에 알게 되었고 직무상 당연히 해야 할 일을 지체한 적도 없었습니다. 그로부터 더는 위챗을 사용한 적이 없었고 인연을 끊었습니다.

위챗을 삭제한 순간, 휴대전화에서 맥주병 따는 소리 같은 축하 음악이 몇 초 동안 자동으로 흘러나왔는데 매우 신기했습니다. 이 일도 매우 격려되었습니다. 위챗을 삭제하자 신체는 마치 한 층 갑옷을 벗은 것처럼 가뿐하고 유쾌했으며 눈의 가상도 사라지고 얼굴도 좀 나았지만 전부 다 마음에 들지는 않았습니다.

더 나중에 사부님께서 발표하신 경문 ‘크게 꾸짖다(猛喝)’를 보고 저는 방할 받고 깨어났습니다. 저는 사부님의 이 방면의 설법과 결합하여 반복적으로 법공부를 했습니다. 사부님께서는 ‘2019년 뉴욕법회 설법’에서 제자의 문제에 해답해주셨습니다.

“질문: 수련상태가 좋았다 나빴다 하고, 때로는 기호에 집착하여, TV를 보고 게임을 하며 휴대폰을 가지고 놀면서, 수련이 지체됩니다. 어떻게 자신을 통제하여 정진을 유지할 수 있습니까?

사부: 사람은 중독을 말하는데 나는 여러분에게 무엇이 중독인지 알려주겠다. 사람들은 의학상으로 은호(癮好)신경이 자극되고 아주 발달되면 바로 중독이라고 여기는데, 사실은 아니다. 무엇인가? 당신 신체 속에서, 시간이 길어지자, 당신의 형상과 똑같은 당신이 누적되었는데, 오히려 그것으로 구성된 것으로, 당신을 통제했다. 그것은 아주 강한 집착으로 구성된 당신의 형상이기 때문에, 그것은 바로 그렇게 강하게 당신의 마음을 통제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아주 강한 마음으로 형성되었기 때문이다.”[1]

끊임없이 법공부를 하고 법을 외우며 법에서 법을 깨닫고 끊임없이 자신을 바로잡는 것을 통해 저는 단번에 속인 뉴스를 보는 욕망을 끊어냈고 더는 보고 싶지 않게 되었는데 바로 그처럼 신비로웠습니다. 지금까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습니다. 자신이 보지 않도록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이 몇 년 동안 집착했던 것들은 사부님께서 단번에 떼어내 주셨습니다. 제자는 형언할 길이 없습니다. 사부님 감사드립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부정적인 사유 방식과 법공부를 함에 있어서 마음에 들어오지 않는 것을 포함하여 저의 수많은 집착과 부정확한 상태는 모두 이런 속인의 뉴스를 보는 것과 관계가 있었는데 수련의 길에서 한 가지 큰 장애물이 완벽히 제거되었습니다. 보지 않아도 세 가지 일을 하는 것에 조금도 영향을 주지 않았습니다. 알아야 할 것은 밍후이왕에 최근 전 세계적인 움직임이 모여 편집되어 있고 또 일부 일들은 속인들 가운데서 무의식중에 얻을 수 있게 되어 자신은 또 수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전에 남편이 인터넷상의 내막을 묻곤 했는데, 그러면 저는 흥미진진하게 말하면서 이렇다 저렇다 하면서 감정을 표출했습니다. 처음에는 남편이 재미있어하며 듣더니, 많이 듣게 되자 “당신은 밝은 면이 없고 온통 암울한 면만 있는 것 같아. 너무 극단적인 거 아냐?”라고 말했습니다. 남편은 제가 대선 결과에 대해 굳은 맹세라도 하듯 단언하는 말을 듣고 다른 사람과 내기를 했다가 결국 말문이 막혀서, 더는 믿지 않고 듣지도 않았습니다. 사실, 사부님께서 남편의 입을 빌려 저를 그 속에 빠져서 다시 보고 다시 전하지 않도록 일깨워주신 것입니다. 하지만 그때 저는 깨닫지 못하고 남편이 자발적으로 거짓 정보에 의해 세뇌당했다고 말하여 떠밀어 놓고도 스스로 알아차리지 못했는데, 남을 해치고 자신도 해쳤습니다.

사부님의 신경문 ‘크게 꾸짖다(猛喝)’를 배우고서야 자신이 우롱당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한 수련인으로서 법을 스승으로 삼아야지 어떻게 매체의 방식을 믿겠습니까. 매체는 속인 사회를 위해 존재하는 것으로 속인을 위해 서비스하는 것입니다. 지금은 속인의 정신적인 지주가 되어 속인은 이런 것을 떠나면 넋이 나간 듯 사람마다 휴대전화에서 손을 떼지 못하고 ‘디터우족(低頭族, 휴대전화광)’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수련인이 의존하여 살아가는 근본은 대법입니다. 수련인은 잠시라도 대법을 벗어나서는 안 됩니다. 대법이야말로 수련인의 정신적인 기탁이자 생명의 뿌리이며 하늘로 되돌아가는 구름계단이자 피안으로 이르는 법선입니다.

수련인은 사람과 결별하고 신을 향해 나아가야 하며 속인 사회의 어떤 것에도 집착하지 말아야 하는데 왜 하나의 가장 표면적인 속인의 것도 내려놓지 못하고 그리도 집착할까요? 1학년 수업마저 제대로 하지 못해 표준에 도달하지 못했는데 어떻게 더욱 높은 층차로 돌파하는 것을 논할 수 있을까요? 게다가 속인 사회의 일체는 모두 대법을 둘러싸고 돌고 있어 우리는 이 큰 연극의 주역이고 속인은 천상 변화 아래의 바둑 한 알에 불과할 뿐입니다. 인간 세상의 난상도 신이 사람을 도태시킬 때 필요한 환경이며 일체는 사부님께서 장악하고 통제하고 계십니다. 사람을 구하는 수가 차면 큰 연극도 막을 내리게 되며 일체는 0으로 돌아가 결말을 짓게 되어 무엇이어야 하면 무엇이 되고 남게 되면 남겨지며 도태되면 곧 도태됩니다. 전 우주의 생명은 모두 이번 정법에서 구원받기를 바라고 있고 세인은 모두 우리에게 희망을 걸고 있는데 왜 아직도 밖에서 무엇을 찾고 있을까요?

속인의 뉴스를 보는 이 집착을 끊어버린 후, 저의 부정적인 사유는 많이 줄어들었고 머릿속에 속인의 난잡한 정보도 담지 않고 다른 정보의 교란도 받지 않았습니다. 이른바 특종 배후의 내막을 그렇게 많이 알지 못해서 입을 닫고 무엇을 말하지도 않게 되었습니다. 아울러 속인의 뉴스를 참고와 근거로 삼는 생각도 사라져서 문제에 다시 부딪혔을 때, 법에서 답을 찾을 수밖에 없었으며 수련인의 안목으로 일체를 보고 대하자 자연스레 맑고 고요해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길을 걷고 잠을 자며 일을 할 때, 머릿속에 반영되어 나온 것은 이 스타가 세금을 훔치고 저 고위 관리가 업보를 받았으며 예언에서 또 무엇을 말하고 사도인(賒刀人)이 또 어디에 나타났으며 사당(邪黨)이 또 무슨 술수를 부리고 속인은 또 무슨 새롭게 조처하는지 등이 아닌, 더욱 많이는 법이었습니다. 보다시피, 수련인의 머릿속에 이런 속인의 쓰레기 정보를 담고 있으면 어떻게 고요해질 수 있을까요. 과거에 매일 발정념으로 이런 사상업을 제거했지만 허망한 생각은 기세가 대단하여 청정해지지 못했으나 지금은 가라앉았습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고요해지지 못하는 근본원인은 무슨 수법(手法)상의 문제가 아니며, 무슨 절묘한 수(絶招)가 있기 때문이 아니라, 당신의 사상과 당신의 마음이 깨끗하지 않기 때문이다.”[2]

사실, 여드름은 이 과정에서 이미 중요하지 않았고 그것은 일시적으로 떠나려 하지 않았으며 저도 그것에 집착하지 않았습니다. 여드름은 척도에 불과했고 여전히 누락이 있다는 표시이고 서론일 뿐이었습니다. 저를 한 걸음씩 실마리를 따라 진상을 밝혀내고 사악의 본거지를 찾아내어 악한 요소를 철저히 없애버리도록 이끌었습니다. 저는 그 재난의 주요 원인을 찾아낼 수 있다고 확고히 믿으며 사부님께 점화해주십사 청을 드렸습니다.

하루는 영문도 모른 채 타오바오(淘寶網) 사이트에서 부쳐온 반 자 길이의 천 조각을 받았는데 매우 궁금해서 친구와 고객 서비스 센터에 문의해보았더니 아마 업체에서 거래를 부풀리거나 기록을 부풀리는 것일 수 있다고 답했습니다. 물론, 이것은 속인의 해석이긴 하나, 더는 타오바오를 사용할 수 없다고 사부님께서 저를 점화해주는 것 아닐까요. 모두 쓰레기이고 모두 가장 더러운 곳입니다. 휴대전화 안의 각 정보는 모두 영체이고 모두 오염원이며 전부 난잡하고 사악한 부패 물질의 생명과 요소로, 전부 수련인의 신체에 오르려 하고 운반체를 찾으려 하며 도망치려 하고 수련인을 해치려 하는데 바로 수련인의 몸에 붙으려 합니다.

찾았으면 해내야 하고 행해야만 비로소 수련입니다. 저는 즉시 타오바오와 알리페이를 삭제했습니다. 이 두 가지 사악한 요소의 피난처를 삭제하고 속인의 것을 끊었습니다. 저는 법에서 바로 잡으려 했고 속인의 이런 것을 갖지 않고도 마찬가지로 사회에 적응할 수 있으며 사부님께서는 어떤 방법이든 있으시고 대법은 무소불능이라 생각했습니다.

완벽하게 깨끗이 삭제하고 나서(나는 평소 휴대전화 안의 수많은 앱을 전부 끄고 오직 전화 걸기 역할밖에 없음), 휴대전화는 정말 깨끗해졌습니다. 다음날 세수하면서 거울을 보니 하룻밤 사이에 여드름이 전부 날아가 버려 사라졌습니다. 과정 없이 새처럼 날아가 버렸다는 이 비유가 비교적 적절한 것 같습니다. 거울을 마주 보자 저는 머릿속이 텅 비었습니다. 며칠 후, 피부는 매끈하고 부드러워졌으며 아무런 자국도 없이 바로 이렇게 신비로웠습니다.

그 후, 저는 반복해서 이 일을 생각해보았습니다. 늘 ‘손을 흔드는 사이’라는 말이 생각났습니다. 여러 해 동안 저를 따라다닌 여드름도 제가 여러 번이나 알린 진상을 들었습니다. 그것들도 생명이고 모두 법을 위해 왔습니다. 저는 하늘에 대고 “너희들은 가야 할 곳으로 가거라.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真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기억하고 대법에 동화하면 아름답고 훌륭한 미래가 있을 거야. 수련하고 싶으면 사람으로 환생하여 와서 수련하도록 해라”라고 말했습니다. 그것으로 저를 성취시켜주신 사부님께 감사드립니다!

나중에 몇 차례 반복이 있었지만 모두 제가 임시로 타오바오와 알리페이를 내려받아 물건을 샀을 때였습니다. 비록 매번 사용한 후 즉시 삭제했지만 이렇게 하면 교란을 받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틀렸습니다. 한 번 사용하면 얼굴에 한 번 여드름이 생겼는데 그것은 정말 즉시 효과가 나타났습니다. 먼저는 미간이었고 다음은 코였으며 입이었습니다. 많게는 몇 개였지만, 며칠의 과정을 거쳐서야 사라졌습니다. 나중에는 남편이 저더러 자기 휴대전화에서 틱톡 동영상을 두 번 보게 했는데 일이 분이 채 안 되는 시간에 불과했지만, 다음 날 얼굴에 또 여드름이 생겼습니다. 그것은 정말 ‘기기를 보기만 하면 자라는 것’이었고 매우 영험했습니다.

이 반복적으로 나타난 여드름 가상도 화근은 바로 인터넷과 휴대전화이며, 사용하는 것이 곧 재난의 주요 원인이라는 점이 검증됐습니다. 사실 속인이 인터넷을 하고 휴대전화를 갖고 노는 것도 교란이 매우 큽니다. 속인은 병에 걸리지만, 그는 이런 것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믿지 않습니다. 속인은 “다른 사람은 왜 그렇지 않은데요. 이렇게 많은 사람이 하는데요!”라고 말합니다. 속인은 곧 속인인바, 우리는 수련인입니다. 수련인이 말하는 것은 심성의 제고입니다. 이 마음을 깨끗이 없애지 못하면 어떻게 될 수 있을까요. 법은 표준이 있는 것으로 어떻게 사람의 마음으로 대할 수 있을까요. 일사일념을 사부님께서 모두 보고 계십니다. 누구를 속이려 하나요!

이 일을 통해 저는 수많은 집착심을 닦아 없앴습니다. 과정은 비록 매우 길었지만 나쁜 일은 결국 모두 제가 제고하는 좋은 일이 되었습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수련 중에서 당신들이 부딪힌 좋은 일이든 좋지 않은 일이든, 모두 좋은 일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당신들이 수련하기에 비로소 나타난 것이기 때문이다. 수련자는 사람의 마음을 갖고, 업의 빚을 갖고, 집착을 갖고서는 원만에 이를 수 없다.”[3]

저는 이번에서야 진실하게 이 단락 법의 일부 내포를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이것도 법을 실증한 것입니다.

생각해보면, 수련인은 일부 어려운 고비에 직면하면 마치 일시적으로 문제가 어디에 생긴 것인지 찾지 못해 이렇게 장기적으로 감당하면서 줄곧 소업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사부님께서 이런 장기적인 소업의 방식을 안배해주시지 않을 것입니다. 사부님께서는 다만 그것을 이용하여 장계취계(將計就計) 하시어 제자를 끊임없이 제고하도록 하실 뿐입니다.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소업해주시는 것은 모두 법을 실증하고 중생을 구하는 것을 주로 중심에 놓고 일체는 모두 바른 면의 작용을 일으켜 중생이 구원받는 것에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하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대법제자의 이미지는 곧 진상의 일부분이자 법을 실증하는 법기(法器)이기도 한데 어떻게 임의로 사악이 제멋대로 나쁜 짓을 하도록 할 수 있을까요?

모두 자신의 오성이 낮고 법리가 명석하지 않아서 이렇게 여러 해 동안 구세력(舊勢力)을 승인했고 그것에 협력하면서도 스스로 알아차리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대법에 먹칠한 것이고 형태를 바꾸어 법을 파괴하는 것입니다. 왜 구세력이 교란할 수 있었을까요? 법에서 바로잡지 않고 발정념만 하여 그것이 교란과 박해를 하지 못하도록 하면 그것이 고분고분 사라질까요? 이것이 수련인가요! 수련이 어떻게 이렇게 간단할까요. 썩은 달걀에 많은 파리가 몰려들 듯이 아무리 발정념을 해서 파리를 쫓아내고 소멸해도 그 썩은 달걀을 찾아내지 못하면 파리는 다시 오게 됩니다. 그것이 보금자리이기 때문이지요. 집착을 찾아내어 닦아 없애고 심성을 제고해야만 비로소 됩니다.

사실 인터넷과 휴대전화의 수련인에 대한 교란의 표현 방식은 다방면에 있고 사람에 따라 다릅니다. 사악도 속임수를 바꿔가며 사람을 해칩니다. 어떤 수련생은 교란받으면서도 반드시 얼굴 표면에 표현되지 않을 것이며 모두 같은 표현형식이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어찌 됐든 그것이 수련인의 몸과 마음을 심각하게 교란하게 될 것이라는 점만은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저는 사부님께서 장계취계 하시어 여드름이라는 이런 형식으로 가장 작은 대가로 제가 이렇게 누락을 찾게 해주시고 자신을 바로 잡게 해주신 자비에 감사드립니다.

이 경험을 써낸 목적은 그것을 폭로하고 그것이 사람을 미혹시키는 허울 좋은 화려한 탈을 벗겨냄으로써 더욱 많은 수련인이 그것을 똑똑히 간파하여 멀리하고 공동으로 정진하고 제고하여 사부님의 걱정을 덜어 드리기 위한 데 있습니다. 저는 예전에 교류문장을 쓸 줄 몰랐고 다른 사람이 다 저보다 잘하는데 제가 무슨 교류할 자격이 있겠나 생각했습니다. 나중에 사부님의 ‘미국중부법회설법’을 배우고 관념이 바뀌었습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어제 기자가 나한테, 당신은 일생 중 어떤 일에 가장 기쁨을 느끼느냐고 물었는데, 당연히, 나는 일생 동안 이 일을 하고 있으니, 속인의 것에 대해서는 나는 아무것도 기뻐할 것이 없다고 했다. 나는 수련생들의 심득체험담을 듣거나 볼 때 가장 마음이 위안이 된다. (박수) 수련생들의 매 한걸음의 제고는 모두 아주 쉽지 않은 것으로서 아주 많은 고생을 겪었다.”[4]

저는 대법의 한 알 입자입니다. 수련의 길이 다릅니다. 사부님을 기쁘게 해드릴 수 있는 것은 제자가 되는 저의 가장 기쁜 일입니다. 동시에, 구세력을 승인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도 새로운 깨달음이 생겼습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경문: ‘2019년 뉴욕법회 설법’
[2]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전법륜’
[3]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3-시카고법회’
[4] 리훙쯔 사부님 저작: ‘미국중부법회설법’

 

원문발표: 2022년 3월 21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2/3/21/43730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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