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밍후이왕] (밍후이왕 통신원 신장 보도) 중국공산당이 23년 동안 파룬궁(法輪功)을 박해해 오는 동안 신장(新疆) 파룬궁 수련자 왕쥔창(王軍強)은 2차례 노동교양처분 4년(각 2년), 2차례 징역형 8년 6개월(각 5년, 3년 6개월) 등 총 12년 6개월간 수감 되어 박해 당했다.
왕쥔창은 무고한 3년 6개월 형기가 끝난 2021년 11월 7일 출소했지만, 여전히 계속 감시당하고 있고, 직장도 빼앗긴 실직상태다.
왕쥔창은 1973년 4월 28일 출생자로 신장 마나쓰(瑪納斯)현 란저우완(蘭州灣)진 자허쯔(夾河子)촌의 농촌 출신이다. 1996년 신장 공대 지질학과를 졸업, 재학시절인 1996년부터 파룬궁(法輪功)을 수련하기 시작했다. 졸업 후 푸캉(阜康)시 경제무역위원회 광산관리사무실에 취업해 성실한 근무로 여러 차례 우수 직원으로 선정되어 상사에게 신임을 받았다.
왕쥔창은 1999년 7월 20일 중공이 파룬궁을 박해하기 시작하면서부터 불법적인 노동교양처분과 징역형을 선고받고 투옥되어 박해 당한 것이다.
불법적인 2년의 노동교양처분
2000년 2월 베이징으로 청원하러 갔다가, 불법적으로 푸캉시 공안국에 납치되어 2년 노동교양처분을 받아 2000년 5월 8일 창지(昌吉) 노동교양소에 감금되어 비인간적인 학대를 당했다.
세뇌반, 유치장에 감금
2001년 우루무치(烏魯木齊)현 반팡거우(板房溝)향에 위치한 신장 제1기 세뇌반에 감금되어 박해당했는데, 강제세뇌로 전향을 당해 2001년 9월 22일 이른바 ‘형집행정지’처분으로 풀려나 직장에 복귀했지만 매달 400위안의 생활비만 받았다. 그는 풀려나 귀가한 후 ‘전향’은 잘못됐다는 것을 재빨리 인식한 후 곧바로 수련에 정진했다.
왕쥔창은 집으로 돌아온 2개월 후인 2002년 설 다음 날 가도사무처와 지역사회직원에게 기만당해 소위 교육센터라는 곳에 수용되었다. 수용되어 있는 동안 그들의 지시를 거부하고 연공자세로 항의를 표시했다. 결국 푸캉시 국보대대의 조치로 10일씩 두 차례 구류처분을 받고 감금되었으며, 2002년 1월 행정구류처분으로 구금되었다가 출소한 뒤 그것들의 핍박을 피해 우쑤(烏蘇)시에서 유랑생활을 했다.
불법적인 징역 5년 형 선고
2002년 4월 간쑤(甘肅) 우웨이(武威)시 우난(武南)진 친척집에서 우웨이시 량저우(涼州)구 공안분국과 푸캉시 공안국 경찰에게 납치되어 신장으로 다시 끌려와 푸캉시 구치소에 감금되었다. 그는 감금된 뒤 큰 소리로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를 외쳤다. 그러자 구치소장 자오샤오우(趙曉武)의 지시를 받은 감방의 형사피의자에게 무자비하게 구타당해 늑골 1대가 골절됐고, 목젖이 다쳐 2주간 말을 하지 못했다. 2주 후 우쑤시 구치소로 이감됐다.
왕쥔창의 어머니는 아들이 사악한 경찰에게 구타당해 심한 부상을 입었다는 소식을 듣고 손자를 안고 공안국에 가서 고소했다. 그러나 경찰은 고소를 접수하지도 않고 구타한 후 정문까지 끌어냈다. 그래도 어머니는 굴하지 않고 각처에 청원하고 고소하며 항의했다. 경찰은 자신들의 사악한 행동이 사회에 알려져 문제가 될 것을 우려해 배상금 1천 위안을 제시하며 화해하자고 해서 그렇게 끝냈다.
그로부터 5개월 후 그들에게 강제로 끌려가 병원에서 검진을 받았고, 또 몇 개월 후 불법적으로 개정된 우쑤시 법원에서 징역 5년 형을 선고받고, 2003년 1월 창지 감옥에 투옥되었다. 감옥에 수감되어 있는 동안 여러 차례 독방에 갇히고, 농구 틀에 매달리는 등 혹독한 고문을 당했다. 2007년 4월 20일 출소했다.
재차 불법적인 2년 노동교양처분
왕쥔창은 출소한 후 얼마 되지 않아 핍박에 못 이겨 집을 떠나 산산(鄯善)현으로 가서 1년 동안 일을 하다가, 2008년 5월 직장에 복귀해 원거리 쯔니취안쯔(滋泥泉子) 지역 국토자원소에 배치되었는데 실질적으로는 연금상태로 감시를 당했던 것이다. 푸캉시 국토자원국 서기 위안젠(袁劍)은 적극적으로 ‘610(전문적으로 파룬궁을 박해하는 불법적인 조직)’의 지시에 따라 쯔니취안쯔 지역 국토자원 소장 마쉬광(馬旭光)과 그곳 직원들에게 왕쥔창을 감시토록 한 것이다
2010년 9월 27일 직장 동료가 그의 침대에 파룬궁 자료가 있다고 신고하여, 푸캉시 국보대대 정치위원 마진민(馬進民)이 몇 명을 대동하고 기숙사 침상을 수색한 뒤 현장에서 왕쥔창을 납치했고, 2년의 노동교양처분을 내려 신장 창지(昌吉) 노동교양소에 감금했다.
창지 노동교양소에서 당한 박해
왕쥔창은 연공을 했다는 이유로 교도관 쉬웨이(徐偉) 등 몇 명에게 화장실로 끌려가 두 팔을 라디에이터 관에 묶긴 채 고압의 전기봉으로 1시간 넘게 전기고문을 당했다. 왕쥔창은 목 부위 수십 군데에 화상을 입었다.

왕쥔창은 계속되는 심한 박해로 경미했던 백내장이 빠르게 악화되어 결국 완전히 시력을 잃었다.
2011년 9월 왕쥔창이 공개적으로 연공할 것을 요구하자, 사악한 교도관은 그를 복도 방열기 파이프에 수갑을 채워 8일간 매달고 체벌을 가했고, 2012년 4월 공개적으로 연공을 요구하자 또 2주간 독방에 갇혀 호랑이 의자에 수갑이 채워졌다. 그가 굴하지 않고 2012년 6월 또 연공을 하자, 부국장 자오(趙), 교도과장 쉬더펑(許德峰) 등은 왕쥔창을 오랫동안 호랑이 의자에 수갑을 채워 감금해 놓고 바로 눈앞에 TV 영상으로 유언비어 등 선전 프로그램을 강제로 시청하게 하는 세뇌수법을 가했는데 죄수 4명이 교대로 밤낮으로 감시하게 했다. 9월 26일 정오가 돼서야 풀려났다.

거듭 불법 구류처분
2017년 10월 18일 왕쥔창은 무고한 죄명으로 구류처분을 받고 이른바 ‘직업기능양성서비스 관리국’으로 끌려가 감금되었다가 2017년 12월 중순 병보석으로 풀려나 오른쪽 눈 백내장 수술을 받았다. 보석으로 풀려나서도 계속 지역사회의 주거감시를 받았다. 오른쪽 눈은 노동교양소에서 전기봉의 전기충격을 받고 다쳐 생긴 것이다.
거듭된 불법적인 징역형
2018년 5월 8일 왕쥔창은 다시 구치소에 감금된 뒤 불법적인 재판으로 징역 2년 형이 선고되어 항소하자, 오히려 1심 보다 중한 징역 3년 6개월 형으로 확정됐다.
1심 푸캉시 검찰원 검찰관은 장샤오메이(張筱梅), 푸캉시 법원 재판장은 자오팡팡(趙芳芳), 배석판사는 가오위훙(高玉紅) 등이고, 2심 재판장은 리페이리(李佩隸), 판사는 류옌룽(劉豔榮)과 리핑(李平)이다.
왕준창은 계속 구치소 독방에 감금되어 교도관 다베커(大別克)에게 3차례 2~3분씩 전기충격을 당했다. 2018년 10월 13일 교도관 가오자오샹(高照祥), 무라리베커(木拉力別克, 샤오베커 병칭)가 감시카메라가 없는 방으로 끌고 가서 전기봉 충격를 가하고 고무 몽둥이로 1시간 동안 구타했는데, 교도관 왕줴(王玨)는 망을 보았다. 그렇게 1년 이상 독방에 갇혀 고문 구타를 당했다. 그런 고문 구타를 8차례 이상 당했고, 주야 2년 넘게 족쇄에 채워져 있었다.
왕쥔창은 2021년 11월 7일 감옥에서 풀려났어도 여전히 감시와 통제를 당하고 있고, 현재 직장도 빼앗긴 실직상태이다.
원문발표: 2022년 3월 8일
문장분류: 중국소식>박해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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