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헤이룽장 대법제자 위바이(玉白)
[밍후이왕] 나는 1953년 농촌에서 태어나 성장한 후 시집가서 남편이 죽을 때까지 농촌에서 살았다. 아이들은 농촌에 살지 않아서 1999년에 나는 아들을 따라 현재 사는 이 작은 도시로 왔다. 나는 수입이 없어서 몇 년 동안 아르바이트로 생활하다가 2004년에 생계를 위해 소개로 열아홉 살 연상의 퇴직한 노간부와 알게 되었다. 그는 주동적으로 나와 혼인신고를 하면서 말하기를 이렇게 하면 나의 장래에 좋은 점이 있다고 했다.
그는 파룬궁을 연마했다. 나도 파룬궁이 좋다고 느껴 자연스럽게 법을 얻었다. 나는 초등학교에서 4년밖에 공부를 하지 않아 ‘전법륜(轉法輪)’ 중 절반의 글자를 몰라서 곁에 있는 남편에게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책의 한마디 한마디를 반복해서 외웠다. 이렇게 해서 모르는 글자를 알게 되었고 점점 다른 대법경서의 글자도 모두 알게 되었다.
1. 가정 자료점을 세우다
2004년, 바로 내가 법을 얻게 된 그해에 중공 사당(邪黨)은 미친 듯이 날뛰며 파룬궁을 탄압하였다. 악인들은 많은 자료점 자산을 몰수하여 파괴하였다. 내 주변에는 단지 하나의 자료점만 아직 운영되고 있었다. 한 여성 수련생이 겨울에 솜 모자를 쓰고 외투와 솜 신발을 신고 지하실에서 촛불을 켜고 자료를 만들었다. 그 고생스러운 환경에서 그녀는 강한 압력을 무릅쓰고 버티고 있었다. 그러나 진상용 자료는 여전히 공급이 수요를 따르지 못하여 모두 매우 조급해 했다.
그 당시에 나는 남편과 단둘이 살았다. 나는 남편과 상의했다. 우리가 자료를 만들자. 우리는 모두 대법제자니까 이 신성한 사명을 주동적으로 맡아서 해야만 한다. 남편은 듣자마자 매우 찬성하고 기뻐했다. 한 수련생도 듣고 기뻐서 컴퓨터, 프린터, 자료를 만드는 도구와 소모품을 사 왔다. 남편이 말했다. “이 소모품 비용은 내가 대겠습니다. 우리 집은 돈이 있어요.” 수련생은 감동하여 말했다. “감사합니다. 이것은 참 대단한 일을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70세의 남편은 인터넷에 접속하여 진상 자료를 내려받아 인쇄하는 일을 맡았고, 나와 비슷한 나이의 다른 여성 수련생은 절단과 제본을 맡았다.
다 된 진상 자료와 ‘공산당에 대한 9가지 평론(九評共産黨, 이하 9평)’은 당일 가져갔고 하루하루가 정말 바쁘고 힘들었다. 그러나 우리 세 사람 모두 나이가 많고 나는 아직 몇 글자도 모르지만, 이렇게 좋은 자료를 만들어서 사람들이 진상을 알게 하고 구도받게 할 수 있었다. 사람을 구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우리는 아무런 피곤도 느끼지 못했고 마음속으로 매우 기뻤다.
우리는 법학습과 연공을 견지한다. 마음속에 법이 있어야 자료를 잘 만들 수 있고 바른길을 갈 수 있다. 우리 셋은 시도 때도 없이 심성관(心性關)이 있었다. 나는 누가 말할까 봐 겁이 났다. 마침 그 호흡을 맞추는 수련생은 내가 여기 잘못했고, 저기 잘못했다며 항상 내 결점을 들추어내기를 좋아했다. 남편도 그녀와 함께 나에 대한 말을 했다. 나는 마음에 걸려 속으로 생각했다. “어떻게 다 내 말만 해?” 하지만 한 번 더 곰곰이 생각해보니 ‘말하지 못하게 하는 마음은 자아 아니겠는가? 아마 사부님께서 수련생의 입을 빌려 나를 점화하셨을 것이다. 수련생 사이의 갈등은 수련하여 심성을 높이라고 하신 것이다.’
어느 날, 남편이 컴퓨터 앞에 앉은 지 이미 4시간이 되었다. 나는 기회를 봐서 그에게 말했다. “당신이 내게 좀 가르쳐 주세요. 그러면 당신 피곤할 때 내가 대신 인쇄할 수 있을 거예요.” 그가 “당신, 호미 들던 손으로 마우스를 조작할 수 있을까?”라고 말했다. “나는 대법을 배웠어요. 대법은 내게 지혜를 발휘하게 해줘요”라고 말하자 그는 나를 한쪽으로 밀어붙이고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나는 법을 얻자마자 진상 자료를 만들기 시작해서 온종일 ‘9평’을 한 무더기나 만드느라 바빴다. 자료를 만드는 과정에서 우리는 모두 그다지 잘 수련하지 못했고 일을 수련으로 삼아 안으로 찾을 줄 몰랐다.
자료를 많이 만들었으니 우리 셋이 직접 나가서 전하자고 했다. 사이렌을 울리는 경찰차가 집 앞에서 끊임없이 왔다 갔다 했다. 수시로 소식이 들려왔다. 모모가 잡혔고, 모모가 재산을 몰수당했다. 하지만 우리 세 사람의 마음은 움직이지 않고 정념을 견정히 하고 계속 자료를 만들어 사람을 구했다. 사부님의 보살핌과 수련생의 도움으로 우리 집 자료점은 정상적으로 운영되어 주변 몇 명의 수련생들의 어려운 자료 문제를 해결했다.
2. 자료점의 갑작스런 변고
2009년 3월 어느 날, 남편은 아침에 일어나서 감기에 걸린 것처럼 좀 불편하다면서 나에게 말린 생선을 사 달라고 했다. 내가 사 온 후, 그는 매우 화가 나서 말했다. “이상해, 뭘 해도 안 돼.” 점심 식사 후 그는 소파에 앉아서 책을 보고 나는 설거지를 했다. 그는 내가 탁자를 깨끗하게 닦지 않고 큰 소리로 떠들었다고 비난했다. 그의 말은 욕보다 듣기 거북했다. 나는 남편을 일깨워주었다. “당신은 하루에 나를 두 번 욕했으니 당신 자신을 잘 수련해야 해요!” 그는 “수련하지 않겠어!”라고 하면서 대법경서를 바닥에 휙 내던졌다. 나는 서둘러 책을 주운 다음 그에게 말했다. “빨리 사부님께 잘못을 인정하세요!” 이때 그가 입을 벌리고 숨을 헐떡거리는 것을 보고 나는 그를 소파로 부축했다. 수련생들이 와서 그를 위해 정념을 보냈다. 나는 그에게 물었다. “당신 아이들에게 연락할까요?” 남편은 알리지 말라고 했다. 그는 줄곧 숨을 헐떡였으며, 나와 수련생은 그가 밤새도록 잠을 거의 자지 않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는 “불도신(佛道神)이 모두 온 것을 당신이 보라. 그 ‘9평’이 한 무더기 한 무더기 쌓여 있는데, 그 자료는 한 무더기 한 무더기 끝이 보이지 않는다”라고 말하면서 더욱 숨을 헐떡였다.
다음 날 아침 6시, 남편이 화장실에 가겠다고 했다. 그는 일어나자마자 침대에 쓰러졌다. 나는 서둘러 그의 아들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들은 구급차와 함께 와 병원에 아버지를 모셔갔지만, 응급조치를 하지 못했다. 이렇게 남편이 세상을 떠났는데, 그는 나와 함께 5년 동안 자료를 만들었다.
7일 후, 그의 두 아들, 며느리, 딸, 사위가 모두 왔다. 큰아들은 부동산국 부국장이고, 딸은 정법위(政法委) 사람인데, 뜻밖에도 노인의 재산 때문에 난장판을 쳤다. 그의 큰아들이 나에게 물었다. “아주머니, 당신이 어떻게 말하는지 들어나 봅시다.” 나와 남편은 줄곧 100㎡ 남짓한 2층에 살았는데, 남편은 작은 단층집이 하나 더 있었고 몇 년간 아무도 살지 않았다. 우리는 합법적인 부부이고, 나는 이 집에 살 권리가 있다. 컴퓨터, 프린터는 너희 아버지와 내가 샀으니 내가 가지겠다. 나는 살 데가 있는데 밥만 먹으면 된다. 금반지 다섯 개는 너희에게 주겠다. 침대 밑에 너희 엄마가 남긴 담요 등 좋은 물건은 너희가 다 가져라, 나는 단층집에 가서 살겠다.” 내 말을 듣더니 자식들이 모두 기뻐했다.
내가 이렇게 선택한 것은 파룬따파를 수련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대법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일에 부딪히면 먼저 다른 사람을 위해 생각하라고 가르치셨기 때문에 나는 작은 단층집으로 이사해서 살기로 했다. 남편 장례비를 포함한 모든 보조금은 총계 6만8000위안(약 1285만 원)이었다. 그의 자녀들은 나에게 한 푼도 주고 싶지 않았는데, 결국 그들은 나에게 6000위안만 주겠다고 했다.
남편의 동료가 나에게 말했다. “노부인, 당신이 서명을 하지 않으면 그의 가족은 가져갈 수 없어요. 당신들은 합법적인 부부였으므로 이 돈은 당신이 반을 받아야 해요. 그들이 당신에게 주지 않는다면 고소해도 됩니다.” 나는 솔직하게 말했다. “저는 파룬따파를 수련하는 사람입니다.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좋은 사람이 되고 더 좋은 사람이 되라고 가르쳐주셨어요. 저는 그들과 같을 수 없습니다.”
3. 자료점을 옮기다
수련생의 도움으로 나는 단층집으로 이사했다. 정원에는 사람 키 높이의 풀이 가득히 자랐고 집 안 곳곳에는 푸른곰팡이가 가득 자랐으며 쥐들이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수련생이 나에게 물었다. 여기서 살 수 있겠어요? “네, 치우면 괜찮아요.” 다음날, 수련생이 와서 나를 도와 컴퓨터 프린터를 연결해 주었다. 나는 이곳에서 자료를 만들어야 한다. 마침 이 부근에 다른 수련생이 자료를 만들지 않았다. 아마도 사부님께서 안배하셨을 것이다.
나의 생활은 매우 간단했다. 여름에는 손바닥만 한 작은 정원에 채소를 심고 겨울에는 감자 두 포대를 사 와서 맛있게 먹는다. 둥베이(東北)의 겨울은 집안에 난방장치가 한 조(組)밖에 없고 실내 온도는 16도밖에 안 되기 때문에 집안에서 언제나 솜옷과 솜바지를 입어야 한다. 나는 퇴직금이 없어서 정말 남편 덕을 보았다. 매달 유족연금 196위안을 받는데 이 돈으로 생활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십여 년이 지났으나 고생을 느끼지 못하고 혼자 아주 잘 지냈다.
어느 해 여름, 장맛비를 만나 지붕이 샜지만, 사부님 법상 모시는 곳과 컴퓨터, 프린터를 놓은 곳은 새지 않았다. 나머지는 모두 새서 방안에는 물을 받는 대야, 항아리가 가득 놓여 있었다. 다음날 수련생이 나를 찾아와 그녀와 함께 진상을 알리러 나가 집안일은 잊어버렸다. 오후 3시에야 돌아왔는데 이웃이 나를 보고 물었다. “누님, 집에 물이 새지 않았어요?” 나는 “다 새요”라고 말했다. 그는 “그런데도 빨리 아들을 찾아 수리해 달라고 하지 않네요, 저녁에 큰비가 내릴 텐데!”라고 말했다. 나는 서둘러 아들에게 전화해 봤지만 세 아들 모두 시간이 없다고 말했다. 어쩔 수 없이 버틸 수밖에 없었다.
밤에 천둥소리가 요란했다. 나는 두 손을 모으고 사부님께 빌었다. “사부님, 우리 집에 큰비가 내리지 말게 해주세요. 내리면 집이 무너집니다.” 말이 끝나자마자 폭우가 콸콸 쏟아지고 이어 ‘우르르 쿵쾅’하는 큰 소리가 들리더니 큰 비가 단번에 멈췄다. 이렇게 세 번이나 반복했다. 나의 작은 집은 폭우를 세 번 피했다. 나는 감동으로 흐르는 눈물이 얼굴에 가득했고 바닥에 엎드려 사부님께 큰절을 드렸다. 나는 무슨 말씀을 드려야 좋을지 몰랐다. 사람의 언어로는 사부님께 대한 감사를 표현할 수 없었다.
집에 또 한 수련생이 와서 나와 함께 진상 CD를 굽고, ‘공산주의의 최종 목적’을 만든 후 대법경서를 제본했다. 나는 이처럼 신성한 일은 반드시 엄숙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함께 법을 배우고 정념을 발했다. 때로는 모순도 있지만 우리 둘은 각자 안으로 찾을 것이다.
4. 작은 꽃이 계속 피고 있다
사악은 미쳐 날뛰며 시도 때도 없이 사람을 잡고 재산을 강탈했다. 장(江)마두 고소 물결 후, 사악은 명단에 따라서 사람을 잡고 재산을 강탈했다. 수련생이 나와 상의하기를, 내 집은 자료점이고 컴퓨터, 프린터 등이 아직 많으니 내가 나가서 이틀 동안만 숨어 있든가, 그렇지 않으면 가지고 나가 있으라고 했다. 내가 물었다. “어디로 가져가지요?” 그녀는 “당신 아들 집에 놓아두세요”라고 말했다. 나는 “안 돼요. 당신마저도 무서운데, 그 아이는 더 무섭지 않겠어요? 어디든 안전하지 않아요. 우리 집이 제일 안전해요 나는 수련인이니까요”라고 말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수련인이 중시하는 것은 정념이다. 정념이 아주 강하면 당신은 무엇이든 모두 막을 수 있으며 무엇이든 해낼 수 있다. 왜냐하면, 당신은 수련인이고 당신은 신의 길을 걷는 사람이며, 당신은 속인 요소와 저층 법리에 통제당하지 않는 사람이기 때문이다.”[1] 마음속에 법이 있었고 정념을 견정히 했다. “한마음이 움직이지 않으면 만 가지 움직임을 제약할 수 있다.”[2] 내가 불법으로 노동교육을 당했던 그해를 제외하고 우리 집의 이 작은 꽃은 계속 피어 있었고, 16년 동안 한 무리의 중생을 구도했다.
전염병이 닥쳤다. 수련생에게 자료를 공급하는 것 외에는 집에 있을 수 없으며 나가서 중생을 구해야 한다. 이것은 우리의 사명이고 책임이다. 어느 날, 나와 수련생은 나가서 진상 알리는 전화를 했다. 수련생은 내게 종이 한 장을 주었다. 그 위에 전화번호가 가득 적혀 있었다. 와, 이렇게 많은 생명이 있네. 나는 반드시 그들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
첫 번째 전화가 걸려서 그에게 진상을 말하고 물었다. “당신은 탈당하시겠습니까?” 그는 시원스럽게 말했다. “그래요, 탈퇴하겠소!” 나는 그에게 싱왕(興旺)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그는 “너무 좋군요, 나는 싱왕이라고 해요!”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나는 그에게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真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부디 기억하라고 당부했다. 많은 사람이 역병 속에서 이 아홉 글자를 염해서 흉한 일을 만나더라도 길하게 변했고 위난을 당하여 상서로움이 나타났다고 그에게 말했다. 그는 바쁘게 “그래요, 그래요 그렇게 합시다”라면서 전화를 끊었다.
법을 실증하여 사람을 구하는 데 있어서 내가 한 이 일이 그다지 큰일은 아니지만, 그중에서 걸어 지나왔다. 두려움에서부터 안전에 주의하며 담담하게 맡는 수련 과정을 거쳤고, 기술과 수련은 점점 성숙해졌다. 이제 나는 예순여덟 살이 되었는데,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가 바쁘지만 여태껏 피곤함을 느끼지 못하며 온종일 즐겁다. 나는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행복이라고 생각한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로스앤젤레스시법회 설법’
[2]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2 – 마지막 집착을 제거하자’
원문발표: 2022년 2월 18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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