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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私)가 왕성할수록 고(苦)는 강성해진다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아내의 왼쪽 가슴에 병업 현상이 나타나서 최근 증세가 심해지고 있다. 어느 날 내게 병원에 가서 검사받을 계획이며 심지어 수술, 입원하는 것도 고려한다고 했다.

나도 이전에 병업을 경험했고, 아내에게 존재하는 문제점과 현재 상태에 대해 잘 알고 있어, 어떤 말은 직설적으로 하면 효과가 없을 수도 있고 받아들이기 어려울 수도 있으며 반작용을 일으킬 수도 있다는 것을 의식하고 있다. 나는 아내와 한 곳에 있지 않는데, 신중하게 생각한 후 문자를 보내 처음으로 아내에게 내 생각을 간단명료하게 이야기했다. “당신은 아마 느낌이 있을 거야. 내가 전에 병업 가상(病業假相)이 있을 때 정념이 부족해서 어머니가 주신 긍정적인 건의를 받아들이지 못했어. 병원 3곳에 가서 검사했는데 의사의 진단이 점점 더 심각했고 거의 불치병으로 되었어. 마지막이 되어서야 깨달았고, 그다음에는 한 걸음 한 걸음 착실하게 걸어갔지. 내가 알기로는 주변에 병업으로 병원에 가서 치료받은 사람들은 오히려 악화되고 정념으로 병원에 가지 않은 사람들은 다 건강을 회복했어. 나는 당신에게 반드시 병원에 가지 말라고 강요하는 것은 아니지만, 만약 당신이 병원에 가서 진찰받는 것에 내가 동의한다면, 그것은 구덩이 속으로 당신을 밀어 넣는거야. 당신 몸에 나타나는 것은 가상에 불과하며 병이 아니기 때문이지. 보통 사람의 기술적인 수단은 당신 신체를 오염시키고 당신의 의지를 소모할 뿐이며 문제의 근본을 해결하지 못해. 먼저 자신의 문제가 도대체 어디서 발생했는지 잘 생각해 보기를 바래.”

며칠 후, 아내가 또 아파서 견딜 수 없다고 하여 두 번째로 교류하게 되었다. “요 몇 년 동안 당신에게 수련의 길을 걷지 않는다고 했는데, 아마도 당신은 억울하다고 느꼈을 수도 있겠지. 당신이 이 길을 걷고 있다고 말한 것도, 사실 몇 번은 반대 방향이었지만, 당신은 여전히 앞을 향해 나가고 있다고 느꼈어. 오늘의 이 표현이 여기까지 왔는데 도대체 마음을 가라앉히고 진정으로 식별할 수가 있는 걸까? 당신은 병원에 가거나 기타 방법으로 이 관을 넘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 그것은 마치 시험을 볼 때 문제 풀이가 있는데도, 당신은 풀 줄 모르는 것과 같지 않은지. 진정한 재능, 실질적인 학습과 반성 없이, 여전히 다른 방식으로 지름길을 걷고 싶어 하기 때문은 아닐까, 그것이 진정한 성적이 될 수 있을까? 병원에 가면 요행으로 한시름 놓을 수 있겠지만 뒤로 미루면 더 큰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가뜩이나 넘기지 못했으면서 모두 함께 모아놓으면 여전히 넘을 수 있을까? 넘지 못하면 어떻게 해야하나? 당신 가족 중에는 육신을 잃은 사람이 있는데, 당신은 이 일의 엄숙성을 아는지? 현재 정황에 대해 말하자면, 다시는 그런 외재적인 조건을 찾지 말고, 이 상황을 조성한 자신의 원인을 찾아야 해. 그 외에 다른 방법이 어디 있을까. 당신은 요 몇 년 동안 몇 번이나 이치에 맞게 이성적인 선택을 했는지 잘 생각해봐. 사람이나 일을 평가하는 기준은 항상 비뚤어진 관념, 더러운 당 문화(黨文化)였으며, 다른 사람에게 아주 많은 교란과 상처를 주었지만, 당신은 오히려 자신이 어떻게 잘했다고 억측하며 깨닫지 못해. 왜 바른 이치에 따라 변별할 수 없는지? 이런 말은 내가 당신에게 많이 했는데, 당신은 몇 번이나 곰곰이 생각해 봤는지? 지나갈 수 있는지 없는지는 전적으로 당신에게 달려 있어. 지나갈지 말지 정말 잘 생각해 봐야 하오.”

이 말을 한 후에 나는 아내의 병업을 야기하는 요인과 의사소통했다. ‘아내가 어떤 부족함을 가지고 있든지 나는 최선을 다해 그녀에게 바른길로 돌아오라고 권하는데, 당신들 이것은 수련인을 박해하고 있는 것인바, 곧 범죄를 저지르는 것이다. 당신들은 바른 선택을 해서 자신에게 좋은 미래가 있길 바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교통사고를 당했다. 관성으로 인해 조수석의 앞 유리와 사물함을 모두 깨뜨렸으나 부딪히는 과정은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 명백해졌을 때 나는 아무 일도 없으리라고 생각하고 마음속으로 사부님께 감사드리며 출근했다.

이번 경험을 통해 세 번째로 아내와 교류했다. “삶과 죽음 사이는 때로 하나의 과정이 있고 반성하고 바로 잡을 수 있는 기회가 있지만, 때로는 단지 한순간일 뿐이다. 아무 생각하지 않은 상황에서 모든 것을 내려놓을 수 있는지, 일체를 바른 법리로 볼 수 있는지, 나는 일찍이 몇 번이나 일깨워 준 적이 있어. 당신과 당신 가족들이 함께 앉아서 늘 다른 사람을 옳으니 그르니 하는데, 당신들 말이 아무리 듣기 거북하고, 아무리 엉뚱해도 그건 모두 당신들 자신을 말하는 것이야. 이 문제를 당신은 진정으로 바르게 했는지, 혹은 지금 깨달을 수 있는지? 당신이 예전처럼 자신의 느낌 속에서 살아간다면 객관적인 것을 분간할 수 없고 집착을 내려놓을 수 없어. 자신을 바로잡는 것은 빈말이 되어서는 안 되고, 말과 행동이 달라서도 안 돼. 아마도 내가 이렇게 말하는 것이 당신에게 관건을 제시했을 것이야. 당신은 휴가를 내서 우리 어머니에게 오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우리는 진정으로 당신을 도울 수 있어. 환경 역시 매우 중요한 요소야.”

과거에 아내가 나에게 한 가지 일을 하라고 했는데 나는 그것이 가상이라고 생각하고 즉시 거절했다. 아내는 그때 마음속으로 억울함을 억누르고 울며불며 소리쳤다. “가짜 아닌 게 뭐야. 살아있는 것도 가짜야?” 이 말 듣고 갑자기 눈시울이 붉어지고 연민이 느껴졌다. 우리가 처한 환경은 허황하나 우리가 사는 것은 오히려 진실하며 하는 일도 진실이다. 그러나 아내는 자신의 사욕에 미혹되어 누군가의 오도 아래 법리에 어긋나는 일을 얼마나 했는데도 자신의 감각으로는 그 일을 잘했다고 느꼈다. 아마 나의 이 말은 그녀의 명백한 일면이 나에게 하소연해서 한 것이리라. 그러나 마땅히 펼쳐 보일 것은 펼쳐 보였고, 일깨워 줄 것은 일깨워 줬는데 당신이 여전히 깨어나지 못하고, 그저 느끼기 위해 살아간다면, 산다는 것이 가짜 자신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닌가, 그것은 얼마나 슬픈 일인가.

아내가 병업이 생기기 전에 나는 한 수련생 회사에 가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아마도 이전 직장에서 호강하는 데 익숙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이곳 거주 환경과 업무 환경이 매우 고생스럽고 집착심이 생겼지만, 종종 아주 빨리 발견하고 제거할 수 있었다. 다만 이전의 병업 상태가 갑자기 재발할 기미가 보여 포기하고 싶었으나 이곳에 온 것이 우연은 아닐 거로 생각했다. 왜 돌파의 기회로 삼지 않는가? 그래서 떠나지 않았지만, 집착의 뿌리가 어디 있는지는 여전히 발견하지 못했다. 온종일 얼음과 눈이 하얀 밖에 서서 나는 스스로 자문했다. “당신은 고생을 낙으로 삼을 수 있는가?” 그 순간 가슴이 확 트여 그 고생들이 따뜻해져서 마음속에 흘렀는데, 그때는 마음속에 즐거움만 있었다.

마찬가지로 아내가 병을 앓는 동안 A 수련생도 병태(病態)가 나타났다. 자신은 병원에 가고 싶지 않았지만, 가족들이 그를 치료하러 보내겠다고 고집부렸다. 결국, 수술 후 집으로 돌아갈 때 침대에 누워 있을 수밖에 없었고 스스로 처리하기 어렵게 되었다. 나와 B 수련생은 시간을 내어 그를 보러 갔는데 B 수련생은 매우 간절하게 반복하여 말했다. “당신은 신이야. 당신은 일어나야 해.”

그가 말을 마치자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나는 가능한 한 간단명료하게 A 수련생에게 말했다. “당신이 진정으로 안으로 찾을 수 있고 진정으로 자신을 바로잡을 수 있다면, 아무것도 당신을 막을 수 없다.”

또 C 수련생도 있는데 허리에 종기가 생겨서 자신이 버티지 못하고 병원에 가고 싶어 했다. 어머니와 D 수련생은 교란을 배제하고 C 수련생 집에 가서 법학습과 교류를 견지했다. 시간이 지나자 그녀는 회복되었다. 어머니는 나를 데려가려고 하셨는데, 그때 내 신변에 다른 일이 있었다. 수련생이 정신과 몸에 겪는 고통이 클수록 제거해 버려야 할 사심이 크다고 할 수 있다.

E 수련생은 나와 어린 시절 친구였고 성격이 아주 좋았다. 나는 그가 어떤 일로 화내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최근 몇 년 동안 꾸준히 법을 외웠지만, 병업에 시달렸다. 최근 그를 만났을 때 어머니와 내가 이전에 물품을 준비한 일을 이야기했다. 그때는 나중에 정말 어려울 때 이런 것들로 다른 사람을 구제하고 사람을 더 잘 구할 기회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당시 E는 듣자마자 그렇게 여기지 않고, 누가 진심으로 다른 사람을 위해 물건을 준비할 수 있을지 믿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때 나는 깜짝 놀랐다. 우리는 일을 할 때 가능한 한 다른 사람을 위해 고려해야 하고, 가능한 한 각양각색의 사람 구하는 형식을 고려해야 한다. 그 일의 근본 취지는 다른 사람을 위한 것이고 더할 나위 없이 정상적인데, 어떻게 해서 믿을 수 없게 됐을까, 사(私)를 고수하여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은 것이 아닐까? 이어진 대화에서 그가 어떤 관념에 가로막힌 것을 발견했다. 우리가 헤어진 후 E는 갑자기 병이 심해졌다. 내가 그를 집에 초대했는데 그는 감사의 뜻을 표한 후 거절했다.

병업 형식이 갑자기 나타날 때, 왜 그것을 심성 제고와 누락 보완의 좋은 기회로 간주할 수 없을까? 물론 강요된 박해를 승인하라는 것은 아니며 이런 강요는 더욱 부정해야 한다. 그러나 어떤 수련생은 덮어놓고 배척과 부정을 하며 법 중에서 바른길로 돌아가겠다고 성심으로 맹세하지만 정말로 안으로 자신의 문제를 찾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고통을 해소하고 싶지만, 근본적인 집착을 바꾸고 싶어 하지 않았다. 이것은 자신을 속이고 남을 속이는 것과 무슨 구별이 있는가?!

만약 고생(苦)을 낙(樂)으로 삼지 못한다면 고난을 겪을 때 매우 고생을 느낄 것이다. 이러한 고생은 집착에서 비롯되고 집착은 사(私)에서 비롯된다. 고통의 출현에는 이유가 없는 것이 아니다. 고생하고 싶지 않은 사(私)가 클수록 마음으로는 고생을 느낀다. 고통은 정념을 소모하고 마음으로 고생을 더욱 느끼게 하며 고생하고 싶지 않게 한다. 사(私)는 그런 가운데서 장대해지고 고생도 강렬해진다. 이런 순환은 마치 막다른 골목에 들어간 것처럼 출로를 찾지 못한다.

반대로 고난을 개의치 않고 자신의 부족함을 찾는데 전심전력하면 즐거움이 그중에 있다. 자신을 바로잡는 것이 필요한 곳을 찾아내어 경지를 높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겪은 고통도 그에 상응하는 전환을 얻을 수 있고 고난도 자연히 사라지며 모든 것은 정말 좋은 일이 된다. 모든 일이 이와 같으니 사심이 없으면 고생도 없고, 고생을 느낄 수록 사심이 크다는 뜻이다.

사존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셨다. “만약 당신이 정념으로 당신을 지도하지 않고 대법제자답게 수련인의 표준으로 자신을 가늠하고 세상을 가늠하고 다른 사람을 가늠하지 않으면 당신은 바로 속인과 같다.”[1]

수련생에게 병업이 나타났을 때 주변 사람들도 매우 중요하다. 어떤 사람들은 바른 믿음과 법리로써 수련생을 깨우치게 하여 수련생의 정념을 강화하고 관과 난에서 벗어나도록 돕는다. 어떤 사람들은 관념을 왜곡하고 법리를 곡해하여 수련생을 오도하고 법에 어긋나는 일을 하여 수련생을 더욱 깊이 빠져들게 한다.

사존께서도 우리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당신에게 알려주는데, 어떤 마음이었든지 대법제자의 항목이고 혹은 대법제자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인데, 당신이 일을 무너뜨리는 작용을 일으켰다면 당신은 곧 마의 작용을 일으킨 것이다. 당신이 ‘나도 대법제자이다, 나 역시 아주 많은 일을 하였다’고 생각하겠지만, 그런 구세력은 당신이 한 일을 하나하나 기록해 두고 있다.”[1]

“그것이 당신을 박해하면 사부마저도 무슨 방법이 없다. 왜냐하면 그것들이 꼬투리를 잡았기 때문이다. ‘당신이 이러한 생명을 보라. 이것이 당신의 제자인가? 이렇게 부족한데 그를 좀 혼내줘야 하지 않겠는가? 당신은 그를 혼내주려 하지 않지만, 그가 우리에게 영향을 끼치고, 다른 사람에게도 영향을 끼치는데 아직도 그를 혼내주지 않는가!’ 내 생각에, 대법제자 당신들 앞에 놓인 길은 오직 착실하게 수련하는 길 뿐이며 다른 길이 없다.”[1]

얕은 소견이니 수련생께서 바로잡아 주시기 바랍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각 지역 설법 11 – 무엇이 대법제자인가’

[편주: 본문은 글쓴이 개인의 현재 인식에 따라 작성된 것이므로 수련생들이 서로 교류하고 비학비수(比学比修)하는 데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원문발표: 2022년 2월 9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2/2/9/43729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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