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윈난(雲南) 대법제자
[밍후이왕] ‘선에는 선의 보답이 있고, 악에는 악의 보답이 있다’라는 속담이 있다. 한 사람이 인간 세상에서 한 일체를 모두 자신이 감당해야 하는 것은 천리(天理)이다. 다만 어떤 사람은 나쁜 일을 하면 바로 현세(現世)의 응보를 받게 되고, 어떤 사람은 장래 혹은 다음 생에 이어서 응보를 받게 된다. 하지만 어떤 사람이 설령 큰 죄를 지었다 해도, 진심으로 뉘우치고 다시는 악을 저지르지 않는다면 하늘의 용서를 받을 수 있다.
밍후이왕은 윈난성에서 파룬궁(法輪功)을 박해해 응보를 받은 중국 공산당(이하중공) 각 부류 인원들 300여 명에 대해 보도했다. 본문은 편 폭의 제한으로 응보를 받은 사례 몇 가지만 예로 들겠다. 동시에 사람들이 진심으로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真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염하면 선과를 얻게 된다는 사실에 대해서 깨닫기를 바라는 바이다.
1. 파룬궁을 박해한 후, 즉시 응보를 받다
“사람의 한 생각도 천지는 반드시 알며, 선악에 보응이 없다면 건곤에 반드시 사심이 있을 것이다.” 역사상 전례가 없던 파룬궁에 대한 박해 중에서 많은 ‘610’, 공안, 검찰원, 법원 인원, 중공 사당(邪黨)분자 혹은 이익에 속은 세인들이 나쁜 사람을 도와 적극적으로 파룬궁 박해에 가담해 현세현보로 천벌을 받게 됐다. 응보를 받은 형식은 차 사고, 암, 전기 감전 사망, 돌연사 등이다. 불법(佛法)을 박해한 죄가 지극히 큰 사람은 무생지문(無生之門)에 들어가고 형신전멸(形神全滅)한다.
1) 불법(佛法)을 비방한 윈난성 ‘610’ 주요 인원인 양싱위안(楊興源)이 돌연사
양싱위안(남)은 윈난성 사법청 교육처 처장이고, 성(省) ‘610’ 주요 인원으로서, 적극적으로 파룬궁을 박해하고 계략을 꾸미는 데 가담했다. 2000년 7월, 그는 베이징(北京)에 가서, 전국 ‘610’ 및 사법 계통이 주관하는 ‘파룬궁 박해’ 시상대회에 참가했다. 대회 기간, 그는 그는 랴오닝(遼寧)성 사법청 악인을 알게 되어 랴오닝성에서 파룬궁을 박해하는 정황을 알 수 있었다.
양싱위안은 쿤밍(昆明)으로 돌아간 후, 바로 성 위원회 부서기이자 윈난성 ‘파룬궁 문제 처리 지도자 팀’(즉 ‘610 사무실’) 조장 왕톈시(王天璽)에게 전국 ‘파룬궁 박해’ 형식을 보고했다. 그리고 거금을 들여 랴오닝 ‘마싼자(馬三家) 방교단(幫教團)’을 윈난으로 청해와서 그들이 ‘전향’시킬 수 없는 파룬궁 수련생에 대한 피동적인 국면을 타파하라고 명령했다.
양싱위안의 명령으로 윈난성 위원회는 2000년 9월과 11월 두 차례 거액을 써서 사악한 랴오닝 ‘마싼자 방교단’ 악인들을 데려왔다. 선후로 윈난성 여자노동교양소와 윈난성 제2 노동교양소에 무고하게 구금된 파룬궁 수련생에게 소위 ‘전향세뇌’하는 박해를 가했고, ‘전향’하지 않는 파룬궁 수련생들에게 폭력, 혹형을 사용함으로써 파룬궁 수련생 여러 명이 사망하고 장애를 입었다. 후에 이런 세뇌 박해한 경험을 윈난성의 각 지역 및 전국의 성, 시까지 보급해 나갔다.
윈난성 ‘610’의 안배하에 양싱위안은 윈난성 방송국에서 파룬궁을 모욕하는 3집 정론 시리즈 ‘교량(較量)’ 제작에 가담했다. 이 시리즈는 진상을 모르는 사람들을 미혹시켜 파룬궁을 증오하게 함으로써 사람들에게 매우 나쁜 영향을 조성했다. 동시에 또 윈난일보 기자 쑨추이팡(孫翠芳)과 리샤오밍(李紹明)에게, 파룬궁 박해를 지지하며 파룬궁 수련생을 박해하고 ‘전향’시키는 데 사용할 글 ‘최후의 보루 정복’을 쓰게 했다.
양싱위안은 적극적으로 파룬궁 박해에 가담하고 파룬궁 수련생을 ‘전향’했다는 공으로, 2001년 전국 ‘5·1’ 노동절 훈장과 장려금을 받았다. 지금까지 윈난성에서 파룬궁을 박해한 악인 중에서 가장 높은 표창을 받았고 또 성 내의 훈장을 여러 차례 받음으로써 윈난성 사법 계통에서 파룬궁 수련생을 박해하는 주요 인물이 되었다.
하늘의 법망은 느슨한 것 같지만 죄인은 결코, 빠뜨리지 않는다. 너무 많은 악을 저질렀기 때문에 양싱위안은 응보를 받아 2007년 말 50세 나이로 돌연사했다.
2) 파룬궁 수련생을 모함하려고 시도하던 쿤밍시 둥촨(東川)구 다이탕쿤(代唐坤)이 응보 받아 사망
1999년 ‘7·20’ 중공 장쩌민(江澤民) 집단이 파룬궁을 박해하기 시작한 어느 하루, 쿤밍시 둥촨구(당시 둥촨시) 탕단(湯丹) 지구 진위안(金源) 회사의 다이탕쿤이라는 사람이 곡물상에 쌀을 사러 갔다. 곡물상 주인은 파룬궁 수련자로서 좋은 마음으로 그에게 파룬궁은 선을 가르친다는 것과 파룬궁이 박해당한 진상을 알려줬다. 하지만 다이탕쿤은 권유를 받아들이지 않고 곳곳으로 다니면서 파룬궁 수련생의 명단을 수집해 파출소에 보고했다.
탕단 정법위원회 서기 겸 파출소 소장인 펑밍(馮明)은 다이탕쿤을 데리고 상사에 보고하러 가려고 다이탕쿤에게 탕단 운수대 위훙(育紅)초등학교 입구에서 기다리라고 했다. 그런데 펑밍이 운전하던 차가 다이탕쿤이 있는 곳에 도착하자마자 차가 통제를 잃어 다이탕쿤을 치어 그가 즉사했다. 그리하여 펑밍은 다이탕쿤 집에 40만 위안(약 7500만 원)을 배상해 주고서야 이 일을 해결할 수 있었으나, 다이탕쿤은 죽음을 면치 못했다.
3) 파룬궁 수련생을 납치하고 박해한 파출소 소장 황바오치(黄保奇)가 응보 받아 10여 차례 칼에 찔려 사망
황바오치(남, 35세)는 전 젠수이(建水)현 공안국 청베이(城北)파출소 소장이다. 2006년 3월 그는 파룬궁 수련생 5명을 납치하고 박해했다. 2007년부터 젠수이현 공안국 수사대대 대대장의 임기 동안 먹고, 마시고, 오입질하고, 노름하고, 빚지고도 갚지 않으며 갖은 못된 짓을 다 하던 그는 2008년 10월 12일 응보를 받아 10여 차례 칼에 찔려 35세 나이에 사망했다.
함께 칼에 찔려 상처 입은 사람은 ‘610’ 사무실을 주관하던 정법위 부서기 쩌우즈쥔(鄒志軍)과 현 공안국 부국장 퉁진루(童金錄, 남, 약 40세, 대법 박해에 가담했으며 칼에 찔린 후 젠수이현 인민병원에서 치료할 때 에이즈병 진단을 받았다)이다. 그러나 현장에 있던 경찰 20여 명은 전혀 다치지 않았고, 그들 세 사람만 칼에 찔렸다.
황(黄) 씨가 사망한 후, 사당은 현의 모든 사람이 기뻐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공안의 형상을 높이고 부정부패의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잡지와 인터넷에 ‘황 영웅’ 추도회를 대대적으로 선전했다. 추도회 날에 현 위원회 서기가 추모사를 읽었고 또 아침 9시부터 점심 12시까지 학생 수천 명을 동원해 공안국 문 입구에서부터 1km 넘게 줄을 서게 했다. 또 경찰 수백 명을 출동시켜 현 공안국의 추도회 현장에서 화장터까지 약 6km의 모든 길 입구를 약 3시간 봉쇄해 자동차 수백 대가 멈춰 서있었다. 또 황 씨를 열사로 내세우려고 했지만, 평이 너무 안 좋아 실현할 수 없었고, 후에 그의 가족은 반년 후에야 화장할 수 있었다.
4) 중공의 졸개 노릇을 한 전 쿤밍강철 당위원회 서기 장구이성(張桂生)이 응보 받아 돌연사
장구이성(남, 회족, 1955년생)은 전 쿤밍강철 당위원회 서기다. 1997년 7월 중공 사당이 파룬궁을 박해하기 시작했을 때, 장구이성은 쿤밍강철(약 9만 명의 대형기업) 조직부 부부장의 권력을 이용해 사당에 협조해 회사의 파룬궁 수련생들을 잔인하게 박해함으로써 사당의 마음에 들어 조직부장, 부서기로 승진했으며 2001년 말에는 회사 당 위원회 서기(부청급)까지 올라가게 됐다.
2000년 전후, 쿤밍강철의 파룬궁 수련생 10여 명이 베이징(北京)에 가서 청원하자, 쿤밍강철 당 위원회 서기와 총경리가 파룬궁을 박해하는 데 힘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사당에게 정직당했는데 두 사람은 홧김에 퇴직했다.
이때 막 쿤밍강철 조직부장이 된 장구이성은 파룬궁을 적극적으로 박해하자 사당의 마음에 들어 쿤밍강철 당위원회 부서기(서기 직무대리)로 승진되었고 파룬궁을 박해하는 주요 책임자가 되었다. 2001년 말, 그는 파룬궁 수련생을 잔인한 수단으로 단호하게 박해해 쿤밍강철 당위원회 서기로 진급했다. 1997년 7월부터 2007년 말까지 그가 각급의 직무를 담당하는 동안 파룬궁 수련생 200여 명이 심사, 재산 몰수, 구류를 당했고 40여 명이 노동교양을 당했으며 30여 명이 억울한 판결을 받았다. 최소 2명이 박해로 사망했다. 대부분은 어쩔 수 없이 유랑생활을 하게 됐으며 수십 명은 퇴사당하고 많은 가족이 사방으로 흩어져 집과 가족을 잃게 됐다.
2007년 말 어느 날 정오, 온갖 나쁜 짓을 다 하던 장구이성은 회사 고위급 간부 식당에서 식사를 마치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에 도착했을 때, 평소 몸이 건강했던 장구이성의 얼굴색이 갑자기 변하더니 바닥에 쪼그리고 앉은 채 피를 토하고 인사불성이 되었다. 윈난성의 큰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치유할 방법이 없어 52세 나이로 사망했다.
장구이성이 사망한 후, 사당은 그가 파룬궁을 박해해 응보를 받은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그를 위해 혼을 불러온다며, 회사 처장급 이상 수백 명에게 일률로 개인 승용차를 타고 청장(澄江)현에 도착하도록 명령했다. 하지만 돌아올 때, 혼을 불러온다던 차 4대가 아주 짧은 몇십 km도 되지 않은 고속도로에서 교통사고를 당하자, 회사 사람들의 민심이 흉흉했다.
5) 악을 저지르면 현세의 응보를 받는다. 안닝(安寧) 뤄바이(羅白) 분국 악경 쉬춘웨이(徐春偉), 리정파(李正發)는 교통사고로 사망하고 한 사람은 중상
2004년 1월 9일, 윈난성 쿤밍강철 뤄바이 분국의 승용차가 쿤추(昆楚) 고속도로에서 교통사고가 났다. 2003년 11월 6일 파룬궁 수련생 펑바오딩(馮寶定), 가오후이셴(高慧仙), 지카이춘(紀開春)을 납치했던 경찰 3명이 차에 타고 있었는데 그중 한 명은 사망하고 두 명은 중상을 입었다.
뤄바이 공안분국 리밍(黎明)파출소 경찰 쉬춘웨이는 교통사고 현장에서 사망했다. 이 사람은 납치 임무를 집행하는 중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가담하고 타인의 충고도 듣지 않고 선(善)을 권하는 말을 믿지 않던 그는 자신의 목숨을 잃게 됐다.
뤄바이 제3 구치소 감옥 경찰 리정파는 갈비뼈 여러 개 골절, 심한 혈기흉, 간 파열, 비장 파열, 위장 파열, 간엽절제, 비장적출, 위장 대부분을 절제했다.
뤄바이 분국 수사과 경찰 자완훙(賈萬紅)은 팔이 골절되고 심각하게 눈을 다쳐 안구를 절개할 뻔했다.
그러나 위의 3명과 같은 차를 타고 있던 뤄바이 교통경찰대 교통경찰 양쥔(楊軍, 파룬궁을 박해하는 소위 ‘임무’에 가담하지 않았음)은 가장 가볍게 다리에만 경상을 입었다.
쿤밍강철 직원들은 “어떤 사람은 경찰이 되자 좋고 나쁨을 가리지 않고, 나쁜 사람을 도와 나쁜 짓 하는 것을 분명히 알면서도 양심을 속이고 자신의 양지는 속였지만, 천지는 속일 수 없다.”라고 말했다.
6) 자기 고집대로 하던 쿤밍의과대 부속 제2 병원 보위과 과장 쑤밍(蘇明)이 응보 받아 약초 중독으로 사망
쑤밍(남)은 쿤밍의과대 부속 제2 병원 보위과 과장으로, 임기 동안 파룬궁 박해에 가담했다. 파룬궁 수련생이 그에게 진상을 알려 줬지만, 그는 듣지 않았고 “하고 싶은 대로 한다.”라고 말했다. 보위 과장 임기 동안 파룬궁 수련생 여러 명이 박해를 받았으며, 어떤 수련생은 무고하게 구류·노동 교양을 당했고 어떤 수련생은 어쩔 수 없이 병원 직장을 떠나야 했다.
2007년 12월 8일, 쑤밍은 몸보신하려고 20여 명과 함께 대초오(大草烏, 일종 독성 약초)를 먹었다. 다른 사람은 아무렇지도 않은데, 쑤밍만 응보를 받아 중독되었고 응급처치를 했지만 12월 9일 결국 사망했다.
7) 나쁜 사람을 도와 나쁜 일을 하던 푸얼(普洱)시 란창(瀾滄)현 체육운동위원회 주임 왕바오핑(王保平)이 교통사고로 비참하게 사망
왕바오핑(남, 40세 좌우)은 윈난성 푸얼시 란창현 체육운동위원회 주임이다. 1999년 ‘4·25’ 전날 밤, 왕바오핑은 파룬궁 수련생들이 체육위원회 운동장에서 연공할 수 있게 편리를 봐주기 위해서라며, 공안국에 보고하는 게 아니라 허가증을 주기 위해서라고 속여 많은 파룬궁 수련생의 명단을 작성했고, 이후 ‘7·20’ 박해를 위해 준비했다.
2001년 겨울, 왕바오핑은 교통 규칙 위반으로 쓰란(思瀾) 도로에서 트럭과 부딪혀 현장에서 사망했는데 온몸이 산산조각이 났다. 운반해 온 시체를 보니 머리는 비닐봉지에 감싸져 있었고 이마 위에서부터 전부 찢어져 내려갔으며 온몸은 팔에서 허벅지까지 그물을 짠 것처럼 실로 꿰매져 있었고 피범벅이었다. 검시하고 옷을 입혔을 때, 물로 몸의 피를 씻어냈지만, 머리를 감싼 비닐봉지에선 여전히 피가 흘러내려 그 참혹함은 차마 볼 수 없었다.
8) 중공을 따라 파룬궁을 박해한 스핑(石屏)현 ‘610’주임 룽칭푸(龍清福) 교통사고로 사망
룽칭푸(남)는 훙허(紅河)주 스핑현 ‘610’ 사무실 주임이다. 2003년 6월 22일, 룽칭푸와 부주임 장○는 훙허주 ‘610’에 가서 파룬궁을 박해하는 회의에 참여했는데, 돌아오는 길에서 교통사고로 룽칭푸는 현장에서 사망했고 부주임 장○는 중상을 입어 갈비뼈가 몇 개 끊어져 몇 개월의 입원 치료를 받아야 했다.
이전에 룽칭푸와 부주임 장○는 대법과 대법 사부님을 비방하는가 하면 “우리가 당신 사부를 욕했는데 우리를 어찌할 방법이 있는가? 우리는 여전히 잘 지내고 있지 않은가?”라며 큰소리쳤다. 그들은 또 파룬궁 수련생들에게 강제로 대법과 대법 사부님을 욕하게 하면서 ‘연공하지 않겠다는 보증서’를 쓰게 했다. 두 ‘610’ 두목이 동시에 응보를 받게 되자 스핑현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사람들은 “이건 파룬궁을 박해하고 나쁜 일을 한 것에 대한 응보다.”라고 말했다.
9) 악을 너무 많이 저지른 훙허주 젠수이현 ‘610’두목 펑중파(彭中發)가 암으로 사망
펑중파(남, 약 50세)는 전 훙허주 젠수이현 ‘610사무실’ 두목이다. 파룬궁 박해를 계획하고 박해에 적극적으로 가담한 그는 파룬궁 수련생 10여 명에게 억울한 노동교양을 받게 했고 많은 수련생을 세뇌반으로 보내 세뇌시켰다. 악을 너무 많이 저질렀고, 좋은 말로 선을 지키라는 파룬궁 수련생의 충고를 듣지 않았다. 2004년 펑중파는 암 진단을 받고 고통스럽고 괴로운 항암치료를 했지만, 2006년 7월 31일 젠수이현 병원에서 사망했다.
10) 파룬궁을 모욕하던 시처우(西疇)현 라오제(老街)행정촌 서기와 주임 교통사고로 사망
2000년 7월 7일, 원산(文山)주 시처우현 라오제행정촌의 서기와 주임인 후쑤하이(胡速海), 류잉융(劉應勇), 모성주(莫生柱) 3명은 저녁 식사 후 드라이브를 하다가, 같이 타고 있던 기사를 포함해 4명이 현장에서 사망했다.
이전에 라오제행정촌 촌서기는 함부로 파룬궁을 모욕했다. 2000년 4월 촌위원회는 ‘전향반(轉化班)’을 조직해 파룬궁 수련생을 100여 명이나 납치했다. 매 수련생에게 억지로 ‘전향’하는 발언을 하게 했으며 또 ‘파룬궁을 연마하지 않겠다는 보증서’를 쓰게 하고 쓰지 않으면 집으로 돌려보내지 않았다. 라오제행정촌 악인이 이런 응보를 받은 것은 ‘나쁜 일을 하면 반드시 나쁜 결과가 있다’라는 천리에 부합한 것이다.
11) 대법을 모욕한 원산주 시처우현 공안국장 야오즈민(姚志敏)이 감전돼 사망
야오즈민(남)은 원산주 시처우현 공안국장이다. 2002년 4월 어느 하루, 야오즈민은 라오제에 낚시하러 갔다가 낚싯대가 고압선에 걸려 감전으로 겨우 40여 세의 나이에 사망했다.
이전에 2001년 2월 9일, 야오즈민은 공안국 부국장 저우윈궈(周雲國)와 정보과의 장궈융(張國勇), 린취안정(林权正), 량창푸(梁昌福), 양쉬안쿠이(楊選奎), 샤오훙우(肖洪武)을 데리고 파룬궁 수련생 집에 난입해 대량의 대법 서적을 빼앗았고 파룬궁 수련생 4명을 현 공안국, 구치소로 납치해 갔다. 파룬궁 수련생을 강압적으로 ‘전향’하는 과정에서 대법과 대법 사부님을 모욕했다.
12) 파룬궁 박해를 주관하던 원산주 시처우현 공안국 부국장 저우윈궈(周雲國) 폐암으로 사망
저우윈궈(남)는 원산주 시처우현 공안국 부국장으로 파룬궁 박해를 주관함으로써 파룬궁 수련생에 대한 박해에 여러 차례 가담했다. 2003년 6월, 저우윈궈는 폐암으로 사망했다. 그가 사망하기 1년 전인 2002년 저우(周)의 아버지와 형도 같은 날 폐암으로 사망했고, 저우윈궈가 40여 세에 이런 액운을 당한 것은 그가 불법(佛法)을 박해한 큰 죄를 범해서다.
13) 자신의 고집대로만 행동하던 멍하이(勐海)현 국보대대 대장이 뇌암으로 사망
위안춘(袁春, 남)은 시솽반나(西雙版納)주 멍하이현 국보(국내안전보위국)대대 대장이다. 2006년 3월에 현지 파룬궁 수련생 20여 명을 납치할 때 머리가 좀 아팠다. 파룬궁 수련생이 자비로 그에게, 장(江) 씨 깡패집단을 따라 선량한 파룬궁 수련생을 박해하지 말아야 하고 착한 일을 하면 좋은 결과가 있고 나쁜 일을 하면 반드시 나쁜 결과가 있다고 알려줬다. 하지만 위안춘은 고집대로 위법적으로 선량한 파룬궁 수련생 여러 명을 감옥에 보내 잔인한 박해를 당하게 했고 어떤 수련생은 감옥에서 심한 구타를 당했다. 2개월 후인 2006년 5월, 위안춘은 응보를 받아 뇌암 진단을 받고 반년 동안 두 차례 수술을 했으나 결국은 사망했다.
14) 남을 해치는 것은 자기를 해치는 것과 같다. 바오산(保山) 공안국 정보과 과장이 고압 감전으로 사망
윈난(雲南) 바오산지구 바오산공안국 정보과 과장(이름 모름)이 1999년 말부터 2000년까지 대법을 박해한 범행은 많다. 한번은 파룬궁 수련생 여러 명을 납치한 후 ‘공로축하회’ 술자리에서, 짧은 기간 내 바오산지구 파룬궁 수련생을 전부 납치하겠다고 사악하게 큰소리쳤다. 집으로 돌아가 발을 씻은 물을 밖에다 버렸는데, 뜻밖에 물이 고압선에 튀어 한순간 하늘의 응보를 받아 황천길로 갔다.
15) 파룬궁 수련생을 무고한 쿤밍강철건설회사 직원 후메이팡(胡美芳)이 응보 받아 넘어져 사망
후메이팡(여, 47세)은 쿤밍강철건설회사 직원이다. 후메이팡은 사당의 말을 믿고 파룬궁을 적대시하고 세상을 속이는 거짓말로 수천 위안 장려금을 얻으려고 했다. 인격·양지를 팔고 인성을 상실한 그녀는 2004년 10월 23일 회사의 파룬궁 수련생 허치충(何其瓊)을 모함해 납치, 자산 몰수, 감금을 당하게 했고 4년 판결을 받게 했다.
후메이팡이 파룬궁 수련생을 모함한 지 6개월도 되기 전인 11월 9일, 그녀의 남편이 오토바이에 그녀를 태우고 놀러 가던 중 화물차와 부딪치려고 하자 당황한 후메이팡은 오토바이에서 바닥으로 넘어졌는데 현장에서 뇌장이 흘러 사망했다.
2. 미로에서 잘못을 알고 불법(佛法)을 존경해 선과를 얻다
파룬궁에 대한 역사상 전례에 없는 박해 중에서 많은 사람이 중공의 거짓 독해를 받아 중공을 따라 파룬궁을 비방하고 박해하면서 많은 악한 일, 잘못된 일을 했다. 하지만 그들은 대법 진상을 듣고 중공의 사악함을 뚜렷하게 알고 중공에서 이탈하고 진심으로 잘못을 뉘우치자 신의 용서를 얻어 복을 받게 됐다.
1) ‘610’ 인원이 진심으로 잘못을 뉘우치자 아들이 기사회생하다
윈난성 ○지역 ‘610’인원 A는 남편이 ○감옥 경찰이다. 동창 모임에서 A의 친구인 파룬궁 수련생이 A에게, 병을 제거하고 몸을 건강하게 하는 파룬궁의 기적적인 효과와 좋은 사람이 되는 도리, 그리고 박해 진상을 알려줬다. A는 듣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또 수련생에게 “동창이니까 봐주지 아니면 감옥에 보냈어.”라고 위협했다.
후에 A의 외동아들이 푸단(復旦)대학에 합격했다. 재학 기간 불행하게 교통사고로 중상을 입었는데 사고를 일으킨 차는 도주했다. 병원 측은 진료하는 과정에서 아들의 심장이 심각하게 손상되어 치료할 방법이 없다며 위독하다는 통지를 여러 번 보냈다. A는 막다른 골목에 이르러 도움을 청할 곳이 없는 정황에서 갑자기 파룬궁이 생각났다. 그리하여 그녀는 그 동창을 찾아가 돈을 얼마나 쓰든지 가산을 탕진해서라도 아들을 구해야겠다고 말했다.
이 동창은 그녀에게 “네가 이 일에 부딪힌 것은 파룬궁 박해에 가담한 것과 관계가 있다. 하지만 신불은 자비하시니 너는 오늘부터 다시는 천인무도한 일에 협조하지 말고 되도록 네가 이전에 했던 잘못을 보충해야 한다. 그리고 전에 너를 통해 노동교양소, 감옥에 납치돼 들어간 파룬궁 수련생들을 구출하고 네가 박해했던 파룬궁 수련생들을 찾아 진심으로 사과하고 네가 갈취한 돈을 전액 배상하고 너의 가족들과 함께 진심으로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쩐싼런하오(真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염하면 너의 아들을 구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알려줬다.
A는 진상을 알고 난 후, 바로 그녀를 통해 노동교양소, 감옥에 수감된 파룬궁 수련생들을 찾아갔는데 대부분은 이미 집으로 돌아와 있었다. 그리하여 그녀는 집마다 방문해서 사과하려고 했다. 그녀는 ‘내가 이전에 그들을 그렇게 잔인하게 대했는데 그들은 나에게 욕하고 보복하지 않을까?’라고 생각했지만, 아들의 병을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찾아갔다. 의외로 모든 파룬궁 수련생이 그녀를 너그럽게 용서해 주었고 욕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그녀는 또 강탈하고 빼앗은 돈을 계산해보니 약 24만 위안(약 4500만 원)이 넘었는데 그녀는 이 돈을 파룬궁 수련생에게 돌려주었다. 총액의 3분의 1을 돌려주기도 전에 생각지도 않게 아들의 병이 저절로 나았는데 재검사할 때 의사도 불가사의하다고 말했다.
아들이 회복된 후, 그들 온 가족은 철저하게 대법 진상을 알게 됐고 모두 대법 사부님께 감사해하면서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염했을 뿐만 아니라 모두 ‘삼퇴(당, 단, 대를 탈퇴)’도 했다.
2) 경찰이 위급할 때 ‘9자 진언’을 염해 그의 목숨을 구하다
어느 하루, 쿤밍 ○공안분국 경찰 몇 명이 사람들에게 진상을 알리던 노년 파룬궁 수련생을 납치했다. 노년 파룬궁 수련생을 납치해 공안분국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한 경찰이 전흉부 통증으로 몹시 고통스러워했다. 그는 얼굴이 창백해지고 사지가 차가워지고 온몸에는 식은땀이 흐르면서 쇼크 증상이 나타났다.
노년 수련생이 증상을 보고 그에게 빨리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염하라고 권했다. 처음에 그는 좀 망설였는데 옆에 있던 동료가 염해 보라고 하자 이 경찰은 한번 한 번 염하고 좀 지나자 아프던 증상이 사라졌고 마치 아무 일도 발생하지 않은 것 같았다. 현장에 있던 경찰들은 직접 파룬따파의 신기함을 목격하고 선심이 깨어나 공안분국에 도착하기 전에 이 노년 수련생을 풀어줬다. 수련생은 그들에게, 다시는 중공과 함께 파룬궁을 박해하지 말고 대법제자를 선하게 대하면 복을 받을 것이라고 알려줬다.
3) 진심으로 뉘우치자 어머니의 심각한 심장병이 회복
우리 가족 4명 중 아버지와 여동생, 나는 파룬따파를 수련하고 어머니만 수련하지 않았다. 1999년 ‘7·20’ 중공이 파룬궁을 박해한 후, 원래 우리 수련을 찬성하지 않았던 어머니는 우리 수련에 대한 거부감이 더욱 커졌다. 특히 아버지가 2013년 박해로 사망하고 여동생과 내가 선후로 납치·감금당하고 여동생이 억울한 판결을 받게 되자, 어머니는 나와 여동생을 비난했을 뿐만 아니라 또 대법 사부님과 대법에 대해 불경한 말을 했다.
어머니는 성격이 난폭한 것 말고는 건강은 줄곧 좋은 편이어서 큰 병 없이 잘 드시고 잘 주무셨다. 그랬던 어머니가 2016년에 심장에 갑자기 문제가 생겼다. 심장박동이 느려 분당 30~40회만 뛰었다. 심장박동을 유지하기 위해 의사의 제안으로 20만 위안(약 3700만 원)을 들여 심장박동기를 달았다. 하지만 심장박동기를 달자마자 어머니는 혈관염, 패혈증 감염증상이 나타나 어쩔 수 없이 심장박동기를 뗄 수밖에 없었다.
위급한 상황에서 나와 여동생은 어머니에게 파룬궁이 박해받은 진상을 알려주는 동시에, 이것은 모두 어머니가 대법 사부님과 대법을 존경하지 않아 하늘의 응보를 받은 것이며 대법 사부님께 참회해야만 어머니를 구할 수 있다고 알려줬다. 이때 어머니도 우리가 알려준 진상을 믿고 바로 파룬궁 사부님께 간절하게 잘못을 인정하는 회개서를 쓰는 동시에 매일 진심으로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염하자 어머니의 병은 안정을 찾았고 심장박동도 정상적으로 돌아와 심장박동기를 달 필요가 없었다.
이 일이 발생한 후, 어머니는 대법에 대해 새로운 인식이 있게 되었고 또 “중공은 줄곧 거짓말로 전 중국인들을 속였으니 다시는 중공 매체의 유언비어 선전을 믿지 않겠다.”라고 말씀하셨다.
3. 맺음말
이상은 밍후이왕 기사 중, 윈난성에서 파룬궁 수련생을 박해해 응보를 받은 300여 명의 실례 중에서 현세현보한 사례를 선택한 것이다. 동시에 우리는 즉시 잘못을 뉘우치고 진심으로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염하면 선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여전히 파룬궁 박해에 가담하고도 아직 응보를 받지 않은 중공 인원은, 요행 심리를 품지 말고 사람 목숨이 달린 중대한 일이므로 생명을 소중히 여기고 즉시 파룬궁에 대한 박해를 멈추고 진심으로 뉘우치고 속죄하여 좋은 미래가 있기 바란다.
원문발표: 2021년 1월 17일
문장분류: 문화채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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