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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년의 억울한 옥고를 치른 산시 리저우원(李周文) 박해로 사망

[밍후이왕] [밍후이 통신원 산시(陝西) 보도] 바오지(寶雞)시 펑샹(鳳翔)현 천춘(陳村)진 수이거우(水溝)촌 파룬궁 수련생 리저우원(李周文)은 두 차례의 불법 판결로 11년 동안 억울한 옥고를 치렀다. 2016년, 출소할 때 온몸이 박해로 상처투성이였고, 생활을 스스로 하기 어려웠다. 2019년 11월, 7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아내 장가이슈(張改秀)도 파룬따파를 수련했다는 이유로 일찍이 불법적으로 4년 형을 선고받았다. 건강 상태가 매우 좋지 않았기 때문에 불구속 집행을 받았지만 늘 협박에 시달리고 장기간 억압당하며, 고독하고 무력하여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다가 2008년 2월 26일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다.

부부가 수련하여 심신이 향상된 것을 모두가 알고 있다

장가이슈는 1997년 이전, 몸에 여러 가지 질병이 있어 여러 병원 치료를 했으나 효과가 없어 줄곧 집에서 지냈는데 스스로 생활할 수 없었다. 1997년 정월, 다른 사람에게서 파룬궁이 병을 제거하는 데 뛰어난 효과가 있다는 소개를 받았다. 3월 8일, 리저우원은 아내와 같이 바오지 연공장에 가서 파룬궁을 배우고, 집에 돌아와서 꾸준히 법공부를 하고 연공을 하여 한 달도 안 되어 장가이슈는 침대에서 내려올 수 있었고, 점차 생활도 스스로 할 수 있게 되었다. 그 후 장가이슈는 꾸준히 연공하여 밭일도 할 수 있게 되었다.

아내의 신기한 변화를 본 리저우원도 연공을 시작했다.

장가이슈의 신체 변화를 본 주변 사람들이 연공에 참가하기도 했다. 연공을 통해 신체만 혜택을 본 것이 아니라 심성적으로도 많은 변화를 얻을 수 있었다. 주변 사람들은 리저우원과 아내에게 큰 변화가 생겼다고 말했다. 부부는 계속해서 연공을 했다.

리저우원 납치되어 징역 7년 형을 받고 불안에 떨던 아내가 억울하게 세상을 떠나다

1999년 7월 20일, 중공의 악한 우두머리 장쩌민은 파룬궁에 대해 미친 듯이 날뛰며 탄압하기 시작했다. 리저우원이 파룬궁 수련을 포기하지 않자 천춘파출소 경찰이 끊임없이 찾아와 소란을 피웠다.

2001년 9월 11일, 펑샹현 국보대대와 천춘파출소는 리저우원의 집에 불법 침입하여, 수사증을 제시하지 않고 집을 뒤져 모든 파룬궁 서적과 진상 자료를 빼앗아갔고, 리저우원을 마을 초대소로 납치해 23시간 동안 구금했으며, 이후 천춘파출소로 옮겨 소환장 등 법률문서를 작성하게 했다. 수속이 끝난 후 12일 오후 5시경 그를 현 구치소에 가두었다.

구치소에서 연공을 하다가 구치소 경찰에게 몇 차례 폭행을 당하다

그 후 리저우원 7년, 장가이슈 4년 형을 불법적으로 받았는데, 장가이슈의 병세가 재발해 몸 상태가 매우 좋지 않아 불구속 집행을 했다.

리저우원은 2002년 5월 23일부터 2007년 12월까지 불법적으로 감옥에 갇혀 박해당했다. 2002년부터 2005년까지 푸평현 좡리교도소, 2005년 11월 22일 웨이난교도소로 옮긴 후 2007년 12월에야 출옥했다. 감옥에서 리저우원은 가혹하게 박해와 강제 세뇌를 당하고, 전향서를 쓰도록 강요당했다.

장가이슈의 불구속 집행 기간 현 정법위와 공안국은 거의 매월 집에 와서 소란을 피우며 박해했다. 담이 작고 글조차 모르는 농촌 부녀자인 그녀는 겁을 먹고 긴장하여 정신이상을 초래했다. 아들이 여러 가지 치료로 돈을 많이 썼으나 효과를 보지 못하고 2008년 2월 26일, 장가이슈는 5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아들도 외부로부터 차별을 받아 파룬궁에 대한 불만이 생겼고, 나중에 아버지 리저우원에게 규제를 가했다.

수련을 포기하지 않아 두 번째 징역 4년 반을 선고 받다

리저우원은 감옥에서 돌아온 후 줄곧 현 국보대대와 610사무실 사람들의 교란을 당했다. 그가 수련을 포기하지 않자 2009년 5월 6일 현 국보대대와 현 청관파출소에서 리저우원을 납치해 현 초대소에 20여 일 동안 감금했다. 20여 일 후, 장쩌민이 내린 지표를 강행 완료한다는 근거로 5월 22일, 리저우원을 구치소에 가두어 박해, 심문한 끝에 4년 반 형을 선고하고, 두 번째 리저우원을 웨이난감옥에 가두어 박해했다.

전후 두 차례에 걸친 11년 동안의 박해로 리저우원은 정신적으로 큰 상처를 입었다. 가정이 크게 파괴되었고, 과도한 스트레스, 막대한 치욕, 메우기 힘든 상처를 입었고, 경제적으로 (리저우원은 기계정비공으로 월평균 수입이 약 1만 위안(약 185만 원) 큰 손실을 입었다.

2016년, 출소하게 된 리저우원은 박해로 인해 온몸이 상처투성이가 되어 생활을 스스로 하기 어려웠다. 2019년 11월, 그는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다.

 

원문발표: 2022년 1월 6일
문장분류: 중국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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