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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대법제자, 집착을 제거하고 다시 정진하다

글/ 중국 대법제자 장화(璋華)

[밍후이왕] 저는 소년 시절에 법을 얻은 중국 대법제자입니다. 사부님의 자비로운 보호로 오늘까지 걸어왔습니다. 이 20여 년 수련을 통해 많은 것을 깨달았습니다. 아래에 최근에 있었던 일들로 여러분과 교류하려 합니다.

명리심을 제거하고 확고하게 신사신법(信師信法) 하다

제가 10여 년간 일해 온 회사는 여러 이유로 작년 하반기에 부도가 났습니다. 회사에서는 남은 고객 자원을 몇몇 주주들에게 나눠주었습니다. 저도 그중 한 명이었습니다.

저는 학교를 졸업한 후 곧바로 이 회사에서 근무했습니다. 저는 열심히 일했으며, 이익에서 타인과 다투거나 비교하지 않았고 많은 불공정, 특히 이득을 위해 상사를 찾아간 적이 없었습니다. 저는 줄곧 자신의 이익에 대한 마음이 그다지 심하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회사가 부도나 고객 자원이 분배되고 스스로 사업을 전개하는 과정을 통해 저의 명·리(名·利)에 대한 마음이 이토록 심하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매 하나의 고객 자원도 하나의 수입원입니다. 고객 자원의 수량 및 품질의 우수성은 수입의 많고 적음을 결정하기 때문에 분배 과정에서 나타나는 갖가지 마음은 모두 저에 대한 시험이었습니다. 당시 저는 속인 동료들처럼 다투고 떠들지는 않고 겉으로는 평범하게 대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이익을 위해 거리낌 없이 행동했습니다. 제가 얻어야 할 이익에 손해가 되자 저도 불만이 생겼습니다. 그 당시 저의 ‘따지지 않는다.’라는 것은 사실 일종의 ‘억지로 참는다.’라는 것이었고 이익을 위하는 마음은 이미 충격을 입어 평온하지 않았으며 질투심과 원망하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회사가 부도난 후 고객의 편의를 위해 저는 회사와 멀지 않은 곳에 사무실을 빌려 업무를 보았습니다. 그러나 원래 회사의 동료 두 명의 사무실과 인접해 있어 매일 그들의 업무량을 알 수 있었습니다. 제 마음도 그에 따라 파동이 일기 시작했으며 이익심의 교란으로 마음을 고요히 하고 법공부를 할 수 없었습니다.

저도 그런 상태가 옳지 않다는 것을 의식하게 됐습니다. 이후에 제 사무실을 지나 그들의 사무실에 가서 업무를 보는 사람이 있기만 하면 속으로 “보아도 보지 못한 듯이 하니 미혹되지 않도다 들어도 듣지 못한 듯이 하니 그 마음 혼란하지 않도다”[1]를 묵묵히 외웠습니다. 그렇게 하니 서서히 마음이 평온해졌고 그런 교란을 더는 받지 않았습니다. 당시 저는 이익심을 완전히 내려놓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사부님께서는 “어떠한 집착심이든 당신에게 있기만 하면, 각종 환경 중에서 그것을 닳아 없어지게 해야 한다.”[2]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겠다. 돈은 수련인에게 가장 큰 장애이다.”[3]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혼자 업무를 본 지 몇 달 만에 두 분의 고객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는데 인사발령으로 인해 업무를 다른 데로 이전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첫 번째 전화를 받았을 때 제 마음은 그래도 비교적 평온했습니다. 그러나 두 번째 고객에게 연락이 왔을 때 제 마음은 좋지 않았습니다. 비록 겉으로는 평온했지만 내심은 이미 복잡했습니다. 저에게는 매출 비중이 높은 고객이었기에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저는 잠을 잘 자는 편이라 불면증이 없었는데 두 번째 고객의 전화를 받은 날은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침대에서 엎치락뒤치락하며 새벽 1시가 넘도록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나중에는 아예 일어나서 연공을 해 그 일을 잊으려 했습니다. 그러나 제2장 ‘파룬좡파(法輪樁法)’를 연마할 때 머릿속에 여전히 그 일이 자꾸 떠올랐고 손실이 생각나 괴로웠습니다. 그때 저는 자신에게 물었습니다. ‘너는 연공인이 맞아? 20여 년을 수련했는데 아직도 이런 작은 이익의 손실로 잠들지 못하는데 부끄럽지 않니? 진짜로 수련하는 거 맞아?’

실제 상황으로 봤을 때 그 고객이 떠나서 수입이 줄어든다고 해도 경영을 못 할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만약 전에 다니던 회사가 부도나기 전이라면 그 고객이 떠난다고 해도 제 마음이 크게 영향을 받지 않았을 것입니다. 현재는 제가 경영하기에 이토록 신경 쓰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강렬한 이익심이 아니겠습니까? 저는 자신에게 한번 또 한 번 알려줬습니다. ‘네가 만약 수련하려 하고 진정한 제자가 되려 한다면 반드시 이런 이익심을 내려놓고 갖지 말아야 한다.’ 그렇게 끊임없이 마음으로 정념을 강화하니 마음은 점차 평온해졌고 연공을 마치고 아주 빨리 잠이 들었습니다.

그다음 달에 또 한 고객이 사정으로 인해 떠났습니다. 고객을 인수인계할 때 저는 차분하고 태연히 마주할 수 있었습니다. 마음이 동요하지 않았고 초조하지도 않았습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반대로 당신이 그것을 내려놓으면 좀 가난해도 아주 평온해지는데, 실제로 대법을 배운다 하여 가난해질 수 없으며 삶이 오히려 매우 유쾌할 것이다.”[4]

제 마음을 내려놓으니 상황도 조금 변했습니다. 세 명의 고객이 떠났지만, 일부 고객이 늘었습니다. 비록 현재 새 고객으로 인한 수입이 떠난 고객에 비해 많지는 않으나 고객 이탈로 인한 손실을 어느 정도 만회했습니다.

그러나 집착에 대한 인식과 제거도 층층이 있었는데 어떤 집착은 깊이 숨겨져 있었습니다.

최근 일부 뉴스를 보니 제 현재 업무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을 것 같았습니다. 저는 마음이 동요됐습니다. 그 상황을 보면서 이제라도 빨리 다른 일을 찾아야 할 때가 아니냐고 생각했습니다. ‘앞으로 또 어떻게 될까’라고 생각하면서 온종일 불안했고 법공부를 해도 마음이 고요해지지 않았습니다.

다음 날 오전에도 기분은 여전히 좋지 않았습니다. 점심시간에 자신에게 물었습니다. ‘왜 또 이렇게 마음이 동요해? 고객을 잃을까 두려워서? 이익이 손해를 볼까 봐 두려워서? 이것이 이익심이 아니야? 심지어 앞으로 이 일자리를 잃는다고 해도 새 일자리를 찾으면 되잖아? 더 이상의 변동을 원치 않는 것은 지금이 안정적이어서가 아니라 안일함을 추구하는 거 아니야?’

한 걸음 물러나서 생각해보니 설령 이 일자리를 잃고 앞으로 단기간에 새 직장을 구하지 못하거나 심지어 당분간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도 제 삶에는 큰 영향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왜 아직도 이토록 집착하는 것일까? 역시 잃을까 봐, 이익을 잃을까 봐, 동시에 평판이 나빠질까 봐, 일자리가 없어지면 사람들이 백수라고 놀릴까 봐 두려워서였습니다. 명예를 구하는 마음이었습니다. 물론 우리 수련인은 속인 사회에서 생활하므로 모든 행동은 속인 상태에 부합해야 합니다.

다른 한 방면으로 말하면 제가 본 뉴스도 제 일에 영향을 미칠지는 미지수였습니다. 그러나 저는 오히려 그 일로 들떠 있고 득실을 따지고 있었으며 가뭄에 도랑 치는 격이었습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한 수련인으로서 금후의 인생행로는 개변될 것이며, 나의 법신이 당신에게 새롭게 안배해 줄 것이다.”[2]

만약 제가 진정으로 신사신법(信師信法)했다면 사부님께서 저를 책임지고 계신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수련인의 길은 사부님께서 모두 이미 배치해놓으셨습니다. 저는 오로지 자연스러움에 따라야 하고 자신의 마음과 집착에 동요하지 말며 억지로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런 생각을 하니 마음이 자연스럽게 편안해졌습니다. 현재 저는 될수록 이런 것에 교란받지 않도록 하고 매달 버는 돈의 많고 적음에 집착하지 않으며 속인처럼 이익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그런 것을 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을 자연스러움에 따르고 좋은 마음가짐을 유지하며 일을 잘하는 외에 수련에 신경 쓰고 있습니다.

정과 인터넷 중독을 제거하다

저는 어릴 적부터 책 읽기를 좋아해서 글씨만 있으면 가져다 읽었습니다. 그리하여 중학교 때 이미 소설을 보기 시작했고 영화, TV도 보기 좋아했습니다. 그렇게 많은 사상업이 형성됐습니다. 대학교 때 인터넷을 접했고 인터넷 소설 등도 많이 보았습니다. 일을 시작한 후로는 매일 컴퓨터를 사용했습니다.

사실 수련한 후에 더는 그렇게 봐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았지만 의지가 확고하지 못해 욕망에 굴복당해서 가끔 인터넷에서 그런 것들을 보았습니다. 인터넷에 빠져드는 건 아니지만 ‘좀 쉬자.’라는 생각에 이끌리면 웹서핑을 하게 됐습니다. 사실 ‘좀 쉬자.’라는 생각을 하면 안 되지만 그런 생각이 들 때 옳지 않다는 생각을 못 했습니다. 일부 문장이나 동영상을 보고 나면 그 속의 인물, 줄거리 등에 대해 감개무량하고 때로는 마음이 흔들리며 오랫동안 마음이 평온해지지 못하고 그것에 교란받게 됩니다. 그만 좀 보라고 자꾸 타일러도 한동안 지나서 또 인터넷에 접속해 보게 됩니다. 저도 수련인은 이런 것을 봐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고, 보고 나면 후회했지만 늘 그런 집착과 욕망을 끊지 못했습니다.

동시에 가부좌할 때 가끔 조는 현상이 나타났는데 늘 자신에게 정신이 또렷한 상태를 유지하도록 일깨워줍니다. 특히 인터넷을 본 뒤 컨디션이 좋지 않다는 느낌이 확연히 들기도 하고 때로는 나쁜 꿈을 꾸기도 하며 꿈속에 더러운 똥 등이 있었습니다. 저는 사부님께서 저에게 그 집착을 제거하라고 점화해주시는 것이라는 걸 알고 있습니다. 저는 안으로 찾고 자신을 위해 발정념도 했지만, 근본적인 것을 찾지 못했습니다. 한번은 또 꿈을 꿨는데 꿈속에서 갑자기 아래로 떨어졌습니다. 깨고 나서 저는 문제가 아주 엄중하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저는 반드시 진정으로 안으로 찾아 근본적인 집착을 찾아 제거할 것입니다.

저는 자신에게 물었습니다. ‘왜 그런 것들을 보려 하는가? 이야기 속 인물의 운명에 대한 감탄, 심지어 몰입감까지 느끼는데 왜 그럴까? 보고 나면 내 어떤 마음을 만족시키는가? 내가 결혼하지 않았으면 색욕심이 없는 것일까? 색욕심 외에 또 어떤 집착이 있는가? 색욕심 뒤에는 또 어떤 것이 있는가? 바로 정이다. 정이 만족을 느끼려 하는 것이다.’

겉으로 보기에 저는 결혼하지 않아 정욕 문제에 연관되지 않는 것 같지만 심리적으로, 사상 중의 깊은 곳에 속인에 대한 정을 갈망하고 있었습니다. 이른바 ‘아름다운 이야기’를 보며 공감하는 것은 이 허황된 상상력을 통해 현실에서 얻지 못한 ‘정(情)’을 만족시키려는 것일 뿐이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인터넷 중독과 색욕심을 제거하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았습니다! 제 마음은 아직도 정에 대한 추구와 만족감 때문에 포기하지 않으려 합니다!

그 근본적인 집착을 찾은 후 저는 발정념으로 주의식을 강화했고 색욕심을 제거하려 노력하면서 ‘사상업’도 제거했습니다. 동시에 제가 인터넷에 접속하는 상황을 단속하는 현실적인 방법을 채택했습니다. 저는 노트에 줄을 긋고 날짜와 항목을 다 기록하며, 매일 한 차례씩 자체 검사해 만약 어느 날 인터넷 접속 상황이 있으면 그날 기록을 해 보았는데 결과는 좋았다 나빴다 했습니다.

그렇게 한동안 견지했습니다. 하루는 퇴근길에서 자신에게 물었습니다. ‘만약 내일 정법이 끝난다고 해도 그 소설들이 다 끝났을까 하는 생각이 들까?’ 그 순간 저는 그 집착이 제거된 것을 느꼈습니다. 인터넷, 소설 등에 대해 집착하는 마음이 없었습니다. 저에게 진정으로 집착을 없애고 싶어 하는 마음이 생기자 사부님께서 제거해주신 것입니다.

그날 저녁 저는 꿈에서 사부님을 뵈었는데 사부님께서 저를 보면서 웃고 계셨습니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법을 외우고 더욱 정진하다

저는 줄곧 ‘전법륜’을 외우려 생각했습니다. 몇 번이나 시도했지만 모두 견지하지 못했습니다. 가장 길게 외운 것이 제2강의 첫 번째 소제목 천목에 관한 문제까지였습니다.

작년에 제 사무실이 있게 되자 또 ‘전법륜’을 외우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교란이 심해 여러 번 외워도 정확하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저는 방법을 생각했습니다.

컴퓨터에서 워드 폴더를 만들고 외우면서 타자해 틀린 곳을 찾는데 문장부호까지 찾아내 빨간색으로 표기합니다. 그리고 다시 외우고 타자합니다.

그렇게 하면 늦지만, 확실히 기억할 수 있습니다. 외우는 중에서 교란이 대단했습니다. 하나는 시간이 많지 않았고 또 하나는 사상업이 심했습니다. 어떨 때는 책을 보기만 해도 외우고 싶지 않았습니다. 컴퓨터를 봐도 하기 싫었고 외울 것을 생각하니 짜증이 났습니다. 속으로 ‘이렇게 외워서 언제야 다 외울 수 있을까? 차라리 통독하자.’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럴 때면 저는 일어나서 휴식하고 다시 외웁니다.

지금의 진도는 비록 늦지만 저는 반드시 ‘전법륜’을 외우겠습니다.

맺는말

사부님의 보호로 소년 시절부터 지금까지 걸어왔습니다. 정법 수련의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앞으로 저는 자신을 잘 수련해 집착을 제거하고 다시 정진하겠습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시사(詩詞): ‘홍음-도 중에서’
[2] 리훙쯔 사부님 저서: ‘전법륜’
[3] 리훙쯔 사부님 저서: ‘미국법회 설법-뉴욕법회 설법’
[4] 리훙쯔 사부님 저서: ‘북미 제1기 법회 설법’

 

원문발표: 2021년 11월 25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1/11/25/43377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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