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안후이(安徽) 대법제자
[밍후이왕] 올해 3월 6일 밤 12시, 나는 가게에서 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집 안이 지저분해서 장난감을 정리하고 바닥을 닦으며 청소했는데, 청소를 다 하니 새벽 3시였다. 나는 잠을 자지 않고 전 세계 단체 연공을 했다. 다섯 가지 공법이 다 끝나자, 6시 발정념 시간이 됐다. 잠자리에 들었을 때는 아침 6시 반이었다. 오전 9시 반까지 자고 재빨리 가게에 가서 점심 반찬을 준비했다. 길에서 한 수련생을 만났는데, 그 수련생은 나를 아래위로 훑어보고는 피부가 하얗고 투명하며 핑크빛이 돌고 주름이 없다면서 여전히 30여 세 외모라고 말했다. 내가 밤에 자지 않은 일을 얘기하자, 그녀는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대단하다고 했다.
이때 한 손님이 “사장님은 왜 작년과 올해도 그대로인가요? 하나도 안 변했어요”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이전에 이런 말을 들으면 대수롭지 않게 여겼고 인사치레로 여겼다. 사실 사부님께서 일찍이 말씀하셨다. “이 사람은 이때부터 자연 노쇠하지 않을 것이며, 그의 세포는 죽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는 청춘이 오래 머무르게 된다. 수련과정 중에 사람은 젊어 보일 것이고, 최후에는 거기에 고정된다.”[1] 확실히 이러하다. 비록 밤에 휴식을 별로 하진 못했지만, 조금도 피곤하지 않고 도리어 원기 왕성하고 온몸에 힘이 넘치는 것이 어디 58세의 사람인가!
1998년 나는 운 좋게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이라고도 함)를 수련했는데, 그 당시 만 35세였다. 자비로우신 사부님께서 내 신체를 정화해주셨을 뿐만 아니라 각종 질병도 완전히 사라지고 피부가 희고 부드러우며 불그레한데 또 그 상태로 고정됐다. 이는 내가 수년간 대법(파룬따파) 진상을 알리는 중에서 자연스레 가장 많이 회자 된 화제였다.
1. 운 좋게 대법을 만나 각종 질병이 약 없이 치유되다
법을 얻기 전 18년간 각종 질병의 고통은 이루다 말할 수 없다. 열일곱 살 때 나는 류머티즘 관절염을 진단받아 양약을 먹었는데, 낫기는커녕 장과 위, 식도가 망가져 식사하기 곤란했고, 나중에는 류머티즘성 심장병을 유발했다. 나는 곳곳에서 의사를 찾아 치료받았고, 매일 한약을 큰 그릇에 담아 마셨으며, 각종 민간요법도 시도했지만 모두 효과가 미미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웃긴 것 중 하나는 백 가구에서 헌 신발 백 개를 구해와 물을 한 대야 끓이고 대야에 대나무 울타리를 쳐서 그 위에서 자면서 증기를 쬔 것이다. 물론 전혀 효과가 없었다.
1998년 봄, 나는 어떤 기공을 소개받아 연마했지만, 몇 달이 지나도 효과가 없었다. 어느 날 아침 이웃집 류 아저씨를 만났는데, 아저씨는 나에게 어디 가냐고 물었다. 나는 병을 치료하기 위해 기공하러 간다고 대답했다. 아저씨는 웃으며 “나도 연공하는데 파룬궁(法輪功)이라고 해, 병을 치료하지 않고 우리 사부님께서 신체를 정화해주시지”라고 말했다. 내가 “그럼 아저씨와 함께 갈게요”라고 말하자, 류 아저씨가 날 파룬따파 연공장으로 이끌었다. 그날은 1998년 8월 14일이었다.
연공장에 들어서자 몸이 홀가분하고 자유로웠다. 보도원은 나에게 앞으로 앉으라고 하고 ‘전법륜(轉法輪)’을 계속 읽었다. “나 여기에서는 병 치료를 말하지 않으며, 우리는 병을 치료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진정하게 수련하려는 사람으로서 당신이 병 있는 몸을 가지고서는 당신은 수련할 수 없다. 나는 당신의 신체를 정화(淨化)해 주려고 한다. 신체 정화는 오직 진정하게 공을 배우러 온 사람, 진정하게 법을 배우러 온 사람에게만 국한한다.”[1]를 들었을 때 나는 “진정하게 공을 배우러 온 사람, 진정하게 법을 배우러 온 사람”[1]이 될 것이며 대법을 끝까지 수련하겠다고 생각했다.
그날부터 얼마나 바쁘던지 나는 연공장에 가 법공부와 연공을 했는데, 두 아이를 데리고 가기도 했다. 모르는 사이에 내 각종 질병이 약 없이 치유됐고, 길을 걸을 때면 바람이 일고 온몸이 홀가분한 미묘함을 느꼈다.
내가 이 기쁜 소식을 가족에게 알리자, 가족은 류머티즘 관절염, 류머티즘 심장병은 아직 의학적으로 정복하지 못했는데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며 반신반의했다. 어머니는, 무기력하고 누런 얼굴에 수척했던 내가 원기 왕성하고 피부가 희고, 무슨 밥이든 다 먹고, 무슨 일이든 다 하는 것을 보고는 눈물을 흘리며 “나도 수련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렇게 60세 어머니가 법을 얻은 그달에 생리가 왔고 각종 병이 모두 사라졌다.
날 아는 사람 중 대법의 위대함과 신기함을 칭찬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그 후부터 내 세계관, 인생관은 근본적인 변화가 생겼다. 인생의 고난, 신체의 질병이 어찌 된 일인지 알았고 사람이 된 진정한 목적은 반본귀진(返本歸真)임을 알았다. 우리는 각종 환경에서 타인과 모순이 생겨서는 안 되고, 노고를 마다하지 않고 일하며, 진선인(真·善·忍) 표준으로 좋은 사람, 더욱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
2. 신사신법(信師信法)하니 곤경에서 벗어나다
법을 얻은 지 1년이 채 되지 않아, 중공(중국공산당) 악당의 우두머리 장쩌민이 질투심으로 국력을 총동원해 파룬궁을 박해하고 대법제자를 박해하기 시작했다. 나는 어떻게 해서든지 마지막까지 대법을 확고히 수련하겠다는 일념만 있었다. 이 일념 때문에 위대하고 자비로우신 사부님께서는 제자를 보호하시어 하나하나의 곤경에서 걸어 나오게 하셨다.
1999년 말, 나와 수련생은 기차를 타고 베이징으로 대법을 수호하러 갔다. 나는 자신이 겪은 체험을 바탕으로 대법을 위해 공정한 말을 했다. “파룬따파는 좋습니다! 파룬따파는 정법입니다! 사부님의 결백을 회복시켜주세요! 대법의 결백을 회복시켜주세요!” 그 후 불법적으로 1개월 수감됐다. 그 기간에 남편은 어린 두 아이를 데리고 엄마 노릇까지 했는데, 다른 사람과 공동으로 만든 회사가 망해 생활에 문제가 생겼다. 내가 구치소에서 집으로 돌아왔을 때는 이미 12월 24일이었다. 우리 지역에는 12월 24일에 조왕신(부뚜막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풍습이 있다. 하지만 집에는 아무런 설맞이 물건이 없어 아이들을 먼저 배불리 먹게 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시장에 가서 갓 두 근을 샀다. 집에 소금이 떨어진 것을 알고 집안의 모든 곳을 뒤졌지만, 소금 살 돈 2위안을 찾을 수 없었다.
나는 생각했다. ‘나는 대법제자며 사부님께서 신변에 계신다. 나를 어렵게 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돈이 없어도 괜찮다. 나는 장사를 해서 가족을 부양하겠다.’ 한창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문을 두드리는 소리를 들었다. 나가보니 파룬궁 수련생 두 명이 있었다. 그들은 내가 돌아왔다는 말을 듣고는, 내가 집에 없는 동안 남편이 두 아이를 돌보느라 일하지 못해 생활이 어려울 것으로 여겨, 1500위안을 건네면서 먼저 명절을 보낸 후 다시 보자고 말했다. 나는 눈물을 흘렸다. 사부님께서 제자를 도와 어려운 고비를 넘게 해주신 것에 감사드렸고, 수련생의 사심 없는 도움에 감사했다. 나는 돈을 받은 후 차용증을 썼다.
설 명절이 끝나고 나는 이 돈으로 작은 식당을 차렸고, 매일 벌은 수입으로 가족생활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작은 식당은 내가 대법을 알리고 진상을 알리는 장소가 됐으며, 동시에 수련생에게 편리를 제공했는데, 장사는 갈수록 잘 됐다.
단골손님이 새로운 고객을 데려와 손님이 갈수록 늘어났고, 반년 후에 또 큰 식당으로 바꾸었다. 모든 사람은, 내가 사람이 좋고 음식과 음식 재료도 좋으며 가격이 공정해서 안심한다고 말했다. 어떤 사람은 사장님의 식당이 우리 집 주방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나도 고객을 가족으로 간주하고 파룬따파의 아름다움을 알렸으며, 많은 사람을 도와 ‘삼퇴(三退-중공의 3대 조직인 공산당, 공청단, 소선대를 탈퇴)’하게 했다. 나는 자신에게 ‘삼퇴’를 매일 못하면 안 되며 많을수록 좋다는 목표를 세웠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대법제자가 됐다.
순조롭지 못할 때도 있었다. 어느 날 한 중학생에게 진상을 알렸는데 그는 매우 찬성했다. 그러나 내가 사악한 중공 조직을 탈퇴하라고 했을 때 듣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전화로 신고까지 했다. 나는 사부님께 사악이 교란하지 못하게 도와달라고 요청드렸다. 이후 경찰 두 명이 왔다가 식당에 사람이 꽉 차서 모두 밥을 먹는 것을 보고는 잠시 서 있다가 갔다. 위험한 상황을 벗어나게 도와주신 사부님께 감사드린다.
3. 손님 “서른 몇 살이죠?”
20여 년간 중공 악당은 대법제자에 대한 교란과 박해를 멈춘 적이 없다. 매번 ‘민감한 날’이면 전화로 소란을 피우고 아니면 집으로 찾아와 소란을 피운다. 아들과 딸은 두려워서 싫은 내색을 했고, 남편은 더 두려워하며 식당에서 진상을 알려 사람을 구하지 못하게 했다. 나는 대법은 무소불능이고 신사신법(信師信法)이 가장 안전하다고 굳게 믿었다. 법공부, 연공, 진상을 알리는 것은 매일 반드시 해야 할 일이며 아무도 막지 못한다. 식당을 경영하면서 음식 재료 구매부터 가공까지, 밥과 반찬을 만드는 것부터 요리를 날라 탁자에 올리고 주문을 계산하고 청소하는 것까지 거의 나 혼자 도맡아 했다. 대법은 나에게 지혜와 힘을 주었다. 나는 힘든 것을 느끼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늘 생글생글 웃었다.
한 손님은 내가 기력이 넘쳐 끝없이 이것저것을 하고 틈만 나면 다른 사람과 이야기(진상 알리기)하는 것을 보고 “사장님, 올해 서른 몇이죠?”라고 물었다. 나는 그에게 파룬따파를 수련하면 건강해질 뿐만 아니라 젊어 보이는데, 이는 TV에서 나오는 중공의 흑색선전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말했다. 그 후 삼퇴를 권하면 쉽게 받아들인다. 손님이 나의 외모를 보고 늘 나이 묻는 것을 목격한 남편도 속으로 대법의 아름다움을 인정하며 내가 진상을 알리는 것을 더는 막지 않았다.
최근 몇 년간 나는 이 작은 음식점을 이용해 남편이 회사를 차리고 빚진 2만 위안을 갚았고, 수련생에게서 빌린 1500위안을 갚았으며, 일가족 생활비를 감당했다. 지금 아들과 딸은 대학 졸업 후 일자리를 찾았고, 결혼해 아이도 낳았다. 만약 대법을 수련하지 않았다면 온몸이 병인 약한 여자가 해낼 수 있었겠는가? 이 모든 것은 친척, 친구들이 모두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파룬따파를 수련한 23년 동안 자비롭고 위대하신 사부님께서 날 위해 신체와 마음을 정화해주셨고, 셀 수 없이 많은 관문과 어려움을 돌파하게 지켜주셨다. 신기한 일이 너무 많아 일일이 장황하게 늘어놓을 수 없다. 나는 매일 생활이 빈틈없고 충실하며, 대법제자가 해야 할 세 가지 일을 성실하게 하고 있고, 연공할 때 조용해지지 않으면 법을 외우고, 밥을 할 때 밍후이 라디오를 들으며, 채소 사러 가는 길에 발정념을 하는데, 매일 3시간씩 잠을 자는 것은 사치다.
수련생의 교류문장은 나를 격려해주는데, 나도 약간의 심득을 써 더욱 많은 사람이 대법이 신기하고 초범적이라는 것을 알려주려 한다. 특히 이 전염병이 기승을 부리는 시기에 사람들에게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真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알려주려 한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전법륜(轉法輪)’
원문발표: 2021년 10월 22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1/10/22/43277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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