简体 | 正體 | 대법서적

수련의 인연을 소중히 여기다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나는 대법제자이며, 23년 동안 수련했다. 이 몇 년 동안 마난(魔難) 속에서 넘어지고 막막하며 고통스러웠다가, 다시 대법으로 돌아와 진정으로 안으로 찾은 후 법리를 더욱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

1. 후천적 관념의 장애를 제거하다

사람이 세상에 살면 여러 가지 관념이 생긴다. 과학기술 분야, 사람이나 사물에 대한 견해, 문제를 처리하는 방법 등이 있는 것은 모두 사람이 후천적으로 서로 다른 정보를 받아들여 생긴 것이고, 이 정보는 한계가 있어, 후천적인 관념은 법리에 대한 이해를 방해할 수 있다.

나는 대학을 졸업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부모님 추천으로 대법 서적을 읽기 시작했다. 매일 법을 배우고 있었지만, 사람 마음이 많아서 법리에 대해서는 표면에 머물렀고 감성적으로만 대법이 좋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다년간 과학 관념이 주입돼 대법에 대한 이해가 일부 측면에서 항상 의심이 존재했는데, 사실은 법을 믿지 않은 것이다.

짧은 동영상 ‘우주는 얼마나 큰가(宇宙有多大)’를 본 후, 사부님께서 쓰신 ‘정진요지-궁(穹)’의 내포에서, 현재 과학을 뛰어넘는 ‘전법륜(轉法輪)’ 속의 논술까지 갑자기 이해하게 되었다. 인류가 정의하는 이른바 과학이 얼마나 얄팍하고 보잘것없으며, 이론이 얼마나 초라한지 알게 됐다.

어떤 관념들은 우리의 사상 깊은 곳에 녹아, 자연스럽게 되어 자신이 알아차리기 어렵지만, 사부님께서는 반드시 여러 방식으로 우리에게 점화해주실 것이다. 이럴 때는 무조건 (일의 표면적인 옳고 그름을 보지 말고) 안으로 찾아야 발견할 수 있다.

2. 무조건 안으로 찾다

1998년 막 수련을 시작했을 때, 많은 대법제자와 함께 사부님의 ‘창춘보도원법회 설법’ 녹음을 들었던 것이 기억난다. 가장 기억에 남는 한마디 말씀은 바로 “나는 늘 말하는바 어떤 문제에 부딪혀도 모두 자신을 생각하고, 설령 이 문제가 나와 아무 관계가 없다고 할지라도 당신이 보았을 때 모두 자신을 생각해 본다면, 나는 당신이 전진하는 길에 당신을 가로막을 것이 없다고 말한다.”[1] 처음에는 그다지 투철하게 이해하지 못했지만, 부단히 착실하게 수련하고 법을 실증하면서 이 말씀에 대한 이해도 깊어졌다. 수련자는 자신의 것을 고수할수록 제고하기 어렵고, 종종 한 경지 중에서 오래 맴돌 수 있다.

부서에서 지도자를 한 명 교체했는데, 신임 지도자가 부임하자마자 나를 전출시키려고 했던 일이 기억난다. (나는 부서에서 생산 부문 책임자로 많은 대형 프로젝트를 맡아 완수했음) 당시 다른 지도자들이 동의하지 않아서 이행되지 못했고, 신임 지도자는 항상 크고 작은 회의에서 나를 지명하며 비판했다. 처음에 나는 몹시 분개하고 불평하는 마음이 생겼다. 이 지도자가 고의로 나를 타격해 보복하니까, 나도 분노하여 변명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냉정해지면서 나는 모든 것이 우연이 아니라 반드시 내가 고쳐야 할 곳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이 일의 표상을 보지 말아야 한다. 그래서 끊임없이 안으로 찾았고, 체면 차리기를 좋아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특히 다른 사람이 오해해 내 잘못이라고 탓할 때 용납할 수 없었지만, 나 자신도 업무상 부족한 점이 없지 않았으며, 이전에 프로젝트를 할 때도 그를 푸대접 한 적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 체면을 내려놓고 그에게 진심으로 사과하고, 업무상 나 자신의 문제를 깊이 반성하여 향후 업무에서는 더욱 겸손하고 신중해졌다. 이후에 신임 지도자도 다시는 그러지 않았다. 경찰이 파룬궁을 수련한다는 이유로 나와 가족을 박해할 때 신임 지도자가 막으며 나와 가족을 보호했다.

앞으로의 수련 과정에서 모든 일이 나를 기분 나쁘게 하고 감정을 요동치게 한다면, 나는 즉시 안으로 자신의 마음을 찾아서, 내가 어떤 마음을 움직였는지를 찾아볼 것이다. 사람 마음을 제거하는 과정은 종종 뼈에 사무치는 고통이지만, 제거한 후 마음은 가볍고 기쁘며 대법에 대한 이해는 더욱 깊고 투철해질 것이다.

3. 원만의 시간에 대한 집착을 버리다

핍박을 이기지 못해 가족 수련생과 함께 어쩔 수 없이 집을 떠나게 됐는데, 악경(惡警)은 성(省)을 넘어서 온 도시를 수색해 체포했다. 잡힌 후에는 고문의 고통과 죽음의 협박을 당했고, 노동교양을 선고받았다. 함께 노동교양 받던 젊은 수련생이 단식하고 박해에 시달리다가 세상을 떠나는 것을 목격했다. 마난(魔難) 속에서 사람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법에 대한 견정한 믿음이 흔들리고 마음속에서는 언제쯤 법정인간(法正人間) 시기가 올지 생각하고 있었다. 왜 대법제자가 이다지도 큰 마난을 만나는 것일까? 넘어져 방향을 잃자 마음은 고통과 방황으로 가득했다.

2004년 다시 대법으로 돌아왔다. 법공부를 하면서 끊임없이 반복적으로 자문했다. 나는 무엇을 위해 수련했던가? 개인의 원만을 얻기 위해서였나? 아니면 사부님을 도와 더 많은 생명을 깨어나게 하기 위해서였나? 왜 사부님께서 설법 중에 말씀하신 법정인간 시간에 집착할까? 왜 사부님 설법에 의문을 가지고 있을까? 끊임없이 안으로 찾으면서 자신의 ‘사(私)’를 똑똑히 보았다. 이 ‘사’가 바로 이런 마난과 고통을 겪고 싶지 않아서 일찍 원만했으면 좋겠다고 한 것이다. 다른 생명에 대해 자비로운 마음이 없는 동시에, 내심의 ‘사’는 자신의 대법에 대한 이해와 접수를 방해하여, 자신에게 유리한 설법을 보면 기쁘고, 자신이 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마음속으로 의심하고 배척한다.

그것을 알게 된 후 마음이 맑고 견실해져서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할지 알게 되었다. 그 이후로 하루하루 아무리 사악하게 들볶여도 시간에 대한 집착이 더는 없었다. 많은 사람이 사부님 안배로 우리와 인연을 맺고 대법에 들어왔다. 그리고 가까운 곳에서 각자 법공부 팀을 구성하고 진상 알리기에 참여했다. 이 새로운 수련생들의 영향을 받아서 많은 사람이 법을 알게 됐다. 마음속으로 사부님의 자비에 감개무량하고 있다. 아내 수련생과 나는 항상 서로에게 우리가 해야 할 일만 잘하면, 사부님께서 가장 좋은 안배를 하신다고 일깨워주었다.

4. 재물에 대한 집착을 없애다

인간 세상에서 이익 문제에 종종 직면하게 된다. 사람 속에 빠지면 그 집착 역시 작지 않다. 작기로는 구내식당에서 음식을 가져오기까지, 크기로는 손 가는 대로 펜을 잡고 부동산 투자 계약서에 서명할 때까지인데, 사실 법리상 득실에 대해 분명치 않은 것이다.

나는 아내 수련생과 ‘전법륜’ 중 ‘득과 실’, ‘정진요지(精進要旨)’ 중 ‘부이유덕’에 관해 자주 교류한다. 수련자는 덕을 지켜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익 보려는 마음으로 덕을 재물로 바꾸는 것은 가장 어리석다. 또 자신이 인간 세상에서 얼마나 많은 돈을 가질지는 모두 잘 안배된 것으로 사람 속에 빠져들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실 너무 많은 사람 마음으로 계산하고 해봐도, 역시나 그런 돈과 재물일 뿐이며, 그 돈에 너무 집착해서 잃을 수도 있다. 이익을 구하는 마음을 내려놓으면, 일이 더욱 순조롭고, 사람과 사귀는 것이 더욱 가볍고 자유롭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5. 법 속에서 자연스럽게 되어가는 대로 따르고, 무리하지 않다

생활 속에서 업무 변동, 아이 학교 선택 등에 직면하게 되는데, 나는 아내 수련생과 함께 법에서 교류한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이 집에 그가 있고, 학교에 그가 있으며, 또는 성장하여 직장에 그가 있어, 그의 일을 통해 사회와 다방면으로 연계를 맺게 된다. 다시 말해서 전반 사회의 구성은 모두 이렇게 배치가 잘 된 것이다.”[2] 그러면 업무 변동과 아이 학교 문제는 모두 안배돼 있다. 인연 있는 사람들이 모두 우리와 사귀기를 기다리고 있으므로 우리는 모두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시간이 지나자 우리는 모두 가장 좋은 안배라고 느꼈다. 아내는 직장을 옮긴 후 더욱 많은 시간을 들여 진상을 말하고 많은 중생을 만날 수 있었다. 아이도 자연스럽게 되어감에 따라 사립학교에 입학했다. 입학 당시는 꼴찌였는데, 1년 후에는 반에서 1등이 되었고, 이듬해에는 우수반에 들어갔으며, 아이는 선량하고 단정한 성품으로 교장, 담임, 각 과목 선생님들에게 찬사를 들었다. 대법 가운데서 자연스럽게 되어가는 대로 따르고, 무리하지 않으면 모든 것이 최선의 안배가 있을 것이다.

6. 대법제자 간의 간격을 깨뜨려야 정체를 이룰 수 있다

내 신변에는 수련생 노부부가 있다. 모두 이 노부부가 수련을 잘한다고 생각한다. 진상을 말하고 자료를 작성하는 데 매우 적극적이다. 그러나 나는 나중에 이 부부 사이에 쌓인 원한이 매우 깊은 것을 알게 되었다. 주로 남편 수련생이 젊었을 때 아내에게 냉담했던 것을 아내 수련생이 잊지 못해서였다. (그들은 당사자 의사와 무관히 제삼자 의사에 따라 혼인했고, 남편 수련생은 말이 서툴다) 그래서 남편 수련생이 병업관을 넘을 때 그들 사이에 효과적인 교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내가 그들과 이야기 나누었을 때 여 수련생은 끊임없이 원망했다. 남편 수련생은 어떻게 안으로 찾아야 할지 모르고 할 말도 마음속에 두고 (체면 때문에) 하고 싶어도 하지 않았다. 이는 나를 무력하게 했다. 나중에 남편 수련생은 병업으로 세상을 떠났다.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나는 구세력이 천만년 동안 대법제자 간의 업력을 이용해 모두를 격리했다는 것을 안다. 만약 현세에 인간 세상의 은혜와 원한을 잘 풀지 못하고 인간 세상의 득실을 내려놓지 못한다면 어떻게 수련에서 제고할 수 있겠는가, 대법제자 간에 어떻게 정체를 형성할 수 있겠는가.

7. 정을 담담하게 내려놓다

내가 아내와 함께 수련하는 것은 서로 대법을 알기 때문이다. 우리는 법에 대하여 인식이 기본적으로 일치하고 많은 사물에 대한 법리상의 이해도 비슷하다. 우리는 매일 발생하는 일에 대해 법에서 교류한다. 밖에서 마주 보고 웃으면 상대방의 생각을 알 수 있다. 진상 알릴 때 협조도 잘 된다. 한마디로 손발이 맞다. 집안일은 할 시간 있는 사람이 하고 서로 보완한다. 어떤 일에 대해 다투더라도, 빨리 안으로 찾아 모순을 화해할 수 있다. 수련생, 친구, 동료들은 모두 우리를 부러워한다. 우리 둘은 감정이 깊다. 앞에서 말 한 그 노부부 사이는 원한이지만, 우리는 사랑을 드러냈다. 모두 정에 대한 집착이다. 사부님께서 “정(情)이란 버틸수록 조여드는 그물 / 명리(名利)는 사람의 일생을 묶어놓네”[3] 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보았을 때, 우리는 사람 사이의 그 한 층 정을 담담하게 내려놓아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렇지 않으면 반드시 이 방면에서 서로 뒤엉켜 정진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번 생은 부부다. 그것은 연분(緣份)이 돼서 온 것이다. 은혜든 원망이든 모두 삼계 내에서 사람 마음을 미혹하기 위해 이루어진 것이다. 이런 은원(恩怨)을 그렇게 진실하게 보면 벗어날 수 없고, 법에 대한 이해도 한 층차에 국한될 것이다.

이 23년간의 수련과 법을 실증하는 길에 사람 마음이 무거워 잘하지 못할 때도 있었고, 정진하여 사람들 앞에서 당당하게 진상을 말할 때도 있었으며, 박해의 두려움과 고통으로 방황했을 때도 있었고, 중생이 깨어난 것을 보고 아주 기쁠 때도 있었다. 사존의 고심(苦心)한 구도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내내 도와주신 수련생 여러분 감사합니다. 오직 수련에 정진하고, 법을 실증하고, 진상을 알려야만, 자신이 한 서약과 정법시기 대법제자의 칭호를 저버리지 않을 수 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창춘보도원법회 설법’
[2]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전법륜’
[3] 리훙쯔 사부님 시사: ‘홍음3-무엇이 그대의 바람인가’

 

원문발표: 2021년 10월 14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1/10/14/432488.html
简体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1/10/14/432488.html

ⓒ 2024 명혜망.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