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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신(新) 수련생 “집으로 돌아갈 때까지 줄곧 사부님을 따르겠습니다”

글/ 일본 대법제자

[밍후이왕] 저는 2020년 봄에 파룬따파(法輪大法) 수련을 시작한 청년입니다. 자비로운 사부님께 감사드리고 1년 넘는 수련 기간 동안 갓 법을 얻은 제자에게 많은 기회를 주신 사부님께 감사드립니다.

1. 숨어있는 쟁투심을 캐내어 제거하다

저에게는 안일심, 과시심, 색욕심, 질투심, 공포심 등 완전히 제거하지 않은 집착심이 많습니다. 예를 들면 인터넷에 접속해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지만 이 집착심을 제거하기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가끔 저는 인터넷에 접속할 시간을 설정하고 자신을 단속하고 있어 이 집착심을 제거했다고 여겼는데 틈만 나면 무의식적인 방식으로 표현됐습니다.

예를 들면 진상 알리는 데 참고로 삼으려고 따지웬, 씬탕런 등 매체 보도만 보는데 저도 모르는 사이에 지식욕과 호기심이 생겼습니다. 게다가 안일함이 자신에게 이것저것을 더 많이 보도록 방종하여 느슨해졌습니다. 보기에는 법을 실증하는 일을 일부 한 것 같지만 실제로 자기가 수련인이라는 것을 의식하지 못한 것입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많은 수련생이 속인 중에서 수련하기 때문에 많은 마음을 내려놓지 못하는데, 많은 마음이 이미 자연스럽게 형성됐지만, 그 자신은 알아차리지 못한다.”[1]

제거해야 할 나쁜 것과 더러운 것은 흔히 ‘으레 그러려니 여기는’ 느낌에 가로막혀 그것들을 알아차릴 수 없었습니다. 자신이 어떤 행위 또는 무슨 일에 열중할 때 뒤로 한발 물러서서 그것을 관찰할 수 없었습니다. 따라서 이런 집착심을 분별하는 유일한 경로는 법을 기준으로 교훈을 받아들이는 것이고 유일한 방법은 마음을 조용히 하고 법을 많이 배우는 것입니다.

최근 저는 법공부를 잘하고 정념을 충분히 유지하는 가운데, 뜻밖에 일부 법리를 깨달았습니다.

어느 한 번 정공(靜功)을 연마할 때 입정(入定)하여 머리에 아무 생각 없이 아주 좋은 상태에 들어갔을 때 어디선가 ‘너무 외롭다. 누가 나를 인정해 주랴, 지고 싶지 않다’라는 강한 생각이 갑자기 튀어나와 입정 상태에서 깼습니다.

저는 매우 이상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왜 갑자기 그런 더러운 생각이 나온 걸까? 순간 거기에 가부좌하고 있을 뿐이지 속인으로 변한 것 같았습니다. 정공 연마를 마친 후에도 여전히 자기가 다른 사람으로 변한 것 같았습니다. 이것은 매우 이상한 일이었지만 마음은 평온했습니다.

저는 안으로 찾으면서 많은 일을 주의하게 됐습니다. 이전에 저는 쟁투심 방면에 문제가 없고 잘 닦았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실리주의 풍조를 잘 따르지 않고 다른 사람과 경쟁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고 여겼기에 그런 환경을 줄곧 피했습니다. 오히려 저는 ‘모든 사람은 다 다르고 모든 사람은 다 좋다’, ‘열 사람은 열 가지다’, ‘모든 사람의 개성은 존중을 받아야 한다’라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다른 사람에 대한 동정이고 자비로움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러나 이런 선호 자체가 바로 후천적인 관념이고 자신을 보호하고 자신이 경쟁에 휘말리지 않으려는 관념이며 체면을 중히 여기는 강한 마음이고 인정받으려는 갈망입니다. ‘내가 이기든 지든 그들이 나를 어떻게 보든, 나는 사람들이 나라는 사람을 받아들이길 바란다’라는 생각은 저를 첫 자리에 놓은 것이고 타인을 그다음에 놓은 것이며 진정한 쟁투심입니다. 여기에 어디 자비가 있는가? 다시 말하면 ‘내게 쟁투심이 없다는 마음’ 관념의 배후에는 강한 쟁투심이 숨어있었습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속인 중에 미혹됨으로써 때때로 사상 중에 명(名)ㆍ이(利)ㆍ색(色)ㆍ기(氣) 등으로 내보내는 의념(意念)이 생기는데, 오래오래 되면 강대한 사상업력을 형성할 것이다. 왜냐하면 다른 공간의 일체가 모두 생명이 있는 것으로서, 업 역시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사람이 정법을 수련하고자 할 때는 곧 소업(消業)해야 한다. 소업은 바로 업을 소멸ㆍ전화하는 것이다.”[1]

‘내게는 쟁투심이 없다’라는 관념 배후에 강대한 쟁투심이 숨어있다는 것을 분명히 인식했을 때 저는 ‘피식’하고 웃음이 나왔습니다. 동시에 제거해야 할 더러운 것이 수면에 떠 있는 듯한 그런 홀가분한 느낌을 느꼈습니다. 그때 자신이 도달해야 할 그 층차의 무위(無爲) 상태를 깨달았습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왜냐하면 다른 공간의 일체가 모두 생명이 있는 것으로서, 업 역시 마찬가지기 때문이다.”[1] 이번 체험을 통해 저는 이 법리를 더 깊게 이해하게 됐습니다. 저는 입정할 때 제 마음에 나타난 그 강한 ‘참 고독하다. 누가 나를 인정하랴, 지고 싶지 않다’라는 생각은 제거하지 않은 쟁투심이 폭로된 것이며 정(定) 중에서 소멸할 그런 생명이 제 두뇌에 반영된 마지막 생각입니다. 이 생각 자체가 제 생각이 아닙니다.

저는 여전히 자신의 의지를 연마하는 중이고 수련 상태도 기복이 있지만 어떤 상태에서든 무슨 일에 부딪히든 그것이 좋든 나쁘든 인터넷에 게재된 기사를 보고 즐겁든 불편하든, 속인 중의 경쟁에 직면하기 싫든, 저는 그 속에 빠지지 말고 그것의 밖에서 보고 이해하는 것이 수련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이런 수련의 이치를 잊지 않으려면 정진해야 합니다.

2. 바이러스의 진상을 알리면서 난관을 돌파하다

저는 연공할 때 특히 제2장 공법을 연마할 때 늘 일종 생각에 가로막혀 입정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이런 생각을 제거하기 매우 어려운 이유는 나의 의념으로 대법이 무엇인지를 말하려는 것 때문이었습니다.

작년에 저는 인터넷에서 파룬따파 정보를 보고 수련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주변 가족과 친구가 모두 대법을 몰라 저는 부득이 그들에게 대법 수련이 무엇인지를 알려주어야 했습니다. 초기 저의 동기는 소극적이었고 수련 환경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점차 저는 진정으로 진상을 기다리는 중생을 구도하기 위해 노력하게 됐습니다.

이 과정에서 심성을 고험하는 일이 많이 나타났습니다. 때로 저는 정말 수련인 같지 않았습니다. 끊임없이 상대방을 압도하는 방법으로 말해 변론하는 것이 되고 역효과가 일어났습니다. 이는 저의 정념이 부족하고 지혜가 충분히 발휘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태가 계속되다 보니 심지어 연공 중에도 저는 마음이 진정되지 않은 것을 발견했습니다. ‘이렇게 설명하자, 저렇게 설명하자’라는 생각을 하면서 줄곧 돌파하기 어려웠습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대법의 존엄은 속인의 수단으로 지키는 것이 아니다. 이는 우리 대법제자들 개개인의 진정으로 자비롭고 선(善)한 표현으로 가져오는 것이지, 만들어낸 것이 아니다. 이는 사람의 행위가 아니고 사람의 수단으로 만들어낸 것이 아니다. 이는 자비 중에서 생긴 것이고, 중생 구도와 당신의 수련 중에서 체현된 것이다. 여러분들이 정체적으로 수련을 모두 잘하면 세상 사람들은 대법이 좋다고 말할 것이고 모두 대법을 존경할 것이다.”[2]

“우리 대법(大法)이 세상 사람들 앞에 놓인 상황도 마찬가지다. 어떤 사람은 좋지 않다고 말하는데, 당신이 속인의 방법으로 그와 논쟁하고 당신이 그의 입을 막으면서 어떠어떠하다고 한다면 모순을 더욱 더 격화시킬 수 있다. 우리들은 자기 자신의 표현을 좋게 하고 자비롭게 일체를 대해야 한다. 당신은 그와 다투고 논쟁할 필요가 없다. 사람은 명백한 일면이 있고 사람의 표면 역시 감화될 수 있어 그는 저절로 당신이 좋다고 할 것이다.”[2]

저는 수련자라면 주변 상황이 저의 수련 상태에 따라 변화한다는 것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는 것을 인식했습니다. 그러나 실천하지 않으면 깨달은 것이 아닙니다. 자신을 잘 수련해야만 해야 할 일을 잘할 수 있습니다.

몇 주 전 부모님이 제게 백신 접종에 관해 물었습니다. 당시 저는 이전의 교훈을 받아들여 불필요한 해석을 피하고 평온하고 온화하게 알려드렸습니다. “저는 수련자이기에 백신을 접종할 필요가 없습니다.” 부모님은 멍해진 것 같았습니다. “그래, 그래, 알았다.”

그 대화 이후 저는 제가 또 다른 극단으로 가는 것 같아 한동안 불안했습니다. 내심 깊은 곳에서 저는 자신이 말한 배후에는 여전히 속인처럼 바이러스에 대한 공포가 있고 이런 공포심을 감추려는 허영심이 있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엄격하게 말하면 사부님께서 말한 것처럼 “리(李) 스승님의 보호가 있으므로 자동차에 부딪힌다 해도 두렵지 않다.”[1] 와 같은 것입니다. 대법제자로서 진정한 자비와 선량함이 없이 자신에 대한 강렬한 집착이 있었습니다.

최근 부모님은 줄곧 제게 이전보다 더 긴박하게 “너도 백신을 맞아야지”라고 재촉했습니다. 저는 마음을 움직이지 않았고 이전처럼 부모님이 말을 하지 못하게 하지 않았습니다.

냉정하게 부모님의 말씀을 다 들어보니 부모님이 바이러스 자체에 대한 공포뿐 아니라 백신 접종도 주저하는 것 같았습니다. 백신은 위험성이 있는 임시 조치일 뿐이지만, 이런 상태에 처한 사람들에게 “저는 수련자이기에 백신을 맞을 필요가 없어요”라고 말하면 상처를 주는 것이고 불안해하는 사람들을 밀어내는 것입니다. 제가 해야 할 것은 중공 바이러스(우한 폐렴)를 잘 설명하는 것입니다.

수련자로서 우리는 중공 바이러스의 본질은 중공 악당의 구성원과 그 지지자를 제거하는 것이라는 점을 파악해야 합니다. 자신을 보호하여 바이러스의 침해를 받지 않으려는 세인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백신이 아니라 옳고 그름을 분별하고 악당을 멀리하는 것입니다. 저는 이 이치로 부모님의 바이러스에 대한 공포와 우려를 해소해드려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장황하게 말하지 않고 부모님의 접수 능력에 근거하여 평온하게 알려드렸습니다. “백신 접종과 마찬가지로 우선 이런 바이러스가 왜 중국에서 발생했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사스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정도로 퍼진 데에는 중국공산당(중공)의 책임이 있습니다. 그들이 약 6주 동안 소식을 은폐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이상한 것은 작년에 전염병이 처음 퍼진 곳은 ‘일대일로(一帶一路)’를 따른 국가와 친 중공 국가입니다. 이것은 자연재해일까요? 아니면 인위적인 재난일까요? 중국에는 ‘천인합일’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중공이 정권을 세운 이래 70년 동안 중국에서 무슨 일이 발생했는지를 두 분은 아시잖아요?” 부모님은 관심을 가지고 들었습니다.

최근 저의 부모님은 줄곧 매주 재방송하는 1990년대 잔류 고아 관련 일본 드라마를 고대하고 있었습니다. 드라마의 주인공은 각종 투쟁에 휘말렸습니다. 즉 부모님도 이런 중공 악당의 역사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저는 역사 진상을 설명한 다음 파룬궁(法輪功) 박해를 언급했습니다. 왜 파룬궁이 다른 투쟁운동처럼 즉시 소멸되지 않고 전 세계 각지에 전파됐는지? 세계는 왜 이렇게 비열하고 사람을 박해한 중공 악당이 세력을 확장하게 허용했는지 등을 알렸습니다.

마지막에 저는 그들에게 바이러스는 중공 악당을 겨냥해 온 것이라고 알려주었고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쩐싼런하오(真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 9자 진언도 알려주었습니다. 부모님은 “이건 미신이 아니냐?”라고 말하면서 거절했습니다. 저는 웃으면서 말했습니다. “‘서유기’의 나라잖아요. 중국은 신비로운 나라에요.”

저는 1년 전에 부모님이 1970년대에 유행했던 ‘서유기’ 관련 일본 드라마 재방송을 본 기억이 났습니다. 부모님은 웃으면서 “오, 그래? 알았어. 기억하마”라고 대답했습니다. 마지막에 부모님은 “그런데 네 말을 들으니 파룬궁은 세계 중심인 것 같구나”라고 하셨습니다.

이번 교류를 돌이켜보면 저는 특별히 상대방을 설득하려 하지 않았고 그들과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었을 뿐 내심의 믿음은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저는 제가 계속 자신을 잘 닦고 표현이 더 선량하면 상대방이 선념(善念)이 나오도록 가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 후 다른 장소에서 저는 이런 홀가분한 상태에서 진상을 알려 상대적으로 훨씬 수월해졌습니다. 저는 자신이 이미 의식 속에서 대법이 무엇인지를 말하는 상태를 돌파한 것을 발견했습니다. 이전에는 집착이 있어 연공할 때 입정할 수 없었는데, 진상을 알릴 때 필요한 것은 설명의 기교가 아니라 심성 수련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제 저는 초조하고 불안함을 느끼더라도 잠깐 눈을 감고 마음을 조용히 하면 내심으로부터 빛과 같은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저는 진실하게 사부님께서 본원에서부터 저의 생명을 새로 만드신 것을 느꼈습니다. 사부님께서는 저를 제도하셨을 뿐만 아니라 제게 이런 신성한 사명을 주셨습니다. 저는 아직 미성숙한 제자이지만 집으로 돌아갈 때까지 줄곧 사부님을 따르겠습니다.

이상은 개인의 깨달음이므로 바르지 않은 점은 자비롭게 바로잡아주기 바랍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전법륜(轉法輪)’
[2] 리훙쯔 사부님 저작: ‘각 지역 설법 3-대뉴욕지역법회 설법’

 

​원문발표: 2021년 9월 5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1/9/5/43045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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