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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수련으로 내 인생 곳곳이 빛나다

글/ 허베이(河北) 대법제자

[밍후이왕] 대법을 수련한지 이미 20년이 넘었다. 지난 20여 년간 대법을 수련하며, 나의 몸과 마음은 끊임없이 변화했다. 이 변화로 나는 인간 세상에 빛나는 발자취를 남겼다.

1998년 정월 초나흗날, 우연한 기회에 나는 공장 동료에게 ‘전법륜(轉法輪)’ 빌려 밤새도록 읽었지만, 미처 다 읽지 못했다. 동료에게 하룻밤만 보겠다고 했기 때문에 다음 날 그녀에게 사정을 이야기했다. “아직 책을 돌려줄 수 없어요. 다 보지 못했거든요.” 다음 날 밤에도 계속 읽었다. 남편은 내가 들고 있는 책을 보고 “이 책을 당신도 읽어요?”라고 물어서 나는 “보고 있어요!”라고 말했다. 남편이 다시 말했다. “이 책을 읽고 병을 치료할 수 없어요.” 내가 말했다. “병을 치료하려는 게 아니에요. 내 몸은 건강해요. 수련하려고 해요!” 이날 밤, 나는 매시 정각마다 화장실에 갔다. 1시, 2시, 3시, 어찌 된 일인지 정각만 되면, 1분도 틀리지 않고, 화장실로 가 대변을 보았는데, 양 또한 많았다. 자세히 보니, 대변에 검붉은 피가 섞여 있었고, 약 냄새가 났는데, 한약 냄새도 나고 양약 냄새도 났다. 나는 이것이 사부님께서 내 몸을 청리해 주신 것이란 걸 깨달았다.

이렇게, 나는 책을 읽으며 계속 화장실에 갔는데, 마음도 약간 들떠서, 거의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 아침이 일어나려고 습관적으로 침대에서 두 다리를 침대 머리 쪽으로 들어 올렸는데, 허리 부위에서 가볍게 소리가 나고, 부드럽게 한차례 탄력을 받으며 허리가 펴졌다! 그 후, 정말 대법책에서 말한 것처럼 자전거를 타면 마치 누가 밀어주는 것처럼 가벼웠다. 20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이런 느낌이다.

어느 날, 문득 한 가지 일이 생각났다. 공장의 작업 상자에 있던 20위안(한화 약 4000원)을 처리하지 않은 일이었다. 사정은 이랬다.

대법을 배우기 전에 작업장에서 20위안을 주운 적이 있다. 당시 누가 잃어버렸는지 물었지만,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잃어버리지 않았다고 하여 내가 가지고 있었다. 퇴근할 때, 현장에서 한 사람이 나에게 그 돈은 그녀가 잃어버린 것이라고 했다. 나는 “당시 내가 물어보았을 때는 왜 대답하지 않았느냐?”라며 주지 않았고, 어떻게 말해도 ‘어차피 내가 훔쳐 온 것도 아닌데’라고 생각하며 그녀에게 돌려주지 않았다. 그 결과 서로 좋지 않은 상태로 헤어졌었다. 지금 대법을 배우고 나니, 그때 그 사람에게 한 일이 후회되었다. 서둘러 공장에 도착해서 돈을 돌려주며 그녀에게 “제가 잘못했어요.”라며 정중하게 사과했다. 공장의 많은 사람이 내가 돈을 돌려준 사실을 알게 됐다.

부단히 법공부하고 자신의 언행을 대조해보면서 나의 한 가지 문제점을 발견했는데 그것은 공장에서 솜을 가져온 일이다. 방직공장에서 일했는데 평소 모든 사람이 ‘먹는 것도 그냥 먹고’, ‘거리낌 없이 공짜로’ 공장에서 손에 잡히는 대로 솜을 집으로 가져가서 나도 가져왔다. 가져온 것이 매우 많아 한 더미나 되어 솜이불을 만들 수 있었다. 모두 그랬기 때문에 내가 잘못했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러나 지금은 대법을 배우는데, 책에서 말하는 대로 해야 했고 그렇지 않으면 이 책을 배우는 것이 헛된 게 아닌가? 씬씽(心性)이 제고되지 않으면 연공도 헛수고다! 그래서 조금 한가한 날 하루를 택해 집에 들러서 공장에서 가져온 솜을 큰 가방에 담아 자전거 뒤에 싣고 공장으로 갔다. 가면서 좀 두려웠고 사람들이 볼까 봐 걱정됐다. 지금 생각하면 우스웠다. ‘공장에서 집으로 가져올 때는 두렵지 않았는데, 지금은 돌려주려고 가는데 오히려 두렵다니!’ 다행히 보는 사람이 없었고, 솜을 공장에 갖다 놓았다. 그 후 내 마음은 편해졌다.

1999년 7월이 되자, 장쩌민(江澤民)과 중공사당(邪黨)은 온갖 사악한 방법으로, 파룬궁을 박해하기 시작했다. 신문, TV, 방송은 온종일 대법을 공격하는 내용을 방송했고, 공장의 임원이나 동료도 따라서 대법에 대해 험담했다. 그러나 그들 모두 내가 어떤 사람이란 것을 알고 있어 나를 박해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항상 긍정적으로 대했다. 누구를 보든지 나는 그들에게 말했다. “파룬따파(法輪大法)는 좋은 거예요. TV에서 하는 말은 듣지 마세요. 그것은 모두 가짜예요. 제가 어떤 사람인지 모두 아시잖아요? 제가 진짜예요.” 이로 인해 모두 조금씩 진상을 알게 됐다. 그 뒤 가짜 ‘분신자살’ 사건이 일어났는데, 나는 사람들에게 ‘분신자살’은 가짜라고 알려주었고 그런 다음, 조목조목 설명했다. 이렇게 해서 공장 임원은 갈수록 나를 인정해주었고 임금도 한 차례 올려주었으며 일이 갈수록 순조로웠다. 그 뒤 공장에서 나를 생산량을 초과한 관리 간부로 선발했다.

간부가 되어 생산 활동을 할 필요가 없었지만, 나는 쉬지 않고 시간이 나면 모두를 도와 청소하고 물을 끓였다. 일손이 바쁠 때 그들을 대신하여 점심 도시락을 모두 걷어 따뜻하게 데워주었다. 나는 매일 자신을 자각하고 반드시 대법이 요구하는 표준에 자신을 맞추려고 했다. 관리하면서, 다른 사람이 무엇을 잘못하면 그것을 내가 잘못한 것으로 생각했고, 의견충돌이 생기면 즉시 상대방에게 사과했다. 동시에, 사람들에게 대법 진상 알리기를 잊지 않았다. 공장의 동료, 기술자, 아니면 당 위원회 서기는 물론 안면이 있든 없든, 공장 현장에서 일하든, 식당에 식사하러 가든 보이는 모든 사람에게 알려주어 사람들이 중공에 속아 ‘진선인(真·善·忍)’ 대법을 반대하지 않도록 했다.

한 번은 시어머니께서 나에게 솜저고리를 사달라고 하셔서, 사다 드렸는데 맘에 안 든다고 하셨다. 급히 가서 다른 것으로 바꿔드렸더니, 이번에는 아무 말씀이 없으셨다. 6개월이 좀 지나자, 시어머니께서는 입기 싫어졌다며 나에게 주셨다. 나는 망설이지 않고 받았지만 어떻게 입을까 고민했다. 시어머니 옷의 크기는 작은 것이고 내 것은 큰 것이었다. 생각 끝에 솜저고리를 들고 동네 수선집에 맡겨 수선해 입었다.

어느 날, 시어머니께서는 갑자기 솜이불 속에 넣어 두었던 1만 위안(한화 약 180만 원)이 없어졌다고 하시며, 솜이불을 볕에 말릴 때 돈을 가져간 게 아닌지 물어보셨다. 나는 가져가지 않았다며 땅에 떨어뜨리셨는지 여쭤보았다. 시어머니께서는 “1만 위안이면 얼마나 많은 돈인데, 땅에 떨어졌다면 내가 못 볼 리 있나?”라고 하셨다. 그리고는 몇 마디 더 하셨는데 듣기에 매우 거북했다. 시어머니께서는 교사 출신인데 그런 말씀을 하시다니 참으로 괴로웠다. 그러나 나는 참으며 옛날이야기를 말씀드렸다. “옛날에 한 의사가 어떤 사람을 진료하고 집에 돌아왔는데, 환자 아들이 찾아와 자기 집에 있던 은 10냥을 잃어버렸는데, 집에 다른 사람이 온 적이 없었는데, 혹시 의사가 가져간 게 아니냐고 했었데요. 의사는 듣고 자기가 가져왔다며 환자 아들에게 은 10냥을 주었답니다. 며칠 후, 환자 아들이 다시 찾아와 그 은 10냥을 찾았고 의사가 가져간 게 아니라며 의사의 누명을 벗겨주고 돈을 돌려주었데요.”

이야기를 마치고 나는 시어머니께 말씀드렸다. “우리가 먼저 찾지 말고, 그이가 돌아오면 찾아보라고 해요.” 남편이 퇴근한 후, 이 말을 듣고 시어머니의 옷장에서 돈을 찾아냈다. 시어머니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이번 일은 너와 상관없는 일이었구나.” 보름이 지난 후 시어머니께서 갑자기 물어보셨다. “만약 돈을 찾지 못했다면 어떡하려고 했니?” “제가 가져갔다고 하고, 친정에서 1만 위안을 갖다 드리려고 했어요.” 이 일이 일어난 지 몇 년 되었다. 당시 나는 속으로 정말 참기 힘들었지만 법이 요구하는 대로 하며 참을 수 있었다.

남편은 4형제 중 맏아들이다. 비록 4형제지만, 시부모 모시는 일은 거의 나 혼자 했다. 20여 년간, 안팎으로 빨래하고 밥하고, 누구의 도움도 없이 혼자 도맡았다. 원망도 후회도 없이 형제들에게 돈을 요구한 적도 없었고 그들이 돈을 주어도 받지 않았다. 나는 대법을 수련하기 때문이다. 2005년 시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셨는데, 돌아가시기 전에 나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내가 키운 자식보다 훨씬 낫다.” 시아버지는 83세까지 사시다 돌아가셨고, 시어머니는 지난해 96세로 세상을 떠나셨는데 그때까지 줄곧 모셨다.

우리 집 건너편에는 노인 부부가 살고 계셨는데 자식이 없었다. 할아버지께서 80여 세에 돌아가신 후, 할머니 혼자 남았는데 평소 방문하는 사람이 없어 매우 적적했다. 그래서 나는 그 할머니를 계속 도와드렸다. 급여를 받으면 옷을 사다 드리고, 담요 같은 생활용품도 가져다드렸는데 몇 해 동안 얼마나 사다 드렸는지 알 수 없을 정도다. 비록 좋은 일이었지만, 할머니가 나의 시어머니와 자주 다투셨고, 남편도 그 할머니를 이해하지 못해 시어머니와 남편 몰래 해야 했다. 올해 할머니께서 양로원으로 가셔서 이제는 물건을 사드리지 않는다. 할머니께서는 101세가 되셨다.

지난해 겨울은 유난히 추웠다. 수십 년 만에 오는 추위라 했다. 설이 지난 어느 날, 나는 진상 알리러 나갔다. 오토바이를 끌고 가는 60여 세의 사람을 만났는데 진상을 알리다가 그의 오토바이가 고장 나 수리할 곳을 찾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손에는 장갑도 끼지 못하고 얼어 있었다. 나는 재빨리 솜 장갑을 벗어 그에게 주었는데, 그때 그는 매우 감동한 것 같았다.

한번은 공원에서 할머니 한 분에게 진상을 알렸는데, 말이 끝나자 할머니께서는 내 모자가 예쁘고 좋아 보인다고 했다. 나는 망설이지 않고 할머니께 드렸다. 할머니께서 돈을 주시려고 했지만, 나는 괜찮다고 하며, 이렇게 많은 연세에 좋아하시니 그냥 드리는 것이라고 했다.

또 한 번은 자전거를 타고 횡단보도를 건너는데, 자동차와 부딪혀 넘어졌다. 급히 일어서려고 애를 썼지만, 허리가 펴지지 않았다. 운전기사가 나를 병원에 데려가 검사했는데, CT 사진을 보니 허리 위쪽 뼈에 금이 가 있었다. 나는 괜찮다며, 집에 돌아가겠다고 했다. 그리고 운전 기사에게는 사고와 상관없고 내가 무사하니 신경 쓰지 말라고 했다. 집에 도착하니 남편은 무척 화를 내며, 친정 식구 앞에서 호되게 야단쳤다. 친정 식구들도 화를 내며 나를 나무랐다. 나는 한마디도 하지 않고, 마음속으로 사부님 법을 외웠다. 비록 대소변 보기도 어려웠고 침대에 오르기도 힘들었지만, 나는 신음조차 내지 않았고 남편 도움도 받지 않았다. 밤새도록 계속 사부님의 법을 외웠다. “대법이 몸을 떠나지 않으니, 마음에 真善忍(쩐싼런) 있네, 세간의 대나한(大羅漢), 신도 귀신도 몹시 두려워하네.”[1]

다음 날 아침, 나는 제1장 공법을 연마하고, 평소처럼 남편 식사를 준비하고 빨래를 했다. 허리뼈가 아프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얼마 되지 않아 모두 좋아졌다. 나는 운전기사가 보낸 돈을 모두 돌려주고, 그에게 대법 진상을 알려주었다. 기사는 감동해서 말했다. “제가 돌아가면 반드시 우리 동네 사람들에게 알려주겠습니다.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 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시사(詩詞): ‘홍음-위덕(威德)’

 

원문발표: 2021년 9월 11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1/9/11/42799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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