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해외 대법제자
[밍후이왕] 파룬따파(法輪大法)가 전해진 지 이미 29년이 되었습니다. 소년기에 수련하는 가족에 의해 파룬따파를 접했던 저는 이미 청년으로 성장했습니다. 저는 수련하려는 마음이 확고하지 않아서 순진한 마음을 잃고 험난한 속세에 빠져 20년이라는 세월을 헤맸습니다.
마침내 억만년의 기억과 서약을 일깨우고, 먼지로 가득 덮인 저의 심령을 깨끗이 씻어 30세의 나이에 대법 수련에 들어올 수 있게 해주신 사부님의 불은호탕(佛恩浩蕩)에 감사드립니다. 파룬따파의 가르침에서 저는 인생의 진정한 목적을 찾았습니다.
9자 진언을 읽고 어머니가 구원되다
2015년 성탄절, 저는 부모님을 모시고 대만으로 여행을 갔습니다. 크리스마스 이브 날 저녁, 대만 시골의 민박집에서 어머니는 갑자기 저에게 “오늘 너는 하마터면 엄마를 잃을 뻔했어!”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오늘 우리는 아주 재미있게 보냈는데 어머니는 왜 갑자기 이런 말을 하실까?’
어머니는 계속 말씀하셨습니다. “얼마 전 병원에 가서 검사받았는데 심장병 진단을 받았단다. 한약도 먹고 신약도 먹어 대만 여행 직전에 다행히 병세가 안정돼서 우리 일정에 지장을 주지 않았단다. 본래는 너에게 알리고 싶지 않았는데, 오늘 오후 우링(武嶺)에서 내가 너에게 춥다며 운전기사를 불러 차에 데려다 달라고 했잖아. 사실 심장병 약을 잊고 가져오지 않았거든. 나는 내가 걸어서 차에 돌아갈 수 없을까 봐 걱정했단다.”
저는 멍하니 아무 말도 못했습니다. 어머니는 잠시 멈췄다가 말을 이어갔습니다. “다행히 줄곧 이 몇 년 동안, 너의 외할머니가 나에게 준 대법 진상 호신부를 갖고 있었기에 차에서 줄곧 부적 위에 있는 아홉 글자를 읽었지.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 쩐싼런하오(真善忍好)’ 이렇게 30분 동안 읽으면서 버텨냈어.” 저는 아무런 말도 못하고 어머니를 끌어안고 울었습니다. 놀랍고, 괴로웠고, 또 감동했습니다.
이후 대만에서는 매일 어디를 가든지 관광지, 역, 주택가 어디에서든 크고 작은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의 현수막을 볼 수 있었습니다. 저는 눈으로 새기며 마음으로 감동받았습니다. 지난 20년 동안의 오래됐던 기억들이 조금씩 열렸습니다.
기억이 모두 깨어나다
저의 기억으로 1996년경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는 파룬따파를 수련했고 집에 법공부팀을 설립했습니다. 그들은 아이들에 대한 요구가 매우 엄격했는데, 저와 언니, 여동생은 온가부좌 자세로 사부님의 설법 녹음을 들어야 했습니다. 언니와 동생은 모두 온가부좌를 할 수 있었지만, 어린 저는 어찌해도 도무지 다리를 틀지 못했고 다리가 아팠습니다. 그리하여 이후에는 사람들이 법을 배우러 올 때마다 저는 장난감을 가지고 다른 방에 가서 놀았고, 더는 어른들과 함께 법공부를 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대법을 좋아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법공부하는 방이 제 침실이어서 저녁에 다들 돌아가면 저는 혼자 조용히 사부님의 법상을 바라보며 “파룬상전(法輪常轉)”을 읽곤 했는데 정말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 시절에 소년의 저는 아름다운 꿈을 꾸었습니다. 저와 친구는 학을 타고 아주 높은 하늘에서 아래로 날아 내려왔습니다. 구름 층을 뚫고 지나자 삼림과 하얀색의 옛 보루가 보였습니다. 저는 친구와 작별하고 옛 보루를 향해 날아갔습니다.
그러나 1999년 7월 중공이 천지를 뒤덮을 듯이 파룬따파를 탄압하기 시작하면서, 대법과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의 수련에 관한 아름다운 꿈들은 모두 하나의 방에 자물쇠로 잠겨 버린 것 같았습니다. 이번 대만 여행에서 그 자물쇠가 열렸고, 대법과 관련된 그 기억들이 모두 떠올라 깨어나게 되었습니다.
가족이 수련하여 심신이 정화되다
예전에 가족들이 이야기해주었는데, 저의 외할아버지는 40대에 군부대에서 제대했다고 합니다. 당시 외할아버지는 부대에서 직위가 높았지만, 건강이 좋지 않아 매년 많은 약을 복용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남들 눈에는 정말 전망이 있는 ‘장래’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매년 겨울방학과 여름방학 때면 부모님을 따라 교외의 간부요양소에 가서 요양하시는 외할아버지를 찾아뵈었던 기억이 납니다.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는 급여가 아주 높았지만 거의 다 약을 사고 진료비로 써야 했습니다.
외할아버지가 법을 얻어 수련한 후부터 가족들이 가장 많이 이야기하는 것은 외할아버지가 술과 담배를 모두 끊은 것입니다. 게다가 더는 여러 가지 약을 사느라 돈을 쓸 필요가 없었습니다. 외할아버지는 몸이 좋아졌을 뿐만 아니라 성격도 좋아지셔서 온 가족이 모두 기뻐했습니다.
어머니는 예전에 외할아버지의 성격이 나빴기에, 외할아버지가 집에 있을 때면 가족들은 누구도 감히 큰 소리로 이야기하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어렸을 때 외할아버지가 부대에서 집으로 돌아오면 어머니의 세 남매는 감히 집에 들어갈 엄두를 못 냈다고 합니다. 외할아버지께서 대법을 수련하신 후 가족들은 집에 돌아가서도 그렇게 긴장하지 않았습니다. 농담도 받아주셨고, 가끔 대들어도 외할아버지는 화를 내지 않았습니다. 이는 어머니와 다른 사람들이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것이었습니다.
제가 가장 기뻤던 것은 방학 때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를 보러 그렇게 먼 곳으로 가지 않아도 된다는 것입니다. 주말과 방학 때 외할머니는 제게 맛있는 음식들을 가득 만들어 주셨고 저와 함께 책을 읽었습니다.
사부님의 법상(法像)과 파룬괘도(法輪掛圖)가 보이지 않다
갑자기 어느 날, 어머니는 더는 저를 외할머니 집에 보내지 않았고 주말에는 집에만 있게 했습니다. 저는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가 보고 싶었습니다. 몇 달이 지나서야 어머니는 저를 외갓집에 데려갔습니다. 집에 들어서자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방문마다 모두 비틀어져 있었습니다. 비록 다시 손질했지만, 이 집에 어떤 풍파가 일어났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제 방에는 사부님의 법상과 파룬괘도가 사라졌고 흰 벽만 덩그러니 남아 있었습니다.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가족들은 한마디도 말해주지 않았습니다. 여러 해 후에 여동생이 저에게 일부 일을 알려 주었습니다. 1999년 7월 중공이 파룬궁을 탄압하기 시작했던 초기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는 경찰서로 끌려갔습니다. 경찰은 불법으로 집을 수색했으며 두 달 동안 집에 머물며 감시했고, 이후 몇 년 동안 외할머니가 사는 아파트에 매일 사복경찰이 있었습니다.
그런 공포스러운 환경에서도 얼마 지나지 않아, 새벽 잠결에 저는 또다시 연공음악 소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저녁에 TV를 볼 때도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가 조용히 법을 읽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주말이나 평일에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는 집을 비우고 시골로 ‘친척방문’을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여러 해가 지나서야 저는 사실은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가 그곳 민중들에게 파룬궁 진상과 파룬따파는 정법이라는 사실을 알리러 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변고가 잇따랐고 좋은 사람 되기가 어려웠다
대학에 들어간 후 저는 다른 도시로 갔습니다. 다행히 이모할머니가 그 도시의 고등학교 교사였고 그들도 파룬궁을 수련했습니다. 주말마다 이모할머니 댁에 갈 수 있어서 저는 아주 즐거웠습니다.
비록 당시 그 도시에서 파룬궁에 대한 박해가 심했지만, 제가 접촉했던 파룬궁 수련생들은 모두 좋은 사람들이었기에 저는 두렵지 않았습니다. 예전에 집에 왔던 삼촌과 이모들,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은 모두 외할아버지 외할머니처럼 온화하고 선량했으며 남을 돕기 좋아했습니다. 또 이들 중에는 교수, 선생님, 공무원, 교장 등 사회적으로 존경 받는 직위를 가진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어느 금요일 저녁, 수업이 끝난 후 저는 이모할머니 집에 왔습니다. 문을 열자 열 살짜리 어린 동생이 눈물을 머금고 달려오더니 저를 안고 울면서 말했습니다. “그들이 할머니를 잡아갔어요.” 이모할아버지가 제게 말했습니다. “할머니를 찾으러 갈 테니 동생과 함께 집에 있거라.”
이전에 저는 진상 자료를 본 적이 있습니다. 위에 파룬궁 수련생이 진상을 알리다가 납치되어 박해당한 사건을 보도한 바 있습니다. 이런 박해가 저의 신변에서 발생하자 저는 너무 분노했고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이모할머니처럼 이렇게 좋은 사람을 왜 잡아가는가? 왜 진선인(真·善·忍)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면 잡아가는가? 왜 진실을 말하면 붙잡아 가는가? 좋은 사람이 되는 게 좋지 않은가? 초등학교에서 가르치는 인성 수업에서 우리에게 좋은 사람이 되라고 하지 않았는가?
이 일이 일어난 지 얼마 후 이모할머니는 이사 가셨습니다. 학교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이사 갔기에 저도 주말마다 가기가 힘들어졌습니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집에서도 비보가 전해왔습니다. 외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습니다. 이런 변고는 정말 청천벽력이었습니다. 느낌은 오래되어 잘 기억나지 않지만, 어머니와 함께 외할아버지의 유골을 찾으러 갔을 때 어머니가 작은 목소리로 했던 말이 기억납니다. “너 봐봐, 외할아버지의 유골은 전부 다 하얘. 하얗단 말이야! 너 알아? 외할아버지는 몇십 년 동안이나 약을 드셨는데 그렇게 많은 약을 드셨기에 독성이 매우 강해 사람이 죽은 후 그 유골은 하얀색일 수 없단다.”
저는 당시 어머니가 감히 하지 못했던 말들을 알고 있습니다. 외할아버지는 파룬궁을 수련해 신체가 정화되었습니다. 더 이상 약을 먹을 필요가 없을 뿐만 아니라, 예전의 몸속 그 몇십 년의 독까지도 모두 청리됐습니다.
그 후부터 저는 조용하고 냉담하게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마치 인생에서 무언가를 잃은 것 같았고, 혼자 있기만 하면 늘 일종 슬픈 기분이 들었습니다.
이후 학교에서의 또 한 번의 경험은 저를 더욱 냉담하게 만들었습니다. 당시 저는 새로 설립된 금융 동아리에 신청했습니다. 그들은 면접에서 저에게 자신의 성격 특징을 한마디로 정리하라고 했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저는 타인의 관점에 이끌려 사물의 좋고 나쁨을 함부로 판단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제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들은 폭소를 터뜨리며 비웃는 말투로 말했습니다. “당신은 자신이 흙탕에서 나왔으면서도 물들지 않았다고 말하고 싶은 것입니까?”
저는 잠시 멍해 있다가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흙탕에서 나왔지만 물들지 않는다. 이는 연꽃을 형용한 것이 아닌가? 그것은 도덕품성의 고상한 상징이다. 내가 도달하고 싶다고 해도 반드시 기준에 도달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들은 왜 비웃으려 하는가?’ 면접도 그렇게 끝났습니다. 하지만 이는 저에게 이 사회에서 어떻게 착한 사람으로 될 수 있는지를 더욱 의심하게 했습니다. 그 후 저는 물질과 명리로 자신을 보호하기 시작했습니다.
졸업 후 여러 해 동안 저는 필사적으로 연수나 야근이 아니면 쇼핑하고 남자친구를 사귀면서 명예와 물질적 향락에 빠졌습니다. 남자친구가 준 비싼 선물에 기뻐하면서 그의 품행은 오히려 주시하지 않았습니다. 승진과 월급 인상에만 흥분하며, 가족들의 그리움은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이리하여 비록 고임금 직장과 돈 많은 남자친구를 사귀었지만, 수련 전 저는 여전히 행복을 느끼지 못했고, 생명의 가치를 찾지 못했으며, 허전하고 초조하여 무엇을 따라야 할지 몰랐습니다.
대법의 법광 속에서 한 송이의 연꽃이 되고 싶다
대만 여행을 마치고 홍콩으로 돌아왔습니다. 저는 인터넷에 접속해 파룬따파 서적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해외에서 파룬궁 수련은 공개적이며 대법서적은 인터넷에서 볼 수 있다던 가족들의 말이 생각났습니다.
한번은 홍콩의 스타페리터미널을 지나다가 파룬따파하오와 박해진상을 서술한 보도판을 보게 되었습니다. 저는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대법은 이렇게 좋으며 어머니의 생명도 구해주었다. 대법사부님께서는 사람들에게 좋은 사람이 되라고 가르치셨고, 대법제자는 모두 좋은 사람이다. 나도 진상을 알려야겠다.’
그 후부터 저는 평일에는 인터넷에서 파룬따파 경문을 학습하고 주말에는 젠사쥐(尖沙咀)에 가서 관광객들에게 진상 신문을 나눠주었습니다. 천천히 저는 파룬따파 수련에 걸어 들어왔습니다.
갓 대법 수련에 들어왔을 때 가장 직접적으로 느낀 것은 진정한 즐거움을 되찾은 것입니다. 어릴 적에 할머니 할아버지가 길을 건너는 것을 도와주며 즐거워했던 것처럼, 노인에게 자리를 양보해드리며 즐거웠던 것처럼 말입니다. 현재, 저는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 9자 진언이 담긴 작은 연꽃을 나눠주는 것으로 즐거워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주변의 친구들이 진상과 파룬따파는 좋은 사람, 선량한 사람이 되라고 가르친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에 기쁨의 눈물이 흘렀습니다.
남들과 어울리지 못할까 봐 자신을 한탄하던, 비웃음을 받을까 봐 자신감을 잃었던, 이해하지 못하는 시선이 두려워 피했던 저의 그 행동들이 어느새 모두 사라져 버렸습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나는 더는 흙탕에서 나왔지만 물들지 않은 정련이 되고 싶다 해서 놀림을 받을까 봐 자신감을 잃지 않을 것이다.’
안으로 찾는 것을 배워 대법의 아름다움을 펼치다
갓 파룬따파 수련을 시작했을 때 저는 매일 즐거웠지만, ‘서유기’처럼 여러 가지 시련도 왔습니다.
당시 저는 재무 분석원이었고, 여러 명으로 구성된 팀을 이끌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팀의 아주 유능한 조수가 갑자기 다른 팀으로 옮기겠다며 사장에게 저와 함께 일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듣고 순간적으로 화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당신이 갑자기 일을 그만두면 팀의 업무와 업적은 어떻게 되는가? 나는 당신에게 승진과 임금 인상 기회, 심지어 다른 팀엔 없는 것을 주는데 왜 이렇게 중요하고 일손이 부족한 시기에 떠나려 하는가?’ 저의 명리심과 원망하는 마음은 한꺼번에 솟구쳐 올라왔습니다. 자신이 수련자라는 것도 의식하지 못했습니다.
그 후 오랜 시간 동안 저는 그런 불만 속에 빠져 있었습니다. ‘내가 너희들에게 그렇게 여러 종류의 업무 처리 기회를 주는데도 너희들은 왜 소중히 여기지 않는가?’ ‘비록 야근은 많지만, 노력한 만큼 내가 사장님께 월급 인상과 승진 기회를 얻을 수 있게 보고했는데 내가 어디 잘못했는가?’ ‘나는 팀을 위해서인데 왜 모두 나한테 이렇게 대하는가?’ 무슨 일이든 다 자신이 매우 억울하게 느껴졌습니다.
제가 안으로 찾지 않고 깨닫지 못하는 것을 보고 사부님께서는 저를 점화해 주셨습니다. 어느 날 저녁, 사무실에서 혼자 야근을 하다가 또 원망이 치밀어 올랐습니다. 갑자기 한 목소리가 저의 머릿속에서 물었습니다. “당신은 정말 그들을 위해서 했습니까? 전혀 자신을 위한 것이 없습니까?”
다음 ‘전법륜(轉法輪)’의 법이 아주 또렷이 머리에 떠올랐습니다. “어떤 사람이 나쁜 일을 할 때, 당신이 그에게 나쁜 일을 하고 있다고 알려주어도 그는 믿지 않는데, 그는 자신이 나쁜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정말로 믿지 않으며, 일부 사람들은 또 이미 미끄러져 내려온 도덕 수준으로 자신을 가늠하면서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낫다고 여긴다. 왜냐하면 가늠하는 표준마저 변화가 일어났기 때문이다.”[1]
저는 마음을 조용히 하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나는 다른 사람을 위한다고 말하지만, 마음속에는 나 자신의 승진과 월급 인상뿐이다. 왜냐하면 나는 경영관리자가 되고 싶었기에 겉으로는 직원들을 위해 일한다고 하지만 사실은 자신의 관리능력을 증명하려 하고 있다.’ 저는 자신이 틀렸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저는 제가 틀렸다는 것을 깨닫고 이익심과 원망하는 마음을 내려놓기로 마음먹었습니다. 후에 팀 미팅에서 저는 진심으로 모두에게 사과했습니다. 과거의 혹독한 태도에 대해 사과하며 팀원 개개인 모두가 일을 잘하는 동시에 즐겁게 성장하길 진심으로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차츰 업무 중에서 일과 갈등에 부닥쳤을 때, 저는 회사와 타인을 먼저 생각한 다음,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를 생각했습니다. 문제를 해결할 때 사(私)를 위하는 관점에서 방법을 찾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하면 해결 방안을 아주 빨리 찾을 수 있었습니다. 저의 업무는 갈수록 순조로워졌고 저도 일을 하면서 진정한 즐거움을 찾게 되었습니다.
그 후 2년 반 동안 사장은 매년 저를 승진시켜 주었고 임금을 인상해 주었습니다. 저는 굉장히 빨리 재무 경리가 되었습니다. 팀도 지속적으로 커졌고 팀원들의 분위기도 매우 화기애애했습니다. 파룬따파가 저를 변화시켰고, 동료들도 제가 달라진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회사의 아시아 업무 재무책임자의 자리는 제자리와 멀지 않습니다. 비록 그녀는 카톨릭을 신앙하고 있지만, 어느 날 그녀는 제 옆을 지나다가 책상에 올려놓은 영문으로 된 ‘진선인’ 책갈피를 보고는 기뻐하며 말했습니다. “이 세 글자는 정말 아름답네요, 저도 해내고 싶어요. 그러나 마지막 글자인 ‘인’자를 저는 늘 잘하지 못해요. 저는 성격이 좋지 않아요.” 저는 그녀를 격려하며 말했습니다. “당신은 잘 할 수 있어요. 이것을 당신께 드릴게요. 당신도 저처럼 이 책갈피를 컴퓨터에 붙여놓고 매일 보면서 자신을 일깨운다면 서서히 할 수 있어요.” 그녀는 매우 기뻐하며 받아 갔습니다. 이직할 때 그녀는 저에게 특별히 말했습니다. “당신이 제게 준 책갈피를 가지고 갈 거예요. 이건 저한테 너무 소중하니까요.”
제가 회사를 그만둔 후 뜻밖에 대륙의 팀원들이 와서 작별 인사를 했습니다. 저는 그 기회를 잡아 그들에게 진상을 알리고 삼퇴(중공의 당, 단, 대조직에서 탈퇴)를 해주었습니다.
한 동료에게 저는 외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예전에 저의 외할아버지는 중공 군대의 고위 간부였습니다. 각지를 돌아다니다 병이 났는데 40대에 매일 많은 약을 먹으며 늘 요양원에 가야 했습니다. 파룬따파를 수련한 후 몸이 좋아지셨고 성격도 좋아지셨습니다. 이렇게 큰 긍정적인 심신 변화가 있었지만, 중공은 그를 박해하면서 수련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중공은 거짓말로 중국 사람들을 속여 대법을 증오하게 하고 선량한 파룬궁 수련생들을 증오하게 하는데 이는 옳지 않습니다.”
저는 말을 많이 하지 않았지만, 그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이 한 말은 제가 대륙에서 들은 것과 다릅니다. 원래 이 일에 대해 저는 매우 부정적이었지만, 요 몇 년 동안 저는 정말로 당신의 변화를 보았습니다. 저는 당신이 말하는 가족의 이야기를 믿습니다. 당신이 보는 책을 저에게 보여 줄 수 있습니까?”
그 후 그녀는 삼퇴 했을 뿐만 아니라 대법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예전에 그녀는 줄곧 딸 하나를 더 낳고 싶어 했는데 두 번째로 ‘전법륜’을 배울 때 저에게 “저는 임신했어요. 딸이에요.”라고 알려주었습니다. 그녀는 이는 자신이 진상을 알고 대법을 존중하여 신이 그녀에게 주신 선물임을 깨달았습니다.
파룬따파는 저와 가족들의 심신에 거대한 변화를 가져다주었습니다. 파룬따파의 아름다움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희망컨대 이 난세 속에서 갈수록 더 많은 사람이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사람들에게 희망과 아름다움을 주는 파룬따파는 바로 우리의 옆에 있습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전법륜’
원문발표: 2021년 8월 22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1/8/22/42901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