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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목에 참가하면서 자신의 집착을 인식하고 진정하게 수련하다

글/ 호주 청년 파룬따파 수련생

[밍후이왕] 존경하는 사부님 안녕하십니까! 수련생 여러분 안녕하세요!

제가 초등학생이었던 1998년, 이모는 아픈 어머니께 파룬따파(法輪大法)를 소개해 주셨습니다. 처음에 어머니는 제가 방해할까 봐 걱정돼 저를 단체 법학습에 데려가지 않으셨습니다. 하지만 저는 뭔가 멋진 일을 놓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따라가겠다고 고집했고 어머니는 다음번에 저를 데리고 가셨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 시절은 저에게 매우 행복했던 시기였습니다.

1999년 7월 20일 이후, 어머니는 여러 번 박해를 받으셨습니다. 대법의 축복으로 즐겁고 화목했던 우리 가정은 산산조각이 났습니다. 저는 7학년 때 학교를 그만두고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직업을 구해야 했습니다. 이것은 사회의 큰 염색 항아리에 빠져드는 계기가 됐고 저는 점차 법공부를 하지 않았습니다. 마음속으로는 대법이 좋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부지런함을 유지할 수 있는 동기부여가 되지 않았습니다. 저는 잃어버린 시간을 만회할 기회가 있기를 바라면서 종종 사부님께 간청했습니다. 저는 다시 수련을 시작하고 싶었습니다.

사부님의 배치 덕분에 저는 2018년 초에 멜버른으로 이사를 왔고 2019년에 드디어 다른 수련생들과 연락이 닿아 수련환경에 다시 들어섰습니다. 운 좋게도 저는 매우 부지런한 몇몇 수련생들과 룸메이트가 됐습니다. 그들은 법공부와 연공을 하라고 격려해주었습니다. 저는 종종 그들과 함께 진상을 알리는 곳에 갔습니다. 그들의 영향으로 저는 부지런히 수련하게 됐습니다.

진상을 알려 사람의 관념을 돌파

중국공산당(중공)의 선전과 증오 선동으로 인해 진상을 알지 못하는 많은 사람은 수련생에 대해 편견을 가졌습니다. 게다가 저는 중국에 있는 동안 오랫동안 법을 배우지 않았고 타고난 성격이 내성적이었습니다. 이 모든 것은 대법이 좋다는 것을 알면서도 왜 좋은지 설명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진상을 알리기 위해 용기를 낼 때마다 마음이 많이 불편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거나 상대방은 저를 조롱했습니다. 저는 진상을 알리는 방법을 모른다고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작년 법회에서 여러 가지 상황에서 법을 실증하고 진상을 밝힐 기회를 만든 다른 젊은 수련생들의 말을 들었습니다. 저는 자신의 관념을 버릴 때가 됐음을 깨달았습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이 공법은 법이 사람을 연마(法煉人)하는 공법이다. 법이 사람을 연마하는 공법은 바로 일부 상태가 모두 공(功) 중에서, 법(法) 중에서 체현되어 나올 것이다.”(전법륜 제7강)

법을 공부하고 외우면서 사부님께서는 저에게 더 강한 정념을 주셨습니다. 진상을 알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다른 수련생들에게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가르쳐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우리는 쓰촨성의 여러 전화번호를 갖고 있었습니다. 처음 번호를 누를 때 저는 긴장해서 심장이 매우 빨리 뛰었습니다. 저는 조용히 사부님께 가지(加持)를 청했습니다. 처음으로 “여보세요?”라는 말을 했을 때 온몸에 짜릿한 에너지가 솟구치는 것을 느꼈습니다. 처음에는 진상을 알리기 위해 할 말을 적었습니다. 하지만 계속 수정해도 정보의 흐름이나 연속성이 좋지 않았습니다. 그 기간 나는 대략 500~600통의 전화를 걸었습니다. 비록 중공과 공청단에서 탈퇴하는 성공률은 그리 높지 않았지만 저는 대화의 어조와 속도를 연습할 수 있었습니다.

팬데믹 기간에 멜버른이 폐쇄됐을 때 저는 RTC 플랫폼 교육에 참석해 진상을 알리는 방법을 배웠습니다. 저는 거의 매일 플랫폼에서 전화를 걸었습니다. 사부님의 가지(加持)와 수련생들의 도움으로 저는 마침내 사람들에게 진상을 알리는 방법을 모른다는 관념을 돌파했습니다. 저는 이 전화를 통해 사람들이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真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외우고, 중공을 탈퇴해 자신을 보호하는 방법을 알릴 수 있었습니다.

주말에는 종종 멜버른 차이나타운에 가서 진상자료를 배포했습니다. 중국인을 만나면 진상을 알린 경험이 있는 수련생에게 부탁해서 그들이 중공을 탈퇴하게 했습니다. 저는 의존하려는 집착이 생겼는데 최근에 이 수련생이 바빠서 못 오게 됐습니다. 저는 이것이 진상을 제대로 알리지 못할까 봐 두려워하는 집착을 버릴 기회임을 깨달았습니다. 지금은 차이나타운에서 사람들과 직접 대면해 진상을 알립니다.

어느 날 저는 30년 넘게 호주에서 산 한 남성과 이야기를 나누며 그가 중공을 탈퇴하도록 도왔습니다. 그의 얼굴은 창백한 잿빛이었고 매우 피곤해 보였습니다. 그는 저에게 여러 번 감사해했고 전단지를 나눠주는 우리의 노력에 감사하다고 말했습니다. 약 한 달 후 저는 이 남자를 다시 만났습니다. 그는 저를 먼저 보고 말했습니다. “안녕하세요. 당신이 바로 그 파룬따파(法輪大法) 수련생이군요!” 저는 깜짝 놀라서 그를 바라보며 ‘누구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미소를 지으며 “저를 모르세요?”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갑자기 그가 기억나서 웃으며 말했습니다. “선생님 너무 씩씩해 보여서 몰라봤어요. 지금 정말 기분이 좋아 보이세요.”

그는 그 말을 듣고 행복해 보였습니다. 저는 이 남성의 변화를 보고 대법제자들이 진상을 알리는 것은 진정으로 중생을 구원하는 것임을 더욱 확신하게 됐습니다.

대법 항목에서 심성을 수련

2019년 10월, 다른 수련생이 라디오 프로그램 음악파일 편집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녀는 제가 도와주기를 바랐습니다. 저는 이런 ‘청소’ 일을 하는 게 싫어서 조금 망설였습니다. 제가 편집을 잘하면 관객들은 다 진행자 덕분이라고 생각할 것이고 제가 잘못하면 비난이 쏟아질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게다가 저는 중국에 있을 때 수련을 열심히 하지 않아서 허리에 문제가 있었습니다. 밤늦게까지 컴퓨터 앞에 앉아 일해야 한다는 생각에 주눅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이 수련생이 얼마만 힘든 시간을 보냈을지 생각했습니다. 저는 이기적인 생각을 접어두고 희망지성(SOH)의 라이프스타일 뉴스 코너 편집을 돕기로 결심했습니다.

제가 이 일을 하게 된 동기는 다른 수련생을 돕고 그녀의 업무를 덜어주기 위해서였습니다. 이 일을 하면서 저는 이것이 사부님께서 저를 위해 마련해주신 수련의 길임을 깨달았습니다. 이 일을 통해 사람들로부터 모욕을 당하고 싶지 않고, 칭찬을 듣고 싶으며, 불평하고, 수련생들이 녹음을 망쳤을 때 좌절감을 느끼는 등 많은 집착이 드러났습니다.

지난 10월에 이 집착 중에서 많은 것들이 극에 달했습니다. 1년간 그 자리에 몸담아온 만큼 저는 경험이 풍부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진상 전화에 더 많은 시간과 정력을 쏟기 시작했습니다. RTC 101 플랫폼 룸에 있는 동안 호스트는 종종 다른 수련생들에게 제 통화를 내보내기 위해 제 소리를 먼저 켜곤 했습니다. 저는 법공부를 깊이 하지 않았고 다른 수련생들의 칭찬을 듣고 자신감이 넘쳤습니다. 몇 년간 저를 괴롭혔던 난관인 진상을 명확히 알릴 수 없다는 장애를 극복한 후 환희심도 생겼습니다. 저는 겸손해 보였지만 과시심이 드러났습니다.

저는 거만해져서 편집 작업에 집중할 수 없었습니다. 업무가 주어지면 저는 곧 어떻게 하면 그 일을 빨리 끝낼 수 있을지만 생각했습니다. 품질 확인을 위해 오디오 파일을 들으면서도 휴대폰을 보는 경우가 많았고 마음이 산란했습니다. 당연히 제 작업은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모든 집착을 머리 위로 날려 보냈다고 생각했기에 차이를 구별할 수 없었습니다. 저는 여전히 제 작업이 완벽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느 날 제가 편집한 쇼의 진행자가 저에게 메시지를 보내왔습니다. 저는 그녀의 긴 문자를 보자마자 당황했습니다. 그녀는 기본적으로 지금의 제 상태에서는 제가 수련을 시작할 때만큼의 마음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다들 제가 편집한 코너의 품질을 확신하곤 했는데 지난 4~5회 동안 제 편집은 깔끔하지 못하다고 했습니다. 그녀는 또 속인 회사 편집자들은 그들이 저지른 모든 실수에 대해 보수에서 제외한다고 언급했습니다.

그녀의 메시지를 다 읽고 나서 저는 화가 났고 심지어 마음속으로 자신을 변호했습니다. ‘이 작은 실수들에 그런 과민반응을 일으키다니? 내가 하루에 얼마나 많은 일을 하는지 알아? 너무 바빠서 밥 먹을 시간이 거의 없어. 나는 이 모든 일을 당신을 위해 하고 있는데 날 비난만 하고 있다니!’ 명(名)에 대한 집착이 공격받는 느낌이 들었고 계속해 불만이 터져 나왔습니다.

저는 법공부를 하다가 이 문장을 보았습니다.

“물론 우리가 말했듯이, 사람은 모두 자신의 이 관념이 옳지 않고 마음이 바르지 않기 때문에 번거로움을 불러온다.”(전법륜 제3강)

나는 ‘마음이 바르지 않다’는 사부님 말씀에 집중했습니다. ‘하지만 난 중생을 구하기 위해 부지런히 일했어! 내 생각엔…. 대법 항목도 다 따라갔어. 봉쇄기간 동안 나는 새벽 4시 30분에 일어나 법을 외웠고 가족들과 영상통화를 할 시간도 거의 없었는데 어떻게 내 마음이 바르지 못하다고 할 수 있지?’

안으로 찾기 시작했을 때 저는 많은 부족함을 발견했습니다. 첫째, 저는 희망지성을 속인 일처럼 대했습니다. 저는 경험이 있기에 일에 많은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자신이 일을 잘한다고 생각했기에 이중 삼중으로 체크하는 데 시간을 쓰고 싶지 않았습니다. 세 가지 일을 하고 있었지만 양심적으로 하고 있지 않았습니다. 저는 RTC 플랫폼에서 진상을 알리는 것은 사람들에게 전화만 하면 중공을 탈퇴하므로 훨씬 효율적이라고 느꼈습니다. 하지만 라디오 프로그램을 편집하려면 밤늦게까지 일해야 했고, 어떨 때는 그 내용이 대법과 전혀 관련이 없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듣는 사람이 없는 쇼에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는 느낌이었습니다. 사실 이것은 모두 제게 거만한 관념을 많이 있고 제가 대단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제가 망쳐놓은 그 몇 개의 에피소드를 다시 편집할 때 저는 그것들이 얼마나 형편없고 끔찍했으며, 제가 어떻게 그런 끔찍한 일을 저지를 수 있었는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저는 원망심과 경쟁심, 과시심을 없애기 위해 정념을 내보냈습니다. 진행자가 제게 보낸 메시지를 다시 읽어보니 그녀의 말투는 사실 매우 침착하고 친절했습니다. 이 문제가 불거졌을 때 그녀는 처음에 자신의 문제부터 찾았음이 분명했습니다. 그녀가 한 일은 진심으로 제 결점을 지적한 것뿐이었습니다. 저는 진심으로 그녀에게 감사했고 자신의 수련 상태를 다시 조정했습니다.

사부님과 법에 대한 믿음이 난관을 극복하게 하다

예전의 제 수련 상태는 너무 일관성이 없었습니다. 좀 더 부지런하기로 마음먹을 때마다 사부님께서는 뒤떨어진 제자를 가지(加持)해주셨고 저는 즉시 확연한 차이를 느꼈습니다. 교류문장을 쓸 때마다 저는 항상 제가 느낀 것 또는 꿈에서 본 것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저는 느낌과 감정에 따라 수련하는 것 같았습니다. 자신에게 집착이 많고 정념으로 세 가지 일을 하지 않아서 난이 잇달아 나타나기 시작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멜버른이 대유행으로 폐쇄된 후 다시 문을 열었던 11월, 저는 바쁜 업무 스케줄로 복귀하면서 늘 하던 연공을 못 하게 됐습니다. 동시에 제가 RTC 전화에 사용한 앱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제 전화번호가 차단됐고 RTC 계정이 정지됐습니다. 중국에 전화를 걸면 상대방은 아무 말도 듣지 못했습니다. 영상 편집도 오랜 밤을 고생했는데도 만족스러운 것을 만들어내지 못했기에 무의미해졌습니다. 저는 수련을 하면서 만족했던 ‘느낌’을 잃었습니다.

사부님께 향을 피워 올릴 때 사부님의 표정을 가늠할 수 없었고 천목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마치 수련을 그만둔 것처럼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 후 미국 대선이 있었고 그 선거는 제 다른 집착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저는 발정념을 할 때도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었습니다. 제 수련 상태는 점점 더 나빠졌고 열심히 할 의욕이 나지 않았습니다.

그동안 저는 수련을 진지하게 여기지 않았고 법에 따라 수련하지 않았으며 수련생이 갖추어야 할 심성 제고의 엄격한 기준을 지키지 않았고 항상 과시하고 싶어하는 등의 제 부족함을 많이 보았습니다. 또한 질투에서 비롯된 공정함에 대한 지나친 욕망과 깊이 숨겨진 원한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나중에야 찾을 수 있었던 숨겨진 집착이 하나 있었습니다.

단체 법학습에서 저는 우연히 이 단락의 법을 읽게 됐습니다.

“여러분은 우리 사부님은 절대적인 능력이 있고, 정법 중에서 어떻게 하려고 하면 곧 어떻게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당신들은 생각해 보았는가. 이 일체를 구원하려면 구원받는 자가 자원(自願)하지 않으면 안 되며, 강제적으로 한다면 본질이 개변될 수 없다. 강제적으로 개변한다면 새롭게 한 생명을 다시 만드는 것과 같은데, 다시 만드는 것은 아주 쉽다. 한 생명을 구도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어려운 것이다. 다시 만드는 것은 너무나도 쉽다.”(각지 설법 11-20년 설법)

저도 예전에 비슷한 생각을 한 적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2020년, 멜버른 수련생들은 션윈 공연이 취소되지 않도록 24시간 연속 발정념을 했습니다. 우리가 정념과 행동으로 일체가 됐기 때문에 저는 션윈 공연이 차질 없이 이뤄질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션윈 공연은 팬데믹으로 취소됐습니다. 이번에도 우리는 24시간 연속 발정념을 했지만 결과는 우리의 예상과 달랐습니다. 저는 모든 시련과 고난은 사부님과 법에 대한 믿음이 확고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어떠한 압력도 모두 불법(佛法)에 대하여 근본적으로 견정(堅定)할 수 있는가 없는가를 고험하는 것이 아닌가? 근본적으로 법에 대하여 아직 견정하지 않다면 아무것도 말할 것이 없다.”(정진요지-누구를 위해 수련하는가)

비록 선거 뉴스를 계속 보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어떤 결과가 나올 거라는 것은 예상했습니다. 결과가 나왔을 때 많은 수련생은 낙담했습니다. 그들은 곧 자신의 집착을 찾았고 다시 세 가지 일을 잘할 수 있었습니다. 반면에 저는 강렬한 집착을 숨겨뒀고 이 집착은 일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만 나타났습니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고 아무 의욕도 없었습니다. 이것은 제 수련의 큰 누락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마침내 숨겨진 집착을 찾았습니다. 그 후 제 수련 상태와 환경은 모두 좋아졌습니다.

올해 가장 크게 제고된 점은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정념으로 대처할 줄 안다는 것입니다. 예전에는 조금의 어려움만 있으면 적성에 맞지 않는다거나, 성공하지 못할 거라거나, 제가 능력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사부님의 시 홍음2 중에서 ‘견정’으로 글을 마치고 싶습니다.

견정(堅定)

깨달은 자 세속 벗어남을 높이 보나니
정진하는 자 마음 독실하여 원만할 수 있도다
큰 난 중에서 견정해야 하나니
정진의 뜻은 접을 수 없도다

(홍음2- 견정)

개인의 최근 수련 경험을 교류했습니다. 부족한 곳이 있다면 지적해주시기 바랍니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수련생 여러분 감사합니다!

(2021년 청년 대법제자 인터넷 법회)

 

원문발표: 2021년 8월 8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1/8/8/429265.html
영문위치: http://en.minghui.org/html/articles/2021/8/9/19451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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