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밍후이왕에서 위챗 소프트웨어를 삭제하는 것에 관한 통지를 일찍이 2018년에 발표했지만, 그때 저는 사악의 박해를 받아 제때 보지 못했습니다. 올해 5월에서야 밍후이왕에서 본 수련생 교류 문장에서 이 통지를 언급한 것을 보고 통지 원문을 찾았습니다. 저는 낙오되지 않아야 하며 보완해야 하면 곧 하겠다고 깨우쳤습니다.
저는 휴대전화 소프트웨어의 사용에 관해 아는 것이 많지 않습니다. 제가 앉아서 이 일을 하려고 준비했을 때에야 어려운 정도를 알게 되었습니다. 통지에서 언급한 네 가지 소프트웨어 중 한 가지는 제게 없었고, 설치하지도 않았었습니다. 한 가지는 제 휴대전화에 비록 설치됐지만 사용하지 않았고 직접 삭제하면 되었습니다. 가장 많이 사용한 것은 위챗이었고 클라우드는 나중에서야 알았습니다. 매번 핸드폰을 바꿀 때마다 핸드폰 가게에서 소프트웨어를 설치한 것이었습니다. 제 개인 자료 데이터베이스 정보를 휴대전화로 옮긴 후, 제가 직접 사용했습니다. 이번에 스스로 삭제하면서 비로소 조금씩 모르던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각종 자료를 찾아보고 그중에 설정된 것을 이해했는데 인내심과 끈기가 필요했고 또 곤란을 두려워하는 정서와 경박스러운 정서를 극복해야 했습니다.
클라우드에서 주소록을 삭제할 때는 그야말로 정신이 붕괴될 지경이었습니다. 몇백 개의 정보를 하나씩 삭제했습니다. 간편한 방법이 있는지를 몰라서 저는 이렇게 한 개씩 삭제했습니다. 사실 예전에 많은 사람과 연락을 하지 않게 되었지만 삭제하지 않아서 주소록을 한번 정리하고 싶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연락방식도 일찍이 바뀌었지만 제때 업데이트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매번 이것이 한 가지 방대한 작업이라는 생각에 한 번씩 미뤘는데 이번에 철저히 깨끗이 정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위챗은 제가 줄곧 사용했고 업무나 일상생활에 지인들과 그리고 결제수단으로 사용 빈도가 상당히 높은 소프트웨어였습니다. 여러 ‘친한 친구’들도 많이 추가됐습니다. 삭제하려 했기 때문에 먼저 연락할 사람을 정리해야 했습니다. 저는 일일이 살펴보았는데 정말 자주 연락하는 사람은 제가 생각한 것처럼 그렇게 많지 않으며 대부분 한 번 만난 인연으로 모종의 업무 관계로 한두 번 연락해서 정보가 휴대전화에 남은 것이고, 제때 깨끗이 정리하지 못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또 일부 상점은 인맥을 얻기 위해 위챗으로 ‘친한 친구’를 추가하면 작은 혜택을 줬습니다. 동창 그룹에 대해서는 저는 존재감만 있을 뿐이었습니다. 정리하는 과정에서 각종 사람의 집착심, 탐욕, 호기심 등을 보았습니다. 저는 휴대전화를 정리하는 것도 자신의 공간장을 청리하는 것이라는 점을 깨달았습니다.
위챗 채팅은 무료이기 때문에 친구들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시간을 고려하지 않았고 무슨 말이든 모두 나누었으며 어떤 때에는 한 시간을 이야기했습니다. 위챗이 없으니 전화를 걸 때 비용이 들었지만, 친구들이 알아서 일이 있으면 일 이야기만 해서 저도 모르게 시간을 많이 절약하게 됐습니다.
위챗이 있을 때, 자주 메시지가 있는지를 주시해야 했고 마음도 묶이게 되었는데, 때로 다른 사람이 올린 글에 매료되어 클릭해서 들어가서 보다가 눈 깜짝할 사이에 시간이 없어졌습니다. 게다가 자발적으로 일부 정보를 받아들였고 어떤 때에는 교란받으면서도 스스로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 저도 자신의 근황을 나누고 싶었고 좀 과시하고 싶었으며 좀 인정받고 싶었고 각종 집착심이 그 속에서 방해했습니다.
위챗을 삭제하니 늘 짊어지고 있던 짐을 벗어 던진 것처럼 매우 상쾌했습니다.
결제는 전혀 문제가 없었습니다. 전자결제가 없을 때는 원래 현금으로 지불하지 않았던가요? 이것은 가장 합법적인 화폐입니다. 편리하다는 것은 사람의 느낌이며 장기적으로 주입된 관념이기도 합니다.
처음에 위챗을 삭제했을 때 해결하기 어렵다고 생각했던 것은 전연병 발생 기간 동안 외출할 때 건강 코드를 제시해야 하는 문제였지만, 한 번 찾아보니 다른 방식으로도 해결 가능했으며 이것은 또 제게 ‘관념’을 보게 했습니다.
초기화를 하려 했기 때문에 모든 부가적인 소프트웨어들을 다 다시 설치해야 했고 휴대전화 앨범도 깨끗이 정리해야 했습니다. 매번 한 가지를 진행할 때, 저는 모두 약간의 집착이 있는 것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소프트웨어를 설치할 때, 선별에 주의했으며 필요한 것만 설치했고 대체 가능한 것은 모두 설치하지 않았으며 일을 덜기 위한 것은 모두 설치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소프트웨어를 사용하면 편리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대면하여 소통하고 연락하는, 마땅히 있어야 하는 상태가 줄어든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기계를 통해 사람과 연락해야 할까요? 마치 기계의 종속물이 되어 기계가 삶을 관여하고 사람을 통제하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예상외로 휴대전화 소프트웨어 삭제는 제게 많은 불편을 가져다주지 않았고 가장 큰 문제는 제가 이런 소프트웨어, 특히 위챗을 사용하지 않는 질문에 직면하는 것이었습니다. 친지와 친한 친구들은 모두 위챗을 사용하고 있어 그들은 이미 위챗에서 정보를 얻는 것에 습관이 되어 있었으며 위챗을 통해 정보를 전달합니다. 제가 떠난 것에 그들은 불편함을 느꼈습니다. 사실 일은 별로 많지 않으며 정말 일이 있을 때, 전화 한 통이면 문제가 해결되었지만, 그들은 전화마저 걸고 싶어 하지 않았습니다. 메시지 하나로 그룹 창에서 한 번 부르고 나면 끝날 일이었고 또 자신의 관점과 견해를 발표할 수도 있었습니다. 비록 분명하게 설명하지 않았지만, 속뜻은 ‘별일 없는데 위챗을 삭제해서 뭐 하느냐, 우리가 얼마나 불편한가’였습니다! 저는 마치 그들 중의 별종이라도 된 것 같았습니다. 이를 통해 저는 상점들이 어떻게 한 가지 물건으로 사람의 마음에 깊이 파고들어 사람을 떠나지 못하게 하고 내려놓지 못하게 하는지를 더욱 똑똑히 보게 했습니다.
수많은 사물은 모두 이렇게 우리 주변에 안배됐고 의존하는 마음을 형성하게 했으며 삶의 일부분이 되게 했습니다. 각종 관념을 포함해 이렇게 형성된 것이며 수련의 목표와 상반됩니다. 수련은 후천적인 관념을 일일이 없애는 것입니다.
위챗이 있기 전 어떻게 연락했던가요? 불편함을 느꼈던가요? 아닙니다. 사람 사이의 관계는 지금보다 더욱 가까웠던 것 같습니다. 우리는 위챗에 너무 의존하고 있습니다. 의존은 곧 집착이지 않은가요?
저는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수도인과 사슴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저도 모르게 집착하고 있어서 나중에 겁이 났습니다. 이어서 곧 저는 한 가지 물건의 사용 여부는 본래 우리의 사용 선택 여부에 달린 것으로서 주도자는 기계, 외부적 환경, 기타 사람의 관념 등등이 아니라 마땅히 사람 자체입니다. 한 가지 물건이 사람들의 생활 곳곳에 두루 퍼져 있을 때, 사람들이 그것에 지나치게 많은 기능을 부여해주면 사람은 곧 서서히 주도자의 위치를 포기하고 그것이 주도자가 되게 하여, 우리가 위챗을 사용하지 않는 것을 선택할 수 있지만 오히려 위챗을 사용하는 사람들에 의해 별종으로 간주되게 하는데, 그것은 위챗이 사람들의 생활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부지불식간에 그것을 위해 그것의 존재 범위를 확장시키고 있고 그것에 정상적인 사물보다 높은 가치와 지위를 부여해주고 있습니다. 이렇게 발전해나가다가는 후과가 정말 두렵습니다.
이런 시대에 살면서 수많은 일을 법에 따라 해야 합니다. 저는 사상적으로 이 일의 진실한 면목을 똑똑히 인식하는 것도 제가 완성해야 할 일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원문발표: 2021년 8월 11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21/8/11/42938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