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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에서 좌절당하며 집착심을 버리다

글/ 미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존경하는 사부님 안녕하십니까!
수련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저는 올해 24세이고, 미국 미시간주에 살고 있습니다. 운이 좋아 2세 때부터 어머니를 따라 파룬따파(法倫大法) 수련을 시작해서 지금까지 성장해왔습니다. 오늘 제가 구직 과정에서 여러 번 좌절당하는 가운데, 결국 여러 가지 집착심을 찾아 버린 수련 체득을 교류하겠습니다.

원한심(怨恨心)의 근원은 밖에서 찾는 데서 시작돼

간호학교를 졸업한 저는 첫 직장이 한 병원의 아동 중환자실(ICU)이었는데, 계약 기간이 약 5개월이었습니다. 빠른 템포와 고강도의 환경이었는데, 전력을 다해야 겨우 따라갈 수 있었습니다.

실습 기간의 마지막 몇 개월에 저는 새로운 지도교수에게 안배되었는데, 그녀는 직설적이고 거리낌 없이 말했고 저는 자주 꾸중을 들었습니다. 한번은 그녀가 저에게 일을 더 빨리해야 하고 기능을 향상해야 한다며, 그렇지 않으면 다른 일자리를 찾아야 할 것이라고 알려줬습니다.

저는 개선하기 위해 지도교수의 조언과 비평을 적었고, 업무가 끝나면 부족한 점을 되돌아보며 다음날 어떻게 더 잘할 것인지 계획했습니다. 심지어 친구들에게 자주 어떻게 해야 업무를 더 잘할 수 있는지 조언을 구하기도 했습니다.

저는 지도교수의 꾸중을 들을 때마다 마음이 매우 불편했는데, 이 지도교수를 만난 것은 저의 심성을 고험(考驗) 하기 위해서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겉으로는 웃으며 받아들이고, 지적해주신 데 감사해 하고 태도를 바르게 하며, 그녀가 지적한 대로 개선하겠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서는 ‘왜 생트집을 잡지?’ 혹은 ‘내 방법도 틀리지 않은데, 그녀가 말하는 것과 다를 뿐이야’라는 원망의 마음이 생기고, 그녀가 말을 부드럽게 하지 않아 제가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생각했습니다.

한번은 잘못을 저질러서 지도교수에게 호된 꾸지람을 들었는데, 점심시간에 억울해서 밥을 먹을 수가 없어 결국 밖에 나가 펑펑 울었습니다. 마음속으로 그녀의 지적이 정말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생각했고, 개선해서 그녀의 기대에 부응하는 것은 아무 진전이 없었습니다. 그녀가 저의 단점을 지적하거나 일하는 방법을 부정할 때마다, 저도 모르게 마음속에 원한(怨恨)이 차오르고 있었습니다.

결국, 지도교수의 평가에 따라, 기초 지식과 기본 간호 기능을 향상시키기 위해, 다른 곳에서 기초업무 경험을 쌓으라는 권고를 받았습니다. 저는 충격에 휩싸였고 자신이 패배자가 된 것 같았습니다. 실력을 향상하기 위해 했던 모든 노력, 고생, 땀과 시간을 인정받지 못했기에, 저는 너무 실망해서 원한심이 날로 커졌습니다. 하지만 저는 여전히 밖에서 찾으며 책임을 남에게 떠밀려고 했습니다.

저는 몇 개월이라는 시간을 들여서야 비로소 부정적인 정서를 버렸고, 진지하게 안으로 찾으며 이미 발생했던 모든 일의 경과를 다시 돌아보게 됐습니다. 저는 그제야 자신을 수련인(修煉人)으로 여기지 않았고, 이것을 집착심을 버릴 수 있는 좋은 기회로 여기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속인 같았고, 결과가 불공정하다고 여겨 괴로웠습니다. 참기 어려운 상황을 만나면 원망하는 처지에 처했습니다. 저는 심지어 사부님께서 도와주시지 않았다고 원망하는 마음이 생겼는데, 아주 송구스럽습니다. 원한심이 이렇게 강하고 뿌리가 깊다는 것을 깨닫고 놀랐습니다. 마음에 이런 생각이 생긴 것에 대해 사부님께 진심으로 뉘우치고 고치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당신들이 비할 바 없이 아름답고도 성결(聖潔)한 세계에서 떨어져 내려오게 된 것은, 당신들이 그 층차 중에서 집착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서로 비교해 보면 가장 더러운 세계에 떨어지고서도 당신들은 재빨리 되돌아 수련하지 않고, 오히려 또 더러운 세계 속의 그런 더러운 것들을 붙안고 놓지 않으며, 심지어 조금만 손해를 보아도 고통스러워 어쩔 줄 모른다. 당신들은 아는가? 부처(佛)는 당신들을 제도하기 위해 일찍이 속인 중에서 동냥했고, 나는 오늘 또 큰문을 열고 대법(大法)을 전수하여 당신들을 제도하고 있다. 나는 무수한 괴로움을 겪었어도 고통스럽다고 느낀 적이 없는데, 당신들은 또 무슨 내려놓지 못할 것이 있는가? 당신이 마음속에서 내려놓지 못하는 것을 천국으로 갖고 갈 수 있단 말인가?”[1]

이 교류문장을 쓰면서 저는 원한심과 다른 사람의 지적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밖에서 찾는 데서 시작됨을 깨달았습니다. 진지하게 자신을 찾지 않았고, 지도교수가 지적하는 것을 진심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늘 교수님이 성격이 까칠해서 어울리기 어려운 것이라고 원망했습니다. 심지어 그녀가 지적하는 방식에 반발하기도 했습니다. 저는 지도교수가 저의 문제를 지적할 때, 그렇게 너무 직설적으로 할 게 아니라 좀 더 부드럽게 해주길 바랐습니다. 그녀가 제가 받아들일 수 있는 방식으로 지적하지 않았기에, 지적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사존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일부 수련생들은 수련 중에서 줄곧 밖에서 찾으며 밖에서 구하고 밖으로 보고 있는데, 누구는 자신을 잘 대해주지 않고, 누가 한 말은 거슬리고, 누구는 너무 속인적이고, 누구는 자신을 늘 못살게 굴고, 자신의 의견은 늘 채택되지 않는다고 한다. 이로써 대법제자가 법을 실증하는 어떤 일마저도 하지 않으며, 심지어 홧김에 수련을 하지 않는다. 당신은 정말 누구를 위해 수련하고 있는지를 모른단 말인가? 당신은 이 내키지 않는 일이 당신의 수련을 도와주고, 당신의 사람 마음을 제거하고, 당신의 집착을 제거하고 있다는 것을 정말 모른단 말인가? 당신이 수련하는 그날부터 시작해서, 인생의 길이 수련의 길로 개변된 것이 아닌가? 당신이 마주친 일체는 모두 우연한 것이 아니지 않는가? 당신은 신의 길을 걷고 있는 것이 아닌가? 당신은 정말로 귀로 듣는 것이 모두 듣기 좋은 소리이고, 대법제자가 모두 당신의 마음에 드는 말을 해야만 당신이 비로소 수련하려 하고, 당신이 비로소 제고할 수 있다고 여긴단 말인가?”[2]

처음에는 제가 겉으로는 완전히 지도교수의 지시와 지적한 것에 따라 아무리 노력한다 해도, 일을 하면 전혀 진보가 없어, 막다른 골목에 들어선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이 글을 쓰면서 제가 일할 때의 상황이 저의 수련 상태와 직결된다는 것을 분명하게 깨달았습니다. 그때의 저는 끊임없이 밖으로 보며 다른 사람을 비난하고 원망했습니다. 제가 지도교수가 지적하는 의견을 진심으로 받아들인 적이 없으므로, 빠르고 착실하게 제고할 수 없던 것입니다. 그때 만약 안으로 찾으며 수련과 심성을 제고하려 애썼다면, 이런 결과가 아니었을 것입니다. 이번에 해고되는 과정에서 저는 마침내 깊이 숨겨졌던 집착을 분명하게 알게 됐고, 제가 전에 전혀 대법의 요구에 따라 행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사부님께서 제게 숨겨진 원한이라는 집착심을 깨닫게 해주신 데 감사드립니다. 이런 집착을 깨닫자, 일할 때 어려움에 봉착하거나 혹은 다른 사람과 갈등이 생기면 자신이 바로 또 원망하기 시작한다는 것을 인지했고, 아주 빠르게 그런 부정적인 생각을 마음속에서 배척하고 버릴 수 있었습니다. 사부님께서 점화(點化)해주신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집착을 버리고 사존께서 안배하신 것을 믿다

2020년 중공 바이러스 대유행 때 저는 직장을 구하는 데 꼬박 4개월이 걸렸습니다. 친구가 다니는 한 아동 간호시설에 일자리 A를 신청하며 저는 롤러코스터를 탄 것처럼 기복이 있었고 몇 차례 거절을 당했습니다.

저는 일자리 A에서 면접은커녕 서류조차 거절당해 실망과 절망감에 시달렸습니다. 너무 울어서 다음날 눈이 퉁퉁 부었습니다. 이때 또 저를 지적하던 그 지도교수를 원망하기 시작했고, 그녀가 일자리를 추천해주면서 저에 대해 혹평했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예상외로 다음 날 상황이 바뀌었습니다. 그곳에서는 저를 다시 일자리 A에 고려해보겠다고 했고, 저는 다시 기쁨과 희망이 생겼습니다. 그런데 며칠 후, 취소 메일을 받았고, 나중에는 또 그것이 시스템 오류였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습니다.

소식을 알기 전까지는 두 번의 좌절을 겪고 실망하며 눈물을 흘렸지만, 나중에 좋은 소식을 접하고는 희망을 품으며 기뻐 날뛰었습니다. 저의 주이스(主意識)는 정서와 감각에 이끌려,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처럼 바뀌는 상황에 따라 움직였습니다. 매번 좌절을 당할 때마다 마음이 움직이는데, 이것이 심성을 고험하는 것임을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일자리 A에 대한 집착을 반드시 내려놓고, 사부님께서 안배하신 데 따라야 한다고 마음속으로 자신에게 말했지만, 여전히 해내기 어려웠습니다.

사부님께서 분명하게 알려주셨습니다. “수련은 곧 이 마난(魔難) 중에서 수련해야 하며, 당신이 칠정육욕을 끊어버릴 수 있는가 없는가, 담담히 여길 수 있는가 없는가를 본다. 당신이 그런 것들에 집착한다면 당신은 수련해 내지 못한다.”[3]

결국, 저는 일자리 A 면접을 마쳤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어른 환자를 간호할 수 있는 일자리 B에도 면접 기회가 생겼습니다. 그러나 어린이를 간호하는 일자리 A에 아주 집착했기 때문에, 저는 어른을 돌보는 것이 꺼려져서 B 면접은 보기 싫었습니다. 그때 A에서는 일주일이 지나도 아무 소식이 없었기에, 저는 심드렁하게 새로 들어온 면접을 준비하기 시작했습니다.

B 직무 면접을 준비하면서 A 직무에 대한 강한 집착을 느끼기 시작했는데, 마치 자기 이익에만 관심 있는 속인처럼 느껴졌습니다. 저는 그 직무에서 일에 대한 열정을 누릴 수 있기를 갈망했고, B 직무처럼 원치 않는 일을 하는 것을 참을 수 없었습니다. 일자리를 찾으면서 개인적인 취향에 대한 집착을 드러내며 강한 애증의 정서를 나타냈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아이를 좋아하고, 그들이 더 귀엽고 일을 더 재미있게 할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어린이를 돌보는 것이 훨씬 수월하고, 어른보다 작고 가벼우며, 육체노동을 덜 하기 때문인데, 저의 게으름과 안일을 구하는 마음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집착심을 깨닫게 되어, 저는 심성을 제고하며 이러한 집착심을 버리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래서 학습할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인 B 직무의 장점도 볼 수 있었습니다. 일자리 B 면접을 볼 때, 저는 이미 자연스럽게 되어감에 따라갈 수 있어, 결과와 관계없이 사부님께서 안배해주신 것을 믿었습니다.

B 직 면접을 본 지 얼마 되지 않아 친구로부터 A 직 면접 결과가 이미 확정되었는데, 사장이 저보다 경험이 많은 다른 간호사를 고용했다는 것을 들었습니다. 이것은 제가 세 번째로 같은 일자리에서 좌절당한 것이지만, 이번에는 마음을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실망하지 않았고, 사장과 고용된 간호사에 대해 원망하지도 않았으며, 마음속에는 선의와 위안이 가득했습니다. 저는 사장이 선택한 것이 왜 제가 아닌 그 간호사인지 잘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 간호사의 전문적인 지식과 다년간의 경험이 환자에게 더 유익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사부님께서 안배해주신 길을 믿고 자신의 집착에 따라 일자리 찾는 것을 강행하지 않았기에, 이번에는 저의 미래에 대해 신심과 희망을 갖게 됐습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사실 당신들이 속인 중의 명(名)·이(利)·정(情)에 해를 입어 괴로워한다면 아직 속인의 집착심을 내려놓지 못한 것이다. 당신들은 기억해야 한다! 수련 자체가 고생스러운 것이 아니라, 속인의 집착을 내려놓지 못하는 것이 문제다. 당신들이 명(名)ㆍ이(利)ㆍ정(情)을 내려놓지 않으면 안 될 때, 당신들은 비로소 괴로움을 느끼게 된다.”[1]

비록 조금 괴롭긴 하지만, 그것을 제거하고 이런 정서에 좌우지되지 않을 수 있어, 저를 실망케 하는 집착심을 버리자, 더는 정서에 통제되지 않는 자유로움이 느껴졌습니다.

마침내 집착을 버릴 수 있었고, 사부님께서 자비롭게 보호해주셔 기적이 나타났습니다. 이튿날 새벽, 친구가 제가 A 직에 합격했다고 알려주는 전화 소리에 잠에서 깼습니다. 친구는 사장이 저를 초빙하기 위해 특별히 일자리를 늘렸다고 알려줬습니다.

사부님께서 제자를 위해 안배하신 것은 모두 가장 좋은 것이었지만, 전에 저는 사부님의 제자라고 진정하게 여기지 않았고, 수련의 길에서 봉착한 심성 고험들을 진지하게 대하지 않았으며, 더욱이 심성을 제고할 기회로 여기며 집착을 바로 내려놓지 않았습니다. 또 완전히 신사신법(信師信法)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완전히 집착을 버리고 사부님께서 안배해주신 것을 믿자, 마침내 사부님께서 안배해주신 길을 제대로 걸을 수 있게 됐습니다. 다시 한번 자비롭고 위대하신 사부님께 감사드립니다.

맺음말

수련은 엄숙하므로, 집착심을 깨닫게 되면, 마땅히 그것에 좌지우지되며 시간을 낭비하지 말아야 합니다. 법공부를 통해 저는 집착을 아주 빨리 찾을 수 있었고, 심성의 변화도 더 쉽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현재 아직도 두려움, 안일을 구하는 마음, 질투심, 욕망, 감상적인 것 등등 많은 집착심이 있습니다. 사부님께서 우리를 위해 자비롭게 시간을 연장해주셨기 때문에, 제자는 꼭 더 정진하고 마지막 집착을 버리며 진상을 분명히 알리고 중생을 구도하는 사명을 완수할 것입니다.

개인 층차의 제한으로 타당하지 못한 부분이 있다면 수련생 여러분께서 자비로써 지적해주시기 바랍니다.

사부님 감사드립니다!
수련생 여러분 감사드립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진수(眞修)’
[2] 리훙쯔 사부님 경문: ‘유럽법회에 보냄’
[3]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전법륜’

(2021년 청년 대법제자 온라인 법회)

 

원문발표: 2021년 8월 6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1/8/6/42920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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